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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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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최근연재일 :
2024.07.06 08:2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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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11,046
유료 전환 : 2일 남음

작성
24.05.0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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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98
추천
278
글자
14쪽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DUMMY

밤 사이 눈이 소복히 쌓여 햇빛이 반사됐다.

로이스는 아이젠이 깨기 전에 이미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성실함을 미덕으로 아는 것이 북부의 기사 로이스였다.


“오늘은 어제 말한 드워프 은행에 갈 예정일세.”

“방 안에 얌전히 계실 생각은 없는 겁니까?”


아이젠은 방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인사 대신 일정에 대해 말했다.

로이스도 굳이 인사를 하진 않았다.


“흠, 고작 이곳에 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는 말론 적절하지 않군. 그게 아니면 내가 죄인이라 그런가?”


아이젠의 뼈있는 말에 로이스는 뜨끔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던 자였다.


“그건 아닙니다만...”


로이스가 은근히 쩔쩔매자 아이젠은 그냥 픽 웃었다.

아무래도 이 기사는 완고한 거에 비해 순진한 면이 있었다.


“제국법이 죄인이라 하니 죄인이 맞긴 한데, 그러진 말았으면 좋겠군. 가지.”


로이스가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것이 말꼬리 잡힌 것이 넘어간 안도의 한숨인지 아니면 체념의 한숨인지 몰랐지만 아이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눈치를 보는 건 아이젠이 아니라 로이스여야 했다.

그것이 호위의 미덕이었으니까.


“외지인이 어슬렁거린다고 불쾌해하지 말게. 다 적응을 위해서니까.”


아이젠의 말에 로이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열정적인 분인 줄은 몰랐군요.”

“그게 오래 살아남는 길이거든. 빠른 적응, 도태되면 끝이야.”


특히 전선에 투입된 군인은 말일세. 라고 덧붙이고 아이젠은 앞장 섰다.

적응이란 가만 있는다고 빨리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동의할 수밖에 없군요.”


로이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뒤를 따랐다.


* * *


드래곤 캐슬의 길거리는 들꽃처럼 생동감이 넘쳤다.

최전선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이 없었다.

이런 느슨한 분위기는 시민들이 도시와 북부 대공에게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가졌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로이스 경은 드래곤 캐슬에서 나고 자랐나?”

“그렇습니다. 뭔가 문제라도?”

“문제는 무슨, 그냥 궁금해서 그랬지.”

“저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군요.”


로이스는 입을 다물었고 아이젠도 더 이상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아이젠에게 말하기 싫단 사람 억지로 입 열게 하는 취미는 없었다.

마차도 없이 도보로 거리를 거닐자 아이젠을 향한 끈적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저 사람이 어제 왔다는 그...”

“쉿, 입 조심하게. 그러다 자네도 큰일 나!”


네크로맨서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은 제국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네크로맨서가 없는 북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아이젠은 크게 괘념치 않았다.

적의, 경계심, 꺼림직함, 그리고 약간의 호기심이 섞인 시선은 아이젠이 일상처럼 느꼈왔던 것이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전장에서 활약하시면 저런 시선들도 사라질 겁니다.”

“글쎄, 여기에 공포가 더해지면 더했지 사라지진 않을 걸?”


오히려 로이스가 시민들의 적대적인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로이스 역시 아이젠을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북부에 호감을 가지길 바라고 있었다.

그가 네크로맨서이고 죄인인 건 상관 없었다.

중요한 건 그가 황제가 보낸 인사라는 것이었고 그런 자가 북부에 호감을 갖길 원하는 건 기사의 도리였다.

그것이 북부의 이득으로 돌아올 공산이 컸으니.


“그나저나 로이스 경? 저런 골목들은 뭐하는 곳인가?”

“사창가입니다.”


드래곤 캐슬엔 작은 골목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만큼 범죄 길드가 형성되기 어려운 지역이었고 치안이 좋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사창가는 상류층이나 하류층이나 꼭 필요로 하는 시설이었다.

필연적으로 드래곤 캐슬의 얼마 없는 골목길은 전부 사창가로 도배됐다.


“호오, 흥미롭군.”

“...들르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추천하진 않습니다.”

“명예 때문인가? 안심하게. 호위를 데리고 질펀하게 즐기는 취미는 없으니까. 하지만 한번 구경은 하고 싶군.”


아이젠은 그렇게 말하곤 불쑥 발걸음을 돌렸다.

로이스는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아이젠을 강제로 말릴 수도 따라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골목길에 들어오자 매캐한 담배 냄새가 풍겨왔다.


“콜록.”


아이젠은 손으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언제 맡아도 담배 냄새는 역겨웠다.

아이젠의 모습에 로이스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담배를 싫어하십니까?”


