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환영합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셋트업(Setup) - 수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AAKHS
작품등록일 :
2017.07.07 03:11
최근연재일 :
2017.09.20 09:45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6,872
추천수 :
64
글자수 :
447,005

작성
17.07.07 10:00
조회
246
추천
2
글자
20쪽

셋트업(Setup) - 1편-3

DUMMY




에우로파가 신경질을 부리며 현장에서 몸을 돌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를 주시하는 몇 개인가의 시선이 있었다. 금속질 코팅이 된 듯 특이한 반사광을 가진 옷은 그들의 몸에 바짝 밀착되어 각자의 신체 곡선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상체에는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클록을, 더불어 허리 아래로는 마찬가지로 독특한 광택을 내는 금속질의 각반과 보호대를 차고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특이한 광택과 색상을 제외하면 얼핏 보았을 때에는 다른 모험자들의 장비와 큰 차이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한번에 중앙 제어탑만을 파괴하면 되지 않나? 왜 굳이 이런 귀찮은 작업을 하는거지?”


그들 중 유일하게 여성인 인물이 내성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질문하였다. 신장은 170중반 정도일까, 상체는 클록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가늘고 길게 뻗은 매력적인 다리 곡선이 그녀를 지나쳐가는 이들마다 한 번씩은 흘끔거리며 쳐다보게 하였다. 눈매는 대체로 가늘고 끝은 살짝 치켜올라가 있었고, 갸름하고 선이 얇은 얼굴의 양쪽 뺨을 감싼 적갈색의 단발머리는 좌우의 길이가 달라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글쎄요···”


사실 전혀 영양가 없는, 오히려 눈총만 받을 뿐인 대답을 굳이 하며 그녀의 옆에 있던 청년이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신장은 여성과 비슷하거나 아주 약간 커 보였으며 보랏빛 섞인 검은색의 머리칼의 청년은 제법 준수하게 다듬어진 짧은 머리모양을 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고의로 흐트러진 상태를 유지한 여성에 비해 복장의 매무새도 단정함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남자치고는 큰 눈망울이 안 그래도 젊다못해 어려보이는 그의 외모를 더욱 앳되 보이게 하였다.


“넌 언제나 ‘글쎄요’구나. 대체 아는 게 뭔데?”


남자의 반응을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여성은 곧바로 볼을 부풀리며 청년에게 쏘아붙였다.


“글쎄요···”

“으이구!”


청년이 한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하며 볼을 긁적이자 여성은 답답해 죽겠다는 듯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얌전히 있는 게 나았을 거다, 꼬마.”


여성과 청년의 대화에 재미있다는 듯 입가를 비틀며 다른 남성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는 꼬마가 아닙니다!”


입가에 짙은 담배냄새를 풍기며 옆에서 나타난 그의 신장은 180정도로 큰 편이었다. 굵고 각진 얼굴선에 적당히 뒤로 넘긴 머리모양과 더불어 짧은 턱수염을 기른 외모는 그에게서 완숙한 야성미를 느끼게 하였다.


“조사 결과. 제어탑, 1개소 파괴 직후는 다른 제어탑 파괴 불가.”

“헤에, 왜 그런데?”


여성의 의문에 답변을 해준 것은 또다른 사내였다. 호기심에 질문하기는 한다만, 여성은 대답을 한 사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제어탑. 파괴 시 내부 에너지 강제 전도. 그로 인해 타 제어탑의 내구도 일시적으로 급격히 상승. 안정에 시간 필요.”


그 커다란 덩치와 마치 석상처럼 굳어있는 인상으로 인해 조용히 있음에도 오히려 눈에 띄는 사내였다. 신장도 2미터를 넘을 정도인데다 다부진 근육질의 체격. 무엇보다 다들 밝은 톤의 피부색인 가운데 홀로 진한 갈색의 피부색인데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대머리라는 조합이 그가 아무리 조용히 있음에도 그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즉, 하나를 부수면 나머지는 일정 시간동안 부술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거구나.”

“추가. 중앙 제어탑의 경우 이미 내부에 에너지 충만. 평시에는 파괴 불가. 그러나 보조 제어탑 모두 상실 시 에너지 전도 대상 상실하여 폭주, 붕괴함.”


비교적 상세히 설명해주는 남성의 태도에 여성은 좌우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뭐···아무튼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거야? 무슨 단계별로 진행하는 옛날 게임 같네?”

