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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샤 님의 서재입니다.

눈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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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두샤
작품등록일 :
2008.09.08 02:28
최근연재일 :
2008.09.08 02:28
연재수 :
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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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글자수 :
166,695

작성
08.09.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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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눈의 소리 - 1. 소녀의 방문 (2)

DUMMY

6

15년 전, 한 소녀를 만났다.

그 소녀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남기고 내 앞에서 사라졌다. 손목의 팔찌는 약속의 징표. 나는 약속을 겨우 기억해내고, 눈을 닮은 소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예언자였다. 우리의 세계보다 높은 곳에 있다는 다른 세계에서 소녀는 항상 우리 세계를 바라보고 가슴 아파 했다고 한다. 인간은 계속 죄를 쌓아가고 있었고, 그것이 일정 상태에 이르면 신벌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소녀는 이를 악 물었다. 그렇게 15년 전, 이 세계를 처음 방문한 소녀의 각고의 노력으로 세상은 신벌을 가까스로 피할 수가 있었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녀를 믿어주고 싶었다. 아마 내가 일곱 살이었다면 이 이야기에 의심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어린아이가 되어 이 소녀를 돕고 싶어졌다. 설령 이게 장난 같은 것이라 해도, 도울 수 있는 만큼은 돕기로 하자. 소녀는 내게 아주 소중한 것들을 안겨 주었었으니까.

궁금한 것은 아직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밤이 늦었기 때문에 소녀와 나는 우선 잠을 청하기로 했다. 소녀는 침대에서, 나는 바닥에 이불을 펴고.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길었던 하루를 마감했다. 나는 그녀에게 도움을 준 것일까?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조금만 기다려, 환자식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에페는 어떤 걸 먹지?”

“에페는 아주 조금 먹어. 떨어진 나뭇잎 같은 걸 먹어. 잠시 후에 에페가 공원에 다녀올 테니까. 아직 회복중이야.”

내 말에 응답하는 맑고 고운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에 조금 감동한다. 혼자서 살지만 매사에 열심히,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는 나였지만 외롭기는 했었던 것 같다. 나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한다는 것, 집에 오면 맞아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많이 외로울 텐데, 아직 애인도 없는 걸까?

“자 먹자.”

“고마워.”

다행히 그녀도 밥을 먹었다. 일단은 스프일 뿐이지만, 그녀의 식습관도 미리 살펴봐야 할 것이다. 스프를 떠먹고 그녀는 웃었다.

“신경써줘서 고마워.”

“하하. 뭘 그런 걸 가지고.”

나는 겸연쩍게 웃는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비현실이라 할 만 하다. 그건 그렇고.

“그건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난 뭘 도우면 되는 거지?”

어젯밤 이야기의 2 라운드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담담히 이야기했다.

“난 약속된 곳으로 가야 해. 괜찮다면 같이 가 줘. 물론 어렵겠지만…….”

나는 얼른 대답한다.

“응, 그 곳이 어딘데?”

“천호(天湖), 그러니까 바이칼호(湖)”

“흐응, 바이칼이란 말이지.”

가만, 바이칼? 그런 호수가 이 동네에 있던가?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본다. 석촌호도 아니고 청평호도 아니고 바이칼호? 바, 바이, 바이칼? 설마, 그 곳인가?

“너 그 호수……. 호, 혹시, 러러…러, 러시아?”

소녀는 스푼을 입에 문 채로 잠깐 고개를 갸웃 하더니, 뭔가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인다.

잠시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먹던 것을 그만두고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소녀도 조용히 따라와 모니터를 응시한다.

“바이칼호. 러시아의 이루크츠크. 2500만년의 역사. 수심 1,742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저수량이 2만 2000㎦로 담수호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전체 담수량의 90%를 차지. 면적 3만 1500㎢,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km, 최단 너비 27km, 둘레 2200km, 가시거리 최고 40.5m. 호수 안에 섬이 무려 22개. ‘시베리아의 진주’……. 말하자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호수라는 건가.”

소녀는 말없이 모니터와 내 얼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큭, 인천-블라디보스토크 비행기 값이 왕복 115만원? 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기차를 타고 이루크츠크까지 가야 하니까 비용은 추가될 테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겠지.”

소녀를 돌아봤다. 소녀는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려움. 꼭 바이칼호에 가야 하는 것 같았다. 만약 안 된다면 어쩌지? 하는 표정을 짓고 나를 바라본다. 실망시키기 싫어.

