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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822
추천수 :
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5.12 15:00
조회
1,251
추천
15
글자
18쪽

진천 - 6화

DUMMY

긴 여행에서 복귀한 진호가 장적소와 사범들에게 태천심법의 최종결을 설명하자 그를 들은 장적소는 침음성을 흘리며 눈을 감았다.


“으으음... 정순한 내공이 오래 쌓일수록 장점이 많은 것은 알았지만 그런 꿈 같은 경지가...”


사범 중 하나인 마영 또한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


“허나 아직 누구도 실현 못한 전설 같은 개념입니다. 실현 가능성이 있겠는지요.”


“비급이란 무인이 본인의 깨달음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남긴 것이다. 역사가 깊은 무당이니 만큼 이 비급을 쓴 자는 먼 과거에 우화등선이라도 했겠지. 조금 더 정보를 모으거라.”


“존명.”


“그래, 허면 진호는 앞으로 명상에 집중하겠느냐?”


장적소가 묻자 진호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아닙니다. 교주님께서 이르셨 듯 제자는 아직 상승무공을 익힐 때가 아닌 듯합니다. 기초훈련에 집중하겠습니다.”


“크큭! 그럴 줄 알았다. 좋아. 오늘부터 도가의 기본 검법 중 하나를 골라 모든 초식을 1만 번 반복 숙달하라. 며칠이 걸리든 상관없으니 한수 한수에 담긴 묘리를 파악하며 대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거라.”


“네, 스승님.”


“그래. 또한 매일 심법을 반복해 내공의 양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니 굳이 명상을 피할 필요도 없다. 하고 싶으면 참지 말고 하거라.”


“네!”


“그리고 진천!”


“에? 아, 네! 스승님”


“...어이구.”


“...응?? 왜그러십니까?”


멀뚱멀뚱한 진천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 장적소가 뒤쪽의 흑의 사내를 가리켰다.


“그... 스승이라고 부르지 말... 하... 아니다. 너는 오늘부터 외공수련을 한다. 새로운 신검합일의 고수가 사범으로 왔으니 열심히 배워라.”


“아? 근데 저 이제 무공 안 배워도 되는데요. 하기 싫...”


“떽!!! 시끄러워! 얼른 가서 배워!!”


장적소의 일갈에 어깨가 축 늘어진 진천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아들... 이따 보자... 아이씨, 하기 싫은데... 아씨...”


시무룩한 표정의 진천을 마주한 새로운 사범.


신검합일의 고수로 위장(?)한 부교주 범요(氾窈)는 6척의 장신에 다부진 체격, 구릿빛 피부를 가진 20대 청년의 모습이었다.


물론 교주와 같은 천마(화경)의 경지에 올라 환골탈태로 인해 젊어졌을 뿐 실제 나이는 90을 넘긴 노인이었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태부님의 훈련을 담당할 범요 입니다.”


“아... 아 네 사범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듣자하니 태부께선 내공에는 연이 없는 듯 하여 외공비급을 준비했습니다. 다만 외공도 미비하나마 내공을 사용하기에 심법훈련은 조금씩이라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가장 간단한 무공인 백타파백(百打破百)을 전수하겠습니다.”


“네...”


“백타파백은 이름 그대로 백 번을 쳐서 백 가지를 부순다는 뜻으로, 한 번의 타격으로 승부를 본다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네...”


진천이 계속 ‘난 집에 가고 싶다’ 라는 표정으로 범요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자, 범요가 장난 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냈다.


“하하, 우리 태부께서 아무래도 배움에 흥미가 없으신 듯합니다. 허나 제가 마음대로 수련을 그만 둘 수도 없는 일... 다만 혹 태부께서 저와 내기를 하여 이기신다면 제가 교주님께 잘 말씀드려 수련을 안 할 수도 있는데, 어떠십니까?”


“엇... 네? 내기요?”


귀를 쫑긋 세운 진천에게 범요가 답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저와 대련을 해서 이기는 것. 참고로 광영처럼 일부러 져드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이 백타파백을 최소 8성 까지 연마 하시는 겁니다.”


