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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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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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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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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5]

DUMMY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5]




음... 지나가 사전을 조금만 더 잘 알았다면 저런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는 안 꺼냈을 텐데.


“어차피 꿈이니까 별 상관없지 않나?”


그 대답에 지나는 대번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꿈에서 일어난 일은 꿈에서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가장 극렬히 주장하는 것에 비해, 사실은 꿈에서 일어난 일에 제일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목이 말라서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건 거기나 여기나 맛이 똑같구나.


“어차피 우리가 뭐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할 수밖에 없지 않아? 넌 만약 이 꿈을 꾸지 않을 수 있다면 안 꿀 거야?”


“뭐?”


“지나 너는 이 꿈을 꾸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할 거야?”


“그야 당연히...!”


그러나 그렇게 입을 연 지나는 말하던 도중에 천천히 입을 다물었다. 듣고 보니 그렇게 쉽게 대답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그렇게... 할 거야.”


“그래?”


“흥!”


나는 왜 쳐다본 거야?


“어쨌든... 나는 저 선생님 말씀에 틀린 게 별로 없는 거 같은데. 너희는 생각이 좀 다른가 보지?”


“그래? 그럼 너는 저 사람 말이 맞는 것 같아?”


“그야 그렇지? 어차피 우리가 이야기해봤자 당장은 알 수 없는 문제고... 그냥 아까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거기에서 있었던 일이나 말하면서 하하호호 웃음꽃이나 피웠으면 될 문제 같은데.”


이 인간도 참 확고하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거... 어디 가서 상담 받아보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


“상담?”


시아는 사실 어느 정도 오늘 이야기의 방향을 잡아두고 온 모양이었다. 시아 성격에 그냥 오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구체적인데.


“분명 이 현상에 관심 가질 사람이 있을 거야. 물론 쉽게 믿어주진 않겠지만, 증명이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꿈에서 있었던 일을 서로 맞춰보기만 해도 되잖아?”


“맞춰본다고?”


“서로 연락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나자마자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증명할 수 있지. 예를 들어서 꿈에서 오늘 저녁으로는 뭘 먹었다든가?”


“난 비둘기 먹었어.”


“...예를 들어서 이렇게 사전처럼 이야기한다는 거야. 물론 사전은 우리랑 지금 거리가 좀 떨어져있으니 말을 맞춰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거 괜히 서운하네. 너희는 전부 왕국에 있는데 왜 나만 공화국에 있는 거야?”


사전이 가볍게 투덜거렸다. 물론 사전이니만큼 투덜거리는 느낌도 아니었지만.


“말을... 맞춘다고?”


“너희는 어제 왕궁에서 저녁 식사로 뭐 먹었어?”


“어제 저녁?”


갑작스런 질문에 리체와 나는 동시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동시에 입을 열었다.


“양 갈비.”


“이런 식으로.”


아, 그렇지. 이런 식이라면 우리가 정말 같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


“이런 현상에 관심가질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시아는 그렇게 제안해왔다. 어, 일견 나쁜 말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러나 왠지 모를 찜찜함에 내가 잠시 대답을 미적이고 있을 때였다.


“어, 미안한데 나는 빼줘.”


엥?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대답을 한 사전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너희가 하겠다는 걸 말리진 않겠는데, 나는 그냥 거기 없는 걸로? 중간중간 진행사항은 알려주면 좋겠지만.”


“왜?”


시아의 질문에 사전은 깍지를 낀 손을 머리 뒤로 둘렀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귀찮아질 것 같아서?”


“귀찮아진다고?”


읏차. 사전은 찻잔을 들었다.


“누가 될지는 몰라도 그 관심 있는 사람이 이 현상을 바로 인정해주면 또 모르겠는데... 아마 그렇지가 않을 것 같은데? 당장 우리가 어떤 속임수를 쓰고 있는 건지를 밝히려고 할 걸?”


내가 느낀 찜찜함을 그대로 언어화한 것만 같은 한 마디였다.

그래, 사실 나도 이 말은 하고 싶었어.


“내가 한가해서 시간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라면 또 모르겠는데... 우리 내년에 이제 수험생이거든? 대학 가야지? 그런데 그런 거 증명하는 거에 시간 전부 뺏겨도 괜찮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거기 뺏기게 되는 시간이 더 클 텐데?”


말은 먼저 꺼냈어도 여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시아는 보랏빛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잠자코 그런 사전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에 가서 결국 우리 이야기가 진실이란 걸 증명한다고 쳐. 그런데 그게 우리한테 뭘 가져다주는 것도 아니고... 아, 지금이 아니라 대학생쯤 되면 또 모르겠다. 그때는 관심 있으면 직접 대학원 같은 곳에 가서 연구를 해봐도 될 문제니까.”


