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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鎭天) : 악귀의 탄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그림/삽화
윤겸
작품등록일 :
2022.05.11 14:46
최근연재일 :
2023.10.23 21:45
연재수 :
246 회
조회수 :
8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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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
글자수 :
1,449,626

작성
22.05.11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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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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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진천 - 4화

DUMMY

마교의 일방적인 통보로 성사된 무림맹과 교주의 회담 날.


무림맹주 천소청과 구파일방의 장로들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모여 마교의 교주 구학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감색 도포를 입은 백발의 노인이 상석에 앉은 20대 후반 쯤의 청년- 무림맹주에게 물었다.


“맹주, 설마 놈이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허허, 60년간 조용하던 마교가 이제와서 설마하니... 하오문주, 일전에 지금 마교의 교주가 특이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소?”


맹주의 질문에 하오문의 문주 정건이 답했다.


“음. 본인이 파악한 정보로는 지금의 마교 교주 구학영은 이상하리 만큼 교주 자리에 미련이 없소. 자신보다 강한 자가 나오면 언제든 교주직을 넘기겠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고, 자신과 부교주 범요 이후의 화경(천마) 고수가 안 나온다며 수하들을 타박하거나, 자신은 ‘가늘고 길게 살고 싶다’며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오래 사는 방법만 연구 한다고 하는구려.”


“흐! 마교 교주가 ‘가늘고 길게’라니. 미친놈이구만.”


“그 때문인지 몰라도 과거의 마교는 교주 자리를 두고 내전이 끊이지 않았지만 구학영이 교주가 된 후에는 교주 자리가 무공의 성취로 보장되는 순리적인 목표가 되어서... 모든 고수들이 정치나 수 싸움 보다는 개인의 무공 증진에 힘쓰는 분위기가 되었소.”


“으음..."


“물론 마도천하를 말하는 강경파들도 여전하지만 오히려 마교의 전력은 유례없이 강성해졌지요. 뭐, 교주 본인의 무위가 워낙 독보적이니.”


“허어, 100년 전 정마대전 당시 무림맹의 고수 9할이 죽은 이후로 우리의 전력은 아직도 반토막인데...”


종남파 장로의 한탄에 무림맹주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허허, 마교라고는 해도 암투나 정치가 없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구려.”


맹주의 짧은 한마디에 왠지 모두들 뜨끔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헛기침을 하거나 찻잔을 들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한 그 때.


벌컥!


‘!!!"


회담장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최고급 비단으로 짜인 흑룡포를 걸친 미청년이 비어진 의자에 털썩 앉으며 밝게 외쳤다.


“여! 무림맹주! 초면이구만!”


“교주!!”


“흐흐!! 뭘 그렇게 긴장들 하고 계시나. 본좌는 싸우자고 온 것이 아니니 편히들 있게나.”


“윽...!”


모두 각 문파의 수장이거나 대장로직에 있는 고수들이라곤 해도 구학영은 현 무림에서 유일하게 현경에 근접한 고수.


다짜고짜 나오는 하대에 속이 들끓으면서도 별다른 불만을 표출 하지는 못했다.


물론 무림맹주나 하오문주 등은 화경을 이룬 거인이었으나 화경에 들어선지 겨우 10~30년 남짓.


70년 이상 화경의 경지에서 수련을 한 교주와의 격차는 삼급무사와 일급무사 만큼이나 큰 것이었다.


무림맹주 천소청이 어수선한 불안감이 도는 좌중을 진정 시키려는 듯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교주, 싸울 것이 아니라면 쓸데없는 도발을 할 필요는 없소. 용건을 말하시오.”


“흐! 본좌가 뭘 했다고 도발이야? 진짜 도발을 하면 게거품 물겠구만... 좋아, 본론이다. 네놈들도 알겠지만 3년 전 본교가 데려온 천무지체의 아이가 곧 부모와 함께 중원을 여행할 것이다. 그 아비가 변방의 나무꾼 놈이어서 무림 정세나 정파니 마교니 하는 건 전혀 몰라. 말하길 제 아내가 여행을 꿈꾸고 살았는데, 너무 가난하게 살다가 큰 병까지 얻어서 옆 동네도 한번을 못 갔다고 애원을 하더군.”


“... 그래서. 그 아이를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하러 온 것이요?”


“그렇지. 본좌가 아무 말도 안 하면 니들 쓰레기 정파놈들은 또 온갖 유추와 상상을 더 해 본교가 무슨 목적이 있어 그 가족을 내보낸 것처럼 명분을 만들어 아이를 빼앗거나 죽이려 할 것 아니겠나.”


“무슨! 말을 가려서 하시오!”


화산파의 장로 장연혁이 분기 가득한 눈을 부라리며 외쳤지만, 구학영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이미 본교 소교주로 내정 되었다. 헌데 만약 중원에서 다치거나 죽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전쟁이야. 알아라. 지금 본교는 사상 최강의 전력을 가지고 있다. 그건 전대 교주가 일으킨 정마대전 때 보다 3배 이상이라고 장담하지. 이 말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싶으면 아이를 건드려 보고.”