아이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담배 냄새랑 시체 냄새랑 섞이면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아는가?”

“모르지만 굳이 상상하고 싶진 않군요.”


상상하고 싶지 않다는 로이스의 말을 아이젠은 가뿐히 무시하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고약한 썩은내가 난다네. 내 몸에 배인 시체 냄새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옷에 담배 냄새까지 배이면 아주 곤란해. 빨리 지나가지.”


아이젠은 제대로 사창가 구경도 하지 않고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다행히 낮인지라 호객 행위를 하는 여성도 없었고 기사인 로이스를 보고 덤벼드는 불량배들도 없었다.

로이스는 골목길을 빨리 빠져나온 것이 내심 반가웠다.


“여기가 드워프 은행입니다.”

“흠.”


로이스가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기둥에 도금을 한 건지 진짜 금으로 만든 건진 알 수 없었지만 드워프 은행은 드래곤 캐슬의 하얀 모습과는 이질적으로 번쩍번쩍 했다.


‘남부나 수도도 이랬지.’


드워프 은행은 어떤 도시에 있든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자신들의 개성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덕분에 지나가던 여행객이 길을 물어보면 드워프 은행을 기준으로 설명해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어서오십시오!”


드워프 은행으로 들어가자 보통 상상하는 드워프의 모습이 아닌 검은 양복에 화려한 노란 넥타이를 매고 있는 드워프들이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물건 운반을 맡기려고 왔네.”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오십시오.”


드워프 은행원은 아주 친절하게 아이젠을 안내했다.

스테레오 타입으로 기대하는 과묵한 대장장이나 호전적인 전사의 모습은 여기서 찾아볼 수 없었다.


“손을 내밀어 주십시오.”


아이젠이 손을 내밀자 드워프 은행원은 아주 능숙하게 내 손끝을 바늘로 톡 찌르더니 딱 한 방울의 피만을 채취했다.

채취한 피를 검사기기에 집어넣자. 내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VIP 아이젠 베이커]


“드워프 은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이젠 베이커님.”

“이젠 베이커가 아니야. 아이젠이라고 해두게.”

“알겠습니다. 아이젠님.”


드워프 은행원이 기기를 조작하자 뒤에 베이커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별다른 이유도 물어보지 않았다.

드워프 은행에게 중요한 것은 고객의 재산이지 고객의 사정이 아니었으니까.


“VIP셨습니까?”

“남부 전선에서 번 돈을 쓸 데가 없어서 말이야.”

“대공 전하께서 남부 전선의 영웅이라고 부르셨는데 허명은 아닌 모양입니다?”


로이스는 살짝 놀란 기색으로 말했으나 아이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미심쩍은 시선으로 보여지는 일이나 의심스러운 말투엔 익숙한 편이었으니.


“아이젠님, 무엇이 필요하십니까?”

“내가 맡긴 룬 실드를 수령하고 싶군.”

“룬 실드 말씀이십니까?”

“비싼 돈을 주고 맡긴 물건이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확인하겠습니다.”


드워프 은행원은 아주 인위적이고 친절한 말투로 대답하며 기계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남부전선 중앙 지점에 맡긴 물건 맞으십니까?”

“맞네.”

“남부전선 중앙 지점에서 북부전선 드래곤 캐슬 지점까지 물건을 안전하게 이동하는 데에는 시간이 최소 2주에서 최대 한 달이 걸립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최대한 빨리 부탁하네.”

“퀵 서비스를 이용하시면 조금 더 빠르게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부탁하지.”

“대금은 어떻게 지불하시겠습니까?”

“통장에 있는 돈에서 차감하게.”

“알겠습니다. 고객님, 최대 2주 후에 물건을 받아보실 수 있으십니다. 혹시 다른 도와드릴 사안이 있을까요?”

“없네. 수고하게.”


아이젠은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드워프 은행을 나섰다.

드워프 은행원들은 아이젠이 문을 닫고 사라질 때까지 정중히 굽힌 허리를 일으키지 않았다.

VIP에 대한 대우였다.


“룬 실드를 가지고 계십니까?”

“왜 탐나나?”

“네크로맨서가 그걸 왜 가지고 계십니까?”

“남부 전선의 공로로 폐하께서 하사하셨지.”


로이스는 눈을 가늘게 뜨며 아이젠을 바라봤다.

네크로맨서라는 점은 탐탁치 않았지만 황제의 하사품을 받은 사람이라면 유용한 인재임은 분명했다.

로이스는 말이나 소문 따위에 쉽게 믿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없던 믿음도 생길 지경이었다.

황제가 아무에게나 하사품을 내리겠는가?

당장 북부만 해도 북부 대공의 하사품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아이젠은 볼일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성으로 돌아갔다.