“그런 셈이지.”


대머리 남성을 대신하여 짧게 대답한 갈색머리 남성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겼다. 이윽고는 품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어 궐련 형태의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어찌되었든. 이번 일에 있어 우리는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으면 돼. 굳이 쓸데없이 끼어들어 의외의 변수를 만들 필요는 없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윽고 짙은 담배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너진 제어탑을 둘러본 뒤 내성에 마련된 자신의 방에 돌아온 에우로파는 곧바로 통신 마법을 시도하였다. 그의 앞에 놓인 탁자 위에는 성인 남성 머리의 두 배 가까이 될 정도로 큰 투명한 수정구가 위치하고 있었다.


“뭐라고 말해야할지 원···”


푸념 섞인 한마디와 함께 에우로파는 수정구를 향해 짧게 주문을 영창하며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잠시 후 수정구 안의 빛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곧 사람의 형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히아스 님 직통입니다. 누구십니까?”


수정구 안에 비친 소년의 모습으로부터 아직 변성기가 채 지나지 않은 듯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우로파다. 스승님께 보고할 게 있다.”

“예.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금방 히아스 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소년은 에우로파를 향해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곧 수정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소년의 모습 대신 한 노인의 모습이 수정구 안에 비추어졌다.


“그래, 에우로파야. 일은 잘 되었느냐?”


에우로파의 인사를 받는 노인은 단정히 다듬어 가르마를 탄 머리모양이나, 절제 있게 깍아 꾸민 수염 덕분인지. ‘노인’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중년을 넘어가기 시작한 정도로 뿐이 보이지 않았다. 인자하고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힘있고 또렷한 눈매는 일순간 그가 사실은 젊은 청년이 아닐까 착각할 만큼 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하얗게 샌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눈가의 주름살이 그가 상당한 연배의 노인이 맞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이름인 ‘히아스’는 사실 그의 본명은 아니었다. 그것은 ‘영웅전쟁’당시 다른 세계에서 왔다고 알려진 대현자의 이름이었으며, 세계를 위협하던 파괴신을 처치하는데 크게 공헌한 그는 자신의 세계에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다른 이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후 그의 이름은 프로튼 왕국 제일의 마법사가 그 이름을 이어받는 전통이 생기면서 ‘히아스’라는 이름은 프로튼 왕국은 물론, 인간 최강의 마법사로서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그를 향해 에우로파는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스승님. 에우로파입니다. 보고드리겠습니다.”

“너답지 않게 허례허식을 챙기는구나. 용건만 말하거라.”


자신의 제자가 이렇게 정중한 말투를 쓸 때에는 상황이 어떠한지에 대해 이미 몇 차례 경험해 본 듯, 노인-히아스는 벌써부터 다소 인상이 굳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가 아닐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할 것 같습니다. 제어탑에 ‘테러’를 저지른 자, 아무래도 보통내기가 아닙니다.”

“테러?”


에우로파의 보고 내용에 앞서 그가 사용한 단어가 신경쓰였는지 노인은 그것에 대해 먼저 질문하였다.


“너는 가끔씩 이상한 단어를 쓰는구나. 그것도 네가 있던 세계에서 쓰던 말이냐?”

“예? 아아, 예.”

“그래, 아무튼 그 ‘테러’라는 단어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닌 것 같구나. 어디 이야기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우선 제어탑에 관한 건입니다.”


곧바로 에우로파는 그가 그날 낮에 보고 들었던 일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리고 그에 따라 히아스의 안색이 기묘하게 일그러져갔다.


“네 말대로라면 예삿일이 아니구나. 자칫하면 4년전에 있었던 그 사건보다도 큰 일이 벌어질테니.”

“예···”


에우로파에게 그 ‘4년 전의 일’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악몽과도 같은 날 중 하나였다. 그것을 이렇게 종일 언급해야 하다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참으로 재수없는 날이라고 생각되어졌다.


“네 보고는 잘 알겠다. 이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인해 보도록 하마.

“예, 감사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만 연결을 끊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며 에우로파는 통신을 마쳤다.





다음날, 무슨 일인지 에우로파는 제자들이나 하인들을 거느리지 않은 채 홀로 밖으로 나섰다.


“이럴때는 솔직히 거슬리거든.”


물론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수행원이나 부하들을 끌고 다니는 게 기본적으로는 그의 취향에 더 가까웠으나 이럴 때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불어 한편으로는 여간한 조무래기의 습격 정도야 혼자서도 거뜬하다는. 만용에 가까운 자신감 역시 그의 이러한 단독행동을 부추겼다.

