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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할 님의 서재입니다.

오합지졸 악마 잡기 대작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구원할
작품등록일 :
2023.05.10 14:22
최근연재일 :
2023.06.08 20:00
연재수 :
26 회
조회수 :
398
추천수 :
12
글자수 :
144,733

작성
23.05.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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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공격 개시(8)

DUMMY

쿠크스는 바구니에 든 베리 열매를 커다란 쇠 통에 부었다. 빈 바구니를 옆에 내려두고 다음 바구니를 손으로 잡고 들었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열매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처럼 일렬로 놓여있었다. 그 앞에는 열매를 집어삼키는 쇳덩어리가 아가리를 벌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읏차.”


좌르르륵하는 소리가 쇠 통 안에서 들려왔다. 쿠크스는 손목을 올려 시계를 봤다. 해의 몸이 사라지고 어느새 날카로운 달의 몸이 떠 있었다. 새벽부터 이어진 분류 작업을 끝낼 시간이었다.



“올리비에!”

쿠크스는 활짝 열려있는 나무 문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소리쳤다. 조금 뒤에 올리비에의 대답이 들려왔다.

“베리 맥주 두 개랑 퐈이야 볼트 주문해놨어!”

곧이어 올리비에가 들어왔다. 올리비에는 연갈색의 웨이브 머리를 위로 올려묶고 분홍색 크롭티와 아래로는 연한 주황색 조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쿠크스는 손에 낀 검은색 고무장갑을 벗고 기지개를 켰다.

“으아! 그때 제대로 분류했으면 연장 작업도 없는 건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때 니가 그 배로 안 들어갔으면 이럴 일도 없었겠지.”

쿠크스는 눈을 뾰족하게 뜨고 오른손으로 옆머리를 긁었다. 옆으로 짧게 친 머리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쿠크스의 눈이 공허하게 밤하늘을 쳐다보자 올리비에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하냐, 과거는 잊고 빨리 얌구로 가자.”

올리비에가 팔꿈치로 쿠크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래. 가서 시원한 맥주나 마시자.”

올리비에와 쿠크스는 작업장 맞은편에 있는 얌구의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때 같은 작업장 동료인 리베루가 들어왔다. 리베루는 얼굴이 긴 남자였다. 그는 입가에 거뭇거뭇한 수염을 손톱으로 긁으며 말했다.

“쿠크스. 누가 널 잠깐 보자는데?”

그가 얼굴처럼 긴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대고 말했다.

“인간이 아니야. 얼굴이 보라색이야.”

“그럼 뭔데?”

쿠크스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자 말로는 사자라는데?”

“엥? 쿠크스 너 진짜 귀신한테 홀렸냐?”

올리비에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팔을 때렸다.

“미친 소리 하지 마. 웬 사자야?”

쿠크스는 입가를 일그러뜨리며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끔거렸다.



쿠크스와 올리비에는 나무 문을 나왔다. 문 옆에는 리베루의 말처럼 얼굴이 보라색인 누군가 서 있었다. 물론 그자는 몸도 보라색인 벨이었다. 그는 발목까지 오는 긴 검은 망토를 허리에 둘러매고 벽에 기대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 절 찾으셨다고요..?”

쿠크스는 벨에게 다가갔다.

“네, 벨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물을 게 있어서 왔습니다.”

벨은 쿠크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벨의 보라색 손은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몇 초의 정적 끝에 올리비에의 손에 떠밀려 쿠크스는 벨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전 올리비에라고 해요. 우리는 방금 막 작업이 끝나서, 혹시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면 같이 얌구로 가서 밥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쿠크스 대신 올리비에가 인사를 했다. 쿠크스는 올리비에의 입을 막고 싶은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가 벨을 돌아보고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바쁘실 것 같은데 그냥 여기서 간단히 얘기하죠.”

쿠크스의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벨은 얌구라는 말에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그러죠. 저야 뭐, 시간 많으니까요.”

.

.

.

벨은 베리 맥주를 네잔 째 들이키고 있었다. 보통 맥주와 달리 베리 맥주는 새빨간 열매처럼 붉은색이었다. 열매의 새콤하고 시원한 액과 땅콩, 크림, 캐러맬, 초코의 네 가지 중에 선택된 소스와 어우러져 보통 맥주와 달리 시큼하면서 달달한 것이 인기가 많았다. 오직 얌구의 정원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였다. 그 외에 캔맥주로 제리베이 항구에 납품되어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었다.


올리비에는 퐈이야 볼트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넣었다.

