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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애미 애비 없는 회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망박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6
최근연재일 :
2022.05.19 22:18
연재수 :
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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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추천수 :
3
글자수 :
30,700

작성
22.05.1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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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 Back on the Rocks

DUMMY

“씨발...! 꺼져! 죽여버리기 전에!”

“그럴 시간 있으면 튀어 병신아!”

“사교도들이 습격했다! 보스한테 알려!”


열차 안은 아비규환이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사교도의 시체를 뚫고나온 뱀은 사교도들이 뿌린 황산을 묻은 제물들을 먹어 삼켰고, 어느 순간 열차의 중심에 솟아난 거대한 말뚝을 중심으로 꽈리를 틀어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시민의식은커녕 도덕이나 법규 같은 걸 배운 적도 없었던 승객들은 사교도들이 불러일으킨 혼란에 잘 녹아들어 또 다른 혼란을 일으켰고, 그들을 관리해야 할 카르텔의 조직원들은 책임 회피를 위해 마법 구슬을 깨뜨려 비상 상황임을 알리고 누구보다 먼저 도망쳤다.


개중에서는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해 자신이 뱀에게 먹히기 전에 다른 사람의 발목 인대를 끊어 시간을 버는 이들도 있었고, 이 아비규환 속에서 용케 무언가를 훔치고 있는 강심장들도 있었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길버트는 옆에 있던 사교도의 목을 가늘게 사과 껍질 자르듯이 돌려 깎아 피 분수를 만들며 혼란을 더했다.


파충류의 것처럼 끈적한 사교도의 피가 닿은 검은 대장장이의 손이 닿지 않는 이상 더 쓸 수가 없다. 길버트는 사교도의 죽은 사교도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길버트는 얇은 리넨 천으로 꽁꽁 감싸여진 작은 단지를 부수고 그 안에 들어있는 환약들을 꺼내 냄새를 맡아봤다. 아직 피 냄새가 감돌진 않은 걸 보니 먹어도 괜찮았다.


몸을 뱀처럼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환약을 잘근잘근 씹으며 길버트는 무심한 눈으로 천민들의 아수라장을 구경했다.


살인마, 좀도둑, 사기꾼들로 이루어진 아수라장에서 구출해야 할만한 인격자가 없기도 했지만 이미 사교도의 배를 찢고 태어나버린 뱀은 이렇게 어린 몸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걸 길버트는 두 번째 삶에서 수많은 사교도를 토벌하며 익히 알고 있었다.


길버트는 옆에서 검은 핏덩이가 되어 흘러내리는 사교도의 시체에 곰 가죽을 덮었다. 사교도들의 시체는 뱀에게는 훌륭한 영양 간식과 같았다.


황산이 묻은 일반적인 부랑자들을 먹었을 때와 달리 사교도를 집어삼킨 뱀은 돼지 오줌보가 불어 오르는 것보다 급격히 몸을 불린다. 하지만 갓 태어난 뱀은 그런 걸 모른다.


곰 가죽으로 덮어 놓으면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는 잘 가려주리라. 이미 황산을 맞아 너덜거리는 곰 가죽 후드였기에 길버트는 아끼는 기색 없이 곰 가죽 후드를 처분했고, 이 아비규환을 끝날 인물을 지켜보기 위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이미 죽을 놈 죽고, 도망칠 놈 도망치고, 숨을 놈이 숨자 고요해진 열차 안은 뱀이 시체를 무지성으로 삼켜대는 소음만이 울려 퍼졌다.


열차의 바닥에 숨어 있던 길버트는 눈에 신 냄새가 나는 물약을 발랐다. 그러자 길버트의 눈동자가 노란 색으로 변하며 열차 너머의 광경을 보여줬다.


뱃속에서 튀어나온 뱀은 이미 사람을 먹어 치울 대로 먹어 치우고 덩치를 비정상적일 정도로 한껏 불려놓은 뒤였다. 그 덩치가 커짐에 따라 몸에 붙어있던 비늘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늘뱀. 지금의 길버트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사교도들의 생체병기가 즐거이 웃으며 죽은 사람들을 삼키고 있었다. 누군가 그 시쳇더미 속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음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채.


뱀과 달리 길버트는 간신히 신경을 집중해 은신한 누군가를 찾을 수 있었다. 그, 혹은 그녀라고 불려야 할 이는 사교도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아갈 수 없었다.


전생에서도 소문만 들었던 그 이름은 뱀 사냥꾼, 사교도들과 뱀파이어들의 학살자였다.


‘자... 그 유명했던 뱀 사냥꾼의 실력 좀 볼까.’


뱀 사냥꾼이 비늘뱀을 사냥하기 위해 천천히 기회를 엿보며 다가가고 있었다.



