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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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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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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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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5]

DUMMY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5]




별달리 특이한 점은 없어 보이는, 파란 감을 쓴 주머니였다. 크지도 않았다. 손 안에 충분히 들어갈 정도.


“...여기 안에?”


“그래.”


시아는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는 이런 물리적인 형태로 대답이 돌아올 거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었기에 그 주머니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주머니인데.


“지금 열어보면 돼?”


“아니.”


윽, 딱 잘라서 대답이 돌아오는 바람에 나는 막 뻗으려던 손을 다시금 잡아당겼다.


“가지고 가.”


시아는 딱 잘라서 이야기했다.


“응?”


“가지고 가서, 전장에 도착하면 그 다음 날 아침에 열어봐.”


“전장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생각한 것보다 꽤 구체적인 지시였다. 도착한 날도 아니고, 다음 날 아침에 열어보라고?


“이건 통수권자로서의 명령이야.”


“명령?”


“절대로 그 전에는, 주머니를 열어보지 말 것.”


확고하네. 나는 한층 더 복잡해진 기분으로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뭐가 들었는데?


“그리고 하나 더.”


엑, 또 있어?


“뭔데?”


“이 주머니의 존재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말 것.”


“뭐?”


“말 그대로야.”


시아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 주머니 자체도, 이런 걸 받았다는 사실도, 이걸 열어보는 것도 절대 다른 사람이 알도록 하지 마. 처음부터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해. 보고 나면 불에 태워버려.”


나는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다. 그 말인즉슨...


“리체나 가닐영에게도 이야기하지 마.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말고, 혼자만 알고 있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


이해는 했으나 다소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내가 그렇게 입을 열었더니, 드물게도 시아는 다시금 이야기를 확인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 응...”


사실 이것도 어려울 리는 없는 이야기였다. 요컨대, 아무한테도 이 주머니를 들키지 않으면 되는 거잖아? 그런 생각으로 내가 떨떠름하게나마 대답했더니, 그제야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던 시아는 살짝 부드러운 얼굴이 되었다.


“이상이야. 궁금한 거 있어?”


“궁금한 거라...”


그야 없지 않았지만, 지금 열어보지 말라는 건 주머니에 관한 질문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겠지? 사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시 자체가 워낙 간명한 것이었기에 물을 수 있는 것도 없긴 했다.

전장에 도착하면, 그 다음 날 이 주머니를 열어본다. 그 후 태워버린다. 그걸로 끝.


“네 질문은 뭐야?”


“응?”


이걸로 용건이 끝이었나보다. 내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자, 시아는 바로 그렇게 물어왔다.


“아까 너도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게...”


윽, 이런 상황에서 나도 사실 그거 물어보려 했다고 말하려니 어째 좀 민망한데. 그래서 군단장실 안에서 나누던 대화가 잠시 끊어졌을 때였다.


“...응?”


어쩐지 슬쩍 소란스러운 느낌. 군단장실도 방음에 신경 쓴 곳인데다가, 여기에 부관실까지 거쳐야 하는 구조니만큼 이 방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가 외부로 새어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이를 반대로 이야기하면 외부, 그러니까 참모장실에서 들리는 소리도 마찬가지 여기로 새어 들어오기 어렵다는 소리인데...


“집어넣어.”


“응?”


“빨리.”


그 소란스러움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시아의 재촉에 당황한 손놀림으로 그 주머니를 움켜쥐고는 다급히 품속에 집어넣었다.


“피, 핀 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 순간 바로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리체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드, 들어와.”


안 보이지? 제대로 넣은 거 맞지? 품속에 시선을 묻은 채 꺼낸 대답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리체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비추었다.


“말씀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야?”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였다.


“멈추시오! 들어가지 마시오!”


휘리링, 손질이 잘 된 검을 뽑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부관실 문이 덜컥 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라미르!”


라...미? 부관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녀를 문 너머로 본 순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놀랍게도 내 앞에 앉아있던 시아였다.


“리체.”


“네, 넷?”


“전부 검을 거두라고 해.”


소리는 들렸을지언정, 시아가 앉아있는 곳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가 않는 구도였다. 그러나 바깥에서 들린 소리만으로도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한 듯, 시아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담겨있었다.


“어서.”


나지막한 시아의 재촉에 리체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눈치였다.


“저, 전부 검을 거두세요! 공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 리체의 외침이 떨어진 순간에야 비로소 나 역시 상황을 파악했다. 부관실, 군단장실, 참모장실을 모두 울린 목소리가 지워지자, 그제야 간신히 고여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하...”


그런 시간에 가장 먼저 몸을 실은 것은 다름 아닌 시아였다.


“편하게 이야기할 틈이 없네. 그렇지?”


한숨을 쉰 시아는 다음 순간에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동의를 구하듯 내게 그렇게 물어왔다. 그러나 정말 대답을 듣고 싶어서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지, 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걸음을 옮겨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문에 서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라미를 쳐다보았다.


“안녕.”


라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꽤 급한 일인가 보네?”


