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 전하의 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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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슨 미친 소리입니까?”
로이스는 즉각 반발했다.
시체를 확인하러 교회에 가다니.
이 무슨 불경한 일이란 말인가?
네크로맨서는 정녕 죽은자에 대한 존중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대공 전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로이스 경, 자네 대공 전하를 얼마나 모셨지?”
“...그건 왜 물으십니까?”
“얼른.”
“13년입니다. 대공 전하께서 즉위하시기 전부터 모셨으니까요.”
“그런데 아직도 대공 전하의 뜻을 모르나?”
“예?”
아이젠은 반발하는 로이스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찼다.
“대공 전하께선 분명 내게 ‘기대’한다고 하셨네. 그게 무슨 소리겠는가?”
“전장터에서 활약하길 기대하신다는 말씀이시겠죠.”
“그래, 네크로맨서가 전장터에서 활약하려면 어째야겠나?”
로이스는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 들었으면 이제 가지.”
“...확인만 하시는 거겠죠?”
“물론이지. 나도 어중이떠중이를 일으킬 정도로 여유가 많진 않네.”
‘훌륭한 기사들이면 당장 일으켜 세우겠다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로이스는 결국 아이젠을 교회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북부 대공의 의중이 정말 이 네크로맨서의 말대로라면 자신은 순종할 뿐이었다.
교회로 향하면서도 아이젠의 입은 멈출 줄 몰랐다.
“신성 왕국에 대해 얘기해주게.”
“신성 왕국에 대한 것도 모르십니까?”
“아인 연합에 대해서도 모르니 준비해두게.”
“제국 북부의 적들에 대한 건 상식 아닙니까?”
“자네는 제국 남부의 적들에 대해 알고 있나?”
“그걸 제가 알 필요가 있습니까?”
아이젠은 기묘한 웃음을 지었고 그 웃음을 본 로이스는 아차 싶었다.
“나도 여태까진 북부에 대해 알 필요가 없었다네.”
“...무엇이 제일 궁금하십니까?”
“전반적인 상식부터 알려주게. 북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것들부터 말이야.”
북부의 상식이 다른 지역 사람에게도 통용될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는 아이젠의 말에 로이스는 신성왕국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그의 임무였으니까.
“그 광신도들의 군대는 전부 성기사입니다. 종군 사제도 섞여 있죠.”
“내가 알기로 신성 왕국과 제국은 같은 종교를 믿네만.”
“제국의 교단이 네크로맨서가 행하는 사령술을 신의 은총이라 부르며 용인한 이후 그들은 제국의 신성 교단을 이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래서 신성 교단은 왕국파와 제국파로 나뉘게 됐죠.”
“저런, 고지식한 자들이군.”
네 입으로 할 소리냐? 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추스른 로이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어쨌든 그놈들이 하는 짓은 비열하기 짝이 없습니다. 다른 적들과 교전 중일 때 갑자기 나타나선 기습을 하거든요.”
“이단과 이교도를 동시에 쓸어버리겠다는 의도인가?”
“그렇긴 합니다만 그들의 적대심은 주술부족이나 아인연합보단 제국을 향해 있습니다.”
“어째서?”
“이교도는 계도할 여지가 있지만 이단은 배척해야할 불신자들이거든요. 드물지만 워록들도 있습니다.”
“워록들이?”
아이젠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었다.
워록은 마법사의 한 분파로 평범한 사람에게 초월적인 존재가 깃들어 힘을 부여하는 종류의 마법사들이었다.
대부분의 워록들은 악마나 상위 정령들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지만.
“신성 왕국의 워록들은 천사가 깃들었나?”
“강력한 신성마법을 구사하는 것을 보면 확실합니다.”
“신성 마법을 쓴다고?”
“예, 빛의 벼락이 내리 꽂히는 건 정말 무시무시하죠.”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신성마법은 보통 사제들이 사용하여 치료나 축복, 혹은 흑마법사들의 저주 해제에 특화된 마법이었다.
공격 마법이 없는 건 아니라지만 보통 신관들이나 성기사들은 신성력을 그런 곳에 사용하지 않았다.
‘확실히 같은 종교라도 국가가 다르니 문화가 다르긴 다르군.’
그런데 천사와 계약한 워록이 나타나다니 제국민으로선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흠, 그나저나 성기사나 천사와 계약한 워록의 시체를 살리면 신성마법을 구사할 수 있을까?’