“맥주만 먹지 말고 이것도 먹어보세요.”

벨은 퐈이야 볼트를 붉으스름한 얼굴로 내려다봤다. 벨의 눈이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공허하게 빛났다.

“아니요, 제가 싫어하는 너구리가 이것만 보면 환장해서요. 먹기 싫으네요.”

벨은 말을 마치자마자 맥주를 들이켰다. 올리비에는 벨의 ‘너구리’라는 말에 고개를 뒤로 젖히고 웃어댔다.



“그 너구리가 누군지 알 것 같네요.”

올리비에는 바삭하게 튀긴 퐈이야 볼트를 입에 넣고 씹었다.

“아, 그럼 이거 드세요. 이건 퐈이야가 아니니까요.”

쿠크스가 말했다. 벨과 쿠크스는 베리 맥주를 마시면서 친해졌다. 그는 벨 쪽으로 음식을 밀었다. 얇게 썬 감자 위에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을 한 뒤, 돼지 목살을 두껍게 썰어 올리고 마지막으로 얇게 썬 양파와 치즈, 으깬 토마토를 얹어 구운 음식이었다.

일반 불이 아닌 불의 산의 심층 불을 가져다 구워, 가격이 비싸지만 인기가 높았다.



벨은 치즈 위에 칼을 꽂고 썰었다. 단단하게 굳은 치즈였지만, 입에 넣고 씹으니 부드러웠다.

“역시 얌구의 정원답네요. 오늘 제가 운이 좋네요. 맛있는 음식도 먹고, 쉽게 먹을 수 없는 베리 맥주도 실컷 마시고요. 늘 작업 마치고 맥주 먹으러 와요?”

“매일은 아니고, 대부분요. 아무래도 작업장 바로 맞은 편에 있으니까요.”



쿠크스가 캐러맬 맥주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처럼 늘 취하게 마셔요?”

벨은 손을 들어 초코 베리 맥주를 주문한 뒤, 접시에 덜어진 고기를 찍었다.

“아뇨. 요즘 작업량이 늘어서요. 오늘도 새벽부터 열매를 분류했거든요.”

쿠크스는 올리비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올리비에가 안쓰러운 눈으로 쿠크스를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얘가 쓸데없는 거에 호기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고생을 사서 해요.”

“왜요? 저도 호기심이 많아서 몸이 바쁘거든요.”


벨이 직원의 손에서 맥주를 받아 들며 말했다. 쿠크스는 한숨을 푹 쉬었다. 붉어진 얼굴을 손에 괴고 머리카락이 짧은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말했다.


“그날, 제가 괜히 그 배에 들리자고 해서 사단이 났죠.”

벨은 입으로는 맥주를 마시면서 눈은 쿠크스의 입을 향해 있었다. 쿠크스의 얘기는 동료와 함께 배에서 도망치면서 싱겁게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 작업장에 도착해 베리 열매를 분류하면서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다.



올리비에는 여전히 쿠크스를 보고 웃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보며 쿠크스는 맥주를 벌컥 들이마셨다. 그의 손에 들린 맥주가 탁자에 쿵 찍히더니, 쿠크스의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 쇠 통 안으로 베리 열매를 부었는데 뭐가 함께 들어갔는지 아세요?”

그는 목이 매이는지 다시 맥주를 마셨다.



벨은 쿠크스의 다음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맥주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웬 검고 동그란 게 쇠 통에서 빙글빙글 돌더라고요. 처음에는 그게 열매 훔쳐먹는 단순한 쪼가리 귀신인 줄 알았죠. 그런 거야 워낙 많이 봤으니까, 그물로 건져 올려 내다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죠.”

쿠크스는 눈썹을 미간으로 모으며 말했다. 그는 퐈이야 볼트를 입에 던져 놓고 포크를 쥔 손을 떨었다.


“제가 그때 같이 있었어요. 쿠크스가 전원을 내리고 그물 손잡이를 잡고 쇠 통 안으로 얼굴을 숙였어요. 검은 게 쇠 통 벽에 붙어 있었으니까요. 수월하게 꺼내겠다 하고, 저는 열매를 수건으로 닦고 있었죠. 근데 비명이 들렸어요. 돌아보니까, 검은 게 쿠크스 얼굴에 붙어서 관자놀이를 뜯고 있었어요.”

쿠크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올리비에는 입술을 꽉 깨물고 손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럼, 그걸 어떻게 떼어냈어요?”

벨은 손에 쥔 맥주를 옆으로 밀었다. 맥주 거품 밑에서 검은 초코소스와 베리 열매가 섞여 밑으로 가라앉았다.