“어,어... 그럼... 백타파백을 8성까지 연마 못하면 계속 수련을 해야 합니까?”


“언젠가 교주님께서 명하시면 그만 두시겠지요.”


“... 수련하겠습니다...”


“음? 대련에는 도전하지 않으십니까?”


“일부러 져주지 않는 이상 제가 이길리가 있습니까. 그나마 수련을 하면 실날 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니... 어서 가르쳐 주십시오...”


범요가 짐짓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뭐, 좋습니다. 자, 그럼 백타파백의 구결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날부터 범요는 진천에게 딱 붙어 그날 광영과의 대련에서 그가 보여줬던 기이함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사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일쯤 지난 어느 날, 진천은 연무장이 아닌 하늘을 뚫을 기세로 솟은 기암절벽 아래의 공터에서 백타파백의 초식을 반복하고 있었다.


“동작은 정확히 구현하고 계십니다. 태부의 신체비율과 기력은 아주 좋습니다. 헌데 공력의 운영이 영 안되시니... 흠... 이유가 뭔지 도대체가...”


몸은 잘 쓰는데 내공을 움직이는 건 영 아니란 소리였다.


‘으음... 도무지 알 수가 없구만. 아무래도 광영의 어깨를 부쉈다던 강검을 내 직접 봐야겠다.’


범요가 잠시 진천을 멈추고는 말했다.


“태부님, 간단하게 몸이나 풀 겸 저와 연습대련 한번 하시지요.”


“네! 사범님!”


진천은 그간 공력 수련에 재능이 없다며 워낙 많은 무시를 받아 수련에 흥미를 잃을 뻔 했지만, 외공 수련은 생각보다 적성에 맞았고 성과도 곧잘 보였기에 다시 훈련에 재미가 붙었다.


구박만 하던 장적소와는 달리 노회한 범요가 적재적소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효과도 꽤 컸다.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음, 제 목검을 부수거나 놓치게 하면 태부님께서 이기는 걸로 하시지요. 이기시면 3일간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엇... 혹 제가 실패하면...”


진천이 덩치에 맞지 않게 눈치를 살살 보며 말끝을 흐리자 범요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실패하시면 술 한잔 사주시면 됩니다.”


“흐흐!! 좋습니다!”


진천이 기세 좋게 목검을 겨누자 범요도 느긋한 자세를 잡았다.


“5수 먼저 드리겠습니다.”


흐읍!!


곧장 목검을 치켜 올린 진천이 동시에 범요의 우측으로 파고 들더니, 범요의 몸이 아닌 목검을 향해 엄청난 강검을 내리 꽂았다.


우웅웅!!!


‘미친! 공진음(空震音)!’


보통 보검이나 강기가 응축된 고수의 검에서나 들리는 공진음이 일자 범요는 기겁을 하며 몸을 반대로 회전시켰다.


훅!!


이어 진천의 뒤를 잡음과 동시에 정권으로 진천의 등을 가격했다.


떡!!!


‘떡?’


전력은 아니라도 분명 적당한 내공을 실은 일권이다.


못해도 5장은 나가 떨어져야 맞는데.


진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보법을 밟아 회전하며 범요의 허리춤을 노리고 목검을 휘둘렀다.


후웅!!


팍!!


우드득!


범요가 황급히 목검을 종으로 세워 진천의 목검과 부딪히자, 그 충격에 범요의 손목 뼈가 뒤틀리다가 그대로 근육이 파열돼버렸다.


뻐거걱!


'미친!! 이, 이, 이게 뭐야!!'


지나치게 당황한 범요의 목검에 순식간에 시퍼런 검강이 서렸다.


‘아차!!...어?’


자기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검강을 두른 범요는 당연히 진천의 목검이 두 동강 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체 어찌 된 일인지 진천의 목검은 실금하나 가지 않고 범요의 검을 꾸욱 누르다가 빠지더니, 나무꾼이 도끼질을 하듯 다시 범요의 옆구리로 후려쳐졌다.


‘미친!!! 맞으면 안 돼!’


