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28,696
추천수 :
610
글자수 :
250,851

작성
24.04.02 14:20
조회
795
추천
13
글자
11쪽

영혼 결혼식 (1)

DUMMY

"딱히 없어요. 대신 내 사생활은 지켜주었으면 좋겠어요. 그쪽도 출퇴근하는 걸로."

"그럼 하시기로 한 겁니다."

"뭐 어쩌겠어요. 돈도 안 되는 거 피곤하겠다 진짜."

"돈이 왜 안 돼요? 귀신들 도와주면 얻는 게 더 많을 텐데."

"말도 안 돼."


똘똘이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 귀신들은 보답을 할 거라고. 진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그래도 경찰이라 내가 뭐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형사는 때려치울 생각 없어요?"

"이거 하고 싶어서 내가 무서워도 끝까지 붙어 있는 건데."

"탐정하면 되잖아요. 탐정 사무실 차려서."

"에이 됐어요. 아무튼 내 일에는 지장이 없어야 해요."


오케이라며 똘똘이 귀신이 말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뒤에 가만히 앉아 있던 여자 귀신이 신경 쓰였다.


"저 여자분은 누구예요?"


똘똘이 귀신은 잠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뭔가 두 사람의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


"오늘부터 바로 상담 시작하실 건가요? 그럼 말씀드리고요."

"어차피 이미 그쪽은 와 있으니 시작한 거 아닐까요."

"흠."


똘똘이 귀신은 여자 귀신을 소개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과 그 여자는 둘만의 결혼식을 치르러 가는 길에 사고로 동시에 죽었다고.

왜 둘만의 결혼식을 치러야 했는지, 왜 사고가 났는지까지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니까 여자분이 고아라는 것 때문에 남자 집의 반대로 결국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하기 위해 강원도로 향하는 길에 트럭과 사고가 났다는 거죠?"

"네."

"안타깝네. 근데 두 분의 바람은 뭐길래 아직 못 떠났어요?"

"결혼식이요."

"결혼식? 결혼하러 가다 죽었으니 결혼한 거 아니에요?"

"아니죠. 부부가 되고 나서 떠나고 싶어서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게 뭐야 싶기도 하고 이미 죽어놓고 무슨 결혼이냐 싶겠지만 저희 둘은 억울하거든요.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내가 해주면 돼요?"


똘똘이 귀신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거 뭐야! 한심하다는 표정 뭐야!"

"먼저 우리 부모님을 찾아가 주세요. 그리고 제가 하는 말을 전해 주시면 영혼결혼식을 승낙 하실 겁니다. 그리고 나면 무속인을 통해 영혼결혼식을 해주시면 돼요."

"무속인이 꼭 있어야 해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선배 귀신들이 그러더라고요. 우리가 죽은 지 3년 정도 됐는데 영혼에 몇 번 참석 했거든요. 근데 두 혼을 엮어 주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뭐 꼭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보통 그렇다네요."


귀신이 뭐 이렇게 말을 잘해. 무속인이라면 무현에게 부탁해보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도와주지 않을까. 아는 무속인도 없고.


"뭐 그건 부탁해볼게요. 그리고?"

"그게 끝인데요? 아 그리고 제 이름으로 된 재산을 부모님이 아직 처분을 안 하셨어요. 집과 할아버님께 물려받은 땅. 그리고 결혼하기 위해 모아놨던 1억."

"와 1억이나?"

"부러울 필요가 없어요. 난 못 쓰고 죽었으니까. 아무튼 그것들을 처분하고 집과 할아버님 땅은 제 동생에게, 그리고 1억은 제 여자친구가 자란 바다 보육원에 기부해달라고 해주세요."


나는 아무리 뺑이쳐도 손에 넣을까 말까 한 돈인데 젊은 나이에 그렇게나 모으다니. 하긴 변호사라 했으니 그렇기도 하려나. 아무리 죽었어도 부럽긴 부럽다.

나는 혹시나 잊을까 싶어 남자가 하는 말을 메모했다. 직업병인가.


"그럼 여자분은 더 없어요?"


내가 묻자 여자는 고개만 저었다.


"말을 못 합니다. 들을 수는 있지만요. 어릴 때 열병을 앓아서."

"잉? 죽었는데도 말을 못 한다고요?"

"네?"


똘똘이 귀신과 여자 귀신은 갑자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맞네. 귀신이면 이제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표정이었다. 똘똘이 귀신은 여자 귀신에게로 다가가 말을 해보라고 했다. 아마 죽고 나서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모양이다. 3년 동안은.


