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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6.28 18:00
연재수 :
27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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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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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2
글자수 :
1,848,181

작성
23.11.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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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
추천
6
글자
16쪽

19화. 아우를 위하여 (1)

DUMMY

“탐랑(貪狼)일 리 없다는 게요?”


광야사자는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자께서는 저 소년의 상태를 보시오.”


분명,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보이지 않음에도, 그는 마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듯 말을 이어 나갔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걸리는 것이 너무 많지 않소?”


일순간, 그의 눈빛이 일변했다. 마치 그 안에 다른 사람의 영혼, 혹은 다른 인격이 존재하는 것처럼, 판이한 눈빛이었다.


“아파라지타(無能勝明王)를···? 그녀를 지금 부르시겠다는 말이오?”


광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동천(徐冬天). 그자의 안배라면··· 알겠소. 뜻대로 될 것이오.”



* * *



“후, 후후···!”


득구는 기묘한 고양감에 들떠 있었다. 단전에서는 끊임없이 공력이 샘솟았고, 그와 함께 온몸에는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이라면 상대가 그 누구라 해도,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았다.


“계속해 보자구, 할망구!”

“···.”


교랑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파르르, 심히 떨리는 교랑의 손에 달린 방울이 짜르르, 울렸다. 그러나 치솟는 살기와 달리, 교랑은 바로 살수를 전개하지는 않았다.


“···뭐야, 할망구! 장난치냐?!”


교랑은 품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내어 제 얼굴을 비춰보기 시작했다. 분노로 일그러진 것 외에는 평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하나만 묻겠느니라.”

“뭘?”

“너! 대체 뭘 보는 것이냐?”

“보긴 뭘 봐?”

“그러니까···.”


교랑은 미묘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끌었다. 반쯤은 속이 끓어서, 반쯤은 난감해서 말을 꺼내기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본녀가 어떻게 보인다는 거지?”


득구는 ‘저게 대체 무슨 말인가,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다.’라는 표정으로 코 한쪽을 막고서 킁! 풀고는 말했다.


“뭔 개소리를 씨불이고 앉았어. 할망구가 할망구로 보이지 뭐로 보여, 그럼?”


교랑의 이마에 핏대가 솟았다.


“상당히 삶에 염증이 나는 게로구나···?”

“그러는 할망구는 대가리에 부스럼이 좀 돋으셨나?”


짜르르, 다시 방울 소리가 울렸다.


“네놈의 혓바닥을 절여 먹을 것이다!”

“할배라면 모를까, 할망구 때려서 미친개 소리를 더 듣고 싶진 않은데···. 뭐, 어쩌겠어?”


득구는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앞으로 다시는 비수 던질 생각 하지 말라구. 손가락을 전부 으깨줄 테니까.”



* * *



달구와 등을 맞대고 서 있던 제갈민은 검을 휘둘러 접근하는 놈들을 물린 다음 짜증 서린 목소리로 말했다.


“얼른 뚫고 가야 하는데, 이게 뭐야?!”

“뭘 어떻게 얼른 뚫습니까! 한두 명도 아닌데!”

“뭘 어떻게든 해야죠!”


설총의 실력은 의심하지 않지만, 반대로 백련교 대호법의 실력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도···.


‘사독, 사독파파가 있어. 분명해. 저 안에··· 이전에 없던 압도적인 살기가···!’


어찌 되었든, 서둘러야 한다. 송화루에 도사리고 있는 이가 백련교의 대호법이든, 사독파파든, 지금 저 안이 복마전이란 사실은 자명하다.


“으랴!”


으직!


“끄···흡!”


달구의 어깨 위로 번쩍 들린 왈패 놈이 허리가 우지끈 꺾이며 입에 거품을 물자, 그 끔찍한 소리에 달구를 둘러싼 놈들이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덤벼, 덤벼! 덤비라구!”


달구는 축 늘어진 놈을 휙 둘러 내동댕이치고는 손으로 코와 입가를 슥, 훔쳤다. 꽤나 두들겨 맞은 탓에, 두 줄 코피를 봤다. 빌어먹을 미친개 같으니.


“거, 조심 좀 하지 그랬어요.”

“너무 약해빠져서 그냥 몇 대 맞아준 겁니다!”

“못 피한 게 아니고?”

“안! 피! 한! 거! 라니까!”

“···흐흥.”

“제길!”


본래 군에 몸을 담고 있던 놈들이라 그런지, 아무리 사기가 꺾여도 전열을 흐트러뜨리고 튀는 놈은 하나도 없다. 그때였다.


“영위진(贏渭陣)을 펼쳐야만 한다!”


갑자기 큰 목소리가 나고, 그저 둘러싸기만 하던 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무기를 든 놈들도 제각기 뭉쳐 있었는데, 둔기와 박도 등 근접 병기를 든 놈들이 앞에 서고, 그 뒤에 긴 창과 손도끼 등의 투척 무기로 순서를 맞춰 섰다.


