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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아지박이 님의 서재입니다.

애미 애비 없는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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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박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6
최근연재일 :
2022.05.19 22:18
연재수 :
6 회
조회수 :
218
추천수 :
3
글자수 :
30,700

작성
22.05.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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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0. Komm Süsser Tod

DUMMY

봄비의 새초롬한 향기로도 막지 못할 지독한 악취가 풍겨오는 시궁창 속에서, 푸른 피가 흘렀다.


자신의 코를 찌르는 이 쇳내가 목을 관통한 창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인지, 찢어진 내장에서 흘러나온 피비린내인지 분간이 안 가는 지경에 놓인 남자는 필사적으로 주머니에서 부서진 포션병을 찾고, 끄륵거리는 숨을 내쉬며 활로를 찾았다.


남자의 각오는 실로 필사적이었다. 남자의 입가에 고인 피거품과 죽기 직전까지도 그 의지를 잃지 않은 두 동공이 그를 증명했다.


하지만, 열 한 개의 관통상(貫通傷)과 서른 세 개의 자상(刺傷), 네 군데의 화상(火傷)과 뱃가죽을 뚫고 내장들이 튀어나온 상황에서 아무리 노력해봐야 다시 살아나기란 불가능했다.


벨루갈 백작가의 족보에 남지 못한 후손이자, 아가로티 후작 영애와 탯줄이 연결되어 있던 반쪽짜리 고아는, 남자는 그렇게 구덩이 속에서 죽었다.


톡...!


그렇게, 남자의 입가에서 피거품이 꺼졌고, 그 심장에 박힌 문신도 함께 꺼졌으며, 하늘의 태양도 누가 톡 하고 터트린 것처럼 같이 터져나갔다.


남자의 문신이 터진 여파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별이 터지자 그것이 구성하고 있던 우주의 거대한 가락이 터졌으며, 원소가 터져나갔다... 가장 작은 개념과 가장 커다란 개념이 터져나가자 그 사이에 있던 개념들도 모두가 터졌다. 인지할 수 있는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어린아이가 비누 거품을 터트리듯 터져나갔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남자가 맺은 계약에 따라, 그가 죽음으로써 세상의 모든 것들은 멸망을 맞이했다. 하지만 동시에 남자가 맺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계약에 따라, 만물은 다시금 수복되기 시작했다.


별과 분자, 은하단과 원자, 더 커다란 것과 더 작은 것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존재하게 만드는 개념까지. 세상의 모든 구성 요소들이, 단 하나만을 제외하고 복원되었다. 그 누구도 이러한 복원과 시간의 재생이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따지고 들지 못했다.


무언가가 터트린 세계, 동시에 무언가가 되돌린 세계는 터지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세슘 원자핵이 5.5821경(京) 동안 진동하기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 모든 폭발과 재생을 인지할 수는 없었지만, 모든 폭발이 일어나기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남자는 자신이 구덩이 속에서 피를 끓으며 죽어갔을 때, 또 한 번 시간이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자신이 한 어리석은 계약의 대가가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이미 치러졌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끄흑... 으흐흑...”

자신도 모르게 쥐어진 주먹에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주먹에서는 단순한 피가 흘렀지만 그 눈에서는 자기혐오와 비탄으로 인한 피눈물이 흘렀다.


남자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아둔한 계약으로 인한 것이 아닌, 남자가 모친의 태중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축복이라고 불릴 그 능력은, 지금 남자의 가슴 속을 도려낼 칼날을 만들고 있었다.


부모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푸른 피의 아이는 이제 시궁창 속에서 홀로 살아남은 천애고아가 되었다.


그 누구보다 고귀한 이들의 의무를 다했던 아버지의 이름은 더 이상 명예의 책에서 찾을 수 없었고, 온실 속에서 따듯한 햇볕만을 받고 자라나 제 자식들에게도 그 온기를 배로 전해준 어머니의 품도 이제는 저 먼 만월 속의 밤에서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저 해와 달이 거품처럼 터져나갔을 때 그들은 존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렸다. 이 사실이 날카로운 칼로 변해 남자의 심장을 조각조각 도륙냈다.


모두 남자가 선택한 계약의 대가다. 43년 전, 그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죽음에 이르렀을 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해 주는 대신 가장 소중한 것을 받아가겠다는, 식상하기까지 한 계약의 대가였다.


그 모든 일이 변명할 수 없는 자신의 잘못이었기에 남자는 그저 제 손톱을 더 깊숙하게 꽂을 뿐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따듯한 기억들이, 남자의 등을 두드리며 가만히 있지는 말라며, 부추겼다.



남자는 피 흐르는 손으로 제 얼굴에서 흐르는 더 진한 핏줄기를 닦았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천애고아에게 어울리는 곳, 19년 전의 제도의 가장 어두운 곳, 말콤으로 몸을 숨겼다.


자신에게 매여진 계약의 사슬을 풀고, 다시금 소중한 이들을 되찾아오기 위해서.


전 벨루갈 백작이자, 아가로티 후작가의 명인(名人), 현 천애고아 길버트는 그렇게 세 번째 삶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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