****



말콤에는 수많은 통로가 존재했지만, 흑마법사들이 제국공학자들과 설계하고 만들어낸 거대 열차만큼 상징성 있는 통로는 또 없었다.


그 어떤 멀미보다도 더 심한 멀미는 말콤에 오는 부랑자들에게 네가 밖에서 어떤 고생을 했건, 말콤에서는 그 격이 다르리라는 암시였고, 그만큼 말콤의 시민들에게 깊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미친 사교도 놈들이!”


쾅!


그랬기에 흑마법사들의 하청을 받아 거대 열차를 관리하는 햄프스 카르텔의 두목, 해머는 사교도들의 테러 소식을 듣고 탁자를 반으로 쪼갤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퍼지는 속도가 명인의 칼보다 빠른 말콤의 특성상 말콤의 상징, 거대 열차가 테러에 휩쓸렸다는 사실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말콤의 모두가 알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햄프스 카르텔의 체면도 꽤 구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뱀의 독을 섞은 황산을 주위에 뿌리고 다니는 것뿐만 아니라 아예 괴물을 소환해서 열차를 뒤집어놓고 있다고 하니 사태를 정리하고 다시 거대 열차를 운행하려면 뒤틀린 선로를 고쳐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선로의 관리를 하청받은 햄프스 패밀리는 흑마법사들에게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 것이 뻔했고, 순간적으로 해머의 머릿속에는 제 금고의 비밀번호와 안에 들어있는 물건, 도주로와 만약의 상황에서 자신을 잡으러 올 흑마법사들의 추격대가 떠올랐다.


“제기랄, 뱀 비늘에 박아대는 병신들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해머는 이미 반으로 부서진 탁자의 절반을 잡아 벽에 던졌고, 흑단목으로 만들어진 매끈한 탁자는 벽과 부딪히자 쫙하고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도망칠 수도 없다. 결국 해머는 상황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기로 마음먹었다.


“피프스! 일단 주위 통제하고 애들 불러와! 입구 쪽 인원들은 뭘 사용해도 좋으니까 입구 확실히 막으라고 하고, 애들 다 불러! 혹시 모르니까 건물에서 중요한 서류 다 철벽금고에 넣어놓고 건물에 폭약 쌓아놔!”


그나마 자신이 들은 정보가 정확하다면 테러의 피해는 선로와 그것을 받치는 지지대에 한했다. 위태위태할지라도 거대 열차의 근본을 이루는 동굴과 열차는 아직 버티고 있었다.


다른 건 다 무너져도 복구 비용이 크지 않다. 오직 거대 열차만, 거대 열차의 차체만 멀쩡하게 남아있길 빌며 해머는 직접 거대한 망치를 쥐어 잡고 현장으로 떠났다.




****




뱀은 정면에서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포유류들처럼 단단한 근육과 강인한 근육에서 나오는 완력이 한없이 부족한 뱀들은 입 안에 숨겨둔 독니와 재빠른 속도를 주로 활용하길 원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근력으로 무쇠를 꺾고, 일류 검객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를 가지고 있다면? 뱀은 어떻게 싸우는가.


뱀의 싸움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뱀 사냥꾼은 사교도들의 비늘뱀이 튀어나와 황산 묻은 이들을 잡아먹기 시작하자 등에 메고 있던 말뚝을 열차 중앙에 꽂았다.


그 말뚝에서는 친숙한 뱀들의 냄새가 났고, 황산에 젖은 제물들을 마음껏 먹고 고무 늘어나듯 덩치를 늘린 비늘뱀은 자연스럽게 말뚝을 중심으로 꽈리를 틀었다.


비늘뱀은 태어나자마자 거대한 열차와 몇 번 부딪히며 제 가장 큰 장점을 깨달았다. 어디에 부딪혀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비늘의 단단함, 그리고 한 번의 돌진으로도 지축을 뒤흔드는 강대한 힘.


그 어떤 기습도 필요 없는 강대한 몸이라는 사실을 비늘뱀은 깨달았고, 그에 맞게 행동했다. 흥미롭다는 눈으로 사람을 지켜보다가, 순간적으로 상대의 다리를 짓누르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삼키며 강자로서의 유흥을 즐긴 것이다.


거인이 주저앉은 것처럼 꽈리를 틀고는, 죽은 시체를 보며 날름거리기 시작한 비늘뱀은 이 즐거움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내 비늘뱀은 자신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감정을 맛봤다.


그것은 공포의 냄새보다는 조금 더 음습했고, 죽은 인간들의 시취보다는 더 끈적거렸으며, 제 비늘에 흐르는 피보다는 더 뜨거웠다.


그건 제 등을 노리는, 복수자의 냄새였다.


촤악!


뱀 사냥꾼은 항상 그렇듯이 뱀의 피부를 경화시키기 위해 작은 물약 병을 던져 뱀에게 맞췄다.


