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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글쟁이 나카브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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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브
작품등록일 :
2015.09.13 15:24
최근연재일 :
2015.10.17 19:4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1,500
추천수 :
9
글자수 :
4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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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3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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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짝사랑하는 남자가 청혼을 준비하는 것 같다

DUMMY

행상인 노릇을 한지 14년째, 올해 가을도 변함없는 생활을 보냈다. 상단 마차 행렬을 따라 옆 나라에 물건을 팔고, 겨우살이 준비를 하러 늘 다니는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생활 말이다.


“제길 여기 길은 여전히 변함없이 좁구먼. 어이 형제들 조심하라고!”


열두 대의 마차 중 제일 앞서 달리는 마차에서 욕지거리 섞인 말이 울려 퍼졌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중에서 가장 좁고 돌부리 많은 길이 펼쳐진 탓이다.


작년 같았다면 이쯤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었으리라. 얼른 행상인 노릇을 그만두고 도시에 가게를 차리고 싶어했던 나는 이 길을 다니는 걸 영 싫어했다. 이 길을 다닌다는 건 여전히 돈을 덜 모아 행상인 노릇을 때려치우지 못했음을 뜻하는 거니까.


허나 올해는 달랐다. 내 눈에는 돌부리가 널린 바닥도, 좁디 좁은 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양쪽으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자란 이 길이 탐스럽게 보인다고만 생각했다. 황금빛으로 물든 경치가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아 보여서였다.


그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 다니기 불편한 길목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니, 1년 전 나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인데.


“정지! 잠깐 쉬었다 가자고. 더 가면 밥 먹을 공간도 없을 정도로 길이 좁아지니까.”


선두에서 달리던 상단 마차가 정지 신호를 보냈다. 상단 사람들은 모두 그 신호에 재빠르게 반응해 마차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그 동안 수습 과정을 밟는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스프를 끓이고 시작했다.


근사한 냄새가 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리 상단은 시간을 황금과 같이 여기고 밥 먹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사람들로 뭉친 조직이라 금방 해먹을 수 있는 요리만 하기 때문이다.


“자 모두들 저녁 먹고 한 숨 돌리자고. 이제 한나절만 더 가면 집에 돌아갈 수 있으니 힘내고!”


저녁 준비가 끝나자 걸걸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쉰 살을 넘겨 수염이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 잡혔는데도 여전히 현장을 떠나지 않은 고참, 보리스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상단에서는 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로 존경 받을 정도로 인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며 한 명씩 세심하게 격려해줬다. 그리고는 오랜 행상인 생활로 단련된 억센 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는 축하의 말을 건네줬다.


“류릭, 축하한다! 이번에 모피 판 돈까지 합치면 도시에다 가게를 차릴 밑천이 생긴다며?”


내가 열다섯 살에 수습으로 일하기 시작할 때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이,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많이 보살펴줬던 사람이 축하를 해주니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좀더 내게 일어난 경사를 자랑하고 싶었다.


“가게를 차릴 돈뿐이겠어요? 결혼 자금으로 쓸 돈도 충분히 모였다고요 보리스 아저씨.”


그랬다.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길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건 이 때문이었다. 고향까지 가는 길만 거치면 나의 가게를 가지고 싶다는 꿈과 결혼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 이러니 온 세상이 나를 축복해주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허허, 일벌레 류릭이 장가를 간다니 해가 서쪽에서 뜰 노릇인데? 헌데 누구하고 결혼할 건데?”


아저씨는 술병을 건네며 내게 질문을 던졌다. 자기가 열심히 보살펴줬던 신출내기 장사꾼이 누구와 맺어질지 매우 궁금했던 모양이다. 근데 아직은 누구와 결혼할지 알려드리고 싶지 않았다. 좀 더 나중에 알려드려 놀라게 해줘야지.


