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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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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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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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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1]

DUMMY

[판상츠모사][15장 “동그라미의 끄트머리” - 1]




시아가 우리에게 물어본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아이카에게... 아니, 선배에게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그리고 선배는 무엇을 물어봤는지.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어.”


“안 했다고?”


나, 시아, 지나 셋은 쉬는 시간을 틈타 사람들의 눈이 없는 복도 구석에서 모였다. 사전이야 어차피 아이카를 모르니까 부르지 않았고.


“물어본 것도 없고, 말해준 것도 없어. 그런데 이미 다 알아차린 모양이더라.”


“알아차리다니?”


“우리 말고 누가 더 있냐고 묻던데.”


시아는 여기까지만 듣고도 이미 선배와 우리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어?”


“아니, 별다른 이야기는 안 했다니까? 그때 마침 선생님한테 연락이 와서...”


나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요즘 어마어마하게 바빠서 오늘 당장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대. 나중에 천천히 연락 준다던데?”


내가 그렇게 이야기하자 시아는 그런 내 답변을 곱씹을 뿐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이나 지나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그쯤 하지 그래? 쉬는 시간 거의 끝이야. 이제 교실 가야 돼.”


“어, 그건 그렇긴 한데...”


“다른 애들은 벌써 다 들어갔다니까? 나중에 이야기하면 되잖아.”


지나의 핀잔에 나는 시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시선을 눈치 챈 시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 또 중요한 이야기라도 있어?”


“야, 거기 너희들! 거기서 뭐해?”


윽, 모르는 선생님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빨리 안 올라가? 수업 시작한다!”


“...일단 나중에 이야기하는 걸로 하자.”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여기선 더 이야기할 수가 없겠군. 일단 우리는 그렇게 자리를 벗어났다.


“그나저나 쟤도 침착하네.”


시아와 헤어져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지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물론 지금 와서는 이게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너무 침착한 거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도 있었다.


“나였으면 바로 깜짝 놀라서 튀어나왔을 거 같은데.”


그것도 생각해보니 그랬다. 당연히 시아도 선배가 강당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봤을 텐데. 왜 따라 나오지 않았지?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한 일이긴 했다. 물론 시아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긴 했지만.

그러나 그런 의문보다도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나는 지나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잠자코 한숨을 쉬었다.


“웬 한숨?”


핀 아이켈. 나는 전화 너머로 들었던 그 목소리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그 녀석이 자기 입으로 자기가 핀 아이켈이라고 고백한 것도 아니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차수휘?”


“응?”


지나를 돌아봤더니, 지나는 표정을 살짝 찡그리고 있었다.


“왜?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시아를 믿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나는 방금 전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을 결국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시간이 없기는 했지만. 꺼낼 수도 없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하긴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게 이상하겠지. 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다행히도 지나는 지레짐작이라도 한 듯 그렇게 한숨을 폭 쉬면서 중얼거렸다. 자기가 갖고 있는 고민과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 별다를 것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한숨이었다.


“...그렇지?”


하지만 그런 중얼거림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애매모호한 긍정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교실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시간은 느릿하게 지나갔다. 나는 멍하니 교실에 앉아 있다가 일찌감치 하교해서는 꽤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눕기 전에는 시아에게 전화를 해볼까도 잠깐 생각했지만, 나는 결국 고민 끝에 그 생각은 접어버린 상태였다.

이 이야기를 꺼낼 거라면 시아와 지나가 모두 있는 자리가 좋을 거야.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던 탓도 좀은 있었다. 물론 그 정체도 알 수 없는 녀석의 이야기 따위 귀 기울여 들을 필요는 전혀 없을 것이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너무도,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니면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잠이 도통 오지 않았기에 나는 으레 그렇듯이 찬장을 뒤졌다. 이거, 이제 그냥 눈에 잘 띄는 곳에 두는 게 나으려나. 이젠 한두 알 먹는 것으로는 딱히 효과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기에 나는 서너 알을 한 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


왕궁의 아침은 활기찼다. 일찌감치 눈을 뜬 후 집무실로 출근한 나는 서둘러 오늘 살펴야 할 서류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나는 이내 생각에서 지워놓고 있었던 상황과 마주쳤다.


“어...”


나는 서류를 들고 온 리체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우선 그렇게 말끝을 흐렸다.


“몸이 안 좋으면 들어가서 좀 쉬지 그래?”


“네?”


내가 결국 그렇게 이야기를 꺼내자, 리체는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그러나 이미 그 전에도 표정을 꽤나 찡그리고 있는 상태였기에 리체는 제법 찌푸린 얼굴이 되었다.