“애 좀 먹었죠. 처음에는 막대기로 내리쳤는데 꼼짝도 안 했어요. 오히려 전구알처럼 큰 눈으로 저를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좀 섬뜩했죠. 보통 귀신이면 막대기로 찌르거나 치면 달아나죠.”

“귀신이라도 반항하는 놈도 있잖아요. 힘센 놈도 있고요.”

“아니요. 보통의 경우라면 저희도 워낙 많이 상대해봐서 쉽게 물리치죠. 그리고 베리 열매 숲은 결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강한 놈을 상대할 만한 무기나 방법이 필요하지 않죠.”



올리비에는 쿠크스의 관자놀이부터 옆 머리까지 쭉 이어진 선을 벨이 볼 수 있게 그의 얼굴을 잡고 돌렸다.

“여기 좀 보세요. 깊게 파여있죠. 그놈 이가 어찌나 강한지, 막대기로 치다가 제 손도 먹힐 뻔했어요.”

올리비에의 손에도 연하지만 붉은 반점이 찍혀 있었다. 벨은 점처럼 찍혀 있는 상처를 자세히 보기 위해 올리비에의 손을 잡았다. 쿠크스가 벨의 보라색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올리비에의 상처는 뾰족한 무언가로 찔린 것 같았다.

“이에 물리거나 뜯긴 자국은 아니네요.”

“그놈의 네모난 이가 몸 만해서 앞으로 공격할 수 없었죠. 대신 그놈의 등을 쳤어요. 그랬더니 갈고리 같은 꼬리로 제 손을 찔렀어요.”

“꼬리? 그놈은 몸을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군요. 보통 그런 귀신은 뾰족산이나 지옥산에 있을 텐데.”



벨의 눈빛이 거만하게 바뀌었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는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죠. 일단 사자님은 우리가 어떻게 그놈을 떼어냈는지 궁금하신 거잖아요. 제가 놈에게 붙들려있는 사이에 올리비에가 작업장 밖으로 뛰어나가 불을 가져왔어요.”

쿠크스는 자신의 앞에 있는 벨과 올리비에의 손을 잡고 떼어내며 말했다. 그리곤 오른손으로 마시던 맥주를 들어 벨의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날 일을 생각하니까 목이 타네요.”

벨도 맥주잔을 들어 쿠크스의 잔에 부딪고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잔을 먼저 비운 쿠크스가 얼른 입을 열었다.

“올리비에는 그놈 몸에 불을 갖다 댔어요. 놈은 몸을 조금 움찔할 뿐이지, 제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올리비에의 공격이 거세질수록 제 옆얼굴에 이를 더 깊게 묻었어요.”

쿠크스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상처에서 통증이 느껴지는지 눈을 찌푸렸다.



“올리비에가 안 되겠는지 얌구의 정원에서 불쏘시개를 들고 왔어요. 그 모습이 마치 전사 같았어요.”

쿠크스는 옆 눈으로 올리비에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놈에게 얼굴을 먹히고 있는데 보이던가요?”

벨은 처음보다 얼굴이 더 진해지고 있었다. 포도처럼 진한 보라색이었다.

“왠지, 그랬을 것 같았어요. 왜냐면 놈이 올리비에의 두 번째 공격에 얼굴에 박았던 이를 뺐거든요.”

“보통 평범한 불이 아니었나 보군요.”

“네. 얌구의 정원에서는 일반 불이 아닌 불의섬 정상에서만 채취할 수 있는 나무와 불을 쓰니까요.”



벨은 손을 들어 맥주를 한 잔 더 시켰다. 여섯 잔째였다. 고무장갑을 낀 것처럼 연한 분홍색 팔이 벨 앞에 맥주를 놓았다. 얌구였다. 그는 얼굴과 몸이 연한 분홍색인 남자였다. 얌구가 이마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곱슬 머리를 넘기며 말했다.



“그때 얘기를 하는구만. 덧붙이자면 그날 내가 한 달에 한 번 산에 갔다 오는 날이었어. 아주 따끈따끈한 불을 장작에 붙여 화로에 넣는데 올리비에가 뛰어오더군. 다급해 보였어.”

“얌구가 화롯불에 고기를 꽂아 굽고 있었어요. 너무 급한 나머지 말을 못했어요. 제가 불을 쳐다보고 얌구를 쳐다보자 바로 손에 들고 있던 꼬챙이에 불을 붙여 줬어요.”