“도착하면 말씀 드릴게요. 괜히 떠벌려봤자 부정만 탈까 싶거든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고 술병을 기울였다. 헌데 바로 그 순간


“요 녀석 허세 부리는 거 보게? 아직 고백도 못해봐서 확신이 없는 건 아니고?”


“풉-!”


정곡을 찔린 바람에 목구멍으로 넘기던 술을 뱉어내고야 말았다. 하긴 얄팍한 술수로 속여넘길 상대가 아니지. 부모님 다음으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인데.


“야 류릭. 같이 마실 사람도 없는데 미리 축배 드는 거 아니다. 축하 받으려면 일단 찍어둔 아가씨의 마음부터 사로잡고 오라고 애송아.”


“쿨럭 쿨럭... 아니 뭐 잘 될 거에요. 넘어올 수밖에 없을 정도로 멋지게 청혼할 테니까.”


“실속만 차린다고 멋대가리 없는 말만 하는 고 입으로 누굴 꼬시겠냐 임마!”


그래도 내가 입을 다물기 시작하면 끝끝내 말을 안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아저씨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대신 간접적으로나마 궁금증을 풀고 싶었는지 다른 질문을 해왔다.


“그럼 어떤 여자를 점 찍었는지 대략이라도 이야기해봐. 추리라도 하면서 심심함이라도 달래게.”


“늘 이야기했던 제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여자에요.”


“이상형?”


“발랄하면서도 우아한 여성요. 뭘 하든 간에 기운차고 긍정적이면서도, 그렇다고 의욕만 앞세우진 않고 늘 사려 깊고 현명하게 행동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에요.”


술기운도 오르지 않았는데 입이 가볍게 움직였다. 누구와 결혼할지는 아직 비밀로 해두고 있지만 역시 아무 말도 안 하자니 재미가 없다. 이 정도는 이야기해줘도 되겠지.


“낮에는 아내와 함께 가게를 꾸리고 가끔씩 맛있는 요리를 같이 해먹으며 즐겁게 살 거에요. 말린 무화과나 설탕에 절인 사과로 맛을 낸 따끈따끈한 파이, 호두와 땅콩을 넣어 고소하고 바삭바삭한 쿠키, 통후추를 뿌린 고기... 뭐 이런 거 해먹으려면 돈을 제법 벌어야겠지만요.”


“네가 찍었다는 그 여자는 요리를 좋아하나 보다?”


“그럼요. 아주 좋아하죠. 잘할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나 같이 손이 많이 가는 요리들뿐이로군. 한곳에 정착하지 않으면 해먹지도 못할 것들뿐이야. 돌아다니면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만 해본 우리 상단 여자들에겐 무리겠는데... 혹시 외지 여자하고 결혼할 생각이냐?”


“하하, 어쨌든 동업자가 아닌 여자와 결혼할 거에요. 아 그리고... 신부는 아주 예쁠 겁니다. 긴 생머리가 정말 잘 어울려 자태가 우아하기도 한데다 따사로운 미소를 지을 줄 알거든요. 보고 싶으면 정말 한 눈에 반한다니까요.”


“알았어 알았다고. 없는 마누라 가지고 되게 자랑하네. 결혼하고 나면 아주 하루종일 자랑하겠다 욘석아!”


아저씨는 손을 휘휘 젓고는 등을 돌렸다. 휴식은 어느 정도 취했으니 다시 떠날 채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고향에서 하자. 마차 모는 일은 이샤한테 맡기고 눈이나 붙여두라고.”


“그래도 될까요? 그냥 제가 고향까지 쭉 몰고 가도 문제 없지 않을까요? 이샤는 쉬게 하고...”


“네가 내 딸을 여동생처럼 아끼는 건 아는데... 늘 말했잖냐. 교대 받은 사람은 쉬는 게 일이라고. 나중데 다시 교대했을 때 잠이 부족해서 사고를 내면 안 된단 말이다. 게다가 우리 고향에서 내려오는 교훈을 뭔지 잊지는 않았지?”


