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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븅븅이 님의 서재입니다.

흑마법사는 금기를 깨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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븅븅이
작품등록일 :
2023.05.10 20:55
최근연재일 :
2023.06.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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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29

작성
23.06.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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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7화.

DUMMY

#27.


대륙에서 가장 우중충한 도시.

일 년 중 절반은 차가운 비로 덮여있는 도시.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낭만이 숨어있는 도시.

세상에서 가장 맛이 좋은 마력주를 생산해 내는 도시.


이것들은 과거 흑마법 학관이 자리 잡았던 사티누를 수식하는 말들이다.


[어서 오세요. 진정한 마법사의 도시. 사티누입니다.]


원래는 이러한 팻말이 사티누의 입구마다 놓여있었다.

관광이나 상업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지만 흑마법사들의 존재가 이 도시의 가치를 높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죄다 없어졌구만. 위치 선정에 내가 얼마나 많은 신경을 썼었는데···.’


정확히는 사티누를 알리는 팻말이 없어진 게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대체되어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진정한 죄인의 도시. 사티누입니다.]


‘미친놈들···.’


이런 유치한 짓거리를 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틀림없이 하얀 쓰레기 자식들이 이따위 꼴로 만들어 놓은 모양이군.’


하지만 팻말과는 무관하게 루이를 여전히 반기는 게 있었으니, 바로 먼지를 가득 품은 빗줄기.


투둑. 투둑.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건가···.’


투둑. 투둑. 투둑.


검은 먹구름은 마치 옛 주인의 입성을 반기듯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축하의 검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는 루이에게 박수를 보내듯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앞에 차가운 비가 컴컴한 장막을 친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가 알고 있던 사티누의 하늘 그대로였다.

어둡고, 우중충하고, 우울하다.


손바닥을 펴 떨어지는 빗줄기를 받았다.

차갑고 냉정하고 냄새나는 비였지만 이것이 그가 알고 있던 진정한 사티누의 빗방울이었다.


손에 묻은 물을 옆으로 털어내며 도시 전체를 바라보았다.

폭우 사이로 군데군데 불빛이 피어나는 걸 보니 아마도 아직 이 땅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래. 내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기대해라. 여기서는 내가 못 할 게 없으니···.’


루이는 자신을 여기까지 따른 라데스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어디서나 적들과 마주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화려하거나 눈에 띄는 복장은 곤란했다.

특히 라데스가 걸치고 있던 마갑주는 그의 신분을 의심케 하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했다.


“라데스···. 천으로 좀 가려야겠구나. 여기서부터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세상에 공개될 우려가 있으니···.”


흐왕.


라데스는 루이의 의중을 마치 알아들은 것마냥 거친 숨소리로 답했다.


그러고 보니 라데스는 이곳과 사뭇 잘 어울렸다.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그가 풍기는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한층 무거운 기세로 다가왔다.


“너도 이곳이 좋은 게냐···.”


흐왕.


“그래. 이곳이 바로 사티누. 모든 흑마법사가 태어나고 자라난 오연하고 처연한 도시. 내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길 곳곳엔 라데스의 옷을 대신할 넝마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도시의 분위기와 알맞게 더러웠다.


대충 덧대어 입혔을 뿐인데 라데스는 어엿한 부랑자로 변해버렸고 루이도 보조를 맞춰 비슷한 행색으로 꾸며 입었다.


“가볼까?”


그렇게 루이는 사티누로 들어섰다.


그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술집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은 도시의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제격이다.

그렇다면 사티누에서 가장 큰 술집 ‘봉봉’을 찾아야 했다.

생각해보니 왜 하필 그 술집 이름이 ‘봉봉’이었는지 루이는 모르고 있었다.


“여기군···.”


일 층짜리 넓은 그 건물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가게의 이름을 알리는 간판은 부서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쏴아아아.


여전히 빗줄기는 굵은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라데스, 추으냐?”


흐왕.


“그래, 괜찮을 줄 알았다. 너는 저곳으로 가서 잠시 숨어있거라. 비도 좀 맞고. 사색도 좀 하고.”


흐왕···.


루이는 과도한 이목을 끌고 싶진 않았기에 단신으로 술집 안에 들어갔다.


덜컥. 끼이익.


나무로 된 묵직한 문을 밀며 들어서자 아늑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 분위기와는 다르게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저마다 중요하지도 않은 대화를 신중하게 나누고 있었다.


루이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가 은화 하나를 탁자에 놓으며 말했다.


“제일 잘 나가는 걸로 한 잔 주십시오.”


덩치가 크고 피부가 까만 술집 주인은 루이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못 보던 사람인데? 어디서 왔지?”


‘초면부터 반말이라니. 이곳 분위기는 여전하구만. 크크.’


루이는 빙그레 웃었다.


“세르찬에서 왔습니다. 이곳은 과거에도 여러 번 들린 적 있고···. 그나저나 예전에 이곳을 운영하던 사람은 노부부였던 것 같은데···.”


노부부라는 말이 나오자 주인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루이의 말을 무시한 채 자신이 궁금한 것만 물어보았다.


“세르찬?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어쩐 일로?”


“떠돌이에게 이유가 있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루이가 내려놓은 은화를 손가락으로 툭툭 가리켰다.


“술 한 잔 값치고는 너무 많은데? 잔돈 따윈 없어.”


“술 한 잔 값에 이것저것 좀 물어보는 비용으로 받아두시죠.”


