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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박욜레 님의 서재입니다.

간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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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박욜레
작품등록일 :
2021.12.12 20:38
최근연재일 :
2021.12.23 21:44
연재수 :
8 회
조회수 :
231
추천수 :
2
글자수 :
34,164

작성
21.12.12 20:54
조회
56
추천
1
글자
8쪽

1화 - 겨울 눈

DUMMY

경상북도 최북단 마을 풍천리. 풍천리는 내가 나고 자란 곳이다. 풍천리의 지명은 여름에 바람이 잘 들고 마을 옆으로 강이 흐른다는 의미에서 오래전에 풍천리라고 지어졌다고 한다.


이 곳 풍천리는 옛 부터 산세가 험하고 교통이 불편해 영동선이 지나가는 곳에 풍천역 단 하나만이 주민들의 교통수단 이었다. 물론 차가 지나다니는 골목길 하나가 있기는 했지만 거기야 승용차 하나 지나가는데다 포장된 도로도 아니라서 너무나도 초라한 길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날. 여기는 강원도와 인접한 곳 이어서 눈이 내렸다. 눈이 보일 정도로 쌓인 길을 한 할머니가 스카프를 두르고 목도리를 한 채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싸 들고 굽은 허리로 겨우겨우 역으로 걸어온다.


풍천역의 신출내기 역무원 형우는 혹시라도 역으로 오다가 눈에 미끄러질 손님들 생각에 마당에 눈을 쓸다가 할머니가 오는 모습을 보고 빗자루를 옆에 놓고 달려왔다. 그 할머니는 역 근처에 사는 선희 할머니였다.


“아휴. 할머니 여기까지 오늘 또 오신 거 에요? 전화를 하시지 그러셨어요.”


선희는 비닐을 건넸다.


“심심해서 돼지기름에 김치전 좀 부쳤다. 심심하면 역장님이랑 나눠 묵거라.”


형우는 선희를 역 안으로 안내했다.


“추운데 차라도 드시고 가세요. 이번에 역장님이 대추차 가져 오셨어요.”


선희 할머니는 언제나 그랬다는 듯이 역무실로 들어가려 한다.


"빨리 드가자 그라믄."


역무실 안에는 역장인 진문이 일을 보고 있다. 그도 마을에서는 인심 좋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진문은 바로 선희를 따듯하게 대했다.


“아이고. 할머니 오셨네요? 대추차 드릴까요?”


“대추차 좋지. 안 그래도 이 총각이 줄라꼬 합디다. 그리고 지금 태백 가는 기차 표 좀 끊어 주소. 오랜만에 친구가 연락이 왔는데 얼굴 좀 보자고 그러네.”


선희는 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는 복주머니 지갑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1000원 짜리 지폐와 잔돈들을 내 놓았다.


“2500원 맞지요?”


"예. 맞습니다."


진문은 2500원을 세어 보고는 차와 기차표를 같이 주었다. 선희는 표를 주머니에 넣고 차를 손에 쥐고 자리에 앉는다. 그러자 진문이 안으로 권했다.


“추우실텐데 안으로 들어오세요. 기차 오려면 30분 남았어요.”


"난로라도 때우고 있드나?"


"예. 어서 들어오셔요."


선희가 안으로 들어가자 큼큼한 기름 냄새를 풍기는 옛날 난로가 나온다. 난로 위가 얼마나 뜨거운지 고구마와 마른 오징어가 올려 져 있다. 선희는 오징어를 보더니 옛날 추억에 젖었다.


“내도 20년 전만 하더라도. 아니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른 오징어 고추장 찍어가 잘 묵었는데 인자 늙어서 이가 시원치 않다 보니 이제는 딱 쳐다보기만 하고 먹지도 못하네.”


진문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웃었다.


“허허. 나이 들면 다 그런 법이죠.”


진문은 출출한 배를 채우고자 비닐 봉지를 뜯어 선희가 가져온 전을 그냥 손으로 떼서 먹었다. 추운 겨울이다 보니 선희가 바로 부쳐 왔는데도 식었지만 김치전에는 돼지기름에서 나오는 때깔 좋은 윤기가 흘렀다. 진문은 한 입 먹고 선희를 향해 웃어보였다.


“식어도 맛있네요. 하하.”


“잘 먹어주니 항상 고맙네. 내사 마 우리 역장님이 좋아서 이래 안 가오나.”


얼마 뒤. 바깥에 승강장 잡초를 정리하던 만두가 들어왔다. 그녀는 바로 들어와 난로에 차가운 손을 녹였다.


“할머니 오셨어요?”


“니는 어데를 그래 갔다 오노?”


“승강장에 다 죽은 잡초가 있어서요. 보기라도 좋으라고 정리하고 오는 길이에요.”


"부지런도 하다. 자. 김치전 가져왔다. 좀 묵어봐라."