“틈틈이 쉬면서 도끼날을 갈아주는 나무꾼이 죽어라 나무만 베는 나무꾼보다 일을 훨씬 더 잘 한다는 교훈 말인가요. 뭐... 틀린 말은 아니죠.”


아저씨의 충고를 받아들여 마차로 향했다. 이샤는 이미 일어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마차 안에는 그저 수북이 쌓인 짐과 새우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잠자리만 보였다.


“어래? 내 작은 딸은 어디로 간거야? 류릭, 이샤에겐 내가 이야기할 테니 자고 있어라.”


“고마워요 아저씨. 아저씨도 얼른 교대 받고 주무시죠.”


짐칸에 몸을 실고 이불을 덮었다. 운 좋게도 이불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에 눈이 절로 감길 것만 같았다.


덜컹-

물론 마차가 출발하면서 난 소리 탓에 잠이 살짝 깨고 말았지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마차 바퀴가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소리와 안에 있는 짐이 흔들려 달그닥 달그닥거리는 소리를 자장가로 삼을 수밖에 없는 행상인의 고달픔을.


아무려면 어떠랴. 옛날 같았으면 마차 소리 때문에 잠을 푹 잘 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바퀴 소리가 요란하게 울릴수록 고향에 빨리 다가가는 것 같아 기쁘기만 하다.


그래, 이 소리가 그칠 때쯤이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좋아했던 여자에게 고백을 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날이, 14년 동안 그토록 염원했던 날이. 그러니 이까짓 소음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

.

.

.

상단에 몸을 담은 지 어느덧 8년째, 아빠를 돕고 싶다며 따라나선 게 어제 일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구나. 왠지 모르게 억울한 기분이 살짝 든다. 가장 꽃다운 나이를 바쳤는데 이렇게까지 짧고 허무하게 느껴질 거라고는.


의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8년의 세월은 수줍음만 많던 여자애를 붙임성 좋은 숙녀로 바꿨고, 세상물정 모르던 철부지를 자기 일에 책임질 줄 아는 어른으로 키워줬다. 그리고 내 이름도 전혀 다른 느낌으로 불리게 됐고.


이샤, 이 이름은 8년 전까지만 해도 콧소리가 살짝 섞인 높은 어조로만 불렸다. 좋게 말하면 귀엽고 사랑스럽게 부르는 말투고 나쁘게 말하면 어린애로만 취급하는 말투로 말이다.


지금의 ‘이샤’는 좀 더 무게가 담긴 어조로 불리고 있다. 신뢰할만한 거래 상대, 믿고 일을 맡길만한 상단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있어서다. 그런 말투로 불리게 되기까지 많은 교훈을 준 세월에 대해서는 지금도 감사히 여기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7년째까지는 정말 소중하고 보람된 경험만을 안겨주던 세월이 8년째에 이토록 커다란 아픔을 남겨주리라고는.


사건은 고향에 도착하기 약 하루를 남긴 날에 일어났다. 그때 나는 몸으로 모포를 덥히느라 마차에서 늦게 나왔다. 나와 같은 마차를 타는 6년차 선배- 내가 짝사랑하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서 저녁을 먹으러 나섰지만, 식량을 실은 마차 뒤편에 이를 무렵 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지는듯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가게를 차릴 돈뿐이겠어요? 결혼 자금으로 쓸 돈도 충분히 모였다고요.”


남몰래 좋아했던 선배가 누군가와 결혼을 한다니.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얼굴은 겨울바람이라도 쐰 마냥 차갑게 식어갔고 손과 다리는 후들후들 떨리기만 했다. 마침내는 마차 뒤편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몸을 숨기기라도 하듯.


그 와중에도 선배와 아빠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럼 어떤 여자를 점 찍었는지 대략이라도 이야기해봐. 추리라도 하면서 심심함이라도 달래게.”


“늘 이야기했던 제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여자에요.”


