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고요한 새벽너울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방탱
작품등록일 :
2024.03.28 15:35
최근연재일 :
2024.05.29 08:25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28,725
추천수 :
610
글자수 :
250,851

작성
24.04.05 20:25
조회
761
추천
13
글자
12쪽

빨간색 가죽바지

DUMMY

희민 선배는 형수님의 차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잘거면 집에가서 자지 왜 나를 불렀을까.

나는 차를 잠시 정차해놓고 형수님에게로 다가갔다.


"형수님. 오랜만입니다."

"재혁씨. 무슨 일인지 무조건 재혁씨 봐야한다고."

"결과는 어땠어요?"


그때 희민 선배가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떴다.


"왔어."

"아니 집에 그냥 가고 내일 말씀하시지 힘드실텐데."

"됐고. 차 어디있어?"

"저기요."


희민은 형수님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한 뒤 내 차로 옮겨 탔다.


"식사는 했어요?"

"아니. 배고파 죽겠어. 죽집으로 가자."


내가 무슨 기사도 아니고. 뭐 어쨌든 나때문에 한 거긴 하니까.

나는 차를 몰아 근처 죽 집으로 갔다. 식사 시간때가 아니라 죽집 안은 한산했다.


"사람도 없고 좋네."

"전복죽?"

"응. 너는?"

"저는 그냥 호박죽 한 그릇 먹죠 뭐. 혼자 먹게하기도 그렇고."


희민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전복죽과 호박죽을 시키고 희민 선배에게 결과에 대해 물었다.


"진짜 심각한 거예요?"

"너 진짜 신기있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진짜 선배에게 큰 병이라도 있었던걸까?


"왜요. 빨리 말해요. 암이래요?"

"이 새끼가. 암이길 바라기라도 한거야?"

"무슨 소리에요. 그걸 바랬으면 오늘 검사 받으러 가라고 하지도 않았지."


그때 시킨 죽이 나왔고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멈추었다.


"검사를 하고 나왔는데 배가 너무 아픈거야. 원래 그런가 싶었는데. 우리 아내가 울먹 거리더라고."

"왜요? 암이에요?"

"이새끼가. 암은 아닌데 놔뒀으면 암이 될 수도 있었다고는 하더라. 백퍼는 아니지만. 용종이 있는데 모양이 너무 안좋대. 그것도 많이. 거의다 떼내긴 했어. 조직 검사도 해놨고. 근데 암은 아닐 확률이 높기는 한데 2cm 조금 안된다더라고 용종이. 그거 넘으면 암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진짜 무섭더라니까."

"아 다행이네요 그래도. 일단 다 제거는 했대요?"

"응. 제거는 했는데 며칠 뒤에 결과 나오는거 봐서 치료가 더 필요할 수도 있대. 너 때문에 그래도 초기에 발견했다. 고맙다."

"고맙긴요 제가 알게 된 것도 아닌데."


희민 선배는 이제 이야기를 해보라고 했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까. 어릴 때 죽을 뻔했는데 그때 귀문이 열렸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아니면..

나는 고심끝에 지난 번 정은이 이야기부터 해 주었다. 범인을 가르쳐 준게 정은이라는 죽은 여자아이라는 것과 이번 강도를 잡을 때 도움 받았던 장민과 하정의 이야기까지.

희민 선배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믿는 듯한 눈치였다.


"그럼 내게 검사를 해보라고 했던 것도 그 귀신들이란 말이지? 이 말을 믿어야 돼 말아야돼."

"사실이에요."


그리고 퇴근 후 내가 하고 있는 상담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희민 선배는 입이 벌어지다 못해 개거품을 물 지경이었다.


"야 그럼 어떻게 살아. 사람 상대해 귀신 상대해."

"피곤하긴 해요. 근데 어쩔수 없잖아요. 정은이 그 기집애가 여기저기 소문 내는 바람에."

"그럼 끝도 없을텐데."

"그 선배 뱃속이 검다고 알려준 귀신이 살아 생전 변호사였어요. 그래서 귀신들에게 번호표를 주고 순서를 정해줬죠. 또 더이상 소문내서는 안된다는 말과 함께."

"햐. 진짜 영화도 아니고."


선배는 한동안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나라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동료가 귀신을 본다? 근데 상담까지 해? 말도 안돼 하면서 부정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떤 귀신을 만나는데."

"저도 몰라요. 번호 순서대로 오니까. 제 얘기 믿는거죠?"

"안 믿을 수가 있냐. 그 겁많던 놈이 맨손으로 강도를 때려잡지 않나, 병있다고 병원가보라고 하질 않나. 신내림 뭐 이런건 안받아도 된대?"