"자기야. 말해봐. 저분 말대로 귀신이면 이제 육체에서 벗어났는데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여자 귀신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려 소리를 내 보았다.


"아.. 아.. 아! 장..민..씨.. 진짜 목소리가."

"헉! 진짜네. 진짜 말을 할 수 있네."


두 사람은 서로를 껴안고 좋아했다. 그 장면을 턱을 괴고 바라보니 속이 뒤집혔다. 저것들이 남의 집에서 연애질이야. 이제 귀신까지 연애질이야?


"어이 거기 두 사람. 다른 데 가서 하면 안 될까."

"아 죄송합니다."

"귀신도 짝이 있는데."


두 사람은 민망한 듯 떨어졌다. 하지만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듯 얼른 손을 맞잡았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살아 내내 여자친구의 목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사랑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어요?"

"변호사와 의뢰인으로요. 바다 보육원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가 있었어요. 원장님과 사방팔방 해결책을 찾으러 다니다 제 변호사 사무실까지 오게 됐고요."

"그때 이 사람이 꽤 유명했거든요."


여자 귀신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처음엔 저와 소통도 되지 않았어요. 글로 써서 이야기를 나누고 했죠. 그런데 다행히 그 후 잘 해결되어 이 사람 도움이 필요 없게 되었어요. 더는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죠."


하긴, 변호사가 고아에 말을 못 하는 여자를... 아니지. 이런 못된 생각은 하면 안 되지. 그래도 현실인데.


"그 후 이 사람이 문자가 왔어요. 잘 해결되었는지를 묻는 걸 시작으로 점점 밥 먹었냐 한 번 만나자까지. 솔직히 처음엔 절 가지고 논다고 생각했어요. 변호사에 번듯한 집안에 인물까지 좋은 사람이 저 같은 고아에 벙어리를 좋아할 리가 없을 테니까요."

"음···."


그러고 나서 다시 똘똘이 귀신이 말을 이어 나갔다.


"첫눈에 반했죠. 말을 못 하는 것도, 고아인 것도 제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어요. 근데 만나보니 더 좋더라고요. 성격도 좋고 착하고. 사실 이미 보육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신이 굳이 신경 쓸 일도 아니었는데 고향이나 다름없는 보육원이 잘못되는 걸 보고만 있진 못했던 거죠. 그런 마음이 예쁘더라고요. 보시다시피 얼굴도."

"그랬군. 그럼 그쪽 집에 찾아가서 얘길 해달라는 거죠? 그런데 쫓겨날 거 같은데."

"제가 말한 걸 전해주시면 믿을 겁니다."

"알겠어요. 그럼 내가 내일 우선 무현 님께 전화를 드려서 상의 좀 해볼게요. 별로 친하진 않지만."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일단 가볼게요. 내일은 출근하시니 경찰서로 찾아가겠습니다."

"엥? 경찰서는 좀 그렇죠. 그러지 말고 퇴근이 다섯 시니 그때 오세요. 그 전에 통화도 해놓고 그쪽 집에 찾아가는 걸로 하죠."


똘똘이 귀신은 그럼 번호를 부여받은 귀신들을 하루에 한 명씩 오는 게 아니라 한 상담이 끝나면 오는 거로 하겠다며 규칙 변경을 이야기했다. 나는 진짜 매니저에게 이야기하듯 그럽시다, 라고 대답했다. 똘똘이 귀신과 여자 귀신은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갑작스러운 귀신들과의 대화로 모든 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진짜 이 일을 해야 하는 걸까. 몇 번이나 되짚어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맴돌았다.

그렇다면 뭐 즐겨야지. 저렇게 젠틀한 귀신들만 있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은 귀신 소리도, 귀신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진짜 귀신들이 그 규칙들을 지키는 걸까. 번호표를 받아들고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귀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귀신이나 사람이나 똑같구나."


이틀이나 병가를 내 더 쉴 수는 없어 일찌감치 출근 준비를 끝냈다.

차에 올라탄 순간 전화가 왔다.


-네 선배.

-출근 중이지? 이리로 바로 오면 되겠다. 여기 너희 집 근처에 금화당이야.

-금화당?

-응. 강도가 들었다는 신고를 받고 왔는데 강도가 지금 인질로 사장님을 붙잡고 있어. 나도 방금 도착해서 상황 파악 중이야. 빨리 와.

-네 알겠습니다.


