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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애미 애비 없는 회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망박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6
최근연재일 :
2022.05.19 22:18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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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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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9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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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 Back on the Rocks

DUMMY

끼에에에엑-!


단 한마디의 부름으로, 여태껏 그 불길한 주문을 버티고 있었던 흑마법사의 혀가 누런 고름과 함께 진물처럼 변해갔다.


그 모습을 본 길버트는 이젠 필요가 없어진 흑마법사의 입을 찢어버렸다.


끔찍한 저주의 여파를 세 번째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달고 다닐 수는 없었기에 한 번 필터를 거치는 의미에서 흑마법사의 입을 빌렸지만 이미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지고 헤진 흑마법사의 입으로는 앞으로 대화할 존재에게 말조차도 꺼낼 수 없었다.


흑마법사의 머리에 하얀 가루를 뿌린 길버트는 그대로 발을 굴렀고, 작은 충격에 반응한 가루는 보라색 빛을 내며 흑마법사의 머리를 불태웠다.


사람의 기억을 물건으로 만드는 끔찍한 저주, 그 유래가 관찰자와 비슷한 이들에게서 태어난 주문을 사용한 대가로 천년만년 썩어들어갔을 흑마법사의 입은 보라색 불에 타오르며 안식을 찾았다.


하지만 흑마법사의 입이 불타올랐음에도 단단하고 불길한 쇠사슬은 그저 한없이 일렁일지언정 다시 길버트의 몸속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쇠사슬을 봉인하지 못했기에 기억이 연결되었을 뿐, 기억을 사물로 만들고, 빈 공간을 사용자의 뜻대로 조작하는 저주를 성공시킨 것이다.


성취감을 느끼며 다 타오른 흑마법사의 잿더미를 헤치고 마법진의 중앙에 선 길버트는 아직도 일렁이며 그 기이함을 유지하고 있는 지하실을 유심히 살폈다.


불타오른 저주로 인해 더 어두컴컴해진 지하실 천장 구석에, 아주 조그마한 줄이 매달려 있었고, 길버트는 그 줄을 당김으로써 지하실의 바닥에 그려진 마법진을 조각낼 수 있었다.


끼기기기...


마법을 실제로 쓸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 못해 없다시피 한 길버트를 돕고 있던 마법진이 조각나자 지하실은 언제 터져나갈지 모르는 폭탄이 되어 불길하게 흔들리며 어딘가에서는 또 웅성거렸다.


그것은 요정의 목소리였고, 날개 달린 것들의 울부짖음이었으며, 눈만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호기심 어린 노크였다. 세 가지 괴현상에는 공통점이 있었으니, 듣고 있자면 금세 제 귀를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버트는 깊게 심호흡하며 바닥에 흩뿌려진 잿더미의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남아 있던 저주의 여파가 길버트의 뇌리에 스며들었고, 더 커다란 흔들림으로 인해 작은 흔들림은 더 이상 길버트에게 영향을 줄 수 없었다.


끽, 끼, 끽, 끽...


그 모습을 본 누군가 웃었고, 길버트가 힘겹게 붙잡고서 끌어내리고 있던 줄을 대신 붙잡아 내려줬다. 덕분에 길버트는 예상보다 빨리 조각낸 마법진을 새로운 형태의 마법진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불길한 존재에게 인사가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던 길버트는 인사를 하여 그 불길한 존재를 긍정하지 않고, 그저 그가 보고 싶어 할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찌익...


칼로 손톱을 찢고


“윽...!”


[모든 간교한 혀가 이자에게서부터 났으니, 나는 그 죄악과 함께 혀를 박노라.]


혓바닥에 바늘을 끼운 채로 간신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가만히 누워 있던 뱀의 입이 열리고 길버트가 하는 말을 따라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길버트는 그를 불렀다.


뱀을 애호하는 이들 중 하나이자, 똑같이 뱀을 애호하는 사교도들이 모시는 이들 중 가장 강대한 이.


모든 저주와 비밀을 선호하는 가장 공정한 뱀신을.


[대가에 한없이 공정한 뱀신이시여, 당신의 이름을 미천한 이들도 부를 수 있게 해 주시는 자비로운 분이시여. 모든 저주를 입에 담고 계신 위대한 아가리시여···.]


길버트는 주문을 외우며 차례대로 제물을 바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남이 죽였고, 자신이 수습한 비늘뱀의 목이었다. 거짓은 없었다. 뱀을 죽인 업보는 뱀 사냥꾼이 가장 크게 가져갔었으니까.