선희는 만두가 항상 성실해서 좋아했다. 선희는 오늘도 만두를 칭찬했다.


“야는 참 착하데이. 항상 일도 잘하고 부지런 하고. 내가 역을 시집 온 뒤로 근 50년 다니지만은 다른 처자들은 여기 오면 춥다고 안하고 여자라고, 귀찮다고 안 하드만은 야는 참 일을 잘해.”


만두는 부끄러워했다.


“아이 왜 그러세요.”


“뭘. 일 잘하니까 할머니가 칭찬하시는 건데.”


진문은 만두를 치켜세웠다. 다른 손님이 열차 시간이 되어가자 하나 둘 나타난다. 진문은 다시 매표창구로 돌아선다.


“강릉 가는 거 일반석 1장이요.”


“예. 11700원입니다.”


"여기 있습니더."


"대추차 담은 거 있는데 한 잔 타 드릴까요?"


"아입니더. 유자차 마실라꼬 담아왔어예."


진문은 사무실을 만두에게 맡겨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기 만두 양. 나 슈퍼에 가서 담배 좀 사 올 테니까 그 때 까지 잠시 표 좀 끊고 있어.”


“저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진문을 따라나선 형우도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서 그는 뭔가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기차가 좋아 역무원이 되었다. 붐비는 역에서 시끌벅적하게 일하는 역무원이 아닌 시골의 간이역에서 느긋하게 시골의 공기와 정을 느끼며 일하고자 했던 형우의 뜻대로 그는 경상북도의 작은 간이역 풍천역에 처음 부임했다. 누구보다도 기분이 좋을 밖에.


형우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마침 강릉행 열차가 만두의 목소리로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왔다. 시골 간이역이다 보니 안내방송 마저도 사람이 해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형우는 들어가 선희를 모시고 나왔다.


“할머니. 어서 나오세요. 기차 곧 온데요.”


선희는 지팡이를 집으면서 걸어 나왔다. 선희는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다 뜬금없이 형우에게 말했다.


“지금 이게 막차가?”


“아니요. 5시 46분에 오는 거 태우고 나면 끝나요.”


“그럼 니 오늘 마치거든 저녁에 역장님하고 마을 회관에 쫌 다녀 오니라.”


“예? 마을 회관에는 왜요?”


“오늘 회관에서 잔치를 한다는데 거기 가서 뭐 좀 얻어 묵고 온나. 막걸리도 한 사발 하고.”


“괜찮아요. 집에 가야죠.”


“혹시 모르니까 오라고 하면 가 봐라. 잠깐 들리다가도 못 가나?”


"네네. 알았어요. 역장님이랑 나중에 가 볼 게요."


마침 무궁화호가 조명을 키고 경적을 울리며 들어온다. 형우는 달려간다. 형우는 기차에 신호를 보내고 기차가 서기를 기다린다. 기차가 멈추자 기차에서 내린 승무원과 형우가 인사를 나누고 타고 내리는 사람을 확인한다.


"고생 많으십니다."


"네. 감사합니다."


기차에 선희와 함께 한 명이 올라타고 다른 한 명이 내린다. 내린 사람은 풍천리 이장인 준영이었다.


준영은 얼굴이 까무잡잡한 피부의 사람이었다. 본래 까무잡잡한게 아니라 땡볕에 농사를 수십 년 짖다보니 피부가 타 버려 그런 것이었다.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는 준영에게 형우가 달려가 짐을 들어주었다.


"아이고 무거버라....!"


“이장님! 저 주세요. 제가 조금 들어 드릴게요.”


"이래 안해도 되는데. 그럼 저기 역 입구까지만 들어다 줄랍니까?"


형우가 막 짐을 들어 맞이방으로 가자 마침 진문이 담배를 사서 돌아왔다. 준영이 조금 쉬려고 자리에 앉고 만두가 물 한잔을 떠다 준다. 한 숨 돌린 준영은 진문에게 말했다.


“아 참. 역장님. 우리 동네에서 오늘 잔치를 하는데 마치고 시간 있으면 밥이라도 묵고 가이소.”


진문은 정중히 거절했다.


“아이 말씀만 해도 감사하네요. 근데 저는 집이 거리가 있어서 여기서 늦게 출발하면 큰일 나요. 집으로 가는 길이 하도 험해서 위험하거든요. 여기 애들이라도 데리고 가세요.”


준영은 진문을 어떻게든 초대하려고 했다.


“에이. 늦으면 우리 회관에서 이불 펴고 마 누 자소! 그라믄 내일 출근하기도 쉽다 아입니까.”


"그럴수야 있나요. 동네 분들께 폐 끼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형우는 마을 잔치에 가려고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그래요. 아까 기와집 할머니께서도 들렸다 가라고 하셨어요."


그 때, 마침 역으로 왠 방정맞은 아주머니가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역 앞에 수레를 놓고 달려온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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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 마을잔치 (상) 21.12.14 3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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