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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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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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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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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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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3화. 발톱 (1)

DUMMY

“···아버님께서 출타하셨다고요?”


무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네. 조금 당황스럽더군.”

“이런 상황에서 출타하실 분이 아닌데 말입니다.”


설총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무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무슨 일일지, 혹 짐작 가는 것이 있는가?”

“···아뇨, 전혀.”


흠, 짧게 한숨을 내쉰 무허는 품에서 쪽지 한 장을 꺼내 설총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집무실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네. 자네 춘부장이 사라진 후에 발견된 것이니··· 아마도 이것이 깊은 연관이 있겠지.”

“···!”

“오는 길에 걸협 어르신과 잠시 이야길 나눠봤네만··· 나는 두 가지 가능성이 점쳐지더군.”

“두 가지··· 말입니까?”


무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납치. 다른 하나는··· 자발적인 출타.”


설총은 두 눈을 부릅뜨고 쪽지를 내려다보았다. ‘임인운곡(壬寅雲谷)’. 의미 모를 글자가 적힌 쪽지는 그 외에 아무것도 말해주는 것이 없었다.


“천검 혹은 은설··· 둘 중 임인년 혹은 구름 계곡과 관련이 있는 이가 있는가?”

“글쎄요···. 임인년(壬寅年)에 저는 네 살이었습니다.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 쳐도···.”


설총은 무허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렇구만.”


무허는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자네가 올해 막 약관에 접어든 애송이란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군그래. 워낙 애늙은이라.”


무허의 짓궂은 농담에 설총은 마주 웃으며 말했다.


“무허자와 저는 세 살 차이가 아니었습니까? 애송이 운운하시기엔 연배에 차이가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릴? 강호에서 삼 년이면 그야말로 대격변의 세월일세. 자네는 삼 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단 옛말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예··· 뭐. 그게 좋으시다면, 앞으로 어르신이라 불러드리겠습니다.”


쯧쯧, 무허는 혀를 찼다.


“그저, 한 마디를 안 져주는구먼.”

“그게 제 매력이지요.”

“그 매력에 아주 퐁당 빠져들 것만 같군그래.”


무허는 비아냥대고는 말을 돌렸다.


“쨌든, 자네가 모르면 또 먼 길을 돌아야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답답하군요.


무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뒤늦게 밥을 먹던 구정삼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 이 몸은 일단 염가 놈을 좀 수배하고 올 텡께, 백련교 놈들 좀 잘 감시하고 있어봐.”

“염라왕 어르신을 모셔온다고요?”


제갈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구정삼은 이맛살을 팍, 찌푸렸다.


“야! 이 지지배야, 넌 이 몸한텐 할배고, 염가 놈한텐 어르신이냐?!”

“어르신이라고도 하잖아요?”

“항상 어르신이라 해얄 것 아념마!! 지 꼴리는 대루 호칭을 막, 어? 너 나 무시허냐?!”


제갈민은 동그랗게 뜬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입가를 가렸다.


“그걸 이제야 알았···. 할배, 혹시 치매···?!”

“뭬에에야?!”


구정삼이 뒷목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자, 제갈민은 킥킥 웃으며 물었다.


“근데 염라왕 어르신은 왜요?”

“왜긴! 어쨌거나 백련교가 개입한 상황인데 우리도 전력을 모아야 할 것 아니냐.”

“전력이라뇨?”


설총이 묻자, 구정삼이 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제갈민이 먼저 답을 했다.


“아, 그거 개방 이야기예요.”

“개방?”


설총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지로 콧구멍을 후비적거리고 있던 득구도 끼어들어 물었다.


“아니, 뭐 개방이면 그지 패거리 아녜요? 그게 무슨 전력이야?”

“···이눔의 미친개 시끼가.”


구정삼이 턱수염을 부들부들 떨었지만, 당장 득구부터 후려치진 않았다. 밥을 지은 사람이 득구란 소릴 들은 덕분이다.


대신 제갈민의 귀를 꽉 비틀어 쥐었다.


“꺄아악! 할배, 아파! 아악! 이 할배 미쳤나봐! 아파앗!”

“니는 지지배야, 할 말이 있구, 못 할 말이 있는 게지! 어디 함부로 다 까발리구 그르냐?!”

“아욱, 아파! 쫌!”


구정삼이 손을 놓아주자, 제갈민은 귀를 잡고 펄쩍펄쩍 뛰었다. 득구는 그걸 보며 깔깔 웃어댔고, 구정삼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말했다.


“제길,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은 건데.”

“뭐, 지금까지 저희가 나눈 이야기 전부가 그런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설총이 웃으며 말하자, 구정삼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정수리를 벅벅 긁어대더니, 손톱에 잔뜩 묻어난 허연 것을 훅, 불고 말했다.


“뭐, 네 말이 맞다. 사실상 백련교를 막아야 한다는 큰 목적 아래 뜻을 함께하게 되었으니, 네놈들에겐 알려줘도 되겠구나. 요놈의 미친개는···!”