"그건 아니래요. 그냥 귀문이 열렸다나. 닫을 방법도 없고. 언젠간 닫히겠죠 뭐. 일단 번호가 매겨진 사람들까지만 보려고요."

"몇 번까진데."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는데. 오늘 물어봐야겠어요."

"그럼 그 변호사 귀신이 매니저처럼 해준다는거지? 귀신이랑 계속 붙어서 뭘 하면 안좋다고 하던데."

"저는 예외라고 하더라고요. 무당이."

"그때 그 무당?"

"네. 뭐 아무튼 그렇게 됐어요. 그 무당분도 도와주시고요."


희민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라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본 일에는 지장 없게 할게요. 그건 그렇고 이 사건 파봐야 하지 않아요?"


나는 아까 사진으로 찍어온 하랑마을 도랑 사건을 희민 선배에게 보여주었다.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근 씨씨티비를 분석중이라고 했다.


"그 마을이 도시랑 완전 떨어지진 않았잖아. 근처에는 없지만 그쪽으로 가려면 ㅇㅇㅇ 아파트쪽 도로는 지나쳐야 하나봐. 그 아이가 그 근처에 살고 있었거든. 그럼 분명 어디선가는 찍혔을테니까."

"사고 예상 시간이 아이 하원 시간이죠?"

"응. 근데 아이가 학원을 좀 많이 다녔나봐. 8시 좀 넘은 시간이더라고."

"음. 9살 이던데 너무 늦게 끝났네요."

"알잖아. 요즘 애들 학원을 얼마나 많이 가는지.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수사해 보자고."


나는 도랑에 던져저 차갑게 죽어간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을까. 차라리 아이가 내게 와서 정은이처럼 어떤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 저 방법이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순간 장민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귀신들 사이의 소문. 아이의 죽음을 아는 귀신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많은 대기 순서 중 아이가 있진 않을까?

내가 이 이야기들을 하자 희민 선배도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저 우선 집으로 가볼게요. 조금 있으면 올거거든요. 혹시 무슨 정보가 생기면 바로 전화드릴게요."

"그래. 근데 나 집에 데려다 주고 가."


택시타고 가라고 인상을 찌푸렸지만 나오는 내내 징징거리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집까지 바래도 주고 올 수 밖에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혹시 미리 와 있진 않을까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불렀지만 집엔 아무도 없었다.

이런 날은 좀 빨리 와도 되는데. 귀신을 기다리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건을 해결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에 괜한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소파에 앉아 귀신들을 기다릴 때 장민과 하정이 벽을 넘어 들어왔다. 나갈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갑자기 나타나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흐억"

"죄송합니다. 기척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하하."

"아닙니다. 두번째 손님은 아직 오지 않으셨어요."

"곧 오시겠죠."

"그건 그렇고 장민씨. 귀신들 사이의 소문은 인간들 사이의 소문보다 빨리 퍼지죠?"

"그렇죠?"

"그럼 뭐 하나만 알아봐주실 수 있어요?"


장민은 자신의 자켓 안쪽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귀신이 수첩을 들고 있으니 이질감이 들었지만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했다.


"얼마전에 하정마을에서 9살 아이 시신이 발견됐어요. 그런데 아직 범인을 찾지 못했죠. 혹시 그 아이를 보거나 그 사건을 아는 귀신이 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어요?"


수첩에 무언가를 메모하던 장민은 갑자기 수첩을 내려 놓았다.


"혹시 여자 아이 말씀인가요?"

"어? 아세요?"

"잠시만. 몇 번 이었더라?"


몇 번? 그럼 대기에 그 아이도 있었다는 말인가? 나는 빨리 답을 내 놓으라는 뜻으로 발을 동동 굴렸다.


"기억이 안나네. 아무튼 비슷한 아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온 몸이 젖었더라고요."

"꼭 그 아이 좀 빨리 찾아봐 주세요."

"그럴게요. 일단 그럼 저는 하정이랑 가볼게요. 빨리 찾아야 된다니까. 그 귀신은 혼자 대면하실 수 있죠?"

"네. 꼭 좀 부탁드릴게요."


장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다시 벽면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나는 장민이 사라지자 마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쩌면 억울한 아이의 한을 빨리 풀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때 현관문을 너머 한 남자가 들어왔다.


'이 남자는'


처음 우리 집에 귀신들이 진을 치고 있을 때 봤던 남자였다. 너무나 특이했던 의상을 입고 있어 기억하고 있었다.

빨간 가죽바지에 긴 장발. 얼굴은 험상궂은. 전혀 매치가 되지 않던 남자가 조심스레 현관문을 넘었다.


"안녕하세요."

"네 어서오세요. 이리 들어오셔서 앉으세요."


남자는 수줍어하며 머리칼을 넘겼다. 순간 흠칫했지만 티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어요?"


