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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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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94
추천수 :
610
글자수 :
250,851

작성
24.04.04 20:25
조회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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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글자
12쪽

영혼 결혼식 (3)

DUMMY

"저는 그냥 이 사람이 전해주는 말을 할 뿐입니다. 아무래도 비밀스러운 가정사 같은데 이런 말씀 전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헛소리 말랬지. 3년 전에 죽은 애가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됐다 이 말이야? 그걸 지금 믿으라고?"


여사는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도도하고 기품있던 얼굴도 지금은 그저 화가 난 마녀 같아질 뿐이었다.


"믿든 믿지 않든, 전 이 분이 전하는 말만 하고 가겠습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여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집과 땅은 동생분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은 모두 여자친구분이 사셨던 보육원에 기부해달라고 하셨고요. 그리고..."


갑자기 여사가 고개를 뒤로 젖히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가 미쳤어요? 기부? 그년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그리고 동생? 장호 말하는 겁니까? 애초에 집이 싫다고 뛰쳐나가서 제 혼자 살겠다는 놈에게 굳이?"


나는 한마디 하고 싶은 걸 꾹 참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여자친구분과 영혼결혼식을 해달라고 하십니다."


여사의 표정은 정말 봐주기도 민망하게 일그러졌다. 나는 똘똘이 귀신을 한 번 쳐다보았다. 익숙한 듯한 표정. 그 사람의 지옥은 어쩌면 여기였겠구나.


"지금 들은 말들은 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

"들어놓고 못 들은 걸로 하겠다니요. 사실 이 사람이 부탁할 때 긴가민가했습니다. 그저 내 자식이 아까워 반대했겠구나 싶었죠. 그런데 직접 보니...... 그 사람은 여기가 지옥이었겠어요. 부모라고 다 같은 부모는 아닌가 봅니다. 장민씨 미안해요. 어머님께 제가 실례를 범했네요."


내 말이 꽤나 충격이었는지 여사는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리고 장민씨, 라고 말하며 내가 옆을 바라보자 여사도 함께 그곳을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이 정도만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싶은걸요. 엄마에게 제 마음은 전달했으니 이제 가셔도 좋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귀신은 헛소리라던 여사가 다급히 물었다.


"뭐라고 하나요?"

"믿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으셨어요?"


여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만으로 끝난 게 다행이다 싶다는군요. 자신의 마음은 전달했으니 가도 좋다고요."


그렇게 말한 후 나는 수첩에 무현의 번호와 이름을 적고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무속인 전화번호입니다. 제가 장민씨에 대한 이야기는 해두었습니다. 믿으셔도 좋고, 안 믿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아들 가는 마지막 길을 축복해주시길 바랍니다."


여사가 소리를 지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게 장민이 서 있는 곳만 바라보았다.

여사의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잘난 아들이 말도 못 하는 사람과 그것도 고아와 결혼한다고 하면 어느 부모든 반대할 게 뻔하다. 하지만 그거와 별개로 사랑의 표현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들에 대한 집착이 결국 혼자가 되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나는 긴 복도를 지나 현관을 나왔다. 정원에서는 여자 귀신이 왔다 갔다 하며 불안해하고 있었다. 내가 나오자 장민을 찾는 듯 고개를 빼고 둘러보았다.


"잠시 어머니와의 시간을 가지나 봅니다."


여자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민도 현관을 통과해 나오고 있었다. 귀신들은 이래서 편하겠구나.

여자 귀신이 뛰어가 장민을 붙잡았다. 장민은 괜찮다며 다독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은 말을 한 건 아닌가 싶어요."

"전혀요. 오히려 감사하죠. 엄마가 주저앉아 우시더군요. 처음 봤어요. 그런 모습."

"그랬군요. 영혼결혼식을 올려 주시려나요. 그걸 하지 않으면 가시지 못하시잖아요."

"꼭 영혼결혼식만 원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엄마가 변하길 바랐죠. 남은 아들은 지켜야 하잖아요. 저와 형은 이렇게 됐지만."

"아... 뭔가 깨우쳐 드리고 싶었군요."

"네. 우리 일은 일단 여기까지 한 거로 성공이라고 하죠. 엄마가 그 무현이라는 무속인 분에게 연락할지 안 할지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더 똑똑한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계단을 내려오며 장민에게 똘똘이 귀신이라고 불렀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여자친구분 성함을 모르네."

"하정입니다. 한하정."

