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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전선의 미친 네크로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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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철인
작품등록일 :
2024.05.08 13:01
최근연재일 :
2024.07.06 08:20
연재수 :
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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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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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3
글자수 :
411,046
유료 전환 : 2일 남음

작성
24.05.08 13:07
조회
1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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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글자
14쪽

북부 대공

DUMMY

‘좋군.’


북부로 유배 아닌 유배를 가는 처지였지만 아이젠은 북부의 수도 드래곤 캐슬을 보며 솔직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하얀색 외벽에서부터 드래곤 캐슬은 가히 압권이었다.

만약 이곳이 수많은 외적을 상대하는 최전선이 아니었다면 관광 명소가 됐을 것이다.

북부의 기사 로이스는 아이젠의 표정을 보고 슬그머니 물었다.


“멋지지 않습니까?”

“수도 못지 않게 멋있군. 아니 어느 면에선 수도보다도 멋있어.”


로이스는 아이젠의 대답에 입술을 씰룩거렸다.

고향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 고향 칭찬을 들으면 으레 짓는 표정이었다.


“도시가 네모 반듯하게 잘 구획돼 있군. 길도 쾌적하고.”

“군사 도시니까요. 처음 설계했을 당시부터 계획 도시로 지어졌습니다.”

“슬럼 따위도 없나?”


아이젠의 물음에 로이스는 살짝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많고 많은 질문 중에 물어볼 게 그런 것밖에 없냐는 의미였다.

물론 대답은 성실하게 나왔다.

임무에 충실한 기사답게.


“없지야 않지만 도시 자체가 슬럼이 형성되기 어렵게 지어졌기에 크진 않습니다.”

“그럴 것 같네. 놀랍군. 치안이 아주 좋겠어.”


아이젠이 다시 칭찬하자 로이스는 또다시 광대가 올라갔다.

아이젠은 그 모습을 보고 로이스가 듣지 못하게 ‘알기 쉽군.’ 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이젠은 시선을 돌려 마차의 작은 창문 밖으로 드래곤 캐슬의 도로를 바라봤다.

보수를 정기적으로 하는 지 도로는 오래 사용하여 닳은 흔적조차 없었다.

길은 또 어찌나 넓은지 마차 3대가 동시에 지나가는데도 서로 부딪칠 염려가 없었다.


아이젠이 탄 마차는 대로를 지나 곧장 드래곤 캐슬 북쪽 성벽에 붙어있는 내성으로 향했다.

내성 입구에서 로이스가 창문을 열자 경비병이 다가와 절도 있게 경례를 올렸다.


“로이스 경.”

“수도에서 손님을 모시고 왔네.”

“고생하셨습니다.”


내성 문을 여는 방식에도 절차가 있는지 경비병은 제식에 맞춰 내성 문으로 걸어가더니 문을 열었다.


‘정예 병사들이군.’


제식만 봐도 북부 병사들의 훈련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남부의 병사들만큼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머물 곳인가.’


북부 대공이 머무는 드래곤 캐슬의 내성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내성만으로도 충분히 공성전을 벌일 수 있을 만큼 성벽이 높았고 눈으로 얼핏 봐도 무척 견고해 보였다.


”다 왔습니다.“

“후우.”


아이젠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이어서 아이젠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주머니에서 향수를 꺼내 몸에 곳곳에 칙칙 뿌렸다.

보통 향수는 손목이나 목덜미 정도에만 뿌리지만 아이젠은 마치 방향제 뿌리듯 옷과 피부 곳곳에 향수를 과할 정도로 뿌려댔다.

향은 또 어찌나 강한지 로이스는 향수 냄새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로이스는 독한 향수 냄새에 인상을 찡그렸다.


“향수일세. 모르나?”

“그걸 누가 모릅니까? 하지만 향수는 여인들이나 뿌리는 것 아닙니까?”

“저런, 중앙 사교회에선 남자들도 전부 향수를 뿌린다네. 참고하게. 자네는 중앙에서 꽤 먹힐 얼굴이거든. 중앙의 여인들은 금발에 환장한다네.”

“저희는 지금 사교회에 가고 있는 게 아닙니다.”

“네크로맨서는 시체랑 부대끼고 살아서 향수를 필수품처럼 갖고 다니며 수시로 뿌린다네. 이해하게.”


시체 얘기가 나오자 로이스는 한층 더 과하게 인상을 썼다.

독한 향수 냄새의 목적이 시체 냄새를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상상하니 안 그래도 나빴던 네크로맨서에 대한 인상이 더욱 나빠졌다.


“대공 전하를 만나는 자리 아닌가? 이건 예의의 문제일세. 로이스 경.”

“따라오시죠.”


나빠진 인상이 그대로 반영된 싸늘한 말투에 아이젠은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로이스의 뒤를 따랐다.

로이스는 이 네크로맨서가 몹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업부터, 성격까지.


‘멋지군.’


정작 아이젠은 로이스의 시선 따윈 신경도 쓰지 않았다.

네크로맨서가 천대받는 것은 일상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다.