“아, 별다른 게 아니라... 아까부터 자꾸 표정이 안 좋아보여서?”


생각해보니... 얘 어제 어마어마하게 퍼마셨었지... 아침부터 표정이 계속 안 좋아서 무슨 일이라도 있나 고민하던 끝에 나는 간신히 어젯밤 리체의 방에서 목격했던 사건에 생각이 닿았던 것이다.

하긴 잘은 몰라도 그렇게 곤죽이 되도록 마셨는데 지금 몸 상태가 멀쩡할 리가 없겠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숙취가 심해보이니 들어가서 쉬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렇게 슬쩍 말을 돌렸는데, 그제야 비로소 리체는 내 말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


그러나 리체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더니 툭 던지듯 중얼거렸다.


“아뇨. 그냥 날씨가 안 좋아서요.”


“날씨?”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이야기람? 날씨가 안 좋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창밖은 비가 약간 오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


“아, 비 오네...”


“네.”


그제야 나는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째 아침부터 약간 눅눅한 기분이다 싶더니 이거였구나.


“비 내리는 거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리체의 대답은 고즈넉했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비 내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이게 아니라.”


“네?”


“들어가서 쉬어도 된다니까?”


내가 재차 그렇게 이야기하자 리체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왜요?”


“응? 그야... 몸이 안 좋으면...”


“괜찮은데요?”


리체는 그렇게 말하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살짝 돌렸다. 그리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냥... 비가 와서 그래요.”


비? 비가 왜? 내가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더니, 리체는 가볍게 볼을 부풀렸다.


“마법사니까요.”


“응?”


“아무래도 무기력해지죠?”


그렇지 않느냐고 묻는 느낌의, 마치 동의를 구하는 모양새의 말투였다.


“어... 그건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마법사는...”


내 질문에 리체는 자못 탐탁찮은 듯이 그렇게 입을 열었다.


“마법을 못 쓰잖아요.”


“응?”


“비를 맞으면.”


기묘한 대답에 내가 잠시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더니, 리체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기며 대답했다.


“물에 닿으면 마법을 쓸 수 없다고 말씀드린 거, 잊으셨어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 뭐였더라? 젖은 채로는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했던가? 아니, 이게 아니었는데.


“비 맞는 것도 안 된다고 했었나?”


“비를 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겠죠.”


“물 맞잖아?”


내가 그렇게 대답했더니 리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핀 님은 비를 맞는다면 못 쓰시겠네요.”


“응?”


“마법.”


아,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예전에 리체와 나눴던 이야기가 어렴풋이 머릿속을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핀 님이 마법사라면 말이지만요.”


“마법사 맞잖아?”


내가 그렇게 답하자 리체는 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방문을 슬며시 쳐다보았다.


“...그거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거 잊으셨어요?”


“우리밖에 없는데.”


“그래도 다른 사람이 들을지도 모르잖아요. 누가 지금 방문에 귀 대고 있었으면 어쩌려고요?”


“왜 그런 극단적인 가정을 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대꾸했지만, 리체는 완고했다.


“앞으로는 제 앞에서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네...”


쳇, 이야기는 자기가 먼저 꺼내놓고. 하지만 나는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큰 소리도 아니었으니 괜찮았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리체가 이렇게 말하는데 굳이 또 거스를 이유도 없으니까.

그러나 완고하게 주의를 준 리체는 내가 그렇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표정을 바꾸었다. 리체는 아래로 시선을 살짝 깔더니, 지나가듯 말했다.


“아마 생각이 있으실 거예요.”


“응?”


“공주님 말이에요.”


그리고 리체는 고개를 들고는 한층 작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림자로 두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예나 지금이나, 그림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미더운 무기가 되니까요.”


“그림자?”


“제가 그랬듯이.”


아, 갑작스러운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리체가 부연한 한 마디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이었다.


“군단장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마침 대화의 주제가 주제였던지라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방음이 잘 되는 방인지라 이렇게 일상적으로 나누는 이야기가 밖에 들릴 일은 없지만, 반대로 말해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아니면 밖에서 나는 인기척 역시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다는 맹점도 있달까.


“아, 응. 들어와.”


당황함을 지우면서 내가 그렇게 대답했더니 이내 문이 살짝 열렸다. 그리고 참모장실에서 근무하는 익숙한 얼굴의 병사가 가볍게 경례를 하고는 답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건이라고 하셔서... 마력전 사령관님께서 오셨습니다.”


“어이, 2군단장님? 나 왔수다.”


