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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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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글자수 :
250,851

작성
24.04.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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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Memories of the soul (2)

DUMMY

죽은 아이의 이름은 한유진.

9살 여자 아이였다. 유진이는 수학 학원을 마지막으로 모든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큰길로 가게 되면 아파트를 크게 끼고 돌아야 하는 상황이라 아마 유진이는 지름길을 선택한 듯싶었다. 지름길이라고 산골짜기 같은 길이 아니었다. 공원을 가로질러 가야 하고 작은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그 길은 좁기도 하고 큰 트레일러들이 주차되어 있어 일반 차들은 많이 드나들지 않는 길이었다. 그곳의 작은 건널목을 건너다 일을 당했을 거다.

나는 희민 선배와 함께 아이의 학원부터 천천히 길을 따라 걸었다. 공원에 씨씨티비가 있긴 하지만 아이의 동선엔 비치지 않는 곳이다.

혹시나 아이 귀신이 근처에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며 걸었지만 보이지 않았다.


"이 건널목일 것 같은데."


공원 길 끝 쪽 작은 건널목 앞에 섰다.


"그럼 핏자국이랑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는데요?"

"얌마. 그다음 날 비가 왔잖아."


아. 아이 사고 추정 시간 바로 다음 날 비가 쏟아졌었다. 어쩌면 범인이 그걸 노리고 도랑에 버려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체가 자연스레 떠내려가거나 물에 잠기거나.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랑이 넘쳐흐를 만큼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다.


"이 근처에 트레일러들이 꽤 많은데 블랙박스엔 안 찍혔을까요?"

"그때 이곳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대부분 봤는데. 없더라고."

"아 그래요. 사건 이후 움직인 차들도 있을지도 몰라서 저렇게 현수막도 걸어놨고."


희민 선배가 턱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아이 부모가 걸어둔 현수막이 보였다. 아이가 죽은 날 목격자나 블랙박스를 찾는다는 현수막이었다.


"신기하네요. 어떻게 아무도 없을까요? 너무 늦은 시간도 아니었는데."

"그러게. 애기야. 아저씨가 나쁜 놈 잡을 수 있게 이 아저씨 눈에 좀 나타나라."

"아. 그거 말인데요. 저를 도와주는 그 변호사 귀신분이 아이에 대해 수소문 중인가 봐요."

"어디를 수소문해?"

"당연히 귀신들 사이죠."

"적응 안 되네! 진짜."


희민 선배는 갑자기 양팔을 교차로 꼬아 자기 팔을 비비적거렸다.


"그 아이도 상담 신청을 한 모양이에요. 먼저 오라고 전해 달랐다는데. 아직 소식이 없네요."

"흠. 다른 건 모르겠고. 아이 귀신은 진짜 꼭 왔으면 좋겠다."

"저도요. 선배. 그럼 그 아이 부모님들 만나보실 거죠?"

"그래야지. 왜."

"부모님들은 혼자 만나실 수 있죠?"


희민 선배는 급한 일이 있으면 가보라고 했다. 원래 같으면 어디 혼자 튀냐고 난리를 쳤겠지만 요즘 내 상황을 위해 배려를 해주는 듯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먼저 현장을 떠났다. 장민의 일이 먼저 해결이 되어야 아이의 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현과 잠시 통화를 했을 때는 아직 장민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차를 몰아 하랑 마을로 향했다. 차로 1시간가량 달리니 하랑마을 입구가 보였다. 처음엔 음산한 기분이 들던 무현의 신당도 이제는 익숙함이 들었다.


"고작 두 번 와놓고는 익숙하긴 뭐가 익숙하다고."


혼자 생각하고 혼자 대답하기를 하다 무현의 신당 앞에 도착했다. 신당의 문이 열려 있었다. 무현이 방울을 흔들며 고개를 흔들었다. 신당 안을 살짝 보니 장민과 꽤 닮은 듯한 남자가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신발을 벗고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내가 왔음에도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자세히 들어보니


"잘못했어요. 내보내 주세요. 잘못했어요. 내보내 주세요."


이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방울을 흔들던 무현이 탁하고 방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눈을 떠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


"조용히 좀 해요. 시끄러워 죽겠네."

