13. 앞으로 100일밖에 안 남았는데···.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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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앞으로 100일밖에 안 남았는데···. 하필이면···.
아침부터 계속해서 비가 내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하 슈트와 점프 부츠, 모두가 금세 흥건히 젖어 버렸다.
무거운 점프 부츠는 빗물까지 먹어서 그런지 마치 딱딱한 무쇠 신발을 신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다 딱딱한 점프 부츠를 신고, 계속되는 훈련을 받다 보니까 슬슬 발목이 으스러질 것만 같이 아팠다.
“주목! 강하 시, 기체에서 최대한 멀리 도약하지 않으면, 몸이 기체 문에 걸리거나, 비행기와 충돌할 수가 있다. 알겠나? 최대한 멀리 뛰어라!”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실제로 강하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행하는 모형탑 강하 훈련 시간이었다.
모형탑의 높이는 36피트(11m)로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 높이다.
36피트(11m)의 모형탑에서 뛰어내리면서 담력을 기르고, 실전 감각을 익히는 것이었다.
물론, 그냥 막 뛰어내리지만은 않는다.
기체 문 이탈요령과 공중 동작, 기능 고장 처치요령 및 착지 준비 자세를 다시 한번 더 익혀야 했다.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교관의 ‘뛰어’라는 명령에 다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뛰어내렸다.
그러나, 몇몇 병사들은 무거운 주 낙하산 하네스와 예비낙하산 때문에 몸을 L자로 만들지 못하고, 그냥 뚝 떨어졌다.
“189번! 지금 뭐하나? 몸을 L자로 만들라고는 한 말을 벌써 잊은 건가?”
“.....”
“190번! 지금 장난하나? 너, 지금 죽고 싶은 거야? 교관이 뭐라고 했습니까? 최대한 멀리 뛰고, 몸을 L자로 만들라고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심을 느낀 병사는 교관의 목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지, 멍한 표정을 지은 채로, 그저 줄만 타고 통통 튕기면서 끝까지 내려가 버렸다.
그리고는 착지도 제대로 못 하고 땅바닥에 처박혔다.
“정신들 안 차리나? 저게 뭔가? 아직까지도 이 모양이면 실전 투입 때는 어떡할 겁니까? 다들 그냥 운에 목숨을 맡길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잘못은 앞에 뛰어내린 몇 명의 병사가 했는데, 뒷감당은 차례를 기다리면서 대기 중이던 나머지 다른 병사들의 몫이 됐다.
“정신들 똑바로 안 차리면, 오늘은 야간 훈련을 해서라도 반드시 제대로 된 자세를 만들어 주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좋아. 지켜보겠다. 191번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192번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교관들의 다그침에 병사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에 이 지겨운 훈련을 야간에도 이어서 한다면, 당연히 다음날 훈련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또 그렇게 되면, 다음 날 훈련에서도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고, 당연하게도 또 지적받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시 야간 훈련으로 이어질 것이 뻔했다.
병사들은 이런 훈련의 악순환이 두려웠다.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하마터면 떨어지는 충격에 철모를 떨어뜨릴 뻔했다.
‘아휴, 애들 앞에서 쪽팔릴 뻔했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주 낙하산이 펴지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무의식적으로 예비낙하산을 펼 수 있도록 산개 검사와 기능 고장 처치를 했다.
“낙하산이 펴진 후 공중에서 떨어질 때 오른쪽과 왼쪽을 구별하지 못하는 병사가 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라. 아래턱이 뻑뻑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턱끈을 꽉 조여라. 산개 검사를 하자마자 낙하산 조종 줄을 빨리 잡아당겨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나무 위에 착지할 위험이 있다. 바람이 마을 쪽에서 불어오면 마을을 바라보고 착지 준비해라. 강하 후엔 통제탑 방송에 귀를 기울여라. 통제탑에서 하는 이야기대로 하면 절대 다치지 않는다. 첫 강하 때 다치면 지금까지 훈련받은 거 다 헛수고다. 앞꿈치와 무릎을 붙이고, 예측 착지를 하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 * *
“드디어, 강하 날짜가 잡혔다.”
본토에서 훈련받았다면 훈련 계획대로 차근차근 훈련이 진행됐겠지만, 한창 전쟁 중인 영국에서 훈련받다 보니까, 훈련 진행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대대장님, 훈련에 투입될 수송기 문제가 해결됐습니까?”
“그것은 아니다. 이번에 실시하는 강하 훈련은 기구 강하다.”
“네···?”
“그건···. 좀···.”
‘기구 강하는 좀 위험한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뭐, 어떡하든지 잘 되겠지.’
