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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KaHaL 님의 서재입니다.

극랑전(極狼傳)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KaHaL
작품등록일 :
2023.10.09 20:25
최근연재일 :
2024.06.28 18:00
연재수 :
275 회
조회수 :
12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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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2
글자수 :
1,848,181

작성
23.11.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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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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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6쪽

18화. 탐랑(貪狼) (5)

DUMMY

설총은 탄식이 나오려는 입을 굳게 닫았다. 그리고 검을 움켜쥔 손에 힘을 풀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사독파파와 이렇게 빨리 마주할 거라고는···.”


순간, 무시무시한 살기가 설총을 꿰뚫었다. 설총은 저도 모르게 세 걸음이나 물러섰다. 물러나며 방어 초식까지 펼쳤지만, 설총에게 날아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후후, 교랑이라 불러주시어요. 잘생긴 도련님.”


설총은 목젖을 크게 울리며 침을 삼켰다. 솔직히, 광운이란 자는 어떻게든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사독파파라면···.


“교랑! 소승 혼자서도 충분하니 그대는 끼어들지 마시오!”


광운이 쇳소리를 내며 외쳤다. 교랑은 고개를 빙글, 돌려 광야사자를 바라보았다.


“어떠세요?”

“···우선은 그가 바라는 대로 해주시게.”

“후후후, 아쉬워라.”


광운은 송화루의 천장을 뚫고 올라갈 기세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네놈의 뼈를 갈아 마시겠다!”

“고맙군.”

“뭐라?!”

“덕분에 2대1은 피하지 않았나?”

“이노오옴─!!”


광운이 달려들었다. 광운의 차크람이 바닥과 벽, 주변의 잡기들을 죄 쓸어내면서 지나간 공간을 폐허로 만드는 와중에 설총의 검이 바늘처럼 광운의 제공권을 뚫었다.


“크헉···?”


그대로 명치까지 뚫고 들어오는 검에 놀란 광운이 두 걸음을 물러서자, 지켜보던 교랑이 경탄성을 냈다.


“조화지경! 저 나이에?”

“···.”


설총은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물론, 광운을 향한 눈도 돌리지 않았다. 광운은 관자놀이를 씰룩이며 잇새로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약관에 관화(關和)를 통달한 조화지경의 기재였다니. 후후후, 고작 이런 곳에서 죽기엔 무척이나 아까운 도련님인걸요?”

“쓰와하!”


광운이 불호를 외우며 다시 달려들었다.


쐐애액!


설총의 좌우로 차크람이 동시에 날아들자, 설총은 하나를 쳐내고, 한 걸음을 물러선 뒤 다시 하나를 쳐냈다. 동작이 마치 물이 흐르듯 이어지자, 보이기로는 한 동작에 두 개의 차크람을 모두 쳐낸 것처럼 보였다.


“후후후!”


교랑의 얼굴에 미소가 깊어졌다.


“심지어 검을 다루는 기예조차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경지에 이르렀다니···! 보면 볼수록 탐나는 도련님이로군요?”


교랑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공력만 충분했더라면, 당금 강호에 천하지절(天下之絶)로 셋이 아니라 넷을 두었을 텐데.”

“속세의 일에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계시는가?”

“어머, 그럴 리가요? 다 피지 못하고 지는 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과 같지요.”


교랑의 붉은 입술을 붉은 혀가 둘렀다.


“실혼지체(失魂之體)로 만들면, 우리 교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교랑은 설총을 향한 끈적한 시선을 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남매가 함께하는 모습도 아주 보기 좋을 것 같구요. 후후후···.”

“어떤 형태로든 저자를 살려두시면, 광륜사자께서 계획하신 일에 큰 지장이 있을 걸세.”

“아이, 참. 소첩도 잘 알고 있사와요.”

“알고 계시다니, 그건 참 다행일세.”


부동왕은 어깨가 결려오는지, 자기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저 늙은이의 주제넘은 참견일세.”

“후후후, 차암.”


담소나 나눌 상황은 아닐 테지만, 설총은 두 사람의 대화에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다. 대신 반응한 사람은 광운이었다. 이제는 그의 민머리 전체에 혈관이 도드라져 있었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차크람이 폭발하듯 회오리를 일으켰다.


“아찰라나타(不動明王)시여!”

“말씀하시게.”

“홍양진경(紅陽眞經)의 개방을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겠네.”


그 순간, 또다시 광운의 눈에서 다시 불길이 터져 나왔다. 아니, 이번에는 거의 전신에서 그 불길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또 기도가 달라졌다. 이번엔 정말 명백하게!’


“나, 쿤달리(軍茶利)로 하여 중제(中際)를 청하게 하다니, 실로···.”


콰당!


“민대구리 새끼야아앗!”