그가 발길을 향한 곳은 도시 중심부 중에서는 구석측에 위치한 주점이었다. 3층이나 되는 큰 규모의 건물이었지만 무엇때문인지 주점 내부는 그다지 소란스럽지 않았다. 아직 한낮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곳에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웅성웅성


꽤나 많은 사람이 안에 있는 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겹 들려왔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보통의 주점과 달리 유쾌한 웃음소리나 고함에 가까운 큰 외침과 환호성이라던가. 으레 주점에 한 명 쯤 있을법한 음유시인이나 악사의 음악소리도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끼익


얇은 금박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스윙도어를 열고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금새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여전하군. 도저히 정이 안 가는 음침한 동네야.”


물론 주점이라는 곳이 도시의 시민과 떠돌이 노동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는 온통 용병이나 모험가로 보이는 인물들 뿐이었다. 그들은 각자 검이나 창 등 자신의 무기를 옆구리나 등 뒤에 차고 있었고. 번뜩이는 눈빛이나 분위기 등은 보통사람이라면 바로 겁을 먹고 위축될 정도였다.


“······”


입구 근처에 있던 몇몇 이들이 에우로파의 등장에 잠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으나 이내 관심없다는 듯 다시 자신의 할 일에 열중했다. 자신의 눈 앞에 놓인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든, 자신과 함께 온 동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든.


“오랜만이군 마스터. 여전히 장사는 끝내주게 잘 되는걸?”


에우로파의 인사에 카운터 측에 서 있던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텁수룩한 수염을 마치 머리 묶듯이 여러 개의 댕기를 꼬아서 멋을 낸 그는 보통사람에 비해 땅딸막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약 130~140정도에 팔다리가 굵고 짧았지만 뚱뚱하다기보다는 다부진 근육질이었다.


그는 드워프라는 종족으로, 인간들에 비해 키가 작지만 체구는 다부진 유사인류이다. 대부분의 특성에서 인간과 거의 차이가 없지만 그들은 보통 산 속에나 땅 속에 굴을 파고 생활하며, 대체적으로 투박한 말투와 호탕한 성격. 그리고 다른 종족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놀라운 손재주를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다. 개중 간혹 이 남자처럼 인간들의 도시에 내려와 장사를 하거나 여행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대부분 동족들을 위한 정보 수집이나 물자 보급 등의 일환으로 이러한 활동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너무 그렇게 차갑게 굴지 말라고. 우리 상회의 후원도 받는 사이면서.”

“흥. 공짜로 돈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생색 내기는. 그래서,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찾아온겐가?”

-텅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남자는 에우로파가 앉은 자리 앞에 거칠게 맥주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말로 그가 싫지는 않은 듯 자리에 앉더니 쌜쭉 입가를 꿈틀거리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뭐기는. 이미 다 알면서.”

“흥. 또 귀찮은 사건을 덥석 물어버렸구만. 하긴 자네도 여기 책임자급 중 한 명이니 예상은 했지.”


드워프 남성은 주머니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연이어 다른 주머니에서 담뱃잎과 부싯돌을 꺼내 불을 붙이자 이내 자욱한 담배연기가 생겨났다.


“이번 일은 우리 측에서도 아직 확실한 정보가 없어. 하지만 몇 가지 정도는 짐작되는 게 있지.”

“뭔데?”


후우. 길게 한숨을 쉬듯 담배를 불며 드워프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삐걱거리며 낡은 나무의자가 들썩였다.


“그 수상한 녀석이 나타났을 때부터 우리 부하들이 녀석의 동태를 조사했지.”

“그래서?”

“거 분위기 잡을때는 보채지 좀 말라고!”

“그런 거 필요없고 빨리 핵심만 말해. 난 바쁜 사람이야.”

“누군 한가해서 너와 농담 따먹기나 하려는 줄 아냐?”


드워프 남성은 과장되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이내 피식 웃어버렸다. 에우로파 역시 입가를 쌜쭉이며 맥주잔을 기울여 한입 머금었다.


“그 녀석은 뱀파이어다.”

“뱀파이어??!”

“우리 생각이지만, 녀석은 뱀파이어의 고유능력을 사용한 공격으로 경비병을 살해한 것 같다.”