길버트가 바친 비늘뱀의 머리를 회수해간 뱀신은 길버트에게 조그마한 구슬을 던졌다. 길버트가 그것을 쓰다듬자 천천히 진동하며 소리를 냈다.


‘됐다.’


길버트는 전생에서 이 구슬을 본 적이 있었다. 길버트의 두 번째 삶, 악마 사냥꾼이자 사교도 사냥꾼이었던 길버트에게 죽어 나간 사교도 주교들이 항상 목에 끼고 다녔던 구슬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뱀신이 제 추종자들에게 가장 처음으로 내리는 선물, 뱀의 성대였다.


길버트가 목을 베어낸 사교도의 주교들은 그것을 입에 묾으로써 말을 꺼내지 않고도 주문을 외울 수 있었고, 주문을 생략한 주술사는 목이 베어져도 쉽게 죽지 않는 아주 끔찍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 성대를 입에 문 지금, 길버트는 사교도의 주교들이 왜 이 구슬을 그렇게 아꼈는지 알 수 있었다.


주문을 외우면서 몸이 치르고 있던 그 업보를 구슬이 대신해줘서 몸이 한결 상쾌해짐은 물론, 입으로 외우는 것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문을 외울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신이 내린 선물이라 할 만했다.


[저 하늘의 별보다 많은 수하를 거느리시고, 그보다 큰 은혜를 베푸시는 이여, 여기 부족한 이가 별의 티끌을 준비하노니···.]


그 뒤로 천애고아였던 세 번째 삶의 길버트가 정신을 차렸을 때부터 들고 있었던 작은 패물과 수도 알데바란의 모처에 보관되어 있던 세계수의 뿌리, 영원히 불타는 나뭇가지가 차례대로 사라졌다.


그리고 의식은 막바지에 달았다.


[공정한 뱀신이시여, 그대의 비늘을 갈구합니다.]


찌이익...!


공간이 찢겼다. 조금 전 길버트의 기억을 쇠사슬로 변화시켰을 때와 달리 지금은 공간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음에도 뱀신의 뜻을 거부하지 못하고 스스로 찢겨나간 것이다.


길버트는, 의식이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뱀신이 내리는 물건 중에서 공간을 찢어서 줘야만 할 정도로 격이 다른 물건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저주의 힘을 빨아먹으며 주인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장시키는 뱀신의 신물, 저주를 삼키는 비늘.


그 비늘만 있다면 길버트의 계획은 반쯤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었...


찌이이이익...!


공간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이 더더욱 크게 찢어졌다. 공간이 찢어지자 그 주위의 시간도 기이하게 흘렀다. 한없이 늘어난 시간 속에서 길버트는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건, 너무...’


“크다!”


쫘아아아악...!


찢겨나간 공간이 접히고, 다시 접히며 여유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는 듯 저 너머의 무언가는 지하실을 그대로 찢어버리며 길버트를 감쌌다.


우우웅...!


기이하게 구부러진 시간 속에서 길버트가 지른 비명은 아주 웅장한 고래의 숨소리처럼 늘어졌다. 그리고 심해의 전설이 그렇듯, 고래가 울고 간 자리에 사람은 남아 있지 않았다.




****




첫 번째 삶에서의 길버트는 그저 검술이 조금 뛰어나기만 할 뿐인 애송이었다.


최연소 명인이 될 이라고 칭찬을 받으며 돌아다니다 부모님과 가신들을 잃고 그 현명함을 모두 땅바닥에 내던진 어리석은 이였다.


하지만 삶을 얻은 대가로 아버지를 잃어버린 길버트는 첫 번째 삶과는 달리 아가로티 후작 영애가 낳은 일종의 사생아가 되어 버렸다.


가신들의 죽음에도 큰 상처를 받았던 여린 마음은 마찬가지의 이유로 아버지의 실종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길버트는 다시 한번 관찰자를 부르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궁리했다.


개중 하나가 마법 명가였던 아가로티 후작가의 힘을 빌리는 것.


비록 자신이 처한 환경은 달라졌지만 따듯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던 길버트의 어머니는 자신의 배경이 어찌 되었건 간에 그에게 한없이 헌신적이었다.


길버트는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세상의 기이한 것들을 찾아다니고, 어스름한 달빛 아래에 깔린 것들을 살피는 달밤의 사냥꾼이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길버트는 온 세상의 시간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위대하고, 한 사람의 존재를 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존엄하며 모든 빈틈을 메꿀 수 있을 만큼 거대한 존재들의 흔적을 쫓기 위해 모든 진실을 가리고 있던 달빛의 장막을 걷혔다.