기겁한 범요가 목검을 아래로 내리 꽂아 한번 더 열십자로 부딪힘과 동시에 그 반동으로 몸을 회전시켜 팔꿈치로 진천의 가슴팍을 가격했다.


그러나 또


떡.


‘아아악!!’


분명 가슴뼈를 부술 생각으로 내지른 강격이었다. 그런데도 범요는 타격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진천은 그대로 권을 내질러 범요의 폐부를 노렸다.


‘흡!!’


뻐어어어억!!!


범요는 황급히 호신강기를 두르고 진천의 복부를 차내며 그 반동으로 거리를 벌리고는 진천을 쳐다봤다.


‘이 무슨! 흡사 야생의 맹수가 아닌가!’


기술이나 내공이 없음에도 칼이 박히지 않는 강하고 두터운 가죽과 꽉 찬 근육을 타고난 맹수.


단순한 앞발질만으로 사람을 찢어 죽이는 범.


범요는 마치 무공을 전혀 모르는 나약한 인간이 된 자신이 범을 상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진천은 계속해서 목검을 휘두르거나 찌르다가 때때로 주먹이나 발을 이용해 범요의 목검을 부수려 했고, 범요는 진천의 목검에서 수시로 나오는 서늘한 공진음을 기를 쓰며 피해야 했다.


어느새 진천의 공격에 몰려 막대하던 내공의 6할 이상을 소모한 범요가 뭔가를 결심한 듯 자세를 변경했다.


‘더 이상은 안돼!! 못버틴다!! 때려 눕히자!!’


체면이고 뭐고 일단 쓰러뜨려 놓고 ‘난 가볍게 한 공격인데 이럴 줄 몰랐다. 미안하다.’ 라고 우길 생각을 한 범요였지만, 그는 곧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빈틈이...’


사람이라면 공격이나 방어를 할 때 팔 사이, 옆구리, 허벅지, 등, 어깨, 목, 얼굴... 어느 한 곳이라도 열려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신체 구조인데.


'뭉툭한 덩어리!!'


어느 곳을 찌르거나 베어도 그저 외피만을 베는 기분이 들 것 같은 단단하고 두텁고 무거운 덩어리.


곰이나 범이 그렇다. 공간이 비어 있어도 보통 사람이 거길 때리거나 검으로 찔러봐야 거죽이 워낙 두텁고 근육이 꽉 차 있어서 별 타격도 못 준다.


이급무사라면 찰나의 빈틈으로 어설픈 검이라도 한 번 찔러 넣을 수 있고, 일급무사 정도나 돼야 거죽을 가르고 근육까지 베어낼 수 있다.


‘아이씨 진짜!! 이게 뭐야!!’


물론 그건 진천의 자세가 완벽하다기 보단 어딜 공격해도 또 '떡' 소리를 들을까 겁난 범요의 마음이 만든 두려움 이었다.


한마디로 '쫄았다.'


그렇게 60초를 넘게 진천의 검을 막거나 피하던 범요는 또 눈 깜짝 할 새에 좌측에서 밀려 들어오는 목검을 잔뜩 뽑아낸 강기로 겨우 쳐낸 후 땅을 박차고 한번더 거리를 벌렸다.


범요의 목검엔 어느 순간부터 시퍼런 강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열 번은 부서졌을 터였다.


범요가 급하게 남은 내공을 끌어올려 호흡과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말했다.


“흐, 흐음! 태부님, 이쯤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왜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실 이런 목검이야 누가 들고있든 조금만 세게 쳐도 부러지지 않겠습니까?”


“어? 그렇죠..?”


“제가 그것을 막자면 당연히 이런 강기로 보호를 해야 할 텐데... 제가 가만히 서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검기도 못 쓰시는 태부님께 너무 불리합니다.”


“아, 그 시퍼런 것이 강기에요? 그럼 그... 제 휴가는 어떻게...”


“하하! 제 짧은 생각으로 태부님께서 괜한 고생을 하게 할 수는 없지요. 휴가 드리겠습니다!”