성으로 돌아오자 내성 입구를 지키던 병사가 아이젠을 멈춰세웠다.


“아이젠 경, 그리고 로이스 경.”

“무슨 일이지?”

“대공 전하께서 긴급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두 분께서 돌아오시는 대로 회의실로 모시라는 명령입니다.”

“알겠네.”

“예.”


경비병을 지나 내성으로 들어갔을 때 아이젠이 물었다.


“긴급 회의가 자주 열리는 편인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상한 일이군요.”


로이스는 턱에 손을 올리며 고민했다.

아이젠은 태평했다.

여기서 고민해봤자 무슨 일인지 알 방도가 없었다.

내용이야 모르지만 긴급 회의라면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은 틀림 없었다.

그리고 아이젠의 경험에 따르면 전선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란 대부분 적이 나타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이젠과 로이스는 서둘러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 안에는 북부 대공과 호출을 받은 귀족들이 모여 있었다.

듬성듬성 빈 자리가 있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귀족의 자리인 것 같았다.

아이젠은 회의실에 들어가 멀뚱히 엷은 미소를 지으며 북부 대공 크리스티나를 바라봤다.


“이쪽으로 와서 앉지.”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오른쪽 자리를 가리켰다.

귀족들은 자리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이젠을 흘겨봤다.

자리배정이 다소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지만 아무도 항의하지는 않았다.

아이젠은 황제가 보낸 인물이기도 했고 남부 전선의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었다.


‘귀엽네.’


아이젠은 아이젠 나름대로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원래 다른 전선에서 온 사람을 바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텃세는 남부 전선에서도 익히 봤던 일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이젠은 착석하자마자 물었다.

그 모습에 귀족들은 아이젠을 쏘아봤다.

감히 대공 전하께서 입을 여는 것을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질문이라니 오만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 북부 대공은 별로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문화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실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다들 모이면 그때 이야기 하지.”

“알겠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회의실은 귀족들과 기사들로 가득찼다.

다들 체면을 차리느라 급하게 온 티를 내진 않았지만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것까지 감출 순 없었다.

귀족들이 체통도 잊고 달려올 정도로 북부 대공의 긴급 호출은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주술 부족이 진군하고 있다.”


북부 대공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것이 왔군요.”

“대공 전하, 주술사는 얼마나 동원 됐는지 정보가 있는지요?”

“어림 잡아도 50명 이상인 것 같습니다.”


북부 대공 대신 그 왼쪽에 앉은 알베르 백작이 대답했다.

북부 대공의 최측근 인사인 그는 북부 대공의 자문관이자 마탑의 위저드이기도 했다.


“그게 사실이오? 알베르 백작?”

“척후를 두 번 보내 이중으로 확인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달려드는군.”

“주술 부족의 주술사가 분명 100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지 않소?”

“그런데 50명이라니 사실상 총력전 아닌가? 그들에게 그럴 이유가 있나?”

“글쎄...”


주술 부족에서 보통 싸움을 걸 때 투입하는 주술사는 통상 5명 정도였다.

그 10배가 투입됐다는 소리는 주술 부족이 이번에 무슨 이유인진 몰라도 단단히 작정했다는 의미였다.

모두가 수근거릴 때 북부 대공의 시선이 아이젠을 향했다.


“그래서 그대의 힘이 필요하다.”


북부 대공이 입을 열자 수근거리던 귀족들이 조용해졌다.


“제 힘 말씀이십니까?”

“그래, 황제가 군단급 전력이라고 칭했으니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였으면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난 그대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정확히 몰라.”


북부 대공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나를 만족시킬 실적을 내게.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 말이야.”


북부 대공의 지엄한 명령에 아이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절도있게 경례를 올렸다.


“그게 전하의 오른쪽 자리를 보증한다면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기대하겠네.”


‘북부는 데뷔전이 조금 거칠군.’


북부 대공의 감정없는 대답에 아이젠은 입술을 달싹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엄청난 실적을 내라!

까다로운 클라이언트가 따로 없었지만 아이젠은 상관 없었다.

이보다 더한 전장도 헤쳐 나왔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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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북부 데뷔전 2 +5 24.05.12 13,628 250 17쪽
7 북부 데뷔전 +5 24.05.11 13,849 295 13쪽
6 신고식 2 +6 24.05.10 13,911 272 13쪽
5 신고식 +11 24.05.09 14,353 273 13쪽
»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5 24.05.09 14,899 278 14쪽
3 대공 전하의 진의 +9 24.05.08 15,604 278 14쪽
2 북부 대공 +15 24.05.08 16,894 305 14쪽
1 사형선고 집행유예 +29 24.05.08 20,876 3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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