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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트업(Setup) - 수정판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AAKHS
작품등록일 :
2017.07.07 03:11
최근연재일 :
2017.09.20 09:45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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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67
추천수 :
64
글자수 :
44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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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7.0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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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셋트업(Setup) - 1편-2

DUMMY

프로튼 왕국의 귀족 중 한 명인 세인스 백작 가문의 영지인 세인스 시. 본래 이 영지는 이웃에 있는 소브런 제국과의 교역로 사이에 위치한 소박한 농경도시였다. 이 작은 농경도시는 두 국가 사이를 오가며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여관을 운영하고, 특산물인 밀과 맥주를 팔아 꾸려 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 작은 농경도시가 프로튼 왕국 내에서 첫째를 다투는 상업 도시로 뒤바뀐 것은 고작 몇 년 전의 일이었다. ‘한 명의 마법사’가 나타나서는 한 권의 기획서를 내밀었다. 영주인 데라이 사드 세인스 백작은 무슨 이유였는지 그 당돌한 계획을 받아들였고, 고작 몇 년만에 세인스 시는 프로튼 내에서는 물론이요, 대륙 내에서도 손꼽는 거대한 상업도시로 성장하였다.


“후욱···! 하악···!”


그 ‘한 명의 마법사’인, 에우로파는 지금 그 세인스 시의 내성 앞에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푸훕.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하더니만···읔!”

“쉬잇···!”


아까 전 마차를 타고 있을 때부터 쌓였던 감정이 있었는지. 헐떡이는 에우로파의 모습을 보며 빈정이는 말투로 작게 중얼거리는 에우로파의 제자를 다른 제자가 팔꿈치로 쿡 찌르며 조용히 시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역시 나름대로 이 웃기는 모습에 통쾌함마저 느끼며 입가를 씰룩이고 있었다.


“우훅, 흐욱···!”


제자들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맨 뒤에 있는 하인들에게마저 비웃음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당사자-에우로파는 현재 도저히 주변의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씨이···무슨 길이···후우···이렇게···하아···도로공사가···필요···”


씩씩대며 숨을 몰아쉬는 에우로파의 얼굴은 새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이마에는 쉴새없이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망토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아마 등이 흠뻑 젖어 있으리라.


“누구냐···아니, 누구···십니까?”


그런 후줄근한 모습이다보니 아무리 수행원을 데리고 있으며, 복장이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고귀한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기가 힘들었나보다.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이 그에게 높임말을 쓸지 말아야 할지 일순 고민한 것도 그리 나무랄 것이 못 될지도 모른다.


“우이씨. 이 자식들이!!”


그러나 당사자인 에우로파의 입장에서는 그런 경비병들의 애매한 반응이 안 그래도 폭발 직전이었던 그의 심지에 불을 당긴 꼴이 되었다.


“누구냐고? 오늘 오기로 한 에우로파 세류아 남작이다!”


생각같아서야 당장 날아차기로 안면을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도저히 그럴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아무튼 그의 사나운 기세만은 확실히 전해졌는지 경비병이 움찔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귀, 귀족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허둥대며 성문 안으로 들어간 경비병이 다시 나올 때에는 거의 사색이 되어 있었다.


“모모모,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토토토, 통과하셔도···아니 통과해 주십시오!”


에우로파는 짜증내는 기색이 역력한 채 걸음을 옮겼다.


‘넌 이제 죽었어!’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 자신을 째려보며 성문을 지나가는 에우로파에게 경비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로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에우로파와 경비병을 번갈아보며 그의 제자들은 조용히 혀를 차고 있었다.


“세류아 남작님이십니까?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성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몇 명의 기사들이 그에게 다가와 경례를 하며 인사하였다. 에우로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손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답례를 한 뒤 그들의 안내를 받아 통로를 따라 이동하였다.


“어제 밤에 대략적으로는 들었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지. ‘그것’이 무너졌다는 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현재 제2제어탑이 파괴당했습니다.”