그러나 놀람도 잠시, 아이젠은 천사와 계약한 워록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놀라움보다 네크로맨서적 학문적 탐구심이 더 자극 받았다.
“다 왔습니다.”
그렇게 로이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교회에 도착했다.
네크로맨서 입장에선 교회란 곳은 꺼림칙할 법도 하건만 아이젠은 얼굴에 미소까지 띄우며 당당하게 교회 정문에 올라섰다.
로이스는 성호를 그으며 죄스러운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안에는 늙은 신부가 빗자루를 들고 교회를 청소하고 있었다.
“리스 신부님.”
“아, 로이스 경.”
리스 신부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로이스를 반겼다.
신부의 밝은 표정을 보자 로이스는 더더욱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부님.”
“어서오시지요. 로이스 경 이분은...?”
“이분은...”
“저는 아이젠이라고 합니다.”
아이젠을 소개하려는 로이스의 말을 가로채 스스로를 소개하곤 활짝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네크로맨서입니다.”
“네... 네크로맨서?”
리스 신부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쳐 버렸다.
로이스는 소리 없는 한숨과 함께 눈을 질끈 감았다.
오늘따라 한숨 쉴 일이 많은 건 절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젠은 자신이 할 말을 이어갔다.
“교회 지하에 있는 기사들의 시체를 보고 싶습니다.”
“이... 이 불경한...!”
늙은 신부는 말을 더듬거리며 아이젠을 손가락질 했다.
물론 아이젠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냐는 듯, 마치 자신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순진하게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로이스 경, 대공 전하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
로이스는 리스 신부의 물음에 잠깐 고민했다.
분명 크리스티나 대공이 직접적으로 아이젠에게 시체를 확인하라고 명령한 적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이젠이 대공의 명령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로이스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깊은 고뇌에 빠졌다.
“이... 이럴수가. 신이시여...”
그렇지만 리스 신부는 로이스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절망하듯 머리를 감싸쥐었다.
교단이 네크로맨서를 공인했지만 그렇다고 인식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짝!
“자, 그럼 지하실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
아이젠은 신부와 로이스의 모습을 보고도 태평하게 박수나 치면서 안내를 요구했다.
과연 시체를 일으키는 사악한 네크로맨서.
사람의 감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따라오시죠.”
충격의 여파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리스 신부를 애써 외면한 로이스는 아이젠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교회 지하 묘지로 가는 길은 나선형 계단으로 구성돼 있었다.
지나가다 사람이 넘어지지 않도록 벽에 고정된 양초가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
“생각보다 넓군.”
묘지는 그렇게 깊은 곳에 있진 않았지만 교회 부지보다 넓었다.
아이젠은 묘지 크기에 꽤 흡족했다.
이 정도면 강한 기사들도 많이 묻혀 있을 것이다.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걱정 말게. 망자에게 손대진 않을 걸세. 그냥 어떤 상태인지만 볼 거야.”
‘관은 열어보겠단 소리잖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꾹 참으며 로이스는 아이젠의 뒤를 따랐다.
아이젠이 만약 선을 넘으려고 하면 자신이 제지해야 했다.
‘관들의 상태가 좋군.’
아마 저 리스 신부란 자가 매일 같이 관리하고 있는 것이겠지.
묘지는 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먼지가 많지 않았고 관들 역시 먼지가 많이 쌓이지 않았다.
아이젠은 이런 것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제국을 위해 죽은 자들을 푸대접한다는 소리는 아니었으니까.
‘시신 보존 상태도 아주 훌륭하겠어!’
아이젠은 가까이 있는 관에 다가갔다.
깊숙한 곳에 있는 건 열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잘 관리했다 하더라도 육신이 썩었으면 제대로 된 망자를 일으킬 수 없었으니까.
“흡.”
아이젠이 힘을 주자 -스르릉. 소리를 내며 석관의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과연 아직 썩지 않은 기사가 생전 그대로의 엄숙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갑주까지 그대로 입고 가슴에 올라간 두 손엔 생전에 사용했던 걸로 추정되는 검을 쥔 채로.
‘시체 감정.’
아이젠은 네크로맨서의 권능 중에 하나인 시체 감정을 사용했다.
‘실력이 좋고, 충성스럽고 저돌적인 성격의 전형적인 기사로군.’
시체 감정은 네크로맨서의 권능 중 하나였는데 이미 죽은 자가 어떤 종류의 인간이었는지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시체 감정을 사용한 아이젠은 흡족했다.