진천이 입을 헤벌쭉 벌리며 어느 때보다 힘차게 포권했다.


“감사합니다! 사범님!”


“하하! 아닙니다. 아 참, 태부님. 평소 초식 연습을 할 때보다 대련 때의 검이 조금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따로 이유가 있습니까?


“음? 그런가요? 으음... 아무래도 혼자 허공에 휘두르면 온 힘을 다하지 않기도 하고... 뭔가 목표가 있으면 제가 또 힘을 빡! 주고! 이 집중력이, 하하!”


별 도움이 안되는 대답에 힘이 빠진 범요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포권했다.


“오늘은 이만하면 된 듯하니 먼저 돌아가십시오. 저는 이 곳에서 명상이나 조금 하다가 가겠습니다.”


이제 경공을 펼칠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기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진천을 돌려보낸 그는 진천의 경공이 떨치는 힘찬 파공음을 들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힘이 저만큼이나 남았다고? 흐흐! 내 지금껏 겪은 세월이 결코 짧지가 않거늘... 저 기이함은 대체... 아이씨! 근데 사형한텐 또 뭐라고 말을 해!!”


그날 밤, 천마신교의 서열 2위이자 천마의 고수인 부교주 범요는 엄청난 굴욕감과 함께 사형인 교주에게 진천과의 대련을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


그로부터 3일 후.


진천은 밀실에서 교주를 독대하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찻잔을 들어 한 모금을 음미한 구학영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 가족여행은 즐겁게 다녀 왔는가?”


교주는 마교 내에서 평소 가볍고 친근한 언행으로 유명한 기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천마신교의 지존.


평생 시골에서 천하게 산 진천은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교주님. 크, 큰 은혜를 내려주셔서 정말 가, 가, 감사합니다.”


“아니다. 진호의 비범함이 하늘에 닿았으니 본교가 그 득을 보려면 정당한 대가를 주어야지. 너는 그만한 대접을 받아도 된다.”


“네. 네. 하하...네...”


진천이 몸둘바를 모르자 교주가 품속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 슬그머니 건냈다.


“그건 그렇고, 여행가기 전에 본좌와 했던 약조 기억하지?”


“아! 네 교주님 그럼요! 뭐든 시켜만 주십쇼!”


“흐흐! 별건 아니다. 이 서찰을 사천의 기루 요화당의 연비란 여인에게 전하고 오너라.”


“네! 교주님! 저 그런데... 혹 중요한 서찰은 아니시지요?”


“음? 그걸 왜 묻느냐?”


“아, 중요한 것이라면 다른 고강한 고수분들 대신 제가 가다가 혹 잃어버리거나 빼앗기기라도...”


“크크. 잃어버려도 괜찮고, 누가 빼앗으려 하지도 않겠지만 달라 하거든 그냥 줘버려라. 네가 다치거나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야. 그저 본좌가 지난 정인의 안부를 묻고자 하는데... 쩝, 내 부하 놈들 보기에 좀 민망해서 말이야. 마침 그때 보니 네놈이 뜀박질은 잘 하겠더구나.”


“아... 아! 교주님! 네네, 그럼요! 제가 뛰는 거는 또 빠르게! 하하!”


"흐흐! 오냐. 이거 받아라."


교주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진천의 어깨를 툭 치고는 전낭 하나를 내밀었다.


“자세한 위치와 노잣돈은 여기 따로 넣었으니까 쓰고 남는 건 너 가져라. 마영을 호위로 붙여줄테니 함께 다녀오되, 서찰의 내용은 비밀로 하고. 내일 적당한 시간에 출발 하도록.”


“네! 교주님!”


진천은 묵직한 전낭속에 슬쩍 비쳐 나오는 금빛을 보고는 좋아 죽겠단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딱 봐도 ‘얼마나 남을까, 그걸로 뭘 살까’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던 교주가 밀실의 한 구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둥실, 쉬익-


그늘진 어둠 속에서 기다란 천 꾸러미가 둥둥 떠서 교주의 손에 빨려 들어오자, 진천의 눈은 토끼눈이 되고 입에서는 감탄성이 흘러 나왔다.