물약 병 안에 들어있던 하늘 독수리의 오줌은 훌륭히 비늘뱀의 피부를 경화시켰고, 뱀 사냥꾼은 숨결을 가다듬고 혀에 발려진 기름의 맛을 음미하며 주문을 외웠다.


[sōwilō-ansuz-gebō, 위대한 신의 선물이시여. 차가운 곳은 더 차갑게, 뜨거운 곳은 더 뜨겁게. 모든 것은 양 극단에 몰리니...]


스스으으으으...!


비늘뱀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뱀 사냥꾼이 던진 독수리 오줌은 비늘뱀에게 묻어 있던 황산과 반응하여 아주 뜨겁게 달아올랐다. 게다가 뱀 사냥꾼이 외운 주문으로 인해 뜨거운 곳은 더 뜨겁게, 차가운 곳은 더 차갑게 변해버렸다.


변온동물인 뱀은 급격한 온도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기에, 비늘뱀은 분노 섞인 비명을 질렀다.


분노한 비늘뱀은 힘껏 꼬리를 흔들고, 자신 있게 머리를 들이밀면서 몸을 비틀어 주위를 으스러트렸다. 다만 아쉽게도 뱀 사냥꾼은 이미 한껏 거리를 벌린 뒤였다.


으우웁... 그웨에엑...


비늘뱀은 순간적으로 먹고 있던 인간들을 다시 뱉어냈다. 거기에는 독이 가득 담긴 뱀의 체액이 묻어 있었고, 뱀 사냥꾼은 그 토사물들을 피해 구석으로 도망쳤다.


쾅!


비늘뱀은 구석에 몰린 사냥감을 향해 채찍질하듯 머리를 내리찍었다.


쾅!


찍고


쾅!


또 찍었다. 그 결과 열차의 모서리가 뚫려 뱀 사냥꾼이 서 있던 자리에는 큼지막한 핏자국과 사람이었던 것들, 뱀 사냥꾼 특제 말뚝이 박혀 있던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스으으으으...!


흥분에 가득차 머리를 내리찍는 것에 심취했던 비늘뱀과 다르게 뱀 사냥꾼은 처음 물약병을 던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두 계획 속에 있었다. 뱀 사냥꾼은 계속해서 사냥을 이어나갔다.


츠즈스으으...


제 볼에 말뚝이 꽂힌 비늘뱀은 호들갑을 떨며 꽈리를 틀던 말뚝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 덩치가 몇배로 불어나 그닥 꽈리를 틀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태어났을 때부터 말뚝에 붙어있던 비늘뱀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말뚝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비늘뱀이 머리를 여러번 내리찍는 사이에 주문을 외웠던 뱀 사냥꾼은 천장의 구석에서 뱀이 말뚝 주위에 꽈리를 튼 것을 확인하고서 입에 가득 삼켰던 나무 씨앗을 내뱉었다.


[jēra-eihwaz. 주목나무여, 열매의 한을 품어라.]


쫘악...!


주목 나무를 통째로 깎아 만든 거대한 나무 말뚝이 한 순간에 수백 갈래로 갈라지더니, 그 끝에는 짐승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독이 넘쳐흘렀다.


치이이이이...! 스아아아아...!


빈 열차를 쩌렁쩌렁 울리는 뱀의 고함소리에 뱀 사냥꾼은 익숙하다는 듯 잠시 귀를 막았다.


주목나무의 독은 작은 다람쥐부터 거대한 고릴라까지 그 크기를 따지지 않고 몸을 굳히고, 신경을 마비시키는 강력한 독. 아무리 뱀독이 진할지라도 이미 수백 군데에서 투입당한 독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뱀 사냥꾼은 이미 움직이지 못하게 된 비늘뱀을 보고 비웃음을 머금다 다시 입에 나무 씨앗을 머금으려 바닥에 떨어진 나무 씨앗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푸욱...!


그 모습을 본 길버트는 기다렸다는 듯 열차의 밑판을 뚫고 나와 뱀 사냥꾼의 가슴에 칼을 찔러넣었다.


“넌... 커헉, 누구...”


뱀 사냥꾼은 한 순간에 사냥감으로 전락해버렸고, 길버트는 후드로 감춰진 뱀 사냥꾼의 얼굴을 확인했다. 붉은 머리와 주근깨가 인상적인 15살 가량의 소녀.


길버트는 고통스러워하는 소녀를 위해 조금의 자비를 배풀었다.


“다음 생에서는 조금 더 나은 인연으로 보자고.”


전생의 자신이라면 아무리 급해도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며, 길버트는 소녀의 시체를 뒤로 하고 죽은 비늘뱀의 머리를 쳐다봤다.


길게 늘어뜨려 놓으면 열차의 반절은 되보일 뱀의 머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린 길버트보다 컸다.


길버트는 어린 소녀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이 머리가 필요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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