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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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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00
추천수 :
610
글자수 :
250,851

작성
24.04.19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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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호식이와 앵무

DUMMY

골댕이라 부르자 대형견은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지긋이. 지긋이!

개가 아니라 꼭 사람 같이.


"자 골댕아 내 말 잘 들어봐."


이게 개한테도 통할지는 모르겠다. 지난 번 락커와 하정의 경우를 보면 죽고 나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개도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나는 사람이다. 나는 말을 할 수 있다. 라고 생각해봐."

"눈 감고. 눈감고."

"앵무새 너도."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골댕이와 앵무새는 눈을 감았다.


"참나, 무슨 만화영화도 아니고."


골댕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보게."


나도 모르게 헙 이라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게 된다고?"

"물 좀 주겠나."


골댕이는 젊잖은 말투로 내게 부탁했다.


"나도 물. 나도 물."


그러자 앵무새도 물을 달라며 재촉했다. 나는 큰 사발에 물을 떠 두 사람? 아니 동물 앞에 놓아 주었다. 천천히 혀를 내밀어 물을 마시는 골댕이와 쪼아대는 앵무새.

도대체 이 둘의 조합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걸까.


"시원하네. 고맙구만."

"이제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 해봐. 그리고 개가 어디서 반말이야."

"내가 13년을 살았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80대 일텐데."

"그건 사람 나이지."


골댕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됐고.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야."

"구해줘. 구해줘."


앵무새가 내 어깨위로 날아와 앉았다.


"저리가서 앉아. 그리고 한 번만 말해."

"그건 안돼. 그건 안돼. 나도 안돼. 나도 안돼."


아, 말을 하더라도 한 번씩 말하는건 안된다는 건가.


"갑자기 찾아와 미안하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변호사라는 양반이 내 입에 번호표를 물려줬거든. 그리고는 공원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걸 보며 기다렸지. 이번에 내 차례가 된 것 같은데 오래토록 연락이 없길래 이젠 상담을 하지 않나 싶었지."

"그 앞 사건이 좀 길어져서. 그래서 어떻게 듣고 온거야."

"수민이라고 했던가. 깨발랄하던 여자 아이가 자신의 뒷 번호를 찾더라고. 3일 뒤에 오라고."

"근데 3일이 훨씬 지났는데."


골댕이는 사람처럼 헛기침을 했다.


"급한일이 있어서 이제서야 왔네."


왔네.. 왔네.. 아오..

개가 급한 일이 뭐가 있다고.


"골댕이 너는."

"호식이. 내 이름일세."

"호식이 너랑 이 앵무새는"

"앵무. 앵무."


하.


"그래 호식이 너랑 이 앵무는 무슨 일로 찾아온거야. 억울하게 죽었어? 아니면 누가 죽였어?"

"아닐세. 나와 앵무는 살만큼 살아서 죽었지."

"그럼 억울할 것도 없잖아."

"우리 주인 양반 때문에 못갔네."

"주인 양반?"


골댕이 아니 호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주인이 왜."


호식이는 기침을 두어번 하더니 다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앵무는 다시 날아가 호식이 머리 위에 앉았다.


"나와 앵무가 죽고 나서 삶의 희망을 잃었네.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는데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어."

"다른 가족은 없어?"

"없어. 이혼하고 자식들과 전처랑은 연락 안하고 산지 꽤 오래됐고. 그나마 다니던 청소부 일도 짤리고. 아파트가 있어 기초수급자 신청도 안된다더군. 기초수급자가 뭔지 아는가?"


어이가 없어서. 개가 지금 사람한테 기초수급이 뭔지 아냐고 물어본거야 지금?

내 눈썹이 꿈틀거리자 호식이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매일 술만 사서 마시고 있네. 밥도 먹지 않아. 그래도 우리가 있을 때는 가끔 일도 하러 가고 우리랑 같이 밥도 먹었는데. 삶의 의욕을 잃은 것 같네."

