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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박욜레 님의 서재입니다.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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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박욜레
작품등록일 :
2021.12.12 20:38
최근연재일 :
2021.12.23 21:44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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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추천수 :
2
글자수 :
34,164

작성
21.12.15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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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4화 - 풍천역의 위기

DUMMY

아침이 되자 이장 준영이 예상대로 새벽녘에 밭에 나가기 전 세 사람을 깨우러 마을 회관으로 왔다. 세 사람은 준영이 깨운 덕에 일어나 회관 화장실에서 간단히 씻고 난 뒤 역으로 가 문을 열었다. 조금 뒤. 풍천역에 들어올 강릉 발 동대구행 무궁화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문은 통제실에서 열차가 잘 들어오게 점검을 하고 만두와 형우가 나가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열차가 들어오기는 했는데 문제는 아무리 첫차라고 하지만 아무도 열차에서 내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겨우 영주에 나물 팔러가는 할머니 한 분만 탈 뿐 이었다. 오늘따라 풍천역의 분위기는 사뭇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열차의 문이 닫히고 출발하자 형우 바로 옆에서 한 숨이 들렸다. 한 숨의 주인공은 바로 선택이었다.


“아이고. 이러니 역을 닫는다카는 소문이 나돌지.”


“어, 할아버지? 어제 댁은 잘 들어가셨어요?”


선택은 어제 막걸리를 그렇게나 마시고도 멀쩡해 보였다.


“내가 나이는 80이나 먹었어도 정신도 맑고 몸도 말짱하다. 니는 괜찮더나?”


"아.... 예. 아침도 차려 주셔서 먹고 왔어요."


풍천역에는 2시간 10분이 지나야 다음 차가 들어오는 탓으로 형우는 짬을 내 선택을 따라 그의 슈퍼로 갔다. 형우는 선택에게 따듯한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할아버지! 혹시 따듯한 두유 있어요?”


“있어봐라. 저번에 한 박스 얻어다 놨는가 모르겠네.”


선택은 뜨거운 냉장고에서 두유를 꺼내 형우에게 주고 자신도 한 병을 꺼냈다.


“같이 마시자. 두유는 내가 사는기다.”


형우는 두유를 마시다가 선택의 과거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혹시 할아버지는 젊을 때 뭐 하셨어요?”


“내야 여기 태어나 살다가 태백에 광산을 하나 사가지고 광산업을 했었지.''


"광산업을 하셨어요? 돈이 꽤 있으셨나봐요?"


"그 때는 태백에 사람이 바글바글 했데이. 태백역 앞에 가면 광부들이 온천지에 얼굴에 시까맣게 석탄이 묻어가 술집이야 밥집이야 들어가는 사람이 많았지. 내도 엄연히 60명 광부 쓴 엄연한 사장인기라.”


“그랬는데요?”


“그러다가 가스통 나오제. 요새는 보일러도 나오제. 누가 가스 중독되고 몸에도 안 좋은 연탄을 쓰겠노. 그러다 보니 연탄을 안 만드니까 석탄 찾는 회사도 줄어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만치로(처럼) 광산을 닫아버리고 고향에 아예 눌러서 산기라.”


“그럼 여기 슈퍼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데요?”


“내 친구 하나가 5년 전에 죽은 게 하나 있는데 가가 여기 주인이었거든. 죽기 전에 아파서 아들내미가 아버지 병 나사 준다고 서울로 델고 갔는데 그 때 그 자슥한테 돈을 주고 산 거라.”


“아. 그러셨는지는 전혀 몰랐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손해였다 싶지. 내는 마 그냥 늙어서 쪼맨하게 소일거리로 할라고 했더만은 동네 사람들 다 늙어 죽어삐고 젊은 얼라들은 전부다 읍내에 도시에 나가서 살제. 그러니까 여기 손님도 가면 갈수록 안 오고 그렇지. 괜히 샀는기라.”