그런 말을 들어도 라미의 얼굴에 표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라미는 그런 무표정한 얼굴로 시아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시아가 그런 라미의 시선을 어떤 표정으로 받아내고 있는지는 내가 있는 위치에서 알 수 없었다.


“...잘 됐네. 마침 같이 있어서.”


오랫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트린 것은 라미의 조용한 한 마디였다.


“너한테도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


“나한테?”


그러나 그렇게 대답한 시아는 뭔가 깨달은 듯이 되물었다.


“잠깐, 나한테도?”


“그거, 정말이야?”


그게 정말이냐니? 그게 뭔데?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아마도 주위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뜬금없고 모호한, 알 수 없는 질문을 시아는 잠시 후 가볍게 받아들었다.


“이미 들었나보네. 굳이 나한테 확인할 것까지 있어?”


뭐야?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그러나 그 다음이었다.


“맞아. 이제 왕국은 공식적으로 개전을 선포할 거야.”


아... 그제야 나는 이 뜬금없는 대화가 무엇 때문에 이루어졌는지를 깨달았다.

그렇지. 라미 역시 이 이야기를 당연하게도 듣게 되겠지. 라미는 그런 대답을 꺼내놓은 시아를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을 침묵하던 라미는 갑작스레 말을 돌렸다.


“출정식에서는 잘도 떠들더군.”


기분 탓일까. 여름이지만 어째 한기가 도는 것 같은데.


“그래? 들어주고 있었구나.”


그나저나 그럼 그때 듣고 있었던 게 라미 맞구나. 그러나 그런 라미의 말을 시아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받아넘기자, 라미는 다시 한 번 시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 응시는 그리 길지 않았다.


“분명히 들어둬.”


달라진 것 없는 눈빛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미의 목소리에서 이유모를 한기를 느꼈다.


“네가 상상하고 있는 그런 건 바다에 없어.”


차가운 목소리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저 조용한 목소리일 뿐이었는데... 어쩐지 라미의 목소리에는 기묘한 섬뜩함이 있었다. 그것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닌지, 그 말을 들은 순간 리체의 표정 역시 순간 굳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러나 시아는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럼 그거 말고 바다에 뭐가 있을 수 있어?”


어? 그렇게 이어지는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시아의 대답에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들었다.

어라, 잠깐만? 시아는... 설마 바다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야? 그러나 그 대꾸에 라미는 표정만큼이나 차갑게 대꾸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상상하는 것 정도는 네 자유니까.”


“이게 단순히 내 상상일지 아닐지는 모를 일이지.”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여유로운 대응. 그렇게 말을 주고받은 둘은 또 다시 한참을 노려보았다. 물론 내 쪽에서 보이는 것은 라미의 얼굴뿐이었으므로, 시아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긴 여기서 이런 이야기해봤자 의미 없겠지.”


먼저 눈을 돌린 것은 라미였다. 그런 시선의 회피를 확인한 시아는 어깨를 살짝 으쓱하더니 곧이어 여유 있게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할 이야기란 게 뭐지?”


“끝났어. 이게 전부야.”


“뭐?”


드물게도 시아가 의아한 목소리가 되어 되물었다.


“이게 전부라고?”


“혹시 말하면 안 되는 거였나?”


라미가 비꼬듯 대답하자, 시아는 잠시 침묵했다. 마찬가지로 드문 느낌이 드는 침묵이었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시아는 나지막이 되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러 일부러 여기까지?”


“나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야. 너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장담은 못하겠지만, 어쩐지 시아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은데. 잘은 모르겠지만 대화의 흐름을 볼 때, 방금 대화에는 시아에게 뭔가 불만족스러운 점이 있었음이 틀림없...


“그리고.”


“그리고?”


“바다에 다녀올 거야.”


“뭐라고?”


귀를 의심할 정도로 너무 갑작스러운 이야기였다. 놀랍다기보다는 뜬금없다는 느낌에 가까운 말을 그렇게 툭 던져놓은 라미는 시아가 되물었음에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그 직후 다시 한 번 선언하듯 또박또박 말했다.


“잠시 바다에 다녀올 거야.”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라미의 짧은 중얼거림은 몹시도 조용했지만 군단장실, 부관실, 참모장실을 전부 가볍게 내리덮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숨도 쉬지 않는 것만 같았다. 그런 하얀 침묵 속에서 유일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라미는 잠시 후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표정을 살짝 바꿨다.


“...이건 너한테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응? 그럼 누구한테 하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내가 그런 의문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테이트.”


“응?”


따로 그 이름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반사적으로 반응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고 난 후에야, 나는 내가 그 이름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라미가 나를 콕 집어서 불렀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그리고 엉겁결에 고개를 든 순간, 나는 어쩐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라미와 눈이 마주쳤다.


“알겠어?”


이건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야. 바로 너에게 하는 이야기야.

라미는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바로 나에게 하는 이야기였다.


“바다에... 잠시 다녀오려고 해.”


조용하고 차분한, 그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목소리.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달라진 것 없는, 한때 매일 같이 옆에서 들었던 바로 그 라미의 목소리.