“음, 저기. 혹시 돈…… 같은 건 가지고 있어?”

소녀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든다. 나는 고심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15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서 인류 심판의 예언을 하고는 저 멀리 시베리아까지 데려다 달라는 이 소녀를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자 우선 잘 들어.”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하지만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작고 귀여운 외모에 맞지 않게, 결연한 의지 같은 것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일단 가는 방법은 조금도 어렵지 않아.”

소녀는 그래? 하며 밝은 표정을 짓는다.

“다만 비용이 어마어마해. 구체적인 목표치라면 개인당 150만원 정도는 있어야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해. 아무리 못해도 120만원은 있어야 갈 수라도 있어. 나도 저금한 것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턱도 없어.”

나는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실한 태도로 이야기했다. 아무리 어려운 이야기라도 사실은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한 달만 기다려, 내가 돈을 마련할게’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는 서로 의논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이 함께 한다는 말의 의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문제는 걱정 하지 마. 돈은 문제가 되지 않아.”

소녀는 이제 됐어. 라는 표정이었다.

“그 전에 약속해줘. 나를 데리고 바이칼호에 가겠다고. 돈은 걱정 하지 마.”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러마고 대답했다. 사실 그녀에게 모든 것을 부담하고 싶지는 않다. 그녀가 자신이 갈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을 모으면 이번에 받는 월급과 저금을 합해서 함께 갈 생각이다. 바이칼호의 대 경관은 보고 싶기도 했으니까. 그건 그렇고.

“그건 그렇고 어떻게 돈을 모을 생각이야?”

그녀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사람들을 돕고 그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받는 거야.”

추상적인 그녀의 대답에 나는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건 동화가 아니다.

“그건 가능하지 않아. 게다가 구체적이지 않잖아.”

소녀는 내 부정적인 목소리를 듣고 웃어 보였다. 그녀의 웃음에는 특별한 것이 있었다. 마치 이 공간의 공기가 깨끗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웃음은 맑고 한 없이 투명했다. 그 미소에 압도당했기 때문인지, 나는 잠시 말을 잊고 있었다.

“걱정 하지 마. 난 갈 수 있어. 네가 간다면, 나도 가는 거야.”

그녀의 말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7

바쁜 시간이 되었다. 혜연은 정확한 시간에 도착해서 분주한 내 일손을 거들어주고 있었다. 함께 일한다기 보다는 그녀가 주된 종업원이고 난 보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에페는 정오가 조금 지나서 깨어났다. 소녀는 에페도 나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에페는 신기한 동물이었다. 큰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좋은 향기를 내뿜었다. 냄새가 나지 않는데다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귀엽다니. 반려 동물로는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앞으로도 말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팔찌를 잘 간직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정말이지, 존재 자체가 수수께끼인 아이다. 하지만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녀는 누구보다도 순결하게 아름답고, 고결한 마음씨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의 말을 전부 다 납득할 수는 없지만 그녀 자체를 믿을 수는 있었다. 그건, 사실이니까. 사람은 굳이 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심성을 알 수 있다. 굳이 세상의 모든 소금을 다 먹어보지 않아도 소금이 짜다는 걸 알 수 있듯이, 그녀의 행동을 하나 하나 분석하지 않아도 그녀의 심성은 알 수 있는 것이다.

가만, 그녀가 하려는 일은 무엇일까? 그녀 말대로라면 이쪽 세계에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으니 아르바이트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이 이봐!”

“승우 오빠!”

두 개의 고함이 동시에 내 귀를 때렸다.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와 높고 날카로운 소리. 뒤의 소리는 말할 것도 없이 혜연이었고, 다른 한 쪽은.

“어이, 아저씨. 계산 안 해? 내가 한가해 보여?”

누가 봐도 조폭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우람한 체격의 험상궂은 깍두기였다. 그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있는 바람에 계산을 한 참 안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나는 거듭 사과를 하며 그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놀란 마음에 계산을 하니 실수 연발이었다. 얼굴에 칼자국도 있는 무서운 깍두기 형님은 끝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계산대를 벗어났다. 깍두기 형님이 점장 아저씨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기를 신께 비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얼이 빠져 가지곤.”

평소 말이 없던 혜연이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고 있었다. 조금 친해진거라 생각하고 나는 헤헤 하고 웃어보였다.

“하긴 여자……친