“아놔, 젠장···!”


즉답하는 기사의 반응에 에우로파는 신경질적으로 미간에 손을 가져대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단순히 사실을 보고했을 뿐인 기사에게 어떠한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 불쾌하기 짝이 없는 보고를 한 기사를 한 대 때리는 것으로 이 상황에 대한 화풀이를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략적인 상황을 보고해주게.”

“예. 대략 어제 오후 6시경. 정체불명의 괴한, 혹은 괴한들이 나타나서 이곳 제2제어탑을 파괴했습니다.”

“음.”


짧게 의성어를 내며 답변한 에우로파는 이어지는 내용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 이상 기사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답답해진 마음에 언성을 높였다.


“그래서?”

“···예?”

“다음 내용을 계속 말해야 할 거 아냐!”

“예? 아아, 죄송합니다. ‘대략적’이라고 하셔서···”


이번에는 진짜로 한 대 칠 뻔 했다. 에우로파가 시위하듯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렸던 주먹을 다시 내리는 모습에 기사는 황급히 보고를 이어갔다.


“다,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병사들과 주민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검은 후드와 망토를 뒤집어 쓴 수상한 인물이 목격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제어탑을 지키던 초병과 경비대장을 살해하고 제한구역 안으로 난입. 이윽고 잠시 후 제어탑이 파괴되었다는 증언으로 미루어 저희는 이 자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증언의 출처는 부하 병사를 비롯하여 다수에게서 일치하므로 신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인···의 인상착의라던가, 좀 더 자세한 정보는 없는가?”

“먼 거리에서 그 장면을 목격했다는 자의 진술에 의하면 그 자가 마땅히 공격행위를 한 것도 없이 단순히 걸어가기만 하였는데 갑자기 경비병들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또한 희생자들의 시체를 조사해 본 결과로는 정확히 급소를 관통한 상처 하나씩만이 있었습니다. 인상착의나 망토 안의 구체적 복장 등에 대해서는 신장 180정도의 건장한 체격이라는 점 외에 아직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음···”

“이상입니다.”


기사의 설명을 들은 에우로파는 미간을 찌푸리며 방금 전 그의 보고 내용을 다시금 곱씹었다.


“마땅한 기색이 없었다···라. 게다가 전원이 일격에 급소를···”


그렇다는 것은···상대가 검사든, 마법사든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엄청난 실력을 가진 녀석이라는 거잖아!


“하긴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일 정도면 보통 녀석은 아니겠지.”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에우로파는 벌써부터 불안감이 발밑을 휘감아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대단한 녀석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테러를···”


그러는 동안 어느새 에우로파 일행은 영주의 집무실 앞까지 도착해 있었다. 그들이 다가오는 모습을 본 병사 두 명이 절도있는 움직임으로 들고 있던 창을 기울여 교차시키며 그들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영주님의 집무실입니다. 실례지만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곳을 지키는 경비병쯤 돼서인지, 내성문 앞을 지키던 경비병들에 비하여는 한층 그 수준이 높아보였다. 에우로파 일행을 안내하던 기사는 그들을 대신하여 병사들에게 답변하였다.


“오늘 오시기로 하신 에우로파 세류아 남작님이시다. 영주님의 요청을 받고 오신 분이니 바로 영주님께 알려드려라.”

“예! 알겠습니다.”


병사는 경례를 하며 곧바로 집무실 문 옆에 달린 작은 별실 문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다시 나왔다. 곧바로 집무실 문이 열리며 안에서 시종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환영합니다, 세류아 남작님. 영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손짓으로 제자들과 하인들을 대기시킨 에우로파는 잠시 자신의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흐트러진 옷차림과 머리를 매만진 그는 심호흡을 한 뒤 안으로 들어섰다.


“오오, 어서 오시게 남작. 자자, 이쪽에 앉게나.”