“으으윽...”


무림맹의 모든 장로들이 어금니를 깨물고 주먹을 부들거리며 교주를 노려보자 천소청이 말했다.


“교주. 우리 구파일방의 세력이 닿는 모든 문파에 아이와 가족에 대한 금접령을 내리겠소. 허나 우리 세력권 밖의 문파나 산적 등 제3의 세력이 개입하여 그들에게 화가 미치는 것은 어쩔 수 없소.”


“흐! 이봐 맹주. 산적이나 잡문파 놈들이 건드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다. 다만 네놈들이 복면을 쓰고 일을 치른 후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 뗄 수도 있으니 분명히 말하지. 제3 세력이건 뭐건, 그 가족이 해를 입는다면 본교는 그 즉시 출정해 무림맹 소속 모든 문파를 멸한다.”


"!!!"


"뭐라!!!"


“그... 그 무슨 억지를!”


“크크! 정 걱정이 되면 무림맹에서 따로 호위대를 파견해서 호위를 하든지 하라고. 본좌가 그것까지는 뭐라 하지 않을테니.”


“이...이런...!!!”


맹주와 장로들이 황담함에 말을 잇지 못하자, 교주가 살짝 누그러진 말투를 내비쳤다.


“이보게 맹주. 내 말은 조금 험하게 했어도 본좌가 교주 자리에 앉은 후 60년간 본교가 작은 분쟁이라도 일으킨 적이 있는가? 본좌는 무림 따위엔 관심이 없어.”


"..."


교주의 그 발언이 뜻밖이었는지, 모두의 시선이 교주의 입으로 고정됐다.


“본좌는 사실 이 교주자리에도 관심없다. 지금이야 개인적인 이유로 묶여있긴 하지만 다음 교주가 나오면 본좌는 떠날거야. 이 중원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세로. 즉, 본좌가 교주자리에 있는 동안은 본교와의 충돌 따윈 걱정할 필요가 없단 말이야.”


“그게 무슨... 그런 얘길 하는 이유가 대체 뭐요?”


“크큭! 간단하게 생각해. 난 전쟁 할 생각이 없으니 괜히 본교를 적대시 하지 말란 말이야. 뭐, 믿건 안 믿건 네놈 자유지만... 다만 본교를 건드린다면 본좌의 목숨을 내놓더라도 그 대가는 천배로 돌려준다. 이건 확실하게 믿어도 좋다.”


“....”


그 반협박 같은 교주의 장담에 무림맹의 수뇌부 누구도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자니, 교주가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비릿하게 웃었다.


“본좌의 의사는 충분히 전달했으니 이제 간다.”


교주가 천천히 회담장을 걸어 나가고 문이 닫히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침음성을 흘려댔다.


“으으음...”


맹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무림맹 모든 문파에 공문을 돌려 천무지체 아이에 대한 금접령을 내리고, 천호대 고수 60명을 붙여 그 가족들을 호위 하시오.”


“매, 맹주!!”


“맹주! 안 될 말입니다! 그깟 마교도들이 무서워 호위까지 붙이다니요!!”


무당파의 장로 금주헌의 강한 반발에 맹주가 말을 이었다.


“금장로. 우리가 아무리 금접령을 내려도 분명 과욕에 눈이 먼 문파의 고수들이 튀어나올 것이오. 교주의 말대로 복면을 쓰고 배후를 감추려 할 수도 있고... 진짜 3세력이 튀어나올 수도 있지.”


“그건...!”


“교주는 현 무림 최강의 무위를 이룩한 제일고수(題一高數). 우리는 무고한 후학들을 그런 마수로부터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오. 이런 일에 자존심을 부리지는 맙시다.”


“크윽...”


“허어. 교주의 무위가 실로 무섭습니다. 저런 자가 마교에 적을 두다니 부처께서 무심하기 그지 없음을... 아미타불...”


법복을 두른 소림승 하나의 법호가 울리자 좌중에 있던 이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


5개월이 지났다.


진천의 가족은 그간 별 일 없이 청해와 사천을 지나 섬서의 화산을 유랑 중이었다.


“어머! 저기 좀 봐! 여보! 진호야! 저거 봐! 절벽이 어쩜 저리 멋있을까?”


“아 어머니이- 이제 밥 먹으러 가요. 저런 거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워요-”


무공 수련을 할 때의 듬직한 모습 대신 여느 아이처럼 칭얼거리는 진호를 보고는 악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놈이? 뭐 벌써 배가 고파? 저 예쁜 꽃들 좀 봐! 너무 칼만 잡고 삭막하게 살면 안 돼!”


“으허허- 배고파- 힘들어- 아버지!!”


“...아들아. 아비도 쉬고 싶다... 하지만 나는 힘이 없다... 포기해라...”


“으허허허헝...”