이틀 만에 출근하는데 강도라니. 진짜 세상의 나쁜 놈들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

나는 급히 차를 돌려 금화당으로 향했다. 오며 가며 몇 번 본 곳이었다. 근처에 금은방이 그곳 한 곳이라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들어가던 곳이었다. 거기 사장님이라면 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는데. 혹시 화를 당하진 않을까 걱정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 현장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막아서고 있는 경찰에게 형사임을 밝히고 희민 선배 옆으로 다가갔다.


"아직 그대로예요?"

"응."


유리창에 비치는 모습에 강도가 사장을 뒤에서 끌어안고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섣불리 들어가려고 했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터였다. 더구나 칼을 들고 있으니 오금이 저리기 시작했다. 귀신은 이제 무섭지 않은데.

그때, 팔짱을 끼고 서 있는 똘똘이 귀신과 여자 귀신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 여긴 왜 왔지?

나는 사람들이 내게 집중하지 않는 틈을 타 슬쩍 두 귀신에게 다가갔다.


"오후에 보기로 했잖아요."


입을 최대한 벌리지 않고 소곤거렸다.


"아 저희는 여기 구경 왔는데 결혼반지 보려고. 근데 저런 일이 벌어졌네요. 모지란 놈. 형사님 저 가게 뒤쪽으로 가면 뒤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어요. 나랑 여자친구가 저노무 시키를 좀 놀래킬테니까 뒤에서 잡아요."

"엥? 어떻게 놀래켜?"

"이래 봬도 우리 귀신입니다. 하하. 자기야 준비됐지?"

"응."


순간 여자 귀신의 얼굴이 바뀌었다. 너무 놀라 나도 헉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아마도 사고 났을 때의 모습으로 변한 것 같았다. 머리는 풀어 헤치고 팔이 뒤로 꺾이고 온 얼굴은 피투성이였다. 얼빠진 내게 똘똘이 귀신이 얼른 뒤로 가라고 재촉했다. 나는 귀신의 말대로 가게 뒤편으로 가 뒷문을 찾았다. 경찰들이 바로 찾아낼 수 없었던 건 아마 벽과 너무 비슷하게 생긴 문이어서 그런 듯했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작은 공간이 하나 있었고 문이 하나 더 나왔다. 그것까지 살며시 열자 소리를 지르고 있는 강도가 눈앞에 보였다. 아무래도 희민 선배를 보낼 걸 그랬나. 칼을 들고 있는 놈을 덮치려니 자신이 없었다. 그때였다.

여자 귀신이 강도 앞에 서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자 갑자기 강도가 소리를 지르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나는 재빠르게 뛰어가 강도의 팔을 쳐 칼을 떨어뜨리고 제압했다. 아무리 겁쟁이여도 무술로 단련된 몸이 생각도 전에 반응해 주었다. 허우적거리는 강도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나서 깊은 숨을 몰아쉬었다.

사장님은 옆에 주저앉아 버렸고 희민선배가 부리나케 뛰어 들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택시 기사님의 증언 (2) 24.04.25 661 13 11쪽
22 택시 기사님의 증언 (1) 24.04.24 674 12 12쪽
21 저수지의 잡귀들 +1 24.04.23 670 13 11쪽
20 용의자를 찾아라. +1 24.04.22 698 15 11쪽
19 버려지는 이유가 참 많다네. +3 24.04.20 687 13 11쪽
18 호식이와 앵무 +1 24.04.19 693 14 11쪽
17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6) +2 24.04.18 722 15 11쪽
16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5) 24.04.17 700 15 11쪽
15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4) 24.04.16 712 15 11쪽
14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3) 24.04.15 720 14 11쪽
13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2) +1 24.04.14 729 15 11쪽
12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1) +1 24.04.11 727 15 12쪽
11 Memories of the soul (3) 24.04.10 740 12 11쪽
10 Memories of the soul (2) +1 24.04.09 748 13 12쪽
9 Memories of the soul (1) 24.04.08 757 15 10쪽
8 빨간색 가죽바지 +2 24.04.05 760 13 12쪽
7 영혼 결혼식 (3) +2 24.04.04 774 15 12쪽
6 영혼 결혼식 (2) +4 24.04.03 770 14 11쪽
» 영혼 결혼식 (1) +1 24.04.02 796 13 11쪽
4 번호표를 뽑아 24.04.01 813 17 12쪽
3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 (2) 24.03.29 840 17 10쪽
2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1) +1 24.03.28 853 16 11쪽
1 귀문이 열렸다고요? +3 24.03.28 1,030 1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