"아 네 하정씨. 사실 계속 여자 귀신이라고 불렀거든요. 마음속으로."

"처녀 귀신이 아닌 게 어디예요. 하하."


장민은 유쾌하게 웃었다. 장민과 하정의 웃음을 보며 이 두 사람이 살아 있고, 모든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었지만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행복할까. 묻고 싶었지만, 마음에 담아두기로 했다.

집으로 간 나는 샤워를 한 후 맥주 한 캔을 꺼내 소파에 앉았다. 따라온 장민과 하정도 맞은 편에 자리했다.


"두 번째 귀신은 내일 오후에 오기로 했는데 출근하시죠? 그럼 아예 시간을 6시부터 12시까지로 바꿀까요?"

"그게 나을 듯해요. 일단 저는 직장인이니까 출근은 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짬이 날 때마다 하나씩 해결하기로 하죠. 그런데 귀신들끼리 소통은 어떻게 해요?"


불현듯 궁금해졌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도 없는 귀신들은 어떻게 연락이 닿아 순서를 지키며 찾아오는 걸까?


"소문이죠. 뭐. 한 번씩 자세히 보시면 아실 거예요. 사람 같지만 귀신인 게 많죠. 더군다나 이곳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면 이 주변에 많이 모여 있기도 하고요. 아까 오는 길에 5번을 받아 갔던 귀신을 만났어요. 자기 차례 다 되어가냐고 묻더군요. 이곳으로 오려고 했는데 순서가 아닌 귀신이 오게 되면 절대 상담을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꼭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이따 저와 하정이가 나가서 3번과 4번을 만나 대충의 날짜를 알려줄 거예요. 근데 있잖아요. 사실 귀신들도 바빠요. 구경도 해야 하지 못해본 것도 해야 하고. 직접 만지고 체험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거든요."

"아. 그렇구나. 그럼 두 분은 이제 뭐 하시려고요?"

"영화 보러 갈 거예요. 이번에 무당 영화가 나왔는데 아직 못 봤거든요. 가서 우리 세계를 보는 건지 아니면 다른 내용인지 확인해보려고요."

"부럽네요. 두 분. 하하. 그럼 얼른 다녀오세요."

"네. 그럼 오늘 고생하셨는데 푹 쉬세요. 내일 저녁 6시에 찾아오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당분간 이 일을 도와주시려고요?"

"네. 저를 도와주셨잖아요. 이미 3년을 떠돈 거 조금 더 있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만약 귀신 중에 믿고 맡길만하다 싶으면 다음 매니저로 맡기고 가도 되고요."


생각보다 철두철미하구먼. 뭐 어쨌거나 상담을 멈출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하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 아니 귀신은 벽을 넘어 나갔다. 정신없던 하루를 보낸 터라 두 귀신이 가자마자 온몸에 힘이 풀려 버렸다. 범인을 잡고 귀신의 부모를 만나고. 평범하기 그지없던 일상을 보내던 내가 갑자기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무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절대 모른 척할 것 같던 장민의 엄마와 통화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장민의 엄마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부터 꼼꼼하게 따져 물었다고 했다. 비용은 상관없으니 최대한 성대하게 열어달라는 부탁과 함께. 영혼결혼식에 성대한 이라는 말이 조금 어색했지만.

무현은 조만간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우선 통화를 마무리했다고 했다.


"그렇군요. 그 엄마 보통 아니던데."

"근데 말이야."

"네?"

"혹시 그 형도 자살했어? 그 형의 혼도 올라가지 못했어."

"뭐라고요?"


아까 그의 집에서는 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이 형이 나를 찾아왔어. 아마도 어머니랑 하는 통화에 영향이 있었나 봐. 억울해 죽어."

"아까 그 집에 갔을 때는 못 봤는데요?"

"당연하지, 그 집에서 죽었다고 말하는 거 같은데. 절대 거긴 안 갈 거라고 말하는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영혼 결혼식 때 천도재도 같이 해야지."


혹시 이 무당 돈 벌고 싶어서 그런 건가?


"돈 벌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진짜 무당은 무당이네. 속으로 한 말을 어떻게 알았지.


"애처로워. 이 사람 보는데 내가 답답해. 손이 막 벌벌 떨려."

"알겠어요. 우선 그분 동생이 내일 다시 이곳으로 오기로 했어요. 그때 전해줄게요."

"응. 그럼 끊네."