내가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 역시 이런 관점은 생각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잠자코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런 침묵을 틈타 사전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난 저 선생님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는 것이... 신기한 일인 건 맞지만, 자기 생활을 당장 내려놓을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는 거지. 방금도 봤잖아. 학원 일정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일하러 가야되는 사람이 이런 거에 당장 신경 쓸 여유 없다는 거. 저 정도쯤 되는 선생님이 지금 시간 내주신 것도 대단한 거야.”


“마치 잘 아는 사람인 것처럼 말한다?”


지나가 쏘아붙이듯 중얼거린 말에 사전은 의외로 간단하게 대답했다.


“조금 전에 어디서 봤는지 떠올랐거든. 이제 기억났어.”


“기억났다고?”


“저 선생님,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사람이야.”


사전은 가볍게 툭 중얼거렸다.


“뭐라더라. 대학교 소속이라 현장 강의만 해서 그렇지, 사실 백남현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난 잘 모르는데?”


“넌 이런 쪽에 별로 관심 없으니까. 너 동영상 강의 같은 거 안 보잖아?”


그야 그렇지만. 그런데 사전에게 핀잔 들으니 왠지 비참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그럼 그런 유명한 사람이 우리 학교에는 왜?”


하긴 유명하니까 데려왔겠지. 답을 아는 상태에서 답을 구했더니, 사전의 대답도 다소 심드렁한 느낌으로 돌아왔다.


“우리 학교 출신이래잖아? 그리고 우리 학교 재단도 재단이니까 뭔 끌어올 수 있는 연줄이 있나 보지.”


드물게도 사전이 정상적인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바람에 약간의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딱히 꼬투리를 잡을 구석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어쨌든 내 결론은 그래. 아까 선생님도 이야기하셨지만 당장 내일부터도 이 꿈을 안 꿀 수도 있는 거고... 이걸 외부에 이야기하더라도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본 뒤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라는 거지. 안 그래?”


그렇게 발언을 마무리하는 사전을 보며 나는 생각에 빠졌다. 듣고 보니 이것도 맞는 말 같은데. 나는 사전을 제외한 나머지 둘을 쳐다보았는데, 지나와 시아 둘 역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느긋하게 이야기나 하며 천천히 정보를 모아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이야기?”


“어차피 우리 넷이 모였던 적이라고 해봐야... 에블도트에서 봤던 것밖에 없으니까 그 이야기나 할까?”


“난 이야기하는 거 싫어.”


지나가 자기주장을 내세웠다.


“그래? 우리가 처음 서로 얼굴을 본 기념비적인 날인데.”


사전의 표현에 지나는 표정을 찌푸렸지만, 사전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난 당연히 여기서 서로 알고 있는 사이니까 꿈에 나온 거겠지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는 거잖아? 신기하긴 한데? 당장 에블도트에서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난 이야기하는 거 싫다고 했어. 이런 이야기할 거면 난 이제 갈 거야.”


지나가 재차 그렇게 이야기하자, 그제야 사전도 말을 끊고 지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긴, 지나가 꿈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사전은 모르긴 하지.


“에블도트 이야기하는 건 별로야? 그럼 전쟁 관련해서 논의나 할까? 근데 어차피 이것도 에블도트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그게 문제가 아니거든?”


둘이 참 대화가 안 통하네. 나는 그 둘의 대화를 심드렁한 심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사전 입장에서야 우리를 만난 게 에블도트가 처음이었으니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겠지만, 지나 입장에서는...


“어?”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내 입을 뚫고 튀어나갔다.


“왜? 뭐 생각난 거 있어?”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와서 떠오른 생각에 나는 당황해서 답을 잊은 채 지나를 쳐다보았다.

에블도트에서 사전이 술 취한 척 지나 끌어안은 적이 있었잖아...? 아, 게다가 그것 말고도 뺨에 입 맞춘 적도 있지 않았던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잠깐, 그럼 설마 지나가 지금 이렇게 완강하게 주장하는 것도 설마...?


“아, 설마 지나 너 그거 신경 쓰고 있는 거야?”


그러나 눈치 없기로는 어디 가서 전혀 뒤지지 않을 것 같은 남자인 사전은 그런 지나의 상태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지나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 돼! 막아야 돼! 그러나 내가 미처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의 일이었다.


“너, 그때 내가 넘어지면서 네 엉덩이 만진 거 신경 쓰고 있는 거지?”


으억...!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 같은 느낌에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크, 큰일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하지? 나는 당황해서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아니, 굴릴 수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경직된 상태로 지나를 쳐다보았다.