무너져 내린 몸이 어느덧 마차 바퀴에 바짝 기대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걸까? 선배의 말을 좀 더 자세히 들으려고? 들어봤자 상처가 될 텐데 어째서? 그만 두는 게 좋지 않을까?


헌데 머리는 이 자리를 떠나라고 필사적으로 외치는데 가슴이 응해주지 않는다. ‘어쩌면 선배가 말하는 이상형이 나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어서일까.


그게 헛된 기대로 밝혀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디론가 도망가듯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었다.


첨벙.

그 목적지가 길가에 있는 개울가였음을 깨달은 것은 얼굴을 차가운 물속에 들이밀고 난 뒤의 일이었다. 머리를 차게 식히지 않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탓이었을까.


일단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휴식 시간이 끝나기 전에 표정을 가다듬고 마차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니 진정하자. 진정해야 해. 눈물을 삼키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해.


“어...?”


허나 진정해야 한다는 의지와 달리, 내 얼굴을 비치는 수면은 뚝뚝 떨어지는 뭔가 때문에 한없이 일렁이기만 하고 있었다. 뭐가 하염없이 흘러나와 뚝뚝 떨어지는지는 뻔하고도 뻔했다.


첨벙, 또 다시 첨벙. 몇 번이고 얼굴을 물속에 담근다. 얼굴 전체를 적시면 내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감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샤! 이샤? 거기서 뭐하니? 슬슬 출발할 시간이라고.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렇냐?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때마침 아빠가 나를 발견했다. 다행히 얼굴 전체에서 흐르는 물기만 신경 쓰느라 눈가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듯 했다.


“어 아빠. 이건.... 아무 것도 아냐. 잠 좀 빨리 깨려고 세수했어.”


“아무리 그래도 너무 했잖냐. 옷이 젖을 정도인데... 수건 주랴?”


“돼, 됐어! 자연히 마르도록 놔둘래. 그 편이 더 시원하고 잠 깨는 데에 도움이 되니까.”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마차 위에 올랐다. 그리고는 앞서 달리는 마차를 따라가는 데에만 집중했다. 다른 생각은 하기도 싫었다. 왜 눈물을 왈칵 쏟았는지 떠올리면 비참한 기분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 노력도 오래 가지 못했지만. 허기를 달래기 위해 육포를 입에 넣은 순간 잊고 싶었던 것이 떠올라 버렸다.


“짜...”


형편없는 육포다. 잘못 말려서 이리저리 뒤틀렸고, 양념을 고루 바르지 않아서 어떤 데는 싱겁고 어떤 데는 너무 짠 실패작이다. 그래도 불평을 늘어놓을 수 없었다. 다름 아닌 내 손을 거쳐 만들어진 육포니까.


그렇네. 난 정말 요리를 지지리도 못하는구나.


또 다시 울음을 삼키려 애써야 할 때가 왔다. 자신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아까 눈물을 쏟았던 이유도 떠올린 탓이었다. 나는 선배의 이상형과 동떨어진 여자라는 사실을. 짝사랑은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말았다는 사실을.


선배의 이상형은 매우 가정적인 여자였다. 같이 가게를 꾸릴 수 있고, 맛있는 요리도 할 줄 알고, 행상인 일을 하는 여자에게는 사치로 꼽히는 긴 생머리와 우아한 자태를 지닌 그런 여자 말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선배의 이상형에는 조금씩 거리가 있는 여자였고.


어릴 때만 해도 분명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애라는 칭찬을 많이 들었는데 나. 그 머리카락은 일하는 데에 방해돼서 잘라버린 지 오래다. 지금은 그저 선머슴애 같이 씩씩한 단발머리 여자애로 보일 뿐.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다는 말에도 가슴이 아파온다. 요리는 매우 좋아한다. 도시에 방문해서 빵집이나 좌판에서 요리하는 사람을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긋이 쳐다볼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능력이 따라가지 못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행상인에겐 요리 실력을 갈고 닦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시간만 더 있었다면 요리를 정말 좋아하면서 잘하는 여자애가 됐을 텐데. 왠지 한끝 차이로 선배의 이상형에 탈락한 느낌이 들어 분한 마음이 든다.