대대장의 대답을 들은 중대장들은 다들 조금은 당황스러웠는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기구 강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다들 그에 맞춰서 잘 준비하길 바란다. 그리고, 기구 강하를 무사히 마치면, 다음 주에는 야간 강하 훈련이니까 그것도 미리 대비하기를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 * *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12명의 병사가 교관의 지시에 따라 1초 간격으로 차례대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12초 후, 병사들이 있던 자리에는 주 낙하산에 달려 있던 생명줄만 휑하니 남아 있었다.
아직도 수송기가 부족한 영국군은 기구 강하를 할 수밖에 없었고, 영국군 제1공수 사단에 배속돼서 위탁 훈련받는 우리도 그렇게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음 주에 있을 야간 강하 훈련은 C-47 수송기를 이용한다는 점이었다.
“땅이 너무 가까워 보이니까 이거 진짜 살 떨리는 것 같습니다.”
“착지할 땅이, 기체 강하 때보다 조금 더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겠지만, 어차피 뛰어내리고, 낙하산 펴고, 착지하는 건, 똑같다. 그러니까 괜히 조급해하지 말고, 평소에 훈련했던 대로 차분하게 해라.”
“그건 알지만···. 뭔가, 마음이 급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냥 그런 것은 느낌일 뿐이다. 아무 일이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평소처럼 하면 된다.”
“그래도···. 뭔가, 좀 불안해서···.”
“아무 걱정하지 말고 배운 대로만 해라. 그럼 넌, 어느새 당당히 땅에 서 있는 너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다.”
“아니고,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내가 뛰어내려야 할 순서가 돼서 기구에 올라가자, 화이트 일병의 말처럼 사방이 뻥 뚫린 채로 바람에 조금씩 흔들리는 기구가 불안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그때, 같은 조원으로 편성된 아칸소주 촌놈 화이트 일병은 여전히 불안했는지 옆에서 계속해서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중대장님. 다음 주는 야간 강하 훈련입니까? 혹시, 그때도 기구 강하를 하는 것은 아니죠?”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행입니다요. 만약 기구 강하였다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거리까지 짧아서 낙하산이 펴진 줄도 모르고, 땅바닥에 처박힐 겁니다.”
기구 강하는 보통 1,000피트 정도의 높이에서 뛴다.
그리고, 수송기 강하는 3,000피트 상공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만약, 야간 강하 훈련을 기구 강화로 한다면, 정말로 땅바닥에 도착한 줄도 모르고, 땅에 충돌해서 사고가 속출할 것이다.
심하면 목뼈나 다리뼈가 부러져서 죽거나 크게 다치는 병사가 나올 수도 있었다.
“장비 검사!”
“장비 검사!”
“생명줄 걸어!”
“생명줄 걸어!”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뛰어!”
“강하! 산개 검사! 1만! 2만! 3만! 4만!”
확실히 1,000피트 높이의 기구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수송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보다 공포심이 훨씬 더했다.
내가 뛰어내린 후로도 같은 조에 편성된 인원들이 1초 간격으로 계속해서 뛰어내리고 있었다.
다들 무사히 착지하고 다음 강하 조원들의 훈련을 위해서 서둘러서 낙하산을 회수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쒜이에에에에에에엥!
‘이게 무슨 소리지?’
한참, 낙하산 회수와 무장을 회수하고 있던 조원들이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보자, 하늘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물체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을 향해서 미친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점점 다가오고 있는 물체가 하필이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시발! 왜, 하필이면···. 나야! 시발, 진짜 X 같네.’
“중대장님!!! 중대장님!!!”
“중대장님! 어서 피하십시오!”
하늘에서 뭔가가 나를 향해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머리는 빨리 피하라고 계속해서 명령하고 있었지만,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몸의 반응이 늦었다.
그리고···.
꽈광!!
급하게 피한다고 피했건만, 하늘에서 떨어진 물체는 점프 부츠의 앞코를 엄청난 속도로 때려버렸다.
“으악!!!”
엄청난 고통에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나를 향해서 중대원들이 놀란 얼굴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시발, X 나게 아프네.’
고개를 돌려서 내 발등을 때린 물체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는 다시 한번 쌍욕이 튀어나왔다.
“어떤 미친 새끼가 소총 파우치를 똑바로 단속을 안 한 거냐? 엉?!!! 도대체 어떤 새끼냐?”
발가락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의 강도를 봤을 때, 이건 분명한 골절이었다.
이로써 내가 오래전부터 빠른 진급을 위해서 세웠던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커졌다.
‘아···. 시발! 이제부터는 진짜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거길 가면 죽을 수도 있는데···. 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시발!’
부상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횃불 작전에는 참여할 가능성이 낮아졌고, 나중에 낙하산 보병부대들이 작전에서 주요 전력으로 활약해야 하는 이탈리아 전선으로 갈 가능성이 이제는 커졌다.
‘진짜, X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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