그것보다 아이젠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따로 있었다.


‘내부에도 신경을 많이 썼군.’


북부 대공이 머무르는 성의 내부는 완연한 하얀색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마치 마법처럼 단면이 깔끔했다.

거기에 밖의 날씨와는 달리 내부는 생각보다 훨씬 따뜻했다.

마법의 힘인지 건설 기술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을 공들여 지었음은 틀림없었다.

정신없이 내부를 감상하는 동안 어느덧 알현실 입구까지 왔다.

알현실 앞은 두 명의 기사가 지키고 있었다.


“로이스 경.”

“중앙에서 파견한 네크로맨서 아이젠 경을 데려왔다.”

“들어가시죠.”


대답하는 두 기사의 눈초리가 나를 향한다.

미심쩍음이 가득한 표정.

하지만 아이젠의 관심사는 두 기사를 향하고 있지 않았다.


‘문까지 멋있군.’


알현실 문은 커다란 검은색 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역시나 북부 대공을 상징하는 하얀색 용이 그려져 있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하얀색 용이 갈라지며 커다란 알현실이 보였다.

바닥조차 하얀색 돌로 구성된 알현실이었는데 카펫도 하얀색이었다.

알현실 안에는 중무장한 기사들이 위풍당당하게 좌우로 늘어서 있었다.

북부 대공 근처에는 귀족으로 보이는 자들이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아이젠을 쏘아 보고 있었다.


‘음, 이렇게 격하게 환영을 해주다니 몸둘바를 모르겠군.’


아무래도 북부에서 네크로맨서를 꺼린다는 건 와전된 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젠은 뜨거운 시선을 즐기며 알현실 중앙으로 걸어갔다.


‘저 사람이 북부 대공인가.’


아이젠은 북부 대공을 보고 조금 놀랐다.

북부 대공이 여성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젊었다.

차가움을 간직한 연분홍색 눈동자.

고급스러운 로즈골드 색의 긴 머리칼.

한겨울의 눈송이 같은 하얀 피부.

두꺼운 플레이트 아머도 그녀의 미모를 가릴 수 없었다.

아름다움이란 형이상학적 단어를 현실에 구현한 것 같은 외모였다.

아이젠이 그녀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북부 대공은 그 연분홍색 눈을 무심하게 뜬 채 아이젠을 바라봤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고생 많았다. 로이스.”


‘목소리도 또랑또랑하군.’


외모 뿐만 아니라 목소리조차 완벽했다.

거기다 발음은 어찌나 정확한지 큰 목소리를 내지 않았음에도 말소리 하나하나가 귀에 쏙쏙 박혔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공 전하. 아이젠이라고 합니다.”

“그대가 중앙에서 온 네크로맨서인가?”

“그렇습니다.”


아이젠은 고개를 들어 북부 대공을 바라봤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너무도 위압적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성질이 동시에 위화감 없이 섞여 있었기에 조화로운 낯설음이 느껴졌다.


‘심지어 소드마스터라지.’


외모와 혈통, 거기에 일신의 능력까지.

완벽이란 단어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어쩌면 아이젠 눈 앞의 이 여인일지도 몰랐다.

“북부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북부는 그대가 온 것이 그다지 탐탁치 않네.”

“제가 네크로맨서이기 때문입니까?”

“그것만은 아닐세. 우리가 중앙에 요청한 건 물자와 병력이야. 그런데 딸랑 그대 혼자 보내놓고선 황제는 군단급 전력을 보냈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니...”


‘군단급 전력이라.’


분명 궁정백이 그렇게 보고를 올리긴 했겠지.

황제는 우습게도 그걸 진심으로 받아 들였고.


‘북부 대공이 기분 나쁠만도 하지.’


아마 북부 대공은 황제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이젠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자신 같아도 군단급 전력이랍시고 몰락 귀족 하나 띡 보내면 성이 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 군단급 전력이 아이젠 자신이었고 그는 스스로를 증명해야 했다.

아이단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세상에 남아있지 않은 가족들이 다시 한번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거기에 그대의 신병을 아예 내게 넘겼더군. 골치 아픈 걸 떠넘기듯 말이야. 내가 자네에게 뭔가를 기대해도 되겠나?”

“어디에든 사용하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북부는 척박하기에 누구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나는 실적을 원해.”

“실적 말씀이십니까?”

“그래, 실적.”


북부 대공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그덕 거리는 갑옷 소리가 들렸다.


“남부 전선의 영웅이라 들었다.”

“과분한 명예입니다.”

“전장에서의 명성은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주어지진 않아. 일인군단이란 말은 과하더라도 영웅이란 말은 진짜겠지.”


북부 대공은 아이젠 앞까지 걸어왔다.


‘아찔하군.’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게 단순히 그녀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그녀의 작은 동작, 말소리 하나에서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북부는 위태롭고 위험하다.”

“위험한 곳에 잘 적응하는 것이 제 장기 중 하나입니다.”

“쓸모를 보여주길 바란다. 내 검이 제국을 향하지 않도록 말이야.”