놀랍게도, 세상에는 그런 기괴한 일을 벌일 수 있는 존재들이 여럿 존재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모시는 신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들, 저 달빛의 장막 너머에서 숭배를 받는 이들. 오래전 현자들의 아카이브가 명명하길, 외신(外神)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세상에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달밤 사냥꾼 길버트는 기뻐했다. 외신이 관찰자 하나가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길버트는 한 줄기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비록 일년도 되지 않아서 꺼져버렸지만.


다른 누군가와 계약해서 관찰자와의 계약을 무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길버트는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외신의 흔적을 쫓았다.


그 과정에서 수인족들을 몰살하고 다니며 명인의 경지에 올랐고, 그 명성을 기반으로 수도 알데바란에서 행해진 사교도 사냥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그렇게 수천 명의 사교도와 수백 마리의 뱀을 썰어버린 길버트는 한 줄기 희망을 찾았다.


서열 관계가 확실한 외신들의 사회에서 드물게 서열을 따지지 않는 존재. 인간과 유사 종족들이 얻은 지혜만으로는 그 존재의 서열을 측정할 수조차 없던 존재. 공정한 뱀신을 부르는 절차와 주문을 알아낸 것이다.


길버트는 그 이외에도 사교도들이 모시는 수많은 신들을 부르는 주문을 알아냈다. 그 광기 어린 집착 끝에, 사교도들의 대주교는 제 목이 베어나가면서도 길버트를 비웃을 수 있었다.


‘심연을 잡아 죽인 끝에 그 피를 뒤집어쓴 심연이 되었구나! 참으로 기쁘다. 위대한 공정이시여, 여길 보소서. 교단의 모든 것을 이은 후예가 여기 있사옵니다!’


대주교의 말대로 모든 뱀신과 소통할 방법을 알고 있었던 길버트는 가장 공정한 뱀신을 불렀다. 다만 공정한 뱀신은 길버트가 모아온 모든 제물과 공양을 받지 않았다. 다만 뱀들을 모아 한 줄의 문장을 남겼을 뿐.


Memento Mori, Pacta sunt servanda.

죽음을 기억하라. 약속은 지켜져야만 한다.


그 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죽어 나간 뱀들은 공정한 뱀신이 적은 문장의 뜻을 이해시켜줬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그 뱀들에게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사념이 길버트의 머리를 흔든 것이다.


‘나는 널 풀어줄 수 없다.’


뱀신의 뜻을 전한 뱀들은 불타오르며 사그라들었고, 한 줄의 문장은 잿더미가 흩어지는 것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찾으며 고민하길 14년, 또다시 길버트가 죽었다.



****



으드득...


거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만도 못한 무언가가 진동했다. 우주의 기준으로 보자면 막 태어난 어린 세포가 제 팔다리를 꾸물거리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꿈틀거리고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거대한 형상은 거품처럼 꾸물거리는 어린 세포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더 거대한 형상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의태를 시작했다.


그 의태 끝에 나온 것은 조그마한 새끼뱀이었다. 새끼뱀은 조용히 어린 세포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그 위상 높은 존재는 너와 정확한 계약을 맺었다. 목숨이 다하면, 그 존재는 세상을 다시 구축해 시간을 되돌려주는 대신, 네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소멸시키겠노라고. 너는 그 작은 기관이 박동할 때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있었겠지.]


수많은 신화에서 미리 예견했듯이, 뱀의 혀는 그 무엇보다 가늘고 야들야들해 아주 부드러운 속삭임이 길버트의 귓가에 울렸다.


[네 머릿속에는 두 번째 죽음에서 깨어나기 전부터, 첫 번째 죽음에서 깨어난 뒤부터 이미 무언가가 떠돌고 있었을 게야. 계약의 조건이 그러하다면 기억을 조작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바꾸어 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뱀은 그 혀를 날름거리는 것으로 길버트의 뇟속을 읽었다.


현신하기 전의 뱀신이라면 몰라도 현신한 새끼뱀은 시간이 되돌아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길버트의 머리를 읽음으로써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남자가왜 여기에 떨어졌는지 깨달았다.


[놀랍기까지 한 발상은 아니지만, 그 배짱은 담대하구나. 하지만, 그 끝을 내가 마무리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하지만 스산한 새끼뱀의 목소리에도 겁먹지 않은, 척 하고 있는 길버트는 팔에 매달린 쇠사슬을 흔들며 이야기했다.


“다만 제 팔에 걸린 저주는 마음에 드시겠지요. 위대한 뱀신의 하나뿐인 현신(現身)이시여. 저를 풀어주시는 게 마음에 걸리신다면 저를 옭아매시는 건 어찌 생각하시나이까?”


새끼뱀이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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