집무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뚱뚱한 남성이 두 팔을 벌리며 에우로파를 맞이하였다. 푸근하다못해 파고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푹신한 살집을 가진 남성은 안도와 감사가 담긴 환한 모습으로 에우로파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잠시 못 뵌 사이 많이 좋아지신 것 같군요, 백작 각하.”

“각하는 무슨, 그냥 영주라고 부르게.”


그가 권한 소파에 앉으며 에우로파가 형식적으로 인사말을 건네었다. 하지만 말한 것과 정반대로 오히려 더 살이 찐 그의 모습에 에우로파는 한숨을 쉬고 있었다. 어설픈 미소 밑에 흘리는 한숨을 눈치챈 듯 상대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농담 말게. 나도 내 자신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네. 하지만 한번 이렇게 살이 찌고 나니 다시 빼는게 영 쉽지 않구먼.”


이 뚱뚱한 남성, 데라이 베른 디텔 세인스 백작의 몸매가 처음부터 이렇게 뚱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우로파와 합작을 하여 그의 영지를 상업도시로 키워가는 와중 그 역시 연일 관련 업무에 치이면서 몸을 움직일 시간이 크게 줄어든데 반해, 업무 중 섭취하는 간식의 양은 되레 늘면서 몇 년만에 이런 비대한 몸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도 그의 책상 위에는 쿠키와 케이크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아무튼, 오늘 자네를 부른 것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이 도시의 ‘마도기’에 관한 일일세.”

마도기.


과거 세계를 위협했던 ‘파괴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대륙의 모든 국가가 맞서 싸운 ‘영웅전쟁’이라는 사건이 종결될 당시 발견된 물체로, 그것이 본래 무엇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담고 있었지만 제어 등의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어 마땅히 활용할 방법을 찾지 못하던 와중, 에우로파는 도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력 수정을 대체할 마력 공급원으로의 개발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마도기에 의한 마력 공급 시스템은 안정성 검증 등의 목적으로 이곳, 세인스 시에 설치되어 지금까지 운용되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에 와서는 도시 내에 설치된 가로등 등의 조명이나 급수체계, 성문 개폐 등의 동력원, 도시 방위용 무기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그 기능이 사용되어지고 있었다.


“제어탑이 파괴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도시의 마도기에 관련한 모든 것을 총괄한 당사자, 에우로파의 답변에 데라이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었다.


“용건만 말하겠네. 복구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가능합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필요한가?”

“···대략 한 달 정도. 추가로 일주일 정도는 도시의 마력 공급을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나?”


에우로파의 답변에 데라이는 썩 만족스럽지 못한 듯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에우로파는 양 손을 들어보이며 설명을 계속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 역시 갖추고 진행할 생각입니다. 이미 복구 기간 도중 마도기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양의 마력 수정을 수배해 두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데라이는 조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네는 상회도 가지고 있었지. 이름이···‘제오카’ 상회였던가?”

“맞습니다. 영주님의 협력 덕에 지금은 대륙 전체에서 알아주는 상회가 되었죠.”


에우로파가 답변하는 타이밍에 맞춰 시종이 차를 가져왔다. 시종이 그의 앞에 내려놓은 찻잔이나 그 안에 담긴 찻물을 낸 찻잎조차도 전부 그의 ‘제오카’상회에서 납품한 물건들이었다.

에우로파는 찻잔을 들어 가볍게 입술을 적신 뒤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진중한 표정으로 데라이에게 이야기하였다.


“헌데, 중요한건 복구만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범인에 관하여는 이미 사람을 풀어 조사중에 있네. 나머지 네 군데의 보조 제어탑과 내성의 중앙 제어탑에도 주의하라고 일러둔 상황이지.”


에우로파의 복구 계획 이야기도 들어서인지, 데라이는 안심하며 크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찌되었든 도시의 기능만 유지할 수 있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듯한 모습이었으나, 그 모습에서 에우로파는 아직도 그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채었다.


“영주님, 이 일은 생각보다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혹시 모든 제어탑이 파괴되면 어떻게 되는지, 예전에 설명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음? 어어···그러니까, 설명···했었나?”