구정삼이 손을 내밀자, 득구가 얼른 몸을 피했다. 그야말로 섬전 같은 빠르기였다고 할 수 있었으나, 구정삼은 되레 피식, 웃었다.


그리고 구정삼의 손이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휘릭, 방향을 틀어 득구를 쫓아가 그 코를 콱, 물었다.


“끙아아악! 콩, 코오 떨어졍! 응악?!”

“요, 미친개야! 요놈, 아주, 요놈 시꺄!”

“끄아, 끄아앙!”


콧소리 섞인 비명이 한참 더 울리고 나서야 구정삼은 손을 놓아주었다. 득구는 두 배쯤 부푼 코를 붙잡고 땅을 데굴데굴 굴러댔고, 이번엔 제갈민이 그걸 보고 배를 잡고 웃었다.


“한 번만 더 그지 무시해봐, 아주. 엉?”

“아욱···! 아파!”

“···뭐, 미친개니까 봐준다.”

“봐주긴 뭘 봐줘! 이 할배가···!”


쾅!


결국 매를 벌고서야 잠잠해진 득구를 옆에 앉혀놓고 설총이 물었다.


“해서, 저희가 알고 있는 개방과 어르신께서 말씀하시는 개방은 다른 것입니까?”

“다르다.”

“어떻게 말입니까?”

“전국의 거지들을 하나의 방호(幇號) 아래에 뭉칠 요량이다. 뭐, 염가 놈의 뜻이지만···.”

“네?”


설총은 입을 쩍, 벌렸다.


“그건··· 국법이 금하는 일이 아닙니까?”

“···뭐, 그렇지.”


개방(丐幇)의 시작은 대명천하와 그 시작이 같았다. 대명천하를 연 태조 주원장이 나라를 세울 때, 공은 있으나 과오가 있어 관직을 줄 수 없는 하급 병사들에게 ‘세습(世襲)’할 수 있는 ‘거지 두목’ 자리를 정해주면서 시작된 것이다.


천하의 각 성(城), 부(府)와 주(州)와 현(縣)마다 정해진 거지 두목은 단두(團頭)라 불렸다.


거지는 관직에 출두할 수 없고, 단두직을 세습하는 거지 두목들은 그 후손들마저 영원히 관직에서 축출된 것과 마찬가지인 끔찍한 징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호탕한 황은이기도 했다.


다른 이도 아닌 새 천하를 연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의 황명이다. 다시 말해, 단두의 권위는 태조 주원장에게서 나오는 권위였다. 지방의 하급 관리들조차 거지 패거리 안에서 벌어진 일만큼은 단두의 권위를 무시하지 못할 정도였다.


천하디천한 거지이긴 하나, 태조고황제의 이름으로 내린 자리이니, 나라에서 신경을 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말인즉─


“조정에서는 역모(逆謀)로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라 해라.”

“···네?”

“그러라고 하라고. 그지 새끼들, 가진 게 없어서 빌어묵는 놈들이 아니냐?”

“···.”


입을 다물고 곰곰히 생각에 잠긴 설총에게 제갈민이 슬쩍 귀띔을 주었다.


“뭐, 말은 저렇게 해도··· 다들 물밑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어요. 아마 세상에 공표할 때쯤엔, 충분히 세력을 이룬 다음이겠죠.”

“으음···.”


가만히 듣고 있던 무허자가 슬쩍, 끼어들어 말했다.


“오래 굳은 악법을 고치고자 하는 것일세.”

“악법··· 말입니까?”

“악법이지. 관직에 오른 이들조차 자격이 없거나, 죄를 지으면 자리에서 쫓겨나고, 옥살이를 살든 귀양을 가든 죗값을 치르는데─ 단두란 자리는 거지란 이유만으로 쫓겨날 일 없이 영구 세습이지 않은가? 작금의 단두들이 힘없는 거지들을 어찌 다루는지 한번 생각해보게.”


무허가 그리 말하자 이어 구정삼이 설명을 보탰다.


“씨부럴 단두 새끼들, 여간 미친 것이 아녀. 멀쩡한 애새끼들 팔다리를 잘라 병신을 만들고, 그 병신들을 구걸에 내보내는 것이 일상이다. 그런데 이 니미럴 개씨불놈들을 손봐줄라치면, 이것도 옘병할 하극상이니 뭐니 나랏법으로 조져대는디, 이 지랄 옘병판을 어째야겠냐?”


구정삼은 씹어뱉듯 말하고 퉤, 침을 뱉었다.


“누가 불판에 똥을 뿌렸음, 씨부럴 판때기를 싹 갈아 엎어야제. 그냐, 안 그냐?”


설총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정중하게 포권을 올려 보였다.


“어르신의 높으신 뜻이 꼭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과연 걸협 어르신입니다.”

“···왜, 왜 이랴?”


당황한 구정삼이 손사래를 쳤지만, 자신과 설총을 바라보는 제갈민의 눈빛을 본 구정삼은 돌연 태도를 바꾸고 콧대를 세웠다.