그 형태를 알아본 제갈민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한 소가주님 말대로군요. 그냥 왈패로만 보면 안 된다더니···.”

“뭡니까, 또? 이 자식들?”

“군진(軍陣)이에요.”

“군진?”


달구의 표정도 대번에 심각해졌다. 진법이라면, 그··· 뭐더라?


“빨리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서둘러 재촉하는 사람은 천중이 아니었다. 달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저 새낀 또 뭐하는 새끼지. 대가리에 무슨 돼지 꼬랑지를 붙여놨어?”

“돼지 꼬리가 아니라 개체변발(開剃辮髮)─ 케쿨이란 거예요.”


정신 차려보니 없어진 천중을 대신해 천가방 패거리를 지휘하는 사람은 변발을 한 자였다. 앞머리를 조금 남기고, 좌우 양쪽 머리를 귀 뒤로 땋은 특이하다 못해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생김새의 머리카락이다.


제갈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공력을 실어 큰 소리로 물었다.


“케쿨을 한 것을 보니, 몽고인이로군요?”


제갈민이 묻자, 개체변발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어찌 중원에 남아 있는 거죠?”

“어찌 싸움 중에 그런 것을 알아야만 한다?”

“천중의 수하라면, 분명 탈영병 출신일 터! 몰락한 원국의 잔당이 대명제국의 군졸이 되었다는 이야긴 들어본 일이 없거든요.”


제갈민의 말에 개체변발의 사내는 쓴 웃음을 지었다.


“계집이 몰라야 할 이야기를 잘 아는 부분이다.”

“뭐라구?! 야! 주둥아리 조심 안 해?!”

“잡담은 그만두어야만 한다. 당장 쳐야만 하는 것이다!”


호령에 따라 패거리가 달려들자, 달구는 씩씩거리는 제갈민을 만류했다.


“으윽? 이, 일단, 이놈들부터 처리합시다!”

“돼지 꼬리! 너 각오해!”

“으악?! 알겠으니까, 좀 도와주쇼!”


달구는 당장 제 머리로 날아드는 손도끼를 쳐내며 소리쳤다. 그러나 동시에 아래쪽으로 찔러 들어오는 창을 미처 다 막지 못해 조금 찔리고 나서야 창을 잡아냈다.


“크윽?!”


뱃가죽이 조금 벌어지고, 그 틈을 만든 창끝이 거칠게 흔들리며 틈을 더욱 크게 벌리려고 날뛰었다. 눈살을 찌푸린 달구는 이를 악물고 창대를 주먹으로 내리쳐 꺾어버렸다.


“제기랄.”


그 사이에 다시 창 두 개가 더 날아들었고, 움찔한 달구가 몸을 움츠리는데, 칼이 날아들어 창 머리를 다 베어버렸다.


“···미안해요. 잠깐 저놈한테 정신이 팔려서.”

“거, 조심 좀 합시다.”


달구가 툴툴 대자, 제갈민은 흘깃, 달구의 배에 난 상처를 보았다.


“뭐, 별거 아니네.”

“···별거든 아니든!”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거참 쪼잔하긴.”

“쪼오오자아안?!”


달구가 성질을 내며 고개를 돌리는데, 그 순간을 노린 것처럼 손도끼가 날아들었다.


“온다!”


이어서 창 두 개가 각각 달구의 복부와 무릎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달구는 킁! 콧김을 내뿜으며 창 두 개를 한 손에 하나씩 틀어쥐었다. 달구의 머리로 날아든 손도끼를 막은 것은 제갈민이었다.


“도로 가져가!”


제갈민의 검 끝이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손도끼가 허공에서 팽그르르, 돌았다. 그리고 다시 본래 주인에게로 날아갔다.


“으악?!”


손도끼가 꽂힌 놈이 쓰러지자, 이참에 아예 길을 뚫기로 작심한 달구가 힘을 썼다.


“흠!”


달구가 창 두 개를 강하게 잡아당기자, 창을 들고 있던 놈들은 얼른 손을 놓았다. 창째로 사람을 매달고서 휘두르려 했던 달구는 입맛을 다시며 욕설을 뱉었다.


“제길!”

“같은 수법에 두세 번씩이나 당하겠어요? 바보도 아니고.”

“거, 적은 내가 아니라 저놈들 아뇨? 왜 자꾸 날 갈구쇼!”

“자꾸 바보 같은 짓을 하니까 글쵸!”

“아, 그럼! 댁이 좀 어떻게 해보시든가!”

“뭐라구요? 댁?”

“···소저께서 어떻게 좀 해보시든가!”


그 잠깐 사이에 공간이 생기나 싶더니 금세 다른 놈들이 자리를 메웠다.