북부는 네크로맨세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알 수 있지.’
한 구의 시체를 확인했을 뿐이었지만 아이젠은 북부의 기사들이 상당한 실력자임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삼면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인데 나약한 기사가 있을 리 없었다.
실전과 훈련으로 꾸준히 단련한 기사들은 네크로맨서에게 탐나는 재료들이었다.
‘심지어 보존 상태까지 훌륭하니.’
“지금 살리시려는 건 아니시지요?”
로이스는 불안한 눈으로 아이젠에게 말했다.
“확인만 하러 왔다고 말하지 않았나? 자네는 믿음이란 것이 없군.”
그건 그렇고 기사들 상태가 좋군. 이라고 덧붙인 아이젠의 말에 로이스는 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먼저 대공 전하께 허락을 받아야겠지.”
아이젠의 말에 로이스는 의심이 생겼다.
설마 대공께서 네크로맨서가 기사들을 살리는 것을 허락하실까?
* * *
“북부의 찬바람에 정신이 나갔나? 헛소리를 하는군.”
다음날 북부대공 크리스티나를 만나러 온 아이젠은 그녀의 싸늘한 말을 맞이해야 했다.
로이스는 눈을 꼭 감았지만 아이젠은 태연했다.
“이미 명예롭게 죽은 기사들을 살려서 전장으로 보내자니 제정신인가?”
“그럼 저는 어디서 힘을 써야 합니까?”
“네크로맨서는 적의 시체도 살릴 수 있다지?”
“가능은 합니다만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거론하지 말고 물러가라.”
크리스티나는 피곤하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로이스 경, 앞으로 이런 안건이 내게 올라오지 않도록 더욱 신경 쓰도록.”
“알겠습니다. 전하.”
로이스는 북부대공의 질책에 군기가 바짝든 모습으로 경례하며 대답했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아이젠을 노려봤다.
알현실을 나오자마자 로이스는 아이젠에게 화를 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뭘 말인가?”
“대공께서 기사들을 살리는 걸 허락하실 리가 없다고요!”
물론 로이스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다.
생각만 했을 뿐!
“쯧쯧,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
하지만 아이젠은 혀를 차며 한심하단 눈으로 로이스를 바라봤다.
로이스는 그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네크로맨서 주제에 감히 기사에게!
“뭐라고요?”
“대공 전하의 진의를 잘 생각해보게.”
“그게 무슨...”
대공 전하의 진의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대공께선 북부를 누구보다 사랑하시지. 그렇지 않나?”
“두 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크리스티나는 젊은 나이였지만 북부의 영웅이었다.
대공의 자리에 오르기 전부터 어린 나이임에도 북부의 숙적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고 압도적인 재능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
북부인들은 그런 크리스티나를 북부의 하얀 장미라고 부르며 칭송했다.
“그런 분께서 정말 아군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네크로맨서의 마법을 거부하시리라 생각하는가?”
“하지만 실제로 꺼려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네. 이미 북부를 위해 용감히 싸우다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을 대공께서 찬성하시면 사람들이 무어라 생각하겠는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로이스는 아이젠의 말을 부정하면서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이 네크로맨서는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말 몇 마디로 자신의 믿음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고 있었다.
“아무튼 앞으로 대공께 말씀드릴 안건이 있을 때는 꼭 제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나?”
아이젠의 대답에 로이스는 늑대처럼 으르렁 소리를 냈다.
“대공 전하께서 제게 안건을 선별하란 말씀하신 걸 못들으셨습니까?”
“물론 들었네. 하지만 내게 협조를 구하는 건 자네의 능력이지. 내가 자네 부하는 아니지 않나?”
로이스는 아이젠의 말을 궤변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아이젠은 로이스의 부하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로이스는 그의 호위를 맡고 있었으니 로이스가 하급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뭔가 행동하는 걸 보고하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보지. 내일은 도시를 좀 들려야겠네. 도시에 드워프 은행은 있겠지?”
“제국에 드워프 은행이 없는 도시가 있겠습니까?”
“그럼 됐네. 그럼 나 먼저 쉬겠네. 오늘 하루가 고단했어.”
로이스가 송곳처럼 뾰족한 대꾸를 했음에도 아이젠은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결국 손해를 본 건 로이스 뿐이었다.
로이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아이젠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앞으로가 순탄할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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