올리비에는 마치 꼬챙이를 든 것처럼 손을 들었다. 그러더니 손으로 뭔가를 찌르는 시늉을 했다.



“다시 작업장으로 돌아가니 쿠크스가 손으로 놈의 몸을 붙잡고 버둥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대로 달려가 놈의 몸에 꼬챙이를 꽂았어요. 그랬더니 놈의 검은 몸이 뒤로 나가 떨어졌어요.”

벨은 마시고 있던 맥주를 식탁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쿠크스의 얼굴에 붉은 맥주 시럽이 튀었다. 얌구도 놀라 몸을 뒤로 뺐다. 벨이 말했다.



“몇 번째 산의 불이었나요?”

“세 번째 산이요. 날씨에 따라 고르는 불이 다른데, 그날은 폭풍우가 오고 난 뒤라 불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어. 그래서 좀 위험 했지만, 늘 불이 타오르는 지옥산으로 갔지.”



벨은 자신이 먹고 있는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불에 녹은 치즈가 고기 위에 굳어 있었다. 반으로 썰려 있는 고기를 포크로 찍어 입에 넣었다. 고기를 씹는 벨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옥산의 불을 써서 그런지 고기가 식어도 부드럽네요.”

벨의 말에 얌구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양쪽 겨드랑이에 끼워 넣었던 팔을 풀어 벨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날 힘들게 산행한 보람이 있군. 지옥산이 불의산보다 경사는 완만한데, 더 위험하잖나.”



그 말을 끝으로 얌구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달의 몸이 어둠에 환하게 빛나는 밤에도 얌구의 정원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밤 열두 시가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올리비에는 천장에 붙어 있는 조명 밑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쿠크스는 혀가 꼬이기 시작했다. 벨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벨 혼자 마신 맥주잔이 한 쪽 벽에 탑처럼 쌓여있었다.



“그럼, 그놈을 떼어낸 뒤 어떻게 됐습니까?”

벨은 입가에 묻은 거품을 보라색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쿠크스는 바닥으로 처박히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의 얼굴이 베리 맥주처럼 붉었다.

“아아.. 그놈을 잡을 생각을 못 했어요. 왜냐면 제 얼굴에서 피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응급처치가 급한 상황이었죠. 그놈이 다시 덤빌까 봐, 올리비에가 한 손에 꼬챙이 들고 다른 손으로는 제 몸을 붙들고 뒷걸음질 쳤죠.”

쿠크스는 졸고 있는 올리비에를 감기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곤 그대로 얼굴을 탁자 위로 숙여버렸다.



벨은 얌구의 정원을 걸어 나왔다.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밖에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얌구의 정원에서 밥을 먹고 가게 안쪽에 있는 얌구의 침실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나왔다.


벨은 보라색 얼굴을 들었다. 진한 포도색 얼굴이 달빛을 받아 잠시 제 얼굴빛으로 돌아왔다.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숲으로 들어갔다. 나뭇잎 하나도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 밤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과 열매를 밟는 벨의 발소리만이 밤의 어둠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의 발 뒤로 어둠 속을 걸어들어오는 또 다른 발소리가 있었다. 그것은 바람처럼 가볍고 부드럽게 벨 앞에 섰다. 벨의 눈에 앞이 뾰족한 발 두 개가 들어왔다.



“···?”



벨은 목 너머로 올라오는 신물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길쭉하고 둥근 무언가가 눈앞을 지나갔다. 그대로 벨의 의식은 끊겼다.


나무 몽둥이처럼 굵은 다리가 뾰족한 발을 앞세우고 걸어갔다. 그의 다리 뒤로 커다란 천에 포도알 얼굴이 감싸여 있었다. 감긴 두 눈이 마치 요람에 태워진 아기처럼 포근해 보였다. 포도알 얼굴을 태운 검은 요람은 축축한 땅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요람을 끄는 손이 분주했다. 벨을 땅에 아무렇게 놓은 뒤, 미리 준비한 삽으로 물에 젖은 땅을 팠다. 술에 취한 벨을 위한 깊고 어두운 침실이 베리 숲 안에 마련되었다.



벨의 얼굴이 푹 파인 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위로 솜처럼 부드럽고 물컹한 흙이 뿌려졌다. 마지막으로 벨의 엉덩이 근처로 베리 나뭇가지로 엮어서 만든 보호대가 끼워졌다. 벨의 임시 보호자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벨을 두고 숲을 떠났다. 그는 아무도 오지 않는 숲 안쪽, 달의 몸을 가리는 키 큰 나무들의 보호를 받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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