“그리 하겠습니다.”


시체만 충분하다면 말이죠.

뒷말을 삼킨 아이젠은 북부 대공을 똑바로 바라봤다.

연분홍색 눈에 비친 자신이 보였다.

아이젠은 웃고 있었다.

아이젠의 표정을 본 북부 대공은 입꼬리를 올렸다.


“로이스 경, 당분간 아이젠 경의 호위를 맡게.”

“...알겠습니다.”


로이스는 불만을 꾹 삼킨 채 복종했다.

기사들이 내키지 않는 임무에 이렇게 쉽게 순종하다니 장악력은 확실하군.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네. 오늘은 이만 쉬게.”


북부 대공은 축객령을 내리며 먼저 알현실 뒤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이젠은 귀족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알현실을 나왔다.


“따라오시죠.”

“어딜 가는 건가?”

“지내실 방부터 안내해 드리죠.”

“오, 가장 중요한 일이지.”


나름 귀빈 대접을 해주는군.


“그런데 대공 전하의 성함은 무엇인가?”

“그것도 모르십니까?”

“알면 물어 보겠나?”

“하아.”


이런 건 미리 알아보는 게 기본적인 예의 아닌가?

하지만 따져봤자 무의미할 것이란 사실을 로이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런 질문을 대놓고 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에서 많이 벗어난 인간이란 뜻이었으니까.


“크리스티나 팬드래건 대공 전하십니다.”

“음, 확실히 기억했네.”


아이젠은 로이스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교회는 밖에 있나?”

“내성에도 따로 교회가 있습니다. 내성에 있는 것이 가장 큽니다.”

“장례식이 끝나고 시체는 교회 지하에서 보관하나?”

“기사 이상의 신분을 가진 분들은 대체로 그렇지요.”

“최근 맞붙고 있는 적은 어디인가?”

“요즘은 주술부족들이 골치입니다. 안 그래도 성가신 놈들이었는데 최근엔 돌덩이로 계단을 만들어서 공성전을 치르는 주술을 익혀서는...”

“북부는 척박한데 농사는 어떻게 짓나? 혹시 농부보다 사냥꾼들이 많은가?”

“보통은 눈이 녹았을 때 뿌리 식물들을 심습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로이스는 아이젠의 질문 세례에 질린다는 듯 대답했다.

정작 아이젠은 로이스의 태도에 전혀 개의치 않았지만.


“북부 환경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말일세.”

“적당히 하십시오.”

“빨리 적응하려는 게 기특하지 않은가? 대공 전하께서도 자네에게 내 호위를 맡기셨으니 임무에 충실하게. 호위 대상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호위의 임무 아니겠나?”


감시의 임무는 아닐지도 몰라도 말이지.

어쨌든 로이스는 아이젠에게 학을 떼면서도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젠의 질문세례를 나름대로 성의 있게 대답해줬다.

물론 질문에 대답하는 말투는 좋지 않았지만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진 않았다.

아이젠은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애초에 살가운 태도를 기대하진 않았으니까.


“여기가 아이젠 경이 쓸 방입니다.”


이윽고 성 구석에 있는 방에 도착했다.

아이젠의 사생활을 존중하기 위해 배려심 깊게 가장 인적이 드문 곳으로 방을 배정해준 것에 아이젠은 깊은 감사를 느꼈다.

방 내부는 가구도 몇 개 없이 아주 단출했다.

좋게 말하면 검소했고 나쁘게 말하면 삭막했다.


“그럼 오늘은 편히 쉬십시오. 내일 오겠습니다.”

“응? 쉬라니?”

“여독을 푸셔야하지 않겠습니까?”


로이스의 의문에 아이젠은 당치도 않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로이스, 자네 아까 대공 전하의 말을 못들었나보군.”

“...대공 전하의 말씀을 못 들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이렇게 가면 안 되지. 대공 전하께선 내게 분명 ‘기대’ 한다고 하셨네. 네크로맨서에게 무얼 기대하시겠나?”


로이스는 미간을 좁혔다.

이 작자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설마.’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로이스는 지금 당장 이 방을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네크로맨서들은 전부 제정신이 아니라더니 설마 첫날부터...


“당장 교회로 가지.”

“...기도라도 드리려는 겁니까?”


로이스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물었다.

그러나 로이스의 대답을 들은 아이젠은 답답하다는 듯 혀를 찼다.


“거참, 답답한 기사로군.”


로이스는 아이젠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젠은 소탈하게 웃으며 로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시체를 확인하러 가는 게 당연하잖나?”


로이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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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북부 데뷔전 +5 24.05.11 13,857 295 13쪽
6 신고식 2 +6 24.05.10 13,920 272 13쪽
5 신고식 +11 24.05.09 14,365 273 13쪽
4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5 24.05.09 14,911 278 14쪽
3 대공 전하의 진의 +9 24.05.08 15,620 279 14쪽
» 북부 대공 +15 24.05.08 16,915 305 14쪽
1 사형선고 집행유예 +29 24.05.08 20,903 31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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