어느 순간부터 사이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것이 전적으로 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라미는 달라진 것 하나도 없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제껏 라미와의 사이에 티가 나지 않을 둥그스름한 경계를 쌓아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던 것이다.


“바다에 간다니?”


그러나 그 상황에서 입을 연 것은 내가 아니었다. 라미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렇게 질문을 던진 시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방해받기 싫은 순간을 방해받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한테 한 이야기 아니라고 했잖아.”


시아의 질문에 대한 라미의 대답은 살짝 차가웠다.


“내가 바다에 다녀온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


“문제야... 없지.”


그에 대답하는 시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를 석연찮음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왜?”


라미는 그렇게 되물은 시아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거기엔 대답할 필요 없겠지.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잖아?”


라미의 대답을 끝으로 둘은 잠시 말이 없었다. 시아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였으므로 나는 시아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시아를 바라보고 있는 라미의 표정은...


“...그래, 맞아.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지.”


시아는 그렇게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정말로 상관없는 일이라기보다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해버리겠다는 느낌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시아는 짐짓 거기서 관심을 끈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그래. 둘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눠. 내 용건은 끝났으니 자리 비켜줄게.”


“아니, 내 용건도 끝났어.”


멈칫, 가볍게 옷매무새를 추스르던 시아의 동작이 살짝 굳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아는 그 자세 그대로 잠시 굳어 있다가 이윽고 고개만 살짝 들어 다시금 라미를 쳐다보았다.


“...간결한 용건이었네?”


“길게 이야기할 일 아니니까.”


라미는 대단치도 않은 일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실제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일이라는 듯이 살짝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나를 살짝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 채지도 못할 미묘한 응시였으나, 나는 즉각 그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미처 내가 그에 제대로 눈을 마주치기도 전에 라미는 시선을 거뒀다. 내가 말하기도 그렇지만, 라미를 알고 있는 내가 아니었다면 그것은 응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만큼 짧은 틈의 응시였다.


“그럼.”


인사랄 건 없었다. 라미가 그렇게 한 마디를 남기고는 옆으로 돌아서자 사람들이 번뜩 정신을 차렸는지 후다닥 경계 자세를 취하는 듯한 소란스러움이 전해져왔다. 그러나 라미는 그에 개의치 않고 고고한 모습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라미는 소리도 없이 그렇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고, 잠시 시간이 흐른 후에 참모장실 문이 닫히는 미약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잔뜩 굳어있던 실내 분위기가 간신히 약간 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그리고 리체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숨을 마치 신호로 삼은 것인 양, 그제야 군단장실로 사람들이 번개같이 뛰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주님!”


알데 씨, 그리고 가닐영, 그리고 시아가 대동하고 왔을 호위관들까지. 그런 건장한 사내들이 부리나케 들이닥치자 크게 좁은 것도 아닌 부관실이 순식간에 좁게 느껴졌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알데 씨가 앞으로 나와 그렇게 물었을 때, 시아는 다소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렇게 대답은 했을지언정 시아는 여전히 가만히 굳어있는 채였다. 살짝 팔을 감싸 안은 모습으로 그렇게 잠시 서있던 시아는 별안간 입을 열었다.


“방금 들었어?”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아라미르가 한 말.”


그야... 당연히 전부 들었잖아? 쥐 죽은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였으니 못 들을래야 못 들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들은 것을 마치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는 듯한 시아의 질문에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야... 들었습니다만.”


그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시아의 질문에 대답하는 알데 씨의 목소리에도 살짝 흔들림이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아라미르.”


“네?”


“아라미르, 방금 바다에 다녀온다고 했지?”


시아는 마치 확인하듯 물었다. 알데 씨는 약간 뜬금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그 질문을 이해했는지 금방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만...”


“지금 이 시점에, 바다...”


시아는 드물게도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아 앞에 선 알데 씨는 그제야 시아의 관심사를 이해한 듯 살짝 표정을 풀었다.


“그러게요.”


알데 씨는 방금 라미가 나간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아주 잠깐 시아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툭 던지듯 중얼거렸다.


“바다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요.”


알데 씨가 그렇게 의미심장하게 중얼거렸지만 시아는 마치 생각에 잠기라도 한 듯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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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7] 22.11.03 54 2 21쪽
253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6] +1 22.11.02 49 2 19쪽
»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5] 22.11.01 48 2 17쪽
251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4] 22.10.27 51 2 15쪽
250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3] 22.10.26 49 2 16쪽
249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2] 22.10.25 42 2 15쪽
248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1] 22.10.24 42 2 19쪽
247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프롤로그] +1 22.10.23 44 2 1쪽
246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21 / 에필로그] 22.09.19 47 2 15쪽
245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20] 22.09.18 43 2 16쪽
244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9] 22.09.17 68 2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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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7] 22.09.15 44 1 30쪽
241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6] +1 22.09.14 40 2 19쪽
240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5] +2 22.09.13 41 3 21쪽
239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4] +3 22.01.04 78 5 26쪽
238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3] 21.10.14 81 4 30쪽
237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2] 21.10.13 82 4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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