무현과 통화 후 뭔가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미 오래전에 먼저 죽은 형이 아직도 떠돌고 있었다니. 동생이 죽었단 걸 형은 알고 있었을까?

갇혀 있던 형을 보지 못했다던데. 마음이 착잡했다.

하지만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내일 오면 말해줘야지. 어렵네! 어려워."


나는 한참을 잠이 들지 못하고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희민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 선배. 몇 시에 해요?

- 병원 와 있어. 아무것도 없으면 넌 진짜 죽을 줄 알아. 저액, 뭐야 암튼 저거 마시기 얼마나 힘든지 알아! 어제 금식이라 밥도 못 먹고.

- 이왕 하는 거 기분 좋게 하고 와요.

- 기분 좋기는 개뿔. 이따 마치면 갈게. 출근이나 하셔.

- 네.


희민 선배에게 아무 일도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늘 위로 솟아 있는 머리를 매만지며 화장실로 가 씻고 서로 향했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가니 책상 위에 비타민 음료 한 박스가 놓여 있었다.


"이거 뭐지?"


메모라도 있나 싶어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맞은편의 얄미운 새끼가 말을 걸어왔다.


"어제 선배가 간 금화당 사장님이 아까 놓고 가셨어요. 감사하다고. 직접 뵙고 싶었는데 못 뵙고 간다고 전해달라더라고요. 쳇."

"말 전하면서 마지막에 쳇은 뭐야?"

"그냥 웃겨서요. 칼만 보면 도망가던 선배가 어쩐 일로 덤벼들었나 싶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영웅이 된 거 보니 웃기기도 하고요."

"웃긴 일 많아서 좋겠네. 형사가 당연하지."

"당연? 하하."


계속 비아냥대는 저 시키의 입을 쭉 찢고 싶었지만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늘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했던 내가 갑자기 사람들의 엄지를 받으니 여간 배알 꼴리는 게 아닌가 보다. 굳이 말을 섞어 대꾸할 필요도 없다.

나는 음료를 까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고는 책상에 앉았다. 오늘은 꽤나 할 일이 많은 날이었다.


오후 3시.

희민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 야.


선배의 목소리는 반쯤 꼬여 있었다. 아무래도 마취가 덜 깬 모양이다.


- 마취 다 깨면 전화해요.

- 다 깨쒀. 당장 만놔. 와 일루와.

- 지금 어떻게 가요. 좀만 기다리세요.

- 당장 와. 빨뤼.


아무래도 뭐가 있긴 있나 보다. 혀가 반쯤 꼬인 양반이 빨리 뛰어오라고 하는 거 보면.

대충 일이 마무리되어가긴 했지만, 퇴근 시간도 아닌데 나가기가 껄끄러웠다. 그때 사건 파일 하나를 발견했다. 얼마 전 도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하정마을 도랑에서 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됐었다. 아홉 살인 이 여자아이는 학원을 간다고 나간 후 사라져 3일 만에 이 도랑에서 발견됐다. 마을 입구나 근처에는 씨씨티비가 없어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파일을 읽고 난 후 조사를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서를 빠져나왔다.

외근을 나가기 위한 핑계만이 아니라 선배와 오늘부터 조사를 나가기로 한 사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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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버려지는 이유가 참 많다네. +3 24.04.20 687 13 11쪽
18 호식이와 앵무 +1 24.04.19 693 14 11쪽
17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6) +2 24.04.18 722 15 11쪽
16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5) 24.04.17 700 15 11쪽
15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4) 24.04.16 712 15 11쪽
14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3) 24.04.15 720 14 11쪽
13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2) +1 24.04.14 729 15 11쪽
12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1) +1 24.04.11 727 15 12쪽
11 Memories of the soul (3) 24.04.10 740 12 11쪽
10 Memories of the soul (2) +1 24.04.09 748 13 12쪽
9 Memories of the soul (1) 24.04.08 757 15 10쪽
8 빨간색 가죽바지 +2 24.04.05 760 13 12쪽
» 영혼 결혼식 (3) +2 24.04.04 774 15 12쪽
6 영혼 결혼식 (2) +4 24.04.03 770 14 11쪽
5 영혼 결혼식 (1) +1 24.04.02 795 13 11쪽
4 번호표를 뽑아 24.04.01 813 17 12쪽
3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 (2) 24.03.29 840 17 10쪽
2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1) +1 24.03.28 853 16 11쪽
1 귀문이 열렸다고요? +3 24.03.28 1,030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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