“오... 우오...”


“왜, 신기하냐? 능공섭물 이란 무공이다."


"와... 이거 엄청 편하겠는데요. 물건이 막... 둥실... 사람도 됩니까?"


"당연히 되지. 허나 네놈은 내공을 못 다뤄서 이런 건 못한다. 진호는 하고도 남고.”


“아... 쩝...”


“크큭! 너무 실망하지 마라. 본좌가 선물을 주마. 자.”


교주가 천 꾸러미가 둘둘 풀자 안에서 나온건 일반적인 검보다 검폭이 두 배 가량 더 넓은, 검과 도의 중간쯤인 흑색 검 한 자루였다.


검폭 만큼 두터운 검집에는 용이 호랑이를 물고 있는 양각이 새겨져 있었는데, 생동감이 보통이 아닌것이 웬만한 장인의 작품이 아니라는 걸 과시하는 듯 했다.


손잡이를 감싼 가죽도 보통 값어치의 것은 아니었다.


스릉- 사아악...


교주가 검을 뽑자, 공기를 벨 듯한 소리와 함께 주변을 얼리는 냉기가 흘러 나오며 흑색의 투명하고 차가운 날이 진천의 멍한 얼굴을 맑게 비췄다.


“만년한철로 만든 검인데. 뭐, 보검도 아니고 딱히 상품 검도 못돼서 여기서 먼지나 쌓이고 있던거니 너 가져라.”


“어! 엇! 만년... 만년한철이 정말 많이 비쌀 텐데... 이거 엄청 비싸 보이는데... 저 같은 천것이 이런 걸... 이거 엄청 비싸...”


“아, 이놈아! 여기 천마신교다! 한철 따위가 뭐라고... 그게 겉만 화려했지 딱 그 한철 값만 하는 검이다. 본교에 이딴 건 널렸어!”


왠지 성질이 난 듯한 교주의 외침에 진천은 기겁을 하여 황급히 검을 내려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오냐. 네놈이 내공만 빼면 힘도 좋고, 검술도 그 자체로만 보면 잘하는 편이라 기특해서 주는 것이다. 가벼운 검보다는 묵직한 이 도검이 네게 맞을게야. 이 순간부터 한시도 놓지 말고 심부름 갈 때도 꼭 차고 다녀라. 원래 무인은 다 그런다.”


“네... 네!”


“그래. 이제 집에 가서 밥 먹어라.”


“네, 네 교주님! 감사합니다!”


진천이 후다닥 절을 하고 밀실을 떠나자 곧 교주의 머리 위쪽에서 허탈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흐흐! 천마신교 3대 보검인 흑룡도를 저런 놈에게...”


“흑룡검이다. 몇번을 말해도 이놈이? 그리고 보검임을 알면 저놈이 안 받거나 집에 고이 모셔둘 것 아니냐. 크큭! 중원에 저 검을 보고 침 흘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 것인데 그러면 안되지.”


교주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어느새 처마에서 내려서 자신의 앞에 앉은 범요에게 물었다.


“헌데 저놈이 혹 죽거나 하진 않겠지?”


“크크! 걱정 마시오. 적어도 나만한 고수나 절정고수 서너명이 같이 덤비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거요.”


“응? 뭔 소리야? 너도 질뻔했다며?”


“뭣!! 무, 무슨! 목검이고 살초는 안 썼다고 내가 말했잖소!!”


얼굴이 뻘개져서 버럭한 범요의 말에 교주가 찻잔을 들며 중얼거렸다.


“믁금이그... 슬츠는 안쓰스...”


순간, 범요의 전신이 시퍼렇게 변하며 순식간에 터져나온 냉기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사아아아아아아악....


"오냐 그래. 내 오늘 교주고 나발이고 들이받고 송장 치울란다. 덤벼, 이 뺀질이 구가 놈아."


"..."


반각 후.


넝마가 된 옷과 퍼렇게 퉁퉁 부은 얼굴로 방을 나와 주위를 둘러 본 범요는 누가 볼새라 재빨리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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