그러나 그렇게 손을 흔들며 안으로 들어서던 블라도스 씨는 리체가 옆에 서있는 것을 보고는 표정을 살짝 바꿨다.


“어, 아델리체 양도 있었군?”


여전히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인데, 이 아저씨도 생각해보면 엄연한 핵심인물이란 말이지. 지목당한 리체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침착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블라도스 씨를 안으로 들여보내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병사가 다시 문을 닫는 걸 보면서 나는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고는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난데없이 말했다.


“두 분 다 표정이 별로시군. 확실히 오랜만이긴 하지?”


“네?”


“비.”


창을 가리키며 그렇게 대답한 블라도스 씨는 리체가 그랬던 것처럼 창밖을 쳐다보았다.


“간만이라 그런지... 나도 기분이 영 별로군.”


어, 이 아저씨도 비슷한 이야기하네.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날씨에 대한 아쉬움을 성토하기 시작한 바람에 나는 미묘한 소외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한참 창밖을 바라보던 블라도스 씨는 별안간 툭 던지듯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여기에 좀 익숙해져야 한단 말이지.”


“네?”


“나도 그렇고, 자네들도 그렇고. 아니, 모두가 다 익숙해져야겠지?”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문맥과 관계없이 튀어나온 이야기에 내가 고개를 갸웃했더니 블라도스 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뒤통수를 살짝 긁었다.


“그게 총사령관님과 이야기를 좀 나눴는데...”


그렇게 좀은 곤란하다는 투로 입을 연 블라도스 씨는 리체를 힐끔 쳐다보았다. 리체는 우수한 부관답게 그 시선에 빠르게 반응했다.


“저는 나가보겠습니다. 편안히 말씀 나누시죠.”


“아, 그럴 것까진 아니야. 어차피 아델리체 양도 들어두는 게 나을 거라서.”


대화의 내용을 떠나서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생각해보면 첫 만남이 그런 식이었으니 둘 다 사적인 감정을 완전히 빼놓고 서로를 대하기는 어렵겠지. 블라도스 씨는 가능하다고 해도, 리체 쪽이 어려울 것이다.


“공주님께서 전장에서 마법사들을... 후방에 배치할 계획이신가 보더군.”


“네?”


“마법사들을 공격적으로 운용할 생각은 별로 없으신 것 같아.”


“네?”


이번 반문은 내가 아니라 리체에게서 나왔다. 나는 여전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였는데, 리체는 블라도스 씨의 말에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문한 다음 즉각 말을 이었다.


“후방에... 둔다고요?”


들은 내용을 그대로 되물은 리체에게 블라도스 씨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국과 병력 차이가 꽤 있으니 별다른 변수 없이 정공법으로 싸운다면 우리가 열세인 게 당연하지? 그래서 당연히 마법사들을 좀 적극적으로 운용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럴 생각이 별로 없으신 모양이야.”


“그럼 마법사들은 뭘 하지요? 설마 치료만 전담하는 것은 아닐 텐데요.”


“그게...”


리체의 질문에 블라도스 씨는 말을 잠시 끊었다. 그리고 뜬금없이 시선을 옮겼다.


“안될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 또 되더군.”


“네?”


그러나 창밖을 바라보던 블라도스 씨는 대답 대신 푸념처럼 말을 이었다.


“물론 상상은 마법사가 아니어도 누구든 할 수 있는 법이지만, 이래서야 면목이 없는걸.”


도통 대화의 흐름을 따라갈 수가 없어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조금 전부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그러나 블라도스 씨의 시선을 따라가 봐도 나는 딱히 대화의 흐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뭐가 순조롭다는 거지?


“설마...”


잠깐의 틈을 두고, 그렇게 입을 연 것은 리체였다.


“맞아.”


블라도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 죽을 맛이라네.”


리체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눈을 깜빡거려야 했다.


“저... 무슨 이야기인지?”


아무래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건 나뿐인 것 같아서 내가 그렇게 물었더니, 리체와 블라도스 씨가 동시에 이쪽을 쳐다보는 바람에 나는 당황해서 눈을 굴렸다.


“그러니까 말이지.”


블라도스 씨는 팔짱을 꼈다.


“방금 전에 마법사들을 후방에 배치할 거라고 했잖나? 그런데 당연히 뒤에서 싸우는 거 구경하라고 세워놓는 건 아니겠지. 마법사들도 사람인데 보고만 있으면 심심하잖나.”


그렇게 말하고 블라도스 씨는 으하하하 웃었다. 전에도 느꼈지만 이 아저씨와 대화하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럼요?”