하긴... 그래봤자 가장 결정적인 조건에 걸리니 소용 없구나.


‘어쨌든 동업자가 아닌 여자와 결혼할 거에요.’


한 곳에 정착하려는 행상인은 동료 행상인보다는 도시 상인의 자녀와 결혼하길 원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야 좀 더 쉽게 가게를 열 수 있으니까. 선배는 늘 정착하고 싶어했지. 그러니 같은 행상인과 결혼해 이곳 저곳 떠도는 생활을 계속하길 원하지 않을 거야.


그렇구나. 내가 선배의 마음 한 구석이라도 비집고 들어갈 틈은 애초부터 없었어.


눈물이 다시 뚝뚝 떨어진다. 어느덧 해가 저물고 어둠이 찾아온 덕분에 아무도 내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없고, 마차 바퀴가 삐걱거리며 굴러가는 소리 덕분에 아무도 내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돼 다행이지만.


그런데... 마차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에 맞춰 심장이 쿵쿵 울리는 게 괴롭다. 소리가 날 때마다 고향이 가까워지고 선배와 이별할 순간이 다가오는 거 같아 괴롭기만 하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생각하기를 그만 두고 싶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짙게 깔린 어둠이 가시고 여명이 비치기 시작했다. 다음 휴식터에서 선배와 교대를 해야 할 텐데 얼굴을 가릴 방법이 없구나. 밤새 숨죽여 우느라 얼굴이 엉망이 됐을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이샤, 힘들지? 이제 교대하자.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선배가 본래 교대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버리고 말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쉴 수 있게 배려해줄 생각이었나 보다.


“류릭 선배...”


평소대로였다면 두근두근한 기분이 들었겠지. 남 몰래 좋아하는 선배의 자그마한 배려를 받고 기뻐했겠지. 그리고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겠지.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선배는 예나 지금이나 정말 따스한 사람이었다. 실수를 저지를 때는 괜찮다고 넘어가주고, 맡은 일을 잘해낼 때는 그게 아무리 눈에 안 띄는 일이라도 용케 찾아내서 칭찬해주고, 힘이 부친다 싶을 때는 어느새 곁에 와서 도움을 줬다.


그래서 반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선배와 함께 있기만 해도 설레고 선배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뛰는, 사랑에 빠진 수줍은 소녀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제 선배의 배려에 설레는 것도 끝이구나. 조만간 선배의 따스함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만을 위한 것이 될 테니까.


“이샤? 왜 그래, 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 거 아냐?”


선배는 고맙게도 내 걱정을 해줬다. 그러나 마음이 더 아려온다. 어찌나 마음이 아려왔는지 그 이후 선배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잠자리로 들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정말 잔혹한 일이다. 선배의 따스함에 상처를 받는 날이 오게 될 줄은.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 일 아닌가. 그냥 자자. 깨어있어 봤자 괴로울 따름이니 지금의 감정을 잊을 정도로 푹 자버리자. 그런데...


“...읏.”


바로 푹 잠들기에는 잠자리가 싸늘하다. 선배가 급히 나오면서 모포를 아무렇게나 걷어차버려 온기가 싹 달아난 탓일까.


섭섭한 마음에 잠이 더 안 온다. 내가 교대해줄 때는 선배가 좀 더 따뜻하게 잘 수 있게 온몸으로 모포를 품어 덥혔는데...


아니, 섭섭해 할 일이 아니다. 나야 선배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선배에겐 그저 여동생과 같게 보일 테니까. 내가 선배에게 해줬던 배려를 선배에게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 뿐이야.


오히려 깨끗이 단념하는 게 맞아. 선배와 내 사이는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이라고.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해서 졸졸 따라다녔을 뿐인 사이라고 납득해버리자. 계속 고집해봤자 계속 상처만 받을 뿐이니까.