지나의 얼굴은 완전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얘 정말로 이것 때문에 방금 에블도트 이야기 못 꺼내게 했던 거구나... 평소에도 꿈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긴 했지만, 방금 그 이야기는 지나 기준으로 나와서는 안 될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시, 신경 안 쓰거든?”


누가 봐도 신경 쓰고 있잖아...


“어, 어차피 꿈에서 일어난 일이고...”


그러나 사전은 그런 지나의 동요를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하~ 그렇지? 사실 나도 내가 거기서 그럴 줄은 몰랐거든. 아, 물론 내가 한 일은 아니지만 사과해야 하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니까? 하하핫.”


분위기 좀 읽어라, 이 인간아... 그러나 여기까지 이야기가 흐르자, 자연스레 떠오르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사전이라는 이 남자는, 과연 어디까지 눈치가 없을 것인가? 갑자기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나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설마... 음, 설마 그것까지 전부 솔직하게 말해버리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 실수...였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 응, 그렇지? 실수...니까?”


지나는 마치 자기 최면을 거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런 지나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사전까지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아냐. 아니겠지? 사전이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설마 그걸 말하진 않겠지...?


“아, 물론 그때 아즈 총령이야 술 취해서 실수했다고 말하긴 했는데 말이야.”


그러나 사전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눈치가 없었다.


“응...?”


“그게 실은, 실수가 아니었거든?”


숨이 턱 막히는 한 마디.


“...뭐라고?”


“아아아아아아! 맞다맞다! 그러고 보니 그날 우리 거기서 말이야!”


“아니, 잠깐. 뭐라고?”


지나는 간결하게 내 외침을 잘라내었다.


“실수가 아니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이 극도로 당황하면 오히려 침착해지는구나. 나는 삽시간에 평정을 되찾은 지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 그 이야기 안 했나? 얘한테 그때 이야기했는데? 너 지나한테 말 안 했냐?”


사전은 눈짓으로 날 가리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졸지에 공범 비슷한 입장이 된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내가 뭔가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 지나의 대답이 빨랐다.


“이야기...라니?”


“아, 못 들었나보구나.”


내 뇌가 정지한 사이 사전은 여유 있게 피식 웃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툭 던지듯 말했다.


“그거, 실수로 넘어진 거 아니야. 내가 술 취한 척하고 일부러 넘어진 거지. 하하하.”


끼야아아악. 지금의 내 영혼을 언어로 형상화한다면 아마 이정도가 아닐까.

아니, 이 자식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걸 이렇게 말해버린다고...?


“실수...가 아니라고?”


지나는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혼이 약간 빠져나간 것 같은 말투로 떠듬떠듬 그렇게 혼잣말처럼 질문을 던진 지나는, 잠시 후에야 그 말뜻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실수...가 아니었어?”


“어, 너도 몰랐지? 일부러 넘어지는 척한 거야.”


“그럼...”


지나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 마, 만진 것도...”


“아, 실수인 척 하고 슬쩍 만져본 거지.”


그렇게 대답한 사전은 편안하게 차를 한 모금 후루룩 더 마셨다. 듣기만 해도 홍차가 충분히 식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경쾌한 소리였다.

그러나 내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런 사소한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옆에서 석상처럼 굳어있는 지나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눈에서 뭔가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이랄까. 텅 빈 보석 같은 눈동자를 한 채, 지나는 잠시 그렇게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어... 그, 그게...”


그 침묵을 견디다 못해 내가 나도 모르게 입을 연 순간이었다.


“응?”


쫙.

미처 내가 뭘 어떻게 제지하기도 전이었다.


“야!”


나는 깜짝 놀라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뺨을 때린 지나와 뺨을 맞은 사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사전은 그때 차를 마시고 있진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실로 경쾌했고, 그 날카로운 소리는 실내에 흐르던 느긋한 음악을 단번에 걷어버렸다. 물론 음악은 계속 흘렀지만 그렇게 한 번 뒤집혀버린 분위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당황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며 다시금 번갈아 둘을 쳐다보았다.


“너... 너...”


뺨을 때린 그 동작 그대로, 지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으므로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었지만, 옆으로 보이는 모습만 봐도 얼굴이 이미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야야...”


그러나 놀라운 것은 뺨을 맞은 사전의 태도였다. 그렇게 고개가 돌아간 채로 잠시 멈춰있던 사전은 잠시 후에야 천천히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살짝 뺨을 만지며 지나를 쳐다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나는 당혹스런 심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네가 기분 나쁘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여전히 뺨에 손을 갖다 댄 채로, 사전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닌데 이렇게 때리는 건 좀 그렇지 않냐...?”


“뭐라고?!”