"잘못했어요. 내보내 주세요. 잘못했어요. 내보내 주세요."

"그래서 지금 방울 열심히 흔들고 있잖소. 어? 언제 왔어?"


인상을 찡그리고 짜증을 내던 무현은 신당 안에 들어온 나를 그제야 발견한 듯했다.


"방금 왔어요. 이 분이 장민씨 형님?"

"응. 종일 저러고 중얼거리고 있어. 근데 그 장민이라는 사람은 왜 안 온 거야?"

"아직 안 왔어요? 오후에 온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와야 대화라도 될 것 같은데. 너 저 남자 형태 완전히 보여?"

"네."


나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자를 불렀다.


"안녕하세요. 장민씨 형님 되시죠?"

"잘못했어요. 내보내 주세요. 잘.."

"장민씨 형님!"


계속 중얼거리던 남자는 힘있게 부르는 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 사람도 아직 자신의 형태를 바꿀 줄 모르는지 죽었을 때인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눈은 퀭하게 들어갔고 얼굴은 새카맣다. 온몸은 말라 뼈밖에 남지 않았다. 시선은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장민씨 형님 맞으시죠?"

"장민이. 장민이. 내동생 장민이."

"네. 맞아요. 기억하시죠?"


가끔 어떤 귀신들은 자신이 죽은 후 현생을 모두 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죽을 때의 충격이 컸거나 현생을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이 남자는 그 어디 중간쯤일까. 아니면 모두 기억하고 있어서 이렇게 귀신이 되었어도 벗어나지 못한 걸까.


"잘못했습니다. 내보내 주세요. 장민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장민이는 잘못이 없습니다."


후. 이 남자랑 대화하려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 걸까.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잘못했습니다. 내보내 주세요."

"이름이···."

"형!"


그때 장민과 하정이 신당 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장민 형이라고 부르는 순간 빠르게 이쪽으로 다가왔다. 장민의 목소리가 들린 걸까. 남자 귀신은 신당 문 너머 빠르게 다가오는 장민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형. 형!"


장민은 형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형 나야 장민이. 형 왜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어. 왜 하늘나라 못 갔어."

"잘못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형 나라고. 형 동생 장민이라고."


장민은 형과 눈을 마주치려고 안간힘을 썼다. 형은 계속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때 장민이 축구, 라고 말했다.


"형. 우리 정원에서 형이랑 나랑 축구 경기할 때 기억나? 왜 그때 엄마 없을 때 몰래 하다가 축구공이 담 너머로 넘어가면서 앞에 있던 엄마 차로 떨어졌잖아. 엄마 차 경보음 울리고 우리는 혼날까 봐 도망가서 숨고. 기억나? 그때 우리 둘이 혼나는 게 무서우면서도 낄낄거리며 숨어다녔잖아. 기억나지. 형 방에 갇히기 전에. 기억나지 형."

"축구.. 장민.. 집.. 집.. 집.. 잘못했습니다."

"형 장민이. 내 얼굴 봐."


남자는 중얼거리던 말을 천천히 멈추며 장민의 얼굴을 보았다.


"너 왜 여기 있어."


순간, 남자는 정신이 돌아온 듯 눈빛이 달라졌다. 그리고는 장민을 끌어안았다.


"내가 보여? 장민아. 내가 보여?"


그리고는 장민의 몸을 수색하듯 여기저기 훑어봤다.


"형.... 나도 죽었어."

"뭐? 왜! 너 자살했어? 엄마가 너도 가뒀어?"

"아니야 형. 아니야. 나 사고가 나서. 그래서 죽었어."

"어쩌다가. 어쩌다가.. 형이 지켜줬어야 하는데..."

"아니야 형. 근데 형 왜 못 갔어. 억울해서 못 갔어?"


항상 똑 부러지게 말하던 장민이 형 앞에서는 어린애 같았다. 남자는 장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죽었냐고 재차 물었다. 이 우애 좋은 형제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형 나랑 같이 가자. 죽어서도 고생 많았지."

"언제 죽은 거야."

"3년 전에. 교통사고로. 못 올라가고 있었는데 여기 좋은 분을 만나서 곧 올라갈 수 있게 됐어. 형도 이분 덕분에 아마 여기 무속인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랬구나. 휴. 내가 정신을 못 차려서 동생 죽는 것도 못 막았네."