“엣헴! 보았느냐? 요 싸가지 없는 지지배야! 이 몸이 바로 이런 분이시다!”

“···만날 끝이 요러니까 할배 소릴 듣지.”


픽, 한숨을 내쉰 제갈민이 물었다.


“하여튼, 그래서 얼마 정도 모였어요?”

“···그건 알아서 뭐 허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야 할 거 아녜요. 그래야 우리 쪽에서도 계획을 짜든 뭘 하든 하지. 안 그래요?”


구정삼은 턱수염을 꼬면서 생각에 잠겼다. 설총이 손을 들어 보였다.


“얼마가 되었든, 지원군이 있다는 기정사실만 놓고 보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분명 백련교가 얼마나 되는 무승(武僧)들을 끌고 왔는지 알 수 없으니 그에 대비해야겠지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건 아마 삼천 명쯤 될 거야.”


그 말에 무허와 설총, 제갈민 세 사람이 동시에 뒤집어졌다.


“사···삼천요?!”

“엉.”

“···!”


무허가 눈을 빛냈다.


“그 정도 숫자면 여기서 일을 마무리 지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고는 싶다만.”


구정삼이 고개를 저었다.


“무공을 모르는 놈들이 태반이여. 물론 염가 놈이 뭔가 괜찮은 발톱을 마련했다곤 혔는디.”

“···.”


세 사람이 놀랐던 만큼 실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구정삼이 버럭, 역정을 냈다.


“아니, 거지한테 뭘 글케 바라, 바라긴!”

“아니, 우리가 기대했나? 할배가 기대하게 만들어 놓구선.”

“이눔의 지지배가···!”


설총이 급히 중재에 나섰다.


“두 분 다 고정하시지요.”


무허가 구정삼을 말리는 설총을 도와 제갈민을 뜯어말리며 이야기했다.


“여봐, 제갈. 방금까진 꽤 생산적인 이야기를 했잖아? 가능하면 계속 그러자구.”


씩씩 숨을 몰아쉬는 제갈민이 흥! 콧방귀를 끼었고, 구정삼도 이를 갈며 제갈민을 노려보았지만 서로 덤벼들진 않았다.


“어르신께서 식사를 마치신 거라면··· 이후의 ‘계획’이란 걸 한 번 짜보지요. 백련교든, 천가방이든 손님맞이를 해얄 것 아니겠습니까?”


무허의 말에, 구정삼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두드렸다.


“맞다, 밥.”


그리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놈, 미··· 아니, 험! 이놈, 득구야! 여기 밥 좀 더 퍼오거라, 이눔아!”

“아잇, 이 그지 할배 배때지에 아귀가 처붙었나?! 고만 처먹어!!”

“이눔 시꺄!! 니가 내 나이 묵어 봐라!! 묵어두 묵어두 허기가 져 이눔아!!”


설총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거지. 이젠 슬슬 정겹기까지 하다.


“어휴··· 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옆에서 제갈민이 중얼거린다. 설총은 웃었다. 왠지 모를 흐뭇함이 가슴속에서 차오른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제목에 가름 번호를 추가하는 게 보시기에 더 편할까요? 으음, 지금까지는 한 번에 다수의 회차를 올리다보니 그냥 정신없이 글을 등록하는데만 신경을 썼습니다만... 이렇게 놓고 보니, N 화의 (N)회 라고 지칭하는 편이 나을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필요하다 싶으면 수정하겠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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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18화. 탐랑(貪狼) (3) +1 23.11.07 497 7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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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18화. 탐랑(貪狼) (1) +1 23.11.06 543 9 17쪽
63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2) +1 23.11.05 524 10 15쪽
62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1) +1 23.11.04 565 9 18쪽
61 16화. 관화(關和) (2) +1 23.11.03 548 9 16쪽
60 16화. 관화(關和) (1) +1 23.11.02 562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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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15화. 선(線) (4) +1 23.11.01 559 10 16쪽
57 15화. 선(線) (3) +1 23.11.01 548 10 14쪽
56 15화. 선(線) (2) +1 23.10.31 549 13 15쪽
55 15화. 선(線) (1) +1 23.10.30 595 13 15쪽
54 14화. 암구명촉(暗衢明燭) (2) +1 23.10.29 588 10 15쪽
53 14화. 암구명촉(暗衢明燭) (1) +2 23.10.28 581 9 14쪽
52 13화. 발톱 (7) +1 23.10.27 588 9 13쪽
51 13화. 발톱 (6) +2 23.10.27 562 8 15쪽
50 13화. 발톱 (5) +2 23.10.26 569 8 15쪽
49 13화. 발톱 (4) +1 23.10.26 571 8 11쪽
48 13화. 발톱 (3) +1 23.10.26 597 10 12쪽
47 13화. 발톱 (2) +1 23.10.25 616 10 14쪽
» 13화. 발톱 (1) +1 23.10.24 665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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