그러니까 안녕, 내 첫 사랑. 이 길이 끝나면 다시는 짝사랑 상대에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이 없기를. 그의 행복에 괴로워하지 않기를 기도하자.

.

.

.

얼마나 자버린 걸까. 더 이상 마차 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차 안의 짐도 다 치워져 있었다. 남은 것은 나 하나뿐이었다. 설마 내가 곤히 잠든 동안 동료들이 일을 끝낸 것일까. 그러면 큰일인...


쿵!


“꺅!”


눈 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급하게 일어나는 순간 마차 천장에 머리를 박고 만 것이다. 어찌나 세게 박았는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였다. 계속 숨죽여 울었는데도 아직 눈물이 나올 줄이라고는.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어서 밖으로 나서야 한다. 한창 일할 때인 내가 잠을 자느라 짐 내리는 일을 돕지 못하다니...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워진다. 아직 동료들이 일하는 중이라면 얼른 도와야 한다. 하다못해 사과라도 빨리 하지 않으면-


“죄송해요. 너무 곤히 잠 들어서...!”


그렇게 허둥지둥 마차 바깥으로 나온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선...배?”


“어 그러니까... 아하하, 잘 잤어 이샤? 좀 피곤했지?”


눈앞에는 류릭 선배가 서있었다. 평소의 선배답지 않게, 아주 수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쭈뼛거리며 말이다. 이런 모습은 처음인데...? 거기다 손에 들고 있는 꽃다발은 뭐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향에 돌아올 때는 긴장이 풀어져 복장이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오늘은 웬 일로 말끔히 차려 입고 있었다. 활발하다 못해 제멋대로일 것 같은 인상까지 주는 붉은 머리칼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늘 장난기가 서려있던 표정도 진지하게 지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어디 거래 나가세요 선배?”


“뭐, 거래라면 거래긴 하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거래- 아아, 아니 취소! 이런 영문 모를 소리를 좋아하는 아가씨는 없겠지.”


선배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말은 멋지게 하고 싶은데 머릿속에 딱히 이렇다 할만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대체 왜? 이제껏 나한테 표현을 골라가며 말한 적이 없을 정도로 편하게 지내는 상대였을 텐데.


바로 그때, 선배는 내 의문에 답을 줄만한 말을 내뱉었다.


“음... 어흠! 길게 말해봤자 나한텐 어울리지 않겠지. 이샤, 좋아한다. 나와 결혼해줘!”


순간 귀를 의심했다. 뜻밖에도 이런 말을 듣다니. 머리 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뭐라 답을 해야 할 줄 모르겠어. 어째서?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었나?


“...어, 어째서? 긴 생머리가 어울리는 여자를 좋아한 거 아니었어요?”


“머리는 기르면 돼!”


“요리 잘하는 여자가 좋다면서요. 근데 전...!”


“좋아하잖아. 연습하면 언젠가 잘하게 될 거야 걱정마!”


“행상인 여자 말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겠다면서요?”


“나하고 결혼하면 행상인 일은 그만둬야지. 너한테 이런 고달픈 일을 계속 시키고 싶지 않아. 무엇보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게가 잘 되도록 하려면.”


믿을 수가 없다. 난 결코 선배의 이상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이렇게 간단히 허물어질 수가. 이건 정말 꿈이 아닐까? 눈 앞의 선배는 진짜 선배가 아니라 내 몽상이 만들어낸 가짜가 아닐까?


“그 꽃... 도시에서 살 때 저한테 분명 말했잖아요. 고향에 심을 거라고.”


눈앞의 상황을 믿지 못해 계속 질문을 던지다 정말 안 물어봐도 될 질문까지 던지고 말았다. 그 질문을 받은 선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에 심을 거였다고.”


“네?


“그러니까... 네 마음에 심으려고 가져온 거라고...”