짐승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 * *



성채는 제 몸에 열이 펄펄 끓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불덩어리 같은데, 신기하게도 통증은 별로 없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사르르, 눈꺼풀이 밀려나듯, 눈이 열리고 성채의 시계가 열렸다.


‘?!’


성채는 하마터면 혼절할 뻔했다. 헛것이 보이는 것이다.


‘저건··· 대체 뭐야?!’


성채의 양손이 덜덜 떨려왔다. 성채의 옆에는 왕태하가 서 있었다. 교랑의 명령을 따라 성채의 곁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성채의 눈에 비친 왕태하는 왕태하가 아니었다.


‘끔찍해!’


순식간에 수십, 아니 수만 가지 단어가 떠올랐지만, 가장 또렷히 남는 단어는 오직 하나였다.


‘귀신’.


성채의 눈에는 왕태하의 얼굴 위로 귀신 같은 얼굴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저게 대체···!’


놀람과 두려움이 피어올랐다가 점점 가라앉은 다음 떠오른 것은 호기심이었다. 성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왕태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봤구나!”


왕태하의 입에서 나온 소리지만, 왕태하가 낸 소리가 아니었다. 왕태하의 얼굴 위에 덧씌워진 귀신이 낸 소리였다. 이번에야말로 기절할 정도로 놀랐지만, 비명은 내지 않았다. 아니, 비명을 낼 수가 없었다.


성채는 날 때부터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었으니까. 그 사실이 차라리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 건 태어나서 이번이 처음이다.


“···.”


성채가 아무 말이 없자, 귀신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중얼거렸다.


“분명히 봤는데···.”

“···.”


귀신은 고개를 숙여 성채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천천히 왕태하와 그의 얼굴 위에 겹친 귀신의 얼굴이 성채 위로 가까이 다가왔다.


“보이지···?”

“···.”


왕태하의 눈이, 아니 귀신의 눈이 초승달처럼 구부러졌다. 성채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니, 터질 것만 같았다. 어쩌면 터져서 멎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가슴이 무진장 아팠다.


「보고 있잖아? 왜 아무 말을 안 하지?」


귀신은 왕태하의 입이 아니라 자기 입을 움직여 말하기 시작했다. 귀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니─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었으나, 그 생경한 현상이 성채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건, 그/런/ 현/상/이다. 논리나 이치가 아니라 본능으로 그렇게 이해된다.


「왜 아무 말이 없지?」


“···.”


「아무 말이나 해봐, 얼른.」


“···.”


「얼른!」


놀라고 무서운 것도 한두 번이지, 생겨 먹은 것도 지지리 못생긴 얼굴을 들이밀고 고약한 입 냄새를 풍기며 닦달해대니, 성채는 두려운 와중에도 울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말을 못 하는 거지, 손발이 없는 건데 말이다.


「말해!」


쾅!


드디어 폭발한 성채가 이마로 얼굴의 콧잔등을 들이박았다. 눈앞에 별이 반짝거렸지만, 상대 역시 멀쩡하진 못할 것이다.


‘아, 진짜! 옆에 지분거리는 놈이 있으면 기냥 마빡으로 콱! 쪼사버리라니깐요!’


마치 득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 글구 엔간하믄 코피 쫌 나고 그럼, 걍 도망가거든요? 근데, 안 그런 놈들이 있어요. 막 눈깔 뒤집혀서는 네가 감히, 어쩌구, 하는 놈들. 그럴 때는─’


성채는 몸을 일으켰다. 몸에 고열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묘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건 광운에게 베인 관자놀이의 상처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머리에 칼을 맞은 이후 오늘이 가장 상태가 좋은 날이었다.


‘코를 기냥 콱!’


으득!


“끄아아악!”



* * *



기혈이 울컥, 치밀어 오르며 광운의 식도를 태웠다. 광운은 필사적으로 그 피를 쏟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늦은 판이었다.


“쿨럭, 웨엑!”


득구는 광운의 입에서 핏덩이가 쏟아져 나오자, 씩, 이를 드러냈다.


“군다리? 빙다리 핫바지다 이 씨발아!”


득구는 주먹을 틀어쥐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인 광운의 턱을 단숨에 올려 쳤다.


빡!


“큽?!”


그리고 득구의 주먹이 광운을 난타하기 시작했다.


쾅, 쾅! 콰득, 쾅!


“아주, 뒤져! 뒈져라, 민대구리이이! 으아앗!”

“쿨럭! 커흑?!”


주먹은 명치를 찌르고, 턱을 올려 친 후 그리고 계속 턱, 턱, 턱이었다.


여섯 번째 주먹이 광운의 골을 뒤흔들자, 결국 광운도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넘어지는 잠깐 사이에 또 세 방의 추가타를 후려친 득구는 자빠진 광운 위에 그대로 올라탔다.