“내가 보기엔 이번 전쟁에서는 가급적 변수를 늘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공주님께서는 오히려 변수를 줄이는 게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물론 제국 쪽에서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 이것도 나름의 변수라면 변수가 되겠지만.”


나름 대답에 대한 설명을 미리 제공하려는 모양새긴 한데, 이렇게 들어서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머리를 살짝 움켜쥐었다.


“잘 모르겠으니까 그냥 쉽게 말해주세요. 뭘 어떻게 한다고요?”


다행히 블라도스 씨도 굳이 말을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물었더니, 블라도스 씨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비야.”


“네?”


“마법사들이 전장에 비를 뿌릴 거야.”


“비...요?”


대화의 흐름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아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이게 무슨 소리람?


“마법을 쓰지 못하게 전부 봉하겠다는 거지. 물론 모든 전투를 전부 이런 식으로 진행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마법을... 쓰지 못하게 한다고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겠나? 물론 그렇게 한다면 우리도 마법을 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다행히 설명이 담담한 목소리로 이어졌다.


“우선 비를 내리는 데만도 당장 마법사가 꽤 있어야 할 테고... 뭣보다 우리가 그렇게 저쪽 진영에 비를 퍼부으면 저쪽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 그럼 저쪽도 결국 우리 쪽 마법사를 막으려면 비를 내리게 해야 할 테니까.”


나는 잠시 후에야 블라도스 씨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양쪽 다 마법을 봉인하고 싸운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블라도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변수가 줄어든다고 했지만, 사실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게 나쁜 이야기는 아니야. 당장 가용 가능한 마력전 전력만 생각해봐도 우리가 한참 열세니까 양쪽 다 마법을 봉인하고 싸운다는 건 산술적으로만 생각해봐도 당연히 우리 쪽의 이득이지. 인구수 대비 마법사 비율이란 게 나라마다 다른 건 아니거든? 당연히 마법사들이 제국 쪽에 더 많지 않겠나? 우리나라라고 해서 특별히 많이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렇게 말을 해놓고 블라도스 씨는 자기가 한 말이 재미있다는 듯 으하하하 또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히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거니와, 사실 웃을 기분도 아니었기에 나는 약간 멍한 기분으로 그런 블라도스 씨를 쳐다보았다.


“정말로 그렇게... 한다고요?”


그러나 나는 멍한 기분에 그친 정도였지만, 리체는 살짝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나온 이야기라 우리는 자연스레 리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제야 리체는 핫 표정을 바꾸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말을... 저는 다만...”


“아니지. 아델리체 양이 느끼는 기분이 맞아. 당장 총사령관님께 직접 설명을 들은 나만 해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은 오죽할까.”


그렇게 대답한 블라도스 씨는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그런데... 해보니 이게 또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란 말이야.”


“네?”


블라도스 씨는 대답 대신 묵묵히 창밖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툭 던지듯 중얼거렸다.


“문제가 있다면 비를 바로 오게 할 수는 없다는 거? 하긴 이거야 사소한 문제인가.”


머리가 쉽사리 돌아가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잠시 후에는 블라도스 씨의 말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이해했다.


“어, 그럼...”


“아, 그러고 보니 빨래 널었던 하녀들은 경을 치겠군. 허, 참. 이거 하녀장에게 사실 내가 한 짓이노라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도 없고.”


그제야 거기에 생각이 닿은 것처럼 블라도스 씨는 깜빡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러나 그것도 그냥 생각난 김에 한 번 해본 이야기인 듯, 그렇게 중얼거린 블라도스 씨는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리고 씨익 웃었다.


“설마...”


“맞네.”


블라도스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는 비, 내가 부른 거야.”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간만에 뵙습니다.

아직도 이 글을 기억하고는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이 계시네요. 염치가 없어 일일이 댓글로 인사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취미 삼아 쓰는 글이라는 핑계로 참 오래 끌어왔는데... 이렇게 길게 끌고 있으니 이젠 취미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따름이네요.

면목이 없어서라도 앞으로는 별다른 작가의 말이나 댓글 없이 본문만 올릴 예정인데, 혹시나 그렇게 글만 올라오면 의아해하실 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렇게 구차하게나마 짧게 변명을 남겨둡니다.

이 추언은 본 작품의 마지막 글을 올리는 날 삭제할 예정입니다. 이 졸문을 기억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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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5] +2 22.09.13 41 3 21쪽
239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4] +3 22.01.04 78 5 26쪽
238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3] 21.10.14 81 4 30쪽
237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2] 21.10.13 82 4 20쪽
236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1] 21.10.12 65 4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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