“생각보다 훨씬 귀찮게 됐군요···.”


제갈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놈들은 차륜전을 펼칠 생각이에요.”

“차, 뭐요?”

“늑대들의 사냥법 알아요?”

“···!”


그제야 달구는 제갈민이 영위진이란 말을 꺼냈을 때부터 왜 그리 표정이 어두워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 돼지 꼬리, 생각보다 지휘에 능숙해요! 게다가 놈들도 훈련이 무척 잘 되어 있구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갈민은 흥! 하고 콧김을 내더니, 검을 휘둘러 다가선 놈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약간의 공간을 확보한 제갈민이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더니 물었다.


“저한테 목숨 맡길 수 있어요?”

“절대 못 맡기─ 아얏!”


달구의 단호한 대답에 제갈민은 달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한번 맡겨봅시다, 어디.”

“진작 그럴 것이지!”


제갈민은 쯧, 혀를 차고는 말을 이었다.


“감히 제갈세가의 신산(神算)을 앞에 두고 진법을 전개했다 이거지?”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정확히는 속에 숨어있던 심지에 불이 붙었다.


“공세로 전환하겠어요!”

“오우!”



* * *



득구는 펄펄 끓어오르는 열기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몸 안에 용광로가 하나 들어앉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공력이···!’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기묘할 정도로 공력이 끓어 넘쳤다. 마치 누군가가 득구의 단전에 공력을 부어 넣기라도 한 것처럼 끊임없이 계속 솟아나는 것이다.


‘할 수 있다. 이 상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득구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발을 내딛었다.


“허억, 가까이 가지 마라!”


설총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소청을 펼치는 동안 공력을 무리하게 쏟은 탓이다.


“괜찮습니다!”

“가까이 가지 마라! 사독파파의 절기는 비수가 아니라 독이다!”

“어차피 저놈들 죄다 박살 낼 거잖습니까! 까짓 독···!”

“가지 말래도!”


탓!


득구의 발이 땅을 박찼다. 이전에 경공을 펼쳤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속도로 득구의 몸이 날아올랐다. 이 정도라면! 득구는 확신했다.


“독이든 뭐든! 쓸 시간을 안 주면!”

“이 멍청···!”

“···흥.”


공중에 날아오른 득구를 향해, 교랑의 손이 춤을 췄다.


“보인다고 했지!”


득구는 날아오른 채로 몸을 틀었다. 다섯 개의 비수를 모두 흘려낸 득구가 부드럽게 몸을 돌려 2층 난간에 착지했다. 눈을 번뜩인 득구는 주먹을 틀어쥐었다.


“뒈졋!”

“어지간히 하거라.”


교랑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손바닥을 폈다. 그 순간, 주먹이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다.


득구는 대경실색했다. 자신이 쏘아낸 경력이 물 위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한순간에 흩어졌기 때문이다.


“···무슨!”

“당장 떨어져라!”


설총이 소리쳤지만, 득구는 물러서지 않았다. 까득, 득구의 잇새로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웃기지 마앗!”


득구는 단숨에 단해(斷海)의 열 초식을 전부 펼쳤다. 득구의 주먹이 여러 개로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열 개의 초식을 거의 동시에 전개해낸 것이다. 가능할 리 없는 일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불어난 공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저 녀석···!’


설총은 그제야 확신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놈은 지금 진기가 넘쳐흐르는 중이다. 조금 전, 광운을 때려눕히고, 사독파파의 비수를 태산압정(泰山壓頂)의 수법으로 끌어모아 받아냈을 때만 해도─ 그냥 오늘따라 녀석의 상태가 좋다고만 생각했다.


‘이상하다. 녀석이 마치···.’


설총의 눈이 광운을 향했다. 광운은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인지, 하나 남은 그의 눈에는 흰자만 섬뜩하게 비치고 있었다.


“···본녀가 어지간히 우습게 보였나 보구나.”


교랑은 다시 손바닥을 펼쳐 보였다. 길게 뻗은 손바닥 위로 마치 빨려 들어가듯, 득구의 주먹이 다시 내려앉았다.


“으잇?! 으아앗!”


득구는 이미 발출한 경력의 방향을 바꾸는 무리수까지 두어가며 초식을 이어 전개했다. 득구의 목과 어깨로 심상찮게 보이는 핏줄이 돋아나고, 주먹의 개수가 확 불어났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같잖기는.”


득구의 주먹이 전부 교랑의 손바닥 위로 안착하자, 교랑은 가볍게 손을 털었다. 딸랑, 방울 소리가 울리고 그 순간 득구는 자신이 쏘아낸 경력이 전부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우윽?!”


황급히 물러섰지만, 이미 되돌아온 경력에 상당히 두들겨 맞은 후였다. 득구는 입에서 피 화살을 뽑아내며 난간으로 넘어졌다.


콰득, 우지끈!