"주인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 그리고 아파트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 여윳돈이 생기잖아."

"68세. 아이들 유학 가기 전에 몇 년을 고생해서 산 거라더군. 어떻게 생각하면 아이들과의 마지막 추억이 담긴 장소지. 우리와도 마찬가지고. 마지막 재산 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주고 아파트 하나 남았다네. 그래서 죽을 때 그거라도 더 남겨주고 싶어서 팔지 못한다더군."

"그럼 가족들을 찾아가면 되지 않나?"

"외국에 있어. 오래 기러기 생활을 했는데 그게 문제였던거지. 아내와 아이들은 그 곳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평생 벌었던 돈은 모두 자식들과 아내를 위해 썼으니. 아내와 헤어지고 자식들은 한국에 들어오지 않으려 하고. 희망이 없던 사람이었네. 그때도 술만 마시다 회사도 그만두고 폐인처럼 살았어. 그러다 버려진 나를 만났고 앵무도 만났지. 나는 병이 있어서 버려졌어. 그런데 우리 주인양반이 거둬줬지. 없는 돈으로 치료해주고. 그렇게 3년을 살다가 머리가 다 빠진 앵무새도 만났지."

"머리 얘기 하지마. 머리 얘기 하지마."


그 와중에 대머리였다는 사실이 챙피했는지 앵무는 호식이의 머리를 쪼아댔다.


"앵무는 학대를 받았어. 그러다 버려졌는데 그걸 발견했던게 또 우리 주인양반이었거든. 정성껏 돌봐서 새같이 만들어 놓은게 이정도야."


앵무는 쉴새없이 호식이의 머리를 쪼아댔다.


"죽어가는 우리를 데려다 살릴 정도로 정도 많고 좋은 사람인데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네.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를 나와 앵무로 인해 위로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앵무도 죽어 더 상심이 컸던게지."

"다른 친척이나 뭐 그런건 없어?"

"없다고 들었네. 늘 혼잣말로 내게 말했거든. 세상에도 홀로 나고 내가 만든 가족에게도 버림 받았다고. 나와 앵무 뿐이라고 말이지."


흠. 반려견이 죽었을 때의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지. 딱히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 사람들은 자식처럼, 가족처럼 키웠을테니까. 아니지. 키웠다는 말보다는 함께 살아갔을테니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주인의 가족이 되어주는 거지만."

"그건 안돼지."

"나도 안다네. 일단은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네. 그리고 산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상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는 거네."

"그렇지. 젊은 시절엔 꽤 잘나가던 회사에 다녔다더군. 그곳에 계속 다녔다면 지금쯤 승승장구 했을 사람인데 말이야."

"요즘 68세면 완전 노인도 아닌데. 흠."


불쑥 찾아가서 아저씨 개가 우리 집에 찾아왔습니다 할수도 없고. 조금 상황이 애매하네. 그렇다고 모른척 할 수도 없고.


"주인 아저씨네 집이 어딘데?"

"이곳 윗윗층이라네."

"엥? 우리 아파트?"


우리 아파트에서 내가 앵무새랑 골든 리트리버를 본 적이 있나? 하긴 잠복 수사를 하면 며칠씩 집을 비웠으니 못봤을 수도 있고... 아!


"아 그럼 엘리베이터에서 한 번씩 만났던 그 골든 리트리버?"

"이제야 나를 알아보는겐가."

"그 아저씨 사람 참 좋아보이셨는데. 너랑 같이 타면 혹시 피해갈까봐 맨날 구석에 앉게 하시고."

"그랬지. 나는 물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 아저씨였구나. 전혀 몰랐네."

"방법이 없을까?"


무턱대고 찾아가서 아저씨 밥먹어요 할 수는 없었다. 그럼 혹시나 아저씨가 나오는 시간대에 맞춰 인사라도 건네 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가 밖으로 나오는 시간은 있어?"

"한 번씩 소주를 사러 나가는데. 이틀째 나오질 않네. 오늘 술이 떨어져서 나오지 않으려나."