역전에서 슈퍼를 하는 선택의 한 숨은 농촌의 현실 그 자체였다. 줄어드는 인구에 나이 드신 노인들도 다 돌아가시고 귀농이라 해 봐야 겨우 1, 2명이니 열차를 타는 사람이 줄어 직접타격을 맞는지라 시골 간이역의 역전슈퍼를 운영하는 선택에게는 쓸쓸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8시 반이나 되었을까. 형우는 다시 역으로 돌아가 고무양동이에 물을 받고 대걸레를 가지고 가서 화장실을 청소했다. 청소 아주머니 하나 안 보내주는 시골 간이역에서는 역무원이 화장실 청소를 하는 건 평범한 일상이자 풍경이었다. 진문이나 만두가 사람 좋은 선배라 돌아가면서 화장실 청소를 한다지만 다른 곳 형편은 어떨지 모를 일이었다.


다시 시간이 얼마 지나서 10시 반. 열차가 지나가고 다시 역에는 적적함이 흘렀다. 미리 내일 표를 사러 온 마을 주민에게 표를 팔고 난 진문이 형우에게 왔다.


“형우 군. 방금 열차 이제 막 떠났으니까 전화 해봐. 아직 다음 열차 들어오려면 3시간 정도 남았어. 번호는 여기 적어놨어.”


"네. 역장님."


형우는 바로 철도청 직통번로호 전화를 했다. 형우는 행여나 전화를 하다 실수를 할까, 아니면 혹여나 윗선에 전화를 걸었다고 징계를 받지 않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여보세요. 전화 받았습니다. 여기는 철도청 여객관리반입니다만 어디에 누구십니까?”


형우는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이야기 해 보았다.


“아....네!! 전 강원관리본부 풍천역의 역무원 박형우입니다! 뭐 좀 여쭤 볼까 하고요.”


“무슨 일이시죠?”


“2005년 3월 7일에 폐역이나 여객영업 중단 역들에 대한 명단이 작성 된 것으로 아는데요.”


“네. 그렇죠? 근데 풍천역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으셔서 전화를 하신 겁니까?”


“네. 주민 분들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하셔서요. 여기가 교통적으로 오지라서 여객영업이 중단되면 곤란하거든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찾아보고 말씀드릴게요.”


전화를 받은 철도청 사무원은 컴퓨터 서류를 검색해서 풍천역의 정보를 찾았다.


“아.... 박형우 역무원님?”


“네네! 뜨나요?!”


“네. 일단 풍천역은 ‘심사중’이라고 뜨네요. 일단 폐역이나 여객영업이 중단되는 역들은 곧 발표가 될 겁니다.”


“발표는 언제 되나요?!”


명주는 시간표를 확인했다.


“으음.... 오늘이 12월 18일 이니까 1월 중순에 발표 될 거 에요. 공지는 코레일 홈페이지에 띄워 질 건데 그 전에 역으로 공문이 갈 겁니다. 원래는 기밀사항이라서 알려드리지 않는건데 같이 철도청 한솥밥 먹는 처지라서 알려드리는 거 에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우가 전화를 마치자 진문은 궁금해서 옆으로 와 말했다.


“뭐라는데?”


“풍천역은 심사대상이라서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데요. 이미 폐역이나 여객 영업이 중단 될 역들은 철도청에서 곧 발표할 거라 하더라고요.”


“으음..... 갈 수록 첩첩산중이로구만. 일단 저녁에 회관에 모이자고. 내가 이장님께 연락을 해 둘게.”


그렇게 저녁 어스름에 마을 회관에 풍천리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풍천역에 대한 문제는 풍천리 사람들에게는 중대한 문제였다. 그래서인지 어제 오지 않은 사람들 까지 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자 준영이 말했다.


“자. 좀 조용히들 해 주이소! 역장님이랑 박형우 역무원 총각이 할 말이 있다카이 들어 보입시다.”


진문은 말 한마디 없이 바로 형우에게 떠 넘겼다.


“저는 아는 게 없습니다. 통화는 여기 형우 군이 했으니 형우 군이 잘 설명해 줄 겁니다.”


“역장님?!”


“사실이잖아. 형우군이 마을 분들께 천천히 설명을 드려.”


형우가 우물쭈물하자 영자가 말했다.


“우리는 뭐라고 부산시럽게 이야기 하면 알아 묵지도 못하니까 딱 중요한 것 만 간추리가 이야기 하이소.”


“네네...! 저..... 풍천역이 폐역 될 지도 몰라요!”


얼떨결에 형우가 말을 해 버리자 마을사람들은 수근 거렸다. 무엇보다도 뒤쪽 구석 한 할아버지는 놀라서 소리를 쳤다.


“뭐라꼬오?! 역이 뭐 으째?”