역시나. 하긴 그럴만도 한 것이 벌써 7년이 넘게 지난 데다가, 당시에는 설마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기에 농담조로 지나가듯 이야기한 것이다보니. 어찌보면 기억하는 게 더 신기할 일이리라.


“마도기는 그 자체가 무한에 가까울만큼 엄청난 마력의 응집체입니다. 지금처럼 그걸 활성화시킨 상태에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그 마력은 방향을 잃고 폭주해서 현실공간에 가장 단순화된 형태로 대량 구현이 되는데, 이것은 순환마력의 가속에서 오는 파동 유형과도 유사해서 일종의···”

“잠깐, 남작···”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한 데라이는 에우로파가 이야기하는 내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손을 들어 에우로파의 설명을 제지하였다.


“말 하는 중에 미안하지만, 좀더 쉽게 설명해주게나.”

“죄송합니다, 습관적으로 설명이 길어졌군요.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만약 모든 제어탑이 파괴되기라도 했다간···”


말을 많이 한 탓고 있고, 더불어 긴장하기도 해서인지 에우로파는 금새 입안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다시금 찻물을 들이켜 입안을 적신 뒤에도 심호흡을 두 번 정도 하고 난 뒤에서야 그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답변을 내놓았다.


“마력의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도시 전체가 휘말릴 정도의.”

“대···폭발이라고 한다면?”

“4년 전에 일어났던···그 사건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그 사건’이라고 한다면···!”


두 눈을 부릅뜨며 자신을 바라보는 데라이의 시선에 에우로파는 입술을 깨물며 슬쩍 시선을 피하였다.

4년 전, 세인스 시에서의 마도기 활용 성공에 고무된 그는 보다 소형화된 동력원 개발에 마도기를 응용하려 하였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하여 막대한 인명피해를 동반한 참사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게다가···마력의 전개 범위도 훨씬 넓은 만큼 피해 규모도 그때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제서야 데라이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였다.


“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차라리 그 마도기라는 물건을 지금 당장이라도 멈추게 해야하는 거 아닌가?”

“안타깝게도 무리입니다. 제어탑이 모두 온전하다면 가능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나마 희망을 걸고 있던 의견조차 불가능하다는 답변에 데라이의 안색은 더욱 더 나빠졌다.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에우로파는 어느 방법이라도 제시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은 수비 병력을 늘려주십시오. 특히 감시 병력이 중요합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하지만 너무 많은 병력을 할애할 수는 없소. 무엇보다 그랬다간 영민들이 불안해 할테니.”

“···저도 제 방법을 동원해서 정보를 모아 보겠습니다. 이번 일이 해결될 때까지 저도 함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탁하네.”


반 정도는 현 상황에 대한 도피성의 의도를 가진 발언을 하며 에우로파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데라이를 향해 인사를 한 뒤 집무실에서 빠져나왔다.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하겠는데. 우선은 스승님께 보고를 드려야겠군.”


보고를 하기 위해서라도 일단은 상황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 에우로파는 파괴된 제어탑의 현장 확인을 하기 위해 방금 지나왔던 통로를 향하였다.


“우선 그 제어탑이 파괴된 현장부터 확인하지. 기사, 안내해 줄 수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너희는 내 방을 정리해라. 항상 쓰던 그 방이다. 제자들 중 두 명은 통신 준비를 해 두고, 두 명은 날 따라오도록.”

“예, 스승님.”


하인들과 제자들에게 지시를 내린 에우로파는 기사의 안내를 받아 걸음을 옮겼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데···”


마치 철거반이 작업하고 가기라도 한 듯, 제어탑은 완전히 산산조각나서 무너져내린 채였다.


“한두 군데쯤 부서진 수준일 줄 알았는데, 이래서는 복구에 한 달로는 어림도 없겠군···”


형체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 제어탑의 잔해를 바라보며 에우로파는 손으로 턱을 짚었다.