“뒈져, 새끼야! 뒈져엇!”


쾅, 콰득, 콰직!


드디어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고, 득구는 숨을 몰아쉬며 이를 사리물었다.


“헉, 후아!”


쾅!


“크릅!”

“아, 이제 개운하다.”


앗, 하는 사이에 핏덩이가 된 광운을 놓고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벌떡 일어난 득구는 검을 뽑아 들고 자세를 잡은 설총을 돌아보았다.


“끝났는데? 뭐해요?”

“···.”


그리고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는 2층으로 시선을 옮겼다.


“뭘 봐, 이 개부랄 같은 새끼들아! 저 늙탱이는 또 뭐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의 교랑과 눈이 마주치자, 득구는 단박에 눈살을 찌푸렸다.


“뭔 할망구가 화장 떡칠을 했어?”

“뭐, 뭣?”

“거참, 퉤! 말부랄 같은 면상이 꿈에 나올까 봐 더 못 보겠네.”


교랑의 당황한 표정은 이제, 차츰 경악의 빛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거기엔 분노도 조금씩 섞여 들어가고 있었다.


“자세 잡아라.”

“예?”

“얼른.”


그동안 대련을 하면서 습관이 든 탓에, 득구는 반문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설총이 말하는 대로 기수식을 취했다.


“···온다.”


째애앵!


“크헉?!”


득구는 누군가가 관자놀이 안쪽에 유리로 된 구슬을 넣고 깨뜨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폭발하듯 두 사람을 덮쳐왔다.


“감히··· 감히 본녀를 두고 무어라?!”


교랑의 얼굴이 변했다. 마치 변검을 하듯, 살기로 일렁이는 공기가 너울거리며 파도를 한 번 탈 때마다 점점 변해갔다.


챙!


설총은 허공을 격하고 날아드는 살기를 검으로 튕겨냈다.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깜짝 놀란 설총은 옆에 선 득구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득구도 피한 모양이다. 뺨이 긁혀 피가 주르륵 쏟아지고 있었지만.


“뭐, 뭐야. 보이지도 않는데 뭔가가 있─”

“떠들지 말고 집중해!”


스팟!



* * *



광야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교랑은 두 사람을 죽일 셈으로 비수를 던진 것이다.


“한데 피했다···.”


한현보의 소가주가 막을 건 예상한 그림이었다. 진기의 양만 받쳐준다면, 광운사자를 충분히 압도하고도 남았을 실력자다.


심지어 모자란 공력을 기교로 메꿀 수 있을 정도의 완성도까지 곁들였으니, 아무리 교랑이라 해도 수를 교환하지도 않고 일격에 죽일 수 있는 자는 아니란 뜻이다.


“한데, 저것은 대체 어떤 짐승이란 말인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 * *



“으앗?!”


득구는 어지러이 날아다니는 살기의 향연에, 욕지거리를 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광운의 차크람은 그래도 정해진 영역이란 것이 있었다. 그 영역 밖으로는 정해진 투로를 따라 뻗어나가는 경우뿐이다.


그러나 저 여자는 달랐다.


‘물고기야?! 뭔 비수가 허공을 헤엄···으악?!’


놀랍게도 득구의 눈에 비치는 투로(鬪路)보다도 비수가 더 빨랐다. 즉, 득구가 인식할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선 것이다.


투로를 인식하기도 전에 비수가 먼저 날아드니,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오로지 득구 자신의 반사 신경과 살기에 먼저 반응해버리는 몸의 육감에 따르지 않았더라면 이미 몸에 바람구멍이 났을 터다.


“집중해! 헉, 너라면 볼 수 있다!”

“으악! 읏?!”

“허억, 제길! 후우!”


설총이 숨을 한 차례 크게 내뱉더니, 그의 검이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득구의 눈에는 마치 눈이 내리는 날, 나비가 그 눈 사이를 날아다니는 모습처럼 보였다.


‘소청(消菁)! 그래, 이것이···!’


천원팔문에 기재된 검법의 이름은 소청이다. 초목이 우거진 푸른 풍경이 점차 사그라지는 것을 뜻한다. 검법의 초식 역시 그러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성어를 검으로 쓴다면 곧 그러한 모양새가 나올 것이다.


소청의 전반부는 매우 화려한 환검(幻劍)으로 시작하지만, 가면 갈수록 변화를 줄여나가다, 마침내는 찌르기, 종 베기, 횡 베기 같은 단순한 수법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총이 펼치는 소청에서 득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았다.


‘흐트러진 듯 보이나, 흐트러지지 않는다. 잃은 듯 보이나, 잃지 않는다. 키로 곡식을 까부르면 바람에 겨가 흩날릴지라도, 알곡은 반드시 떨어지는 법이다.’