그 할아버지는 한 눈에 봐도 연세가 많아보였다. 할아버지는 숨을 헐떡거렸다. 그러자 마을의 젊은 농부인 달래가 할아버지를 진정시켰다.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저랑 집으로 가실래요?”


진문과 형우가 놀라자 준영이 설명했다.


“아. 저 영감님은 박지남 영감님이라고 이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분입니더. 저기 달래 총각 할아버지 아이가. 한 번씩 오락가락하는 양반이니 신경쓰지 말고 계속 하소.”


“아. 네. 계속 할게요.”


형우는 계속 말했다.


“확실한 건 아닌데 보류라서 심사대상에 포함이 되어 있어요. 어떻게 될 지는 저도 장담을 못 드려요.”


그러자 상희는 방방 걱정을 했다.


“우짜면 좋노... 역이 문을 닫아삐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굶어 죽는 거 아이가? 으이?”


선택은 상희를 나무라며 형우를 재촉했다.


“아따 참말로, 청송댁아! 아직 확실치도 안하는데 지금 초치는 기가? 역이 폐역이 될 지도 모른다는 거 아이가? 된다는 게 아이라카이. 그제?”


“네. 심사 대상이라서 저도 확답을 못 드려요.”


“그라면 그럴 가능성은 어느 정도겠는교?”


“저도 이장님께 확답은 못 드릴 수 밖에 없는 게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풍천역은 교통수단으로 유일한 게 기차역이에요. 발표는 2~3월 중으로 하니까 저희 역무원이랑 주민분들이 나서서 탄원을 하고 사정을 설명하면 잘 해결 될 지도 몰라요.”


“그럼 가능성이 높다는기네요?”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심란했다. 겨우 40여명 사는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자가용 하나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을 사람들에게 기차는 밖의 세상과 통하는 중요한 소통로였기 때문이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입시다.”


준영이 진문과 형우를 데리고 나가서 말했다.


“역장님이랑 역무원 총각도 잘 알지만은 우리 역이 문을 닫으면 먹고 살 수가 없다아입니까. 우리 마을에 어디 쌀이라고 농사 짓는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괴기나 잡고 과일이나 묵고 살 수고 없는 일이고. 내가 어떻게 하믄 됩니까?”


그러자 형우가 뭔가 적힌 종이를 주며 말했다.


“탄원서 초본이에요. 마을 분들의 지장이나 싸인을 여기에 가득하게 적어 주세요. 이걸 받아서 내일 주시면 제가 팩스로 철도청 본사에 보낼게요.”


"그래요. 마을사람들한테는 책임지고 내가 받아서 내일 가져다 줄꾸마."


예정대로 다음 날이 되자 준영은 마을 사람 47명의 싸인과 도장을 받아왔다.


"여기 동네사람들 중에서 마을에 실제로 사는 사람 전부다 모아가꼬 다 도장 받아 왔소. 이래하면 되는 거 맞지요?"


"네. 나머지 부족한 부분은 제가 살을 붙여서 보낼게요."


준영은 형우의 손을 꼭 잡았다. 그에게는 마을 이장으로써 풍천리를 책임진 사명감이 있었기에 그의 손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잘 좀 부탁하입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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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원서


풍천역을 2005년도 상반기 폐역 또는 여객열차 통과에 대한 심사대상에서 풀어주십시오. 요청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풍천역 인근에 교통이 없음. 시골길 하나뿐인데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가는 폭이라 버스와 같은 대형차량이 들어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님.


2. 풍천역은 연 승하차 승객수가 각 3000명을 상회하는 역임. 마을에 규모에도 불구하고 역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증거임.


하여 아래에 풍천리 주민 전원과 풍천역 역무원 일동 50명은 아래와 같은 탄원서를 제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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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역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될까. 마을사람들의 애절한 탄원서에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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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화 - 담판 21.12.19 13 0 11쪽
6 5화 - 여객영업 중단 21.12.17 20 0 13쪽
» 4화 - 풍천역의 위기 21.12.15 17 0 11쪽
4 3화 - 마을잔치 (하) 21.12.15 22 0 8쪽
3 2화 - 마을잔치 (상) 21.12.14 31 0 7쪽
2 1화 - 겨울 눈 21.12.12 57 1 8쪽
1 등장인물 소개 21.12.12 57 1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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