“만약 내가 이 제어탑을 이렇게 박살내려고 한다면···”


듣기로 제어탑을 부순 범인은 이곳에 그다지 오래 있지 않았다고 했다. 경비병을 살해한 것도 그렇지만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확신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군. 흔적이 너무 적어”


건물을 부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폭염계 또는 대지계 마법이다. 하지만 제어탑의 잔해에는 화염에 의한 그을음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대지계 마법으로 인해 주변 바닥이 손상된 흔적 또한 없었다.


“설마 완력으로 때려부수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가. 스스로 중얼거리면서도 에우로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폭약 같은것도 아닌 것 같고···모르겠군. 대체 어떻게···음?


고민하고 있던 에우로파의 시선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인영이 들어왔다.

온통 칠흑같은 검은 색의 옷을 입고 있는 상대는 윤곽을 보니 아무래도 여자. 그 중에서도 어린 축에 속하는 소녀인 듯 보였다.


“이봐, 거기 너···!”


막 상대를 부르려던 에우로파는 ‘이봐’라고 하는 순간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린 상대의 모습을 보고 일순간 굳어졌다.


“······!!”

키는 140중후반 정도일까, 처음 생각한대로 상대는 아직 어린 소녀인 듯 하였다. 온통 검은 색 위주로 된 몸에 달라붙는 옷과 무릎 위로 걸쳐진 짧은 치마는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린 소녀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햇빛이 거슬린다는 듯 머리에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허리까지 내려온 긴 블론드 머리결이 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가운데 머릿결 사이로 마치 인형같이 아름다운 얼굴과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의 모습을 본 에우로파의 인상이 굳어진 것은 그녀가 아름다워서만은 아니었다.


“너는···”


희미하게 아른거리는 기억을 더듬으며 중얼거리는 에우로파의 시선에 비치던 소녀는 어느 새였을까. 마치 애초부터 그곳에 없었다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


그야말로 ‘한순간에’ 사라진 소녀의 모습에 에우로파는 혹시 자신이 헛것을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엔 자신의 머리속에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뭔가 이상한 거라도 있습니까?”


그런 와중 뒤에서 들려온, 아무 일도 없는데 왜 그러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제자의 목소리는 에우로파를 더욱 혼란하게 만들었다.


“방금···저기 누가 있지 않았나?”

“네?”


방금 전까지 금발 소녀가 서 있던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질문하는 에우로파에게 제자는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얼빠진 목소리로 의문사를 띄울 뿐이었다.


“에라이···됐다, 됐어!”


설마 진짜 허깨비라도 되었던 건가? 이 얼빠진 제자의 반응으로 인해 에우로파는 더욱 머리속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에 짜증을 느꼈다.


“너한테 물어본 내가 바보지. 아무 일도 아니니까 이만 가자!”


아무래도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등줄기에 불안감에 의한 한기가 달리는 것을 느끼며 에우로파는 방금 전과 다른 의미로 걸음을 서둘렀다.


작가의말

여기부터 일부 내용과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3화는 오전 10시에 올라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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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5 옥당(玉堂)
    작성일
    17.07.20 16:38
    No. 1

    잘 읽고 갑니다~~~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건승 건필 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AAKHS
    작성일
    17.07.20 20:44
    No. 2

    감사합니다.
    옥당님도 더위 조심하시고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파란펜촉
    작성일
    17.08.10 20:25
    No. 3

    마법 쓰는 소녀인 듯하네요 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AAKHS
    작성일
    17.08.10 21:08
    No. 4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큰 의미를 가지고 가지고 만든 설정은 아닙니다.(게다가 소녀는 고사하고 아저씨...)
    스테프나 로드는 너무 흔해보여서 다른 걸 생각하다보니 나온 결과물이죠...
    라지만 사실 카드라는 개념도 이미 꽤 많이 사용되던 개념이긴 하네요;
    덕분에 부가요소가 가용해진건 의도하지 않았던 소득이었지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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