“뭐 그런···”


뱀파이어는 일명 ‘밤의 일족’이라 자칭하는 이들로, 특히 다른 종족과 비교하여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은 ‘흡혈’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간다는 점이었다. 일정 이상의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는 박쥐나 늑대 등의 다른 동물, 혹은 안개 등의 자연적 존재까지로도 변신할 수 있으며, 피나 그림자를 이용하는 등의 종족 고유능력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매우 사납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자존심이 강하며 무엇보다 적극적으로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여 보통은 조용한 곳에 숨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분명 일전에 보았던 어떤 자료에는 뱀파이어를 그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고귀하신 밤의 일족님들께서 뭐가 목적이길래 이런 요란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거지?”


맥주잔을 들어올리려다 이내 그것을 다시 내려놓으며 에우로파가 질문하였다.


“글쎄···그것까진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의 ‘마도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다짜고자 제어탑을 날려버리면 최종적으로는 엄청난 대폭발이 일어난다고. 마도기를 손에 넣기도 전에 자신들도 폭발에 휩쓸려 먼지가 될 텐데. 설마 그걸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제어탑을 날릴 녀석들은 쓰고 버리는 장기말이라도 되는 거야?”

“그것까진 나도 모르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끄음···”


에우로파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추측해보기 시작했다. 녀석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사실 이곳이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영지였고, 자신들의 영토에서 급성장한 이 도시가 마음에 안들어서? 하지만 애당초 이곳 세인스 시는 수백 년 전부터 인간들의 영역이었다. 이제 와서 그런 행동을 하기엔 너무 반응이 늦지 않나?


“설마 고대의 일족이 어떤 이유로 잠들어있다가 최근에야 눈을 떴다거나···하는 이야기는 아니겠지. 너무 뜬금없잖아.”

“자네 이야기도 가능성이 있지만 그건 아닐거다. 이 도시 주변에 대한 정찰은 이미 진즉에 끝나 있었다고. ‘영웅전쟁’ 당시 요새로 쓰던 낡은 성채나 시덥잖은 유적 몇군데가 있을 뿐, 뱀파이어의 지배계층이 있었을 법한 수준의 유적이나 성채 같은 건 없어.”

“즉, 과거부터 이 땅을 지배했다거나 한 녀석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거로군?”

“그런 거지.”

“이 도시에 원한이 있거나 하지 않는 이상에야···녀석들이 노리는 건 아마도 마도기겠지?”

“아까도 말했지만 그것까지는 모르지···아무튼. 틀림없이 놈은 뱀파이어, 그것도 상당히 고위의 존재일 거다.”


약간 부자연스럽게 말을 잠시 끊으며 드워프는 깊숙이 담배연기를 들이마신 뒤 내뿜었다. 에우로파와 드워프의 사이에 생겨난 희뿌연 연기구름을 에우로파는 입으로 불어 없애며 질문했다.


“후우···좋아, 놈이 뱀파이어라고 치자. 내가 알기로 뱀파이어는 목적없이 행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더군. 읽어본 책에 나왔던 내용을 언급하자면 놈들은 이익이 없거나 자신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하던데. 그렇다는 것은 놈 역시 무언가 목적이 있어서 이 도시를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네는 그 목적을 마도기라고 생각한다는 거고.”

“아마도.”


라는 것은 그도 거기까진 모르겠다는 것이렸다. 에우로파는 질문을 바꾸었다.


“녀석의 생김새는? 듣자하니 키가 꽤 크다고 하던데.”

“일단 체격이나 움직임 등으로 볼 때 남자인 것 같다. 키도 큰 편이고 체격도 좋아. 다만 놈의 구체적인 외모는 아직 몰라. 녀석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려고 다가가다가 셋이 죽었어···”


장래가 유망한 녀석들이었는데.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드워프는 거칠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알려진 그 자 외에 또다른 협력자나 패거리는 있나?”

“있지. 녀석이 제어탑을 날려버리자마자 두 명이 그놈 앞에 나타나더군. 우리 패거리의 세 녀석이 죽은 건 정확히는 그놈들 때문이지.”

“이런 썅···!”


역시 한 놈이 아니었군. 정말 욕 나오게 하네.


“한 놈은 그놈보다도 큰 덩치를 가진 거구였지. 반대로 다른 한 녀석은 보통보다 작은 체구를 가진 녀석이었어. 대략 각각 2미터와 170정도.”

“녀석들도 뱀파이어인가?”