정말 촌스럽기만 한 대답을 내뱉고 말았다. 본인도 잘못 답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상대는 정말 류릭 선배가 맞구나. 짧고 실속 있게 말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멋지게 말할 줄 모르는 걸 보니.


“뭐에요 그 어설프게 멋부리는 말은... 선배한테 안 어울려요.”


“...미안. 안 어울리는 거 알아. 근데... 그래도 난 진심이라고.”


선배는 굉장히 쑥스러워하면서도 다시 꽃송이를 들이밀었다. 고백을 받아줄 건지 말 건지 묻는 대신 말이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꽃송이를 받아들였다. 이 부드러운 감촉, 코 끝에 은은히 감도는 향기, 정말 이건 꿈이 아니로구나.


어라, 근데 왜지.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확신한 순간 이미 다 흘려버렸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배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엉뚱한 말을 하고 만다.


“너무...해요. 흑...”


“이샤..? 왜 그래 갑자기?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거야?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사과할 테니까 울지 말고...”


“너무하다고요! 이럴 거라면 진작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애써 잊으려 했던 간밤의 서글픔이 생생히 되살아나고, 서글픔은 원망으로 변해 입밖으로 쏟아져나왔다. 선배를 더 이상 좋아할 수 없다며 혼자서 가슴앓이한 일이 괜히 억울해진 탓일까.


아니, 조금 다르다. 선배에게도 화가 나 있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만 좋아하다 끝나는 줄 알았다고요 나만...! 선배가 결혼하겠다는 이야기 듣고 얼마나 놀랐는데...!”


“내가 네 마을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런데... 호강은 못 시켜줄망정 고생시키긴 싫었다고. 그래서 확실히 자리를 잡을 수 있다 확신할 때까진 아무 말도...!”


“그게 잘못한 거라고요 선배! 게다가 뭐에요? 일 끝내고 나서 머리도 부스스하고 밤새 남몰래 울어서 눈도 붓고 그랬는데.... 이런 때 고백하는 게 어디 있어요 멋도 없게!”


“어 그건...”


“나도 선배에겐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싶었다고요. 가장 예쁘게 가꿔서 선배에게 고백하고 싶었다고요. 선배도 날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말이에요! 그리고...”


“그리...고?”


“같이 가게 차리자고 이야기했으면 제가 거절할 리가 없잖아요! 같이 돈을 모았다면 고생은 했어도 벌써 가게 마련하고 지냈을 텐데!”


“...”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를 냈으면, 먼저 선배의 마음을 확인하려 했다면 이토록 마음 아파할 필요가 없었는데.... 선배가 돈을 모은다고 이토록 고생할 필요도 없었는데...”


그렇네. 내가 짝사랑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면 간밤에 죽도록 가슴앓이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이렇게 선배에게 화내며 글썽거릴 일도 없었을 텐데. 난 참 바보로구나 정말.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기 시작할 무렵, 따스한 손길이 내 머리 위에 올라왔다. 선배의 손이었다.


“미안. 내 잘못이야. 괜히 내가 자리 잡은 뒤 고백하겠다고 폼 잡아서...”


“아... 아니에요. 그건 제가 괜히 말한...”


“지금이라도 바로 잡자. 네가 원하는대로 해. 가장 아리땁게 꾸며서 고백을 받아줘.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랑으로 만들 정도로 말이야.”


“그러면 번거롭...”


“신경쓰지 마. 네가 만족할 때까지 몇 번이고 고백할 수 있으니까 난.”


“...뭐에요 그 말은 또. 어디서 이상한 말만 주워들은 거 같아.”


핀잔을 주긴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저 날 위로하려고 토닥거리는 선배의 손길이 좋아서, 조금 투정을 부리면 선배의 온기를 직접 느끼는 소중한 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얄미운 말을 했을 뿐.


그래. 마차를 몰 때 모포를 통해서만 나눠받던 귀중한 따스함을 직접 품는 날이 왔구나. 너무나도 기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상관 없을 것만 같아.