득구가 간신히 뒤로 흘려낸 경력 일부가 난간을 두드려 부숴버렸고, 득구는 그대로 1층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우당탕!


“쿨럭, 웨액!”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진 득구는 피를 토해냈다. 교랑은 그런 득구를 역겨운 것을 보듯 내려다보았다. 교랑의 발이 내려가는 계단을 밟았다.


“제길···!”


설총은 검을 치켜들었다. 아직 썰물처럼 빠져나간 공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 검을 쥔 손이 떨려왔다. 설총은 떨리는 손에 일부러 힘을 주어 꾹, 검을 틀어쥐었다.


“후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군.”


설총이 말하자, 교랑의 시선이 설총을 향했다. 그 순간에 야차 같던 교랑의 얼굴이 일변했다. 마치 변검술사의 재주를 보는 것 같다. 교랑은 다시 화사해진 얼굴로 말했다.


“어머, 도련님. 무리하지 마시어요.”

“그럴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설총은 검을 치켜들었다. 칼끝이 교랑을 향했다.


“나는 이미 검을 뽑아 들었으니.”

“도무지 권주(勸酒)를 받을 줄 모르는 분이시로군요?”

“도무지 그 술 권하는 법도는 변할 줄 모르는 것 같소.”

“그게 강호의 법도 아니겠어요? 익숙해지셔야지요.”

“강호의 법도가 아니라, 짐승의 법도요.”


오호호─ 교랑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강호의 법도 중 제일은 강자지존이라, 힘 있는 이의 뜻이 곧 법도인 줄을 도련님께서는 이날까지도 알지 못하셨단 말입니까?”

“바로 그것이 짐승의 논리라는 것이오. 긍휼을 모르는 자를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교랑의 미소가 짙어졌다. 설총은 그 미소에 담긴 짙은 살의에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강하다. 절망적으로. 게다가 심지어 진짜 무기인 독공은 아직 꺼내 들지도 않았다.


“···긍휼이라.”


교랑이 계단을 하나 더 내려왔다. 교랑은 화사한 미소를 짓고 설총에게 손을 내밀었다.


“긍휼을 한 번 베풀어 보지요.”

“무슨 말이오?”

“후후후, 살려드릴까요?”

“···교랑.”


나직한 목소리로 광야사자가 입을 열자, 교랑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답을 했다.


“부르셨사옵니까?”

“이미 여러 번 말씀드리지 않으셨던가?”

“사자께서도 소첩의 재주 중 특별한 것이 몇 가지 있음을 기억하고 계시지 않사옵니까?”

“···.”

“반드시 교에 도움이 될 터─ 소첩을 한 번 믿어보시지요?”


광야사자는 더 참견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교랑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내게 백련교로의 투신을 권하는 것이오?”

“정확하셔요. 소첩이 도련님께 권하고자 하는 잔은 바로 그것이랍니다.”


설총은 답을 하는 대신, 든 검에 투기를 담았다. 은백색의 검광이 교랑에게로 쏘아졌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세상일진대─”


교랑이 아쉬운 표정으로 말하자, 설총은 미간을 찌푸렸다.


“더는 듣고 싶지 않소.”

“영특하기 그지없는 분이, 어찌 이리 어리석은지 모르겠군요.”

“굽힐 줄 모르는 아우를 두고서, 어찌 먼저 굽히는 자가 되겠소?”


교랑은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어머나, 아우요? 저런 쓰레기가?”

“한담은 이제 되었소.”


설총이 검을 틀었다.


“가겠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소제목은 특별히 원전이 있습니다. 바로 황석영 선생님의 <아우를 위하여>라는 단편 소설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글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딱히 따온 것이 없지만, 그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감상이 깊게 남아서, 이런 식으로라도 존경심을 한 번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ㅎㅎ;


아마 이후로도 종종, 이런 식의 소제목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처럼 미리 ‘이것은 오마주입니다’하고 말씀드리는 경우는 아마 드물지 않을까 싶네요. 혹시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황석영 선생님의 <아우를 위하여>라는 단편소설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 말이 너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ㅎㅎ;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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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아우를 위하여 (1) +1 23.11.10 509 6 16쪽
68 18화. 탐랑(貪狼) (5) +1 23.11.09 506 12 16쪽
67 18화. 탐랑(貪狼) (4) +1 23.11.08 506 12 16쪽
66 18화. 탐랑(貪狼) (3) +1 23.11.07 500 7 15쪽
65 18화. 탐랑(貪狼) (2) +1 23.11.07 498 8 9쪽
64 18화. 탐랑(貪狼) (1) +1 23.11.06 544 9 17쪽
63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2) +1 23.11.05 526 10 15쪽
62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1) +1 23.11.04 569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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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15화. 선(線) (5) +1 23.11.01 56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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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15화. 선(線) (2) +1 23.10.31 552 1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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