"에이. 형. 운명이었던 거야."


장민은 잠시 일어나 하정을 데려왔다. 형에게 결혼할 사람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같이 죽은 거야?"

"응. 그래서 엄마에게 갔어 며칠 전에. 영혼결혼식 올려달라고. 결혼식하고 나면 올라갈 거야. 형도 같이 가자."

"나는.. 나는.."

"같이 가형. 이 두 분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실 거야."


그때 무현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다 들리진 않는데. 동생이 왔다고 하니 중얼거림이 멈췄네. 이제 대화 좀 되겠다."


나는 장민의 형을 바라보고 다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재혁 형사입니다. 현재 동생분에게 도움을 받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아까는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저는 김장현입니다."

"형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혹시 장민씨와 함께 가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장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동생은 사고로 죽었지만 저는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았습니다. 저는 좋은 곳으로는 가지 못해요. 동생에게 혹시나 해가 될까 봐 걱정됩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기 저분이 잘 해주실 테니."


손으로 턱을 비비던 무현이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슨 옥황상제냐."

"천도재 한다면서요."

"자살 귀 천도재가 얼마나 힘든지나 아냐?"

"그래도 해주세요. 해줄 거라면서 왜 튕겨요?"

"튕.. 뭐?"


나는 몸을 돌려 다시 장현을 바라보았다.


"해주실 거예요."

"근데."


그때 무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와 장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다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아플 거다."

"동생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습니까?"

"안가. 그런데 너는 많이 아플 거야. 죽을 때보다 더."

"저는 괜찮습니다."


후에 무현에게 들은 이야기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 귀들을 천도하는 과정은 일반적으로 죽은 사람들보다 어렵고 귀신들에게 고통이 따른다고 했다. 너무 아파 도중에 도망가는 귀신이 있을 정도로. 하지만 장현은 동생이 괜찮다면 자신도 괜찮다고 했다.


"그럼 저는 두 분의 어머님을 다시 만나러 가야겠어요."


장민은 내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당연하죠. 그래도 알려는 드려야죠."


장현은 엄마라는 말에 다시 한번 눈빛이 흔들렸다.


"혹시 엄마를 만나면......"


복수하고 싶다? 엄마가 밉다? 이런 말을 전해달라고 하는 걸까? 아니면 천도재 제대로 안 해주면 잡아간다?


"용서했다고 해주세요. 용서한다고. 그러니 우리 막내는 꼭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부모라지만 자신을 가두고 미치게 만든 부모를 용서한다고?


"진심입니까? 용서한다고?"

"네. 진심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절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내를 위해서 용서를 하는 겁니다. 장민이도 죽었고 막내는 지명대로 살다 편안하게 눈을 감아야죠."

"후. 그렇게 전해드리겠습니다."


장현과 장민은 내게 고맙다고 했다. 딱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 것도, 부모님을 만나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도 고맙다고 했다.


"별말씀을. 저도 장민씨 도움 많이 받았어요. 어쨌든 두 분 만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무현님. 그럼 천도재와 영혼결혼식 날짜가 정해지면 연락해 주세요. 그리고 혹시 제가 준비할 게 있으면 알려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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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식이와 앵무 +1 24.04.19 694 14 11쪽
17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6) +2 24.04.18 723 15 11쪽
16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5) 24.04.17 700 15 11쪽
15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4) 24.04.16 712 15 11쪽
14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3) 24.04.15 720 14 11쪽
13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2) +1 24.04.14 730 15 11쪽
12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1) +1 24.04.11 727 15 12쪽
11 Memories of the soul (3) 24.04.10 740 12 11쪽
» Memories of the soul (2) +1 24.04.09 749 13 12쪽
9 Memories of the soul (1) 24.04.08 758 15 10쪽
8 빨간색 가죽바지 +2 24.04.05 761 13 12쪽
7 영혼 결혼식 (3) +2 24.04.04 775 15 12쪽
6 영혼 결혼식 (2) +4 24.04.03 771 14 11쪽
5 영혼 결혼식 (1) +1 24.04.02 797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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