...라고 생각하던 그 찰나.


“이, 이게 무슨 일이야? 어르신들에게 보고하러 간 동안 뭔 일이 일어난 거냐고!”


놋그릇이 깨질 때나 날 법한 카랑카랑한 울림이 한 남자의 입 밖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딸바보 아빠였다.


“보, 보리스 아저씨...?”


“너 임마 설마.... 청혼하겠다는 상대가 내 딸이었던 거냐?”


“어 그게.... 아하, 그렇게 됐네요. 장인 어른.”


선배한테서 장인 어른이란 말을 듣는 걸 싫어해서일까? 얼굴에 핏줄을 세운 채 부르르 떨 정도라니... 아니, 적어도 선배를 싫어해서 저런 건 아닌 거 같다. 아빠는 류릭 선배를 매우 좋게 봤으니까.


설마... 아직 딸을 시집 보내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걸까. 그러고보니 저 표정 일전에 본 거 같다. 분명 언니가 시집갈 때 저런 표정을 지었지. 사위는 마음에 들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벌써 시집 보내야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며 밥상을 뒤집었지 아마.


아무리 선배가 토닥거려주는 게 좋다곤 해도 슬슬 끊는 게 좋겠다. 그때 형부가 아빠한테 무슨 일을 당했는지 생각한다면...


“선배, 일단 도망가요!”


“어... 잠깐 이샤, 잠깐만...!”


“저런 표정 짓는 아빠하고는 대화가 안 된다고요. 어서요! 이성을 차릴 때쯤 다시 이야기하면 허락받을 수 있을 테니 지금은 피해요!”


그렇게 짝사랑이 청혼하던 날, 생전 처음으로 사랑의 도피란 것까지 해보고 말았다.


작가의말

‘한정된 공간에서 온도차가 나는 두 사람의 감정을 묘사하시오 (주관식 10점)’


지인한테서 이런 미션을 받아서 작성했습니다. 미션을 받자마자 ‘한 방을 같이 쓰는데 들어오는 시간이 달라서 모포에 남은 온기로 상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남녀’라는 소재가 떠올랐고, 조금 쓸쓸한 분위기로 쓰려 했어요.


근데 쓰다 보니 쓸쓸하게 쓰면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가 안 될 듯 하고 여운도 딱히 없고 애매한 물건이 나오겠다 싶어서... ‘짝사랑 상대가 떠날 줄 알았더니 나한테 고백하더라’는 이야기로 바꿨습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살을 붙이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나왔네요.


쓰면서 손이 오글오글한 감이 있긴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이런 소재를 써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신선하네요. 앞으로도 지인들에게서 미션을 받아 다양한 도전을 해봐야겠습니다. 



여담으로 제가 이 소설 써서 지인들에게 보여줄 때 이런 반응이 나오더군요.


“아 나 이거 알아! ‘고향에 돌아가면 결혼을 할거야’라는 사망 플래그지? 이 상단 언제 전멸해?”


....

..........


전투씬하고 주인공 굴리는 이야기만 주구장창 쓴 업보 탓일까요. 플라토닉한 연애물을 써도 이런 반응이.... (부들부들)


피드백은 늘 환영합니다. :) 어색한 점이 있다 싶으면 지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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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2 제국의황제
    작성일
    15.09.30 16:48
    No. 1

    저도 상단이 몰살하고 여주만 살아남아 오열하는 그런세드엔딩인줄 알았어요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8 나카브
    작성일
    15.09.30 18:17
    No. 2

    아하하하....ㅠㅠ 더 다양한 소재를 다루면서 틈틈이 따스하고 간질간질한 이야기도 좀 써야겠네요. 여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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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ay good bye, good day +4 15.10.17 435 3 41쪽
» 짝사랑하는 남자가 청혼을 준비하는 것 같다 +2 15.09.30 586 2 28쪽
1 Boy meets girl +2 15.09.13 480 4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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