남자는 두번째 손가락으로 코끝을 살짝 긁고는 천천히 이야기를 했다.


"저는 말이에요. 음. 사실은요. 음. 저기 그게."

"편하게 말씀하세요."

"음. 저는. 여자가 되고 싶어요!"


왓? 여자가 되고 싶다고?


"저는 락커였어요. 유명하진 않고 그냥 언더에서는 조금 이름이 있는. 그런데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죽었죠. 원인은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게..."


자세히 보니 얼굴은 산적이지만 행동하는 건 꼭 여자 같았다.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부끄러워 말을 할 때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쩍벌하고 앉아 있는 나와 달리 다소곳이 다리를 모으고 있는 모습이나.


"하;;하하;; 그러셨군요."


하지만 그 사람을 비웃을 자격은 내게 없으니까.


"제가 이제 돈을 거의 다 모았거든요."

"무슨 돈이요?"

"원래 그 다음달에 태국으로 가기로 했어요."


태국? 아. 수술을 하려고 했던거구나.


"근데 락커라면 카리스마 있는 남자 뭐 이런 이미지 아닌가."

"그건 편견입니다. 카리스마 있는 여자 라커도 많아요. 아무튼 다음 달에 태국으로 가서 수술을 하고 이미 성형수술 예약까지 다 해둔 상태였죠."

"근데 심장 마비로 갑자기 가버리셨구나?"

"네. 얼마나 억울한지. 죽자마자 태국으로 날아갔어요. 사실 죽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죠. 저는 수술을 받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음. 이미 죽은 귀신을 어떻게 여자로 만들죠? 시신을 꺼내서 수술을 할 수도 없고."

"저는 이미 화장했어요. 엄마가 멀리 떠다니며 하고 싶은 일 다 하라고 넓은 바다에 뿌려주셨어요."

"억울해서 멀리는 못갔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화장한 시신을 꺼내 수술을 할 수도 없고. 내가 이 남자를 어떻게 여자로 만들지?


"방법이 없을까요?"


그때, 하정이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이미 죽었다. 그럼 자신이 살아 생전 가지고 있던 장애들을 없앨 수 있다. 그럼 이사람도?


"저기 그쪽분 이름이?"

"아.. 하만수 입니다."


푸풉.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얼굴과는 꽤 어울리는 이름이긴 했다.


"만수씨. 음 자 제가 지금부터 하라는 대로 해보세요."

"?"


만수는 벌써 해결이 됐어? 하는 표정이었다.


"자 만수씨. 눈을 감고. 자신이 여자가 되었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세요. 혹은 원하던 모습이나요."


만수는 어리둥절 하면서도 눈을 감고 내가 시키는대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천천히 생각했다. 자신이 여자였다면.

잠시 뒤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 눈앞에 있던 빨간 가죽바지를 입고 있던 긴머리의 산적이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연예인 뺨치는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헉 하고 소리를 내자 만수가 놀라 눈을 떴다.


"어? 와? 진짜네? 진짜 되네요?"


만수는 흰 원피스에서 까만 드레스, 노란 니트까지 옷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겁쟁이 형사에게 귀신들이 몰려온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택시 기사님의 증언 (2) 24.04.25 661 13 11쪽
22 택시 기사님의 증언 (1) 24.04.24 674 12 12쪽
21 저수지의 잡귀들 +1 24.04.23 672 13 11쪽
20 용의자를 찾아라. +1 24.04.22 699 15 11쪽
19 버려지는 이유가 참 많다네. +3 24.04.20 687 13 11쪽
18 호식이와 앵무 +1 24.04.19 694 14 11쪽
17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6) +2 24.04.18 723 15 11쪽
16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5) 24.04.17 700 15 11쪽
15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4) 24.04.16 712 15 11쪽
14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3) 24.04.15 720 14 11쪽
13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2) +1 24.04.14 730 15 11쪽
12 장례식장에서 만난 인연 (1) +1 24.04.11 727 15 12쪽
11 Memories of the soul (3) 24.04.10 740 12 11쪽
10 Memories of the soul (2) +1 24.04.09 749 13 12쪽
9 Memories of the soul (1) 24.04.08 759 15 10쪽
» 빨간색 가죽바지 +2 24.04.05 762 13 12쪽
7 영혼 결혼식 (3) +2 24.04.04 776 15 12쪽
6 영혼 결혼식 (2) +4 24.04.03 771 14 11쪽
5 영혼 결혼식 (1) +1 24.04.02 798 13 11쪽
4 번호표를 뽑아 24.04.01 814 17 12쪽
3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 (2) 24.03.29 842 17 10쪽
2 첫번째 귀신, 범인은 그놈이야(1) +1 24.03.28 855 16 11쪽
1 귀문이 열렸다고요? +3 24.03.28 1,031 14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