“야, 화내지 말고 들어봐.”


지나의 날카로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사전은 놀랍게도 아주 침착했다.


“그건 총령인 아즈가 한 일이잖아. 여기 있는 내가 한 게 아니라고.”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야야.”


크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한 마디에 놀랍게도 지나의 말이 중간에 뚝 끊어지고 말았다.


“꿈이란 게 그렇잖아?”


사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애초부터 나는 거기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내가 기억은 하고 있어도,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란 말이야.”


기억... 갑작스런 단어였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한 단어였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방금 자리를 나선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기억에도 차이가 있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우리에게 한 걸까.


“그걸 지금... 지금 변명이라고...!”


“홍지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높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그 목소리는 지나의 말문을 그대로 막아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중얼거린 사전은 평소와 똑같은 표정으로 지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럼 만약 너는 리체가 누군가를 죽인다면, 그걸 네가 죽인 거라고 생각할 거야?”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순간 숨을 멈췄다. 이 자식, 하필 예시를 들어도 이런 예시를... 당연히 리체가 예전에 반란에 참여했다는 걸 알아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닐 텐... 아, 잠깐. 아닌가?

나는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에 깜짝 놀라 사전을 쳐다보았다. 총령씩이나 되는 녀석이 왕국에서 일어난 반란 같은 큰 사건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쳐다본 사전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순간 등골이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너, 너어...”


지나는 대답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표정은 복잡했는데,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지나 역시 내가 도달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음악은 흐른다. 가게는 조용했고, 우리는 말이 없었다. 대놓고 쳐다보지는 않았지만, 주위의 사람들 역시 우리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서있었을까. 어느 순간, 갑작스레 지나는 휙 하고 몸을 돌렸다. 아니, 몸을 돌린 것만이 아니었다. 지나는 걸음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아니, 걸음을 옮기는 것도 아니었다. 지나는 거의 달리시다시피 하는 걸음으로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어?”


상상을 못했다기보다는 설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의 입은 지나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 이후에야 열렸다.


“야? 호, 홍지나?!”


그리고 그렇게 지나가 가게 문을 열고 뛰쳐나간 이후에야 나는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다.

저, 전화도 안 들고 갔는데? 가방도 여기 아직 있는데? 진짜로... 나간 거야?


“아...”


사전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그리고 툭 던지듯 말했다.


“저게 저렇게 뛰쳐나갈 일은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한 말투였다.


“야, 너...”


“내 잘못 아니잖아.”


사전은 사전답게 딱 잘라 말했다. 그 한 마디만 듣고도 나는 대화를 더 이어나가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가게 문을 한 번, 그리고 지나가 두고 간 물건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얘... 설마 진짜 나간 건가?


“내버려둬. 자기가 자기 발로 나갔으니 알아서 하겠지. 어린애도 아니고.”


너무도 사전다운 한 마디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나가야 하나? 내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순간, 공교롭게도 나는 시아와 눈이 마주쳤다.


“왜?”


“아니, 그냥...”


어... 물론 사전에 비하면 좀 낫다고는 해도, 시아 역시 시아이니만큼 살가운 태도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어째 묘하게 평소보다 더 차가운 느낌인데.


“걱정되면 나가보든가.”


“뭐?”


갑작스런 사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내가 나가는 것도 이상하잖아?”


아니, 상황으로 보면 네가 나가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나 그렇게 말했다간 잘못도 없는 자기가 왜 나가야하냐는 반문이 돌아올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다소곳이 질문을 삼키기로 했다.


“왜 쳐다봐? 들고 가게?”


자연스럽게 지나가 두고 간 물건들에 시선이 닿자, 사전은 바로 나의 생각을 읽은 모양이었다.


“걔가 다시 돌아오면 어쩌려고? 그냥 여기 놔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내가 들어도 합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복잡한 기분으로 지나의 물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는 말이지만. 누가 들어도 맞는 말이겠지만.


“진짜 들고 가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전에게 이런 어이없다는 투로 핀잔을 들으니 슬프군. 그렇지만 나는 대답하는 대신 주섬주섬 지나가 남긴 물건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전화도 안 들고 갔는데 길 엇갈리면 어쩌려고?”


“걔 여기 안 올 거야.”


내가 딱 잘라서 대답하자 사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사전이 반문했지만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기에 입을 열지 않았다.

지나 성격에 절대로 안 돌아오지. 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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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5] +2 22.09.13 42 3 21쪽
239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4] +3 22.01.04 78 5 26쪽
238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3] 21.10.14 81 4 30쪽
237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2] 21.10.13 82 4 20쪽
236 [판상츠모사][14장 “알을 깨우는 자장가” - 11] 21.10.12 65 4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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