"그래? 흠."


그럼 아파트 입구에서 서성 거려야 하나.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앵무 니가 아저씨 집에 가 있어. 그리고 아저씨가 나올때 내게 알려줘. 아니면 호식이 네가 가 있던가."

"그래서 어쩔 생각인가."

"일단 말을 붙이고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해봐야지. 대꾸해 주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지. 그럼 여기서 기다리게."


호식이는 소파에서 내려왔다.


"앵무 너는 여기 있는게 어떤가. 주인 양반 힘들어 하는거 못보겠다며."

"같이 가. 같이가."

"그러시게."


다른건 다 좋은데 저 말투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네.

나는 아저씨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고민했다. '리트리버 잘 있나요?' 이건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일거 같고. '아저씨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이건 너무 친한거 같고.

흠. 어떻게 해야하지.

'아저씨 저 귀신을 보는데요. 골댕이가 절 찾아왔어요.' 라고 하면 미친놈인줄 알겠지? 무현 형님한테 도와달라고 할까. 아우. 복잡하네.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시간이 지나도 호식이는 오지 않았다. 아직 아저씨가 나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때 천장에서 앵무가 날아 들어왔다.


"야! 천장에서 갑자기 나타나는건 반칙이지!"

"내려온다. 내려온다."


앵무는 내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진짜 딱 한번만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알았어. 나간다 나가."


나는 최대한 편한 차림으로 보이기 위해서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타고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문이 열리자 예전의 얼굴과 완전 다른 얼굴의 아저씨가 엘리베이터 구석에 쓰러질 듯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인삿말을 건네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아저씨는 고개만 살짝 숙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1층으로 내려갔고 나와 아저씨는 동시에 내렸다.


"마트 가시나봐요."


내 말에 아저씨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혹시 소주?"


나는 어떻게든 아저씨의 호응을 얻기 위해 우스운 제스쳐도 곁들였다.


"네."

"아저씨 제가 오랜만에 쉬는 날인데 저랑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저녁 저랑 같이 드실래요?"


갑자기 무슨 저녁을 같이 먹자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라 다시 담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지? 긍정의 사인인가?


"저 앞에 국밥집 새로 생겼는데 아세요? 제가 대신 국밥 살게요. 같이 한 잔 하실래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나는 뒤따라오는 호식이와 앵무를 보고 윙크를 했다.

나와 아저씨는 천천히 걸어 아파트 근처 국밥집에 도착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국밥 두그릇을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예전에..."


내내 침묵하고 있던 아저씨가 입을 열었다.


"형사라고 했던 것 같은데."


물통을 잡는 아저씨의 손이 떨렸다.

나는 물통을 대신 잡고 아저씨의 컵에 따라 주었다.


"맞아요. 아저씨 저 기억하시네요."

"같은 아파트 사니까. 전에 우리 호식이도 이뻐해줬고."

"강아지... 말씀하시는거죠?"

"네. 죽었어요. 같이 키우던 앵무새도."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고민 했는데 아저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 그랬군요.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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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용의자를 찾아라. +1 24.04.22 698 15 11쪽
19 버려지는 이유가 참 많다네. +3 24.04.20 687 13 11쪽
» 호식이와 앵무 +1 24.04.19 694 14 11쪽
17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6) +2 24.04.18 723 15 11쪽
16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5) 24.04.17 700 15 11쪽
15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4) 24.04.16 712 15 11쪽
14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3) 24.04.15 720 14 11쪽
13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2) +1 24.04.14 730 15 11쪽
12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1) +1 24.04.11 727 15 12쪽
11 Memories of the soul (3) 24.04.10 740 12 11쪽
10 Memories of the soul (2) +1 24.04.09 748 13 12쪽
9 Memories of the soul (1) 24.04.08 757 15 10쪽
8 빨간색 가죽바지 +2 24.04.05 760 13 12쪽
7 영혼 결혼식 (3) +2 24.04.04 774 1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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