진호가 우는 시늉을 하며 오만상을 찡그렸지만 악야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화산 이곳저곳을 둘러봤고, 그들은 해가 지기 시작 해서야 겨우 산을 내려와 객잔에 자리를 잡았다.


“오리탕과 만두, 돼지고기 요리 3인분 부탁하오. 아, 그리고 여기 무사님들 식사도 푸짐하게.”


"네, 나으리!!"


그렇게 객잔의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오자마자 요리를 주문한 진천의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객잔 밖에서는 여기저기 산개한 60명의 무림맹 고수들이 몸을 숨기고 육포를 뜯어 먹고 있었다.


“빌어먹을! 사형.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소? 참나, 구파일방의 정예들이 화산파의 앞마당에서 마교의 소교주를 호위 하다니... 이게 말이나 돼? 어?”


무당파의 1대 제자 공진이 투덜대자 옆에 있던 미중년의 사내, 무당파의 장로 주소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으니 힘내라. 정 힘들면 먼저 가도 되고. 어차피 저 마교 놈들도 득실득실하니까 뭐. 티도 안나겠네.”


"끅... 그랬다간 노인네들한테 또 뭔 잔소리를 들으라고... 어휴."


주소가 객잔 앞의 공터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 있는 마인들을 바라봤다.


“아무리 마교라지만 참 대단하지 않느냐. 저만한 고수들이 모두 한 소속이라는게 믿기지가 않아... 모두 신검합일은 기본이고 절정고수도 더러 보이는구나.”


“크큭! 그렇지. 저게 놈들 전력의 1할도 안 된다는 게 더 대단하오. 저놈들만 해도 웬만한 문파 서너개는 순식간에 쓸어 버리겠소.”


“허어! 대체 어찌 저런 마적들이 저만한 힘을... 우리 무림맹은 나날이 약해지는데 큰일이다.”


“아이씨, 사형. 무림맹이고 뭐고 난 더는 이렇게 쥐새끼처럼 숨어서 못 있겠소. 나도 가서 당당하게 요리나 시켜 먹을라오.”


“뭣! 이놈아! 괜히 마교 놈들과 충돌을 일으키면 파문이라는 장문인의 당부 못 들었더냐? 타 문파 선배님들도 별 말 없이 참고 계시거늘!”


“아! 누가 참으라 했소? 내가 내 돈 내고 밥 한번 먹겠다는데! 그리고...”


“그리고 뭐?”


공진이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띄었다.


“흐흐! 사형도 저 천무지체인지 뭔지 하는 아이를 봤을 때부터 몸이 달아 있었잖소. 검을 섞어 보고 싶어서. 응?“


“이... 이 미친놈이! 무인의 호승심과 무고한 생명이 걸린 임무의 경중을 모르더냐! 불혹을 넘긴 놈이 아직도!”


“아! 무인이 나이가 뭐가 중요해! 그리고 혹시 아오? 내가 저 아이를 살살 구슬려 친해지면 저 애가 교주가 됐을 때 불가침 조약 같은 걸 맺을지?”


“뭐, 뭐라?? 이 놈이 무슨 그런 터무니 없는 망발이야!!”


“아니, 좀 들어 보시오. 사형도 알듯이 저 가족은 몇 년 전까지 변방 빈촌에서 거지처럼 살았소. 그리고 천무지체의 몸이 상할까 마교의 심법이 아니라 우리 무당파의 태천심법으로 수련을 했고. 또 5달 동안 따라 다니며 본 저 가족의 심성이 어떻소? 그냥 시골 촌뜨기들 아니오? 내가 지금 조금만 친해져 놓으면 그 인연이 훗날 강호평화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황금 같은 기회를 그냥 날리자고?”


“...펴, 평화?”


"그래요, 평화. 아니 보라고. 저 부모란 사람들은 정파니, 사파니, 마교니 하는 것도 모른다며? 엉? 그런 저 양반들이 우리 도사들을 싫어할까? 시골 사람들이면 어이구! 스님! 어이구 도사님! 하면서 따르면 따랐지? 내 말이 틀리오?"


"어... 어..."


물론 궤변이다.


분명한 궤변이었지만, 무공에 비해 지능은 많이 부족했던 주소는 왠지 공진의 말에 설득을 당하고 있었다.


“그, 그럼 일단 호위대장님께 허락을...”


“아, 진짜!! 사형!!! 손주까지 본 양반이 왜 이렇게 답답하오! 그 늙은 벽창호들이 퍽이나 이런 묘수를 이해하겠소! 분명 말도 안되는 이유들 갖다 붙여서 막을 게 뻔한데!”


“아니, 이놈아 그럼 어쩌자고?”


“흐흐!! 사형, 잘 보시오. 이 무당의 공진이 무림 100년 평화를 어떻게 이룩하는지.”


"야, 공진아. 그러지 말고 일단 뭘 어쩔건지 얘기나 하..."


"흐!!"


파바바바박!!!


"억! 고, 공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진이 객잔으로 몸을 날리자, 주소는 고장 난 물레방아처럼 끽끽 거릴 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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