“오히려 그놈들이 더 뱀파이어일 가능성이 높아. 그놈들은 확실하게 뱀파이어식 수법으로-그러니까 피와 그림자를 이용한 수법으로 우리 애들을 죽였으니까. 처음에 그 녀석이 녀석이 뱀파이어라고 생각되는 이유는 이후 나타난 두 놈이 뱀파이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지. 알려지기로는 뱀파이어는 자기들끼리만 행동한다고 하니까 말야.”


더 이상 들을 정보는 없을 것 같군. 그렇게 생각한 에우로파는 품 안에서 금화 몇 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둔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보 고맙군. 혹시 다른 걸 알게 되면 알려줘.”

“물론이지. 그런데 오늘은 한 잔도 하지 않고 그냥 가는건가?”


에우로파에게 건네었던. 하지만 정작 그는 단 한 모금 마신 맥주잔을 들어올리며 드워프가 말했으나 에우로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음에.”

“혹시 술이 고플 때 이곳으로 오라고. 우리 가게는 술도 일품이니까 말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지 손을 흔드는 것으로 인사말을 대신한 뒤 에우로파가 주점을 나서려는 순간, 돌연 뒤통수로부터 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빠악

“으큭···!”


순간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아팠지만, 간신히 의식의 끈을 놓지 않은 에우로파는 충격이 느껴진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소리질렀다.


“어떤 개XX야!”

-딸그랑


에우로파가 뒤로 고개를 돌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의 뒤통수를 가격했던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며 불투명한 소음을 내었다. 무심코 소리가 난 바닥으로 시선을 향한 에우로파는 그것이 청동제 맥주잔임을 확인하였다.


“어떤 망나니가 이런 걸 집어던진···!”


눈물나게 아프네 젠장. 어찌됐던 이걸 던진 녀석에게 똑같이 집어던져주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맥주잔을 집어든 에우로파는 순간적으로 헛바람을 들이켰다.


“이거···대단한데?”


맥주잔은 반으로 갈라져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무엇으로 자른 것인지 그 단면은 매우 매끄럽게 뻗은 직선이었다. 단면의 색은 청동 특유의 침침한 푸른 빛이 아닌, 절단면에 대고 숯이라도 문지른 듯한 칙칙한 검은 빛깔이었다.


“설마 반으로 자른 뒤 집어던졌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누군가가 던진 것을 검으로 받아내었다는, 그것도 깨끗이 두 동강을 내버렸다는 이야기인데. 그제서야 에우로파는 자신에게 (반토막이 난) 맥주잔을 날아오게 한 장본인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하였다.


“아···!!”


상대는 여자. 그것도 어린 소녀였다. 키는 에우로파의 턱밑 정도 오는 정도일까. 온통 칠흑같은 검은 색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는데, 몸에 딱 맞게 만든 옷이라서인지 그녀의 몸매 윤곽이 보일 정도였다. 트인 어깨와 짧은 치마 밑으로 길게 뻗은 팔다리는 아무리 여자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마른 편이라 생각할 만큼 가는 몸매였다.

선이 가는 갸름한 얼굴선에 다소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마치 루비같은 맑은 색을 가지고 있어 바라보고 있으면 빨려들 것 같았다.


“너는···”


등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블론드 머리. 무너진 제어탑에서 보았던 소녀였다.




작가의말

다소 수정되었다고는 해도 중복된 내용인만큼 그 부분까지는 분량을 늘리려고 합니다...


4화는 오후 4시 반에 업로드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0 파란펜촉
    작성일
    17.08.11 12:27
    No. 1

    크흠.. 블론드 머리 소녀라 ... 기대됨 ㅋ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7 AAKHS
    작성일
    17.08.11 12:41
    No. 2

    제 글의 특성상 외모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는건
    이 인물은 비중이 있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론. 얘도 주인공급 인물입니다.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셋트업(Setup) - 수정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 셋트업(Setup) - 1편-5 +2 17.07.08 150 1 15쪽
5 셋트업(Setup) - 1편-4 +2 17.07.07 159 2 17쪽
» 셋트업(Setup) - 1편-3 +2 17.07.07 247 2 20쪽
3 셋트업(Setup) - 1편-2 +4 17.07.07 296 3 20쪽
2 셋트업(Setup) - 1편-1 +6 17.07.07 389 3 12쪽
1 셋트업(Setup) - 1편-프롤로그 +4 17.07.07 663 5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