그 순간, 득구의 눈에 비치는 심상(心象)이 일변했다. 설총의 검은 온갖 사방을 다 치고 베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로지 살초에만 경력을 가해 비켜 가거나, 튕겨내고 있었다.


득구는 눈을 돌렸다. 설총이 자신에게로 오는 공격까지 전부 막아주고 있지만, 점점 숨이 가빠오는 것이 보였다.


무엇보다, 공력이 문제였다. 무심결은 6성부터는 공력을 흩어버린다. 즉, 6성 이상부터는 성취도가 높을수록 공력이 점점 낮아지는 기형적인 심법이다. 설총은 점점 줄어드는 진기공력을 정순함과 기술의 정확도로 메꾸는 것이다.


‘할 수 있다.’


확신이 드는 순간, 득구의 발이 움직였다. 이제 알겠다. 어떤 것이 허초이고, 어떤 것이 실초인지, 또 왜 변화가 생기는 것인지도 차츰 이해되었다. 모든 비수가 살기를 띠고서 달려들지만, 달려든 비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아야만 할 것은 비수를 날린 년이다.


득구의 발이 독립보를 섰다.


한 발이지만 마치 땅에 뿌리를 박은 듯, 굳건한 이정구사(以正驅斜)의 자세였다.


쐐액!


어차피 보이지 않는다. 득구는 눈을 감았다.


득구의 남은 한 발이 펼쳐지며, 땅을 짚었다. 자연스럽게 축이 되는 발을 굽히고 앉되, 한 발을 펼친 허보(虛步)가 되었다. 그리고 비수들이 마치 헤엄치듯,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득구를 쫓았다.


“헤,”


너무 생각대로 움직여준다.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득구의 왼손은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크게 펼쳐, 점점 작게 좁히며 원을 그린다. 오른손은 위로, 왼손은 아래로. 천지상하를 뒤집으며 큰 것을 작게, 위에 있는 것을 낮게. 그리고 크게 펼쳤던 진기를 작게 좁히며 크게 압력을 가했다.


‘공간의 압축’이다.


스핏, 쨍!


아주 정순한 쇠를 두드릴 때 나는 맑은소리가 득구의 손안에서 울렸다. 득구의 모아 쥔 양손에는 교랑이 던진 비수 다섯 자루가 쥐여 있었다.


번뜩!


감았다 뜬 두 눈에서 창화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분별없이 마구잡이로 날뛰며 불타오르는 그런 불길이 아니었다. 목적이 분명한 불꽃이다.


교랑의 양손이 초식을 전개하는 것이 득구의 눈에 들어왔다. 다시 비수가 허공을 격하고 날아들 것인데, 이상하게 아직 소식이 없다. 득구는 제 눈에 자신조차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깨달았다.


속도도 저쪽이 위, 위력도 저쪽이 위, 정확도도 저년이 위다. 득구가 가질 수 있는 이점은 오로지 하나뿐이다.


‘그래, 나라면 볼 수 있다!’


의식의 속도가 빨라진 탓일까? 푸른 화광이 번뜩이고, 이번에야말로 교랑이 펼치는 투로가 비수보다 먼저 뻗어 나왔다.


이번에 던진 비수는 세 자루, 그리고 두 자루. 알곡 없이 살기로만 펼쳐진 투로는 각각 삼백하고 스물하나와 이백하고 열넷. 비수 한 자루당 백일곱 개의 허초인 셈이다.


“오리···나 먹어라!”


득구의 손에서도 비수가 날았다. 오리홍락은 본래 하나의 요혈을 다섯 자루의 비수를 시간차 공격으로 요격하는 수법이지만, 범을 잡으며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한 데다가,


‘던질 때 경력을 손가락이 아니라 손등에 격발했지, 저 할망구!’


고맙게도 좋은 걸 배웠다.


챙!


열 자루의 비수가 동시에 떨어졌다. 아직 시야는 느려진 상태였는데, 재미있게도 교랑의 두 눈이 점점 동그래지면서 커지는 게 세세히 보였다. 득구는 저도 모르게 씩, 웃고 말았다.



* * *



교랑이 내쏜 비수가 격추당하는 순간, 교랑도 경악했지만, 더 놀란 사람은 바로 광야사자였다. 광야사자는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어떤 단어를 내뱉었다.


“탐··· 랑(貪狼)!”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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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17화. 타초경사(打草驚蛇) (1) +1 23.11.04 569 9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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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16화. 관화(關和) (1) +1 23.11.02 564 10 15쪽
59 15화. 선(線) (5) +1 23.11.01 56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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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14화. 암구명촉(暗衢明燭) (1) +2 23.10.28 584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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