주인은 냉큼 은화를 집어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만 기다려. 괜찮은 걸로 한 잔 내오지.”


루이는 기다리는 동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뭐, 당연했다.

초라한 거지에게까지 관심을 보일 만큼 넉넉한 곳은 아니었으니.


그때 문을 열고 또 한 사람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한눈에 보아도 신기한 사람이었다.

여우처럼 보이는 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고 손엔 제법 근사한 세검을 쥐고 있었다.


항상 이곳에 찾아오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루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헛기침 두 번으로 주인장에게 자신이 온 것을 알렸다.


“똑같은 걸로.”


주인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성의 없이 흔들며 주문을 접수했다.


여우 가면의 사내는 루이를 바라보며 다리를 꼬았다.


“거긴 원래 내 자리야. 오늘은 특별히 양보하지.”


그의 목소리엔 알 수 없는 침울함과 근심이 무겁게 담겨있었다.

그는 비를 흠뻑 맞아 젖어있던 자신의 검을 수건으로 정성스레 닦기 시작했다.

제법 아끼는 물건 같았다.


루이는 그 사내가 흥미로웠다.


“자리를 양보받은 기념으로 제가 한 잔 사지요. 저는 루이라고 합니다.”


검에 시선이 꽂혀있던 그자는 루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면에 가려져 있었기에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그분의 이름과 똑같군···. 한 잔은 고맙게 받지. 나는 딱히 이름은 없네. 그냥 여기선 제리라고 불리지. 그러니 혹시 부를 일이 있다면 제리라고 부르게.”


“그렇게 하지요. 제리.”


제리라는 사내도 루이가 흥미로웠던지 가면 사이로 뚫린 두 구멍으로 루이를 훑어보았다.


“이 앞에 주인장의 이름은 두봉이네. 친하게 지내두면 좋을 걸세.”


“거 쓸데없는 소릴!”


술집 주인인 두봉은 고개를 돌리며 제리를 나무랐다.


루이가 뼈만 남은 앙상한 얼굴로 키득대며 웃자 제리의 눈엔 걱정의 빛이 감돌았다.


“그런데···. 술보다는 식사를 챙겨야 할 것처럼 보이는데?”


루이는 조용히 제리의 말을 받았다.


“체중 관리 중입니다.”


“자네도 평범함을 거부하는 족속이군. 크크···.”


두봉은 술을 가득 따른 잔 두 개를 탁자 위로 과격하게 내려놓았다.

그 덕분에 아까운 술이 밖으로 잔뜩 넘쳐흘렀다.


“오늘은 맛이 꽤 좋을 거야.”


“자네 말에 몇 번째 속는 건지 모르겠구만···.”


제리는 상투적으로 두봉의 말을 받았다.

가면 때문에 어떻게 술을 마시나 봤더니 두봉이 가져온 빨대를 컵에 꽂아 열심히 빨아먹기 시작했다.


“당신도 평범함을 거부하는 족속인가 보군요.”


제리는 입에 문 빨대를 살짝 뱉었다.


“최고의 상찬 고맙네.”


두봉은 이 둘을 우습게 번갈아보더니 맞은편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은화값을 치러야지. 뭐가 궁금하냐? 촌객.”


루이는 시원하게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마력주에 비하면 형편없는 맛이었지만 그것에 대한 평가는 하지 않았다.


“이곳에 흑마법 학관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흑마법 학관?”


두봉은 의자를 당겨 루이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제리는 입에 문 빨대를 다시 뱉어내며 루이를 바라봤다.


두봉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져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을 만큼의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그걸 어찌 아누?”


루이도 그와 목소리를 맞췄다.


“어릴 때 이곳에 자주 오곤 했었지요. 그래서 압니다. 예전에 번성했던 그곳이 지금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합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제리가 한마디 거들었다.


“신기한 걸 궁금해하는군. 이곳에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 하지만 모두가 말하기 꺼리는 내용이기도 하고.”


두봉은 주머니에 든 은화를 손으로 확인하며 말했다.


“흑마법사가 예전에 반란을 일으킨 건 알고 있지? 역모말이야.”


루이는 동의하진 않았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로 흑마법과 관련된 시설은 모조리 불태워버렸지. 백마법사들이 말이야. 보다시피 이곳은 비가 항상 내리는 곳이었기에 모든 시설을 태우는 데 꼬박 한 달이 걸렸어.”


“우라질 놈들···.”


루이는 두봉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그 뒤로 한동안 백마법사들이 불에 탄 학관의 터를 돌아다니며 남은 장비나 물건들을 모두 부수고 흔적도 없애버렸지. 그들은 그걸 그렇게 부르더군. 흑마법 말살 작전이라고.”


“우라질 놈들···.”


루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두봉과 제리는 루이의 그런 태도가 다소 의외였는지 눈치를 살폈다.


“그 뒤로 이삼 년 정도 백마법사들은 이곳을 주기적으로 들락날락했지. 흑마법사들을 찾는 모양이었어. 덕분에 마력 기사들과 마찰도 자주 일었지.”


이번엔 제리가 루이로부터 받은 한 잔의 술값으로 말했다.


“그들의 걸음이 뜸해지자 하나의 소문이 동시에 돌았지요. 세상에 모든 흑마법사들은 소멸되었다는 소문 말이죠. 지금 와서 보니 정말인 것 같긴 하지만요.”


루이는 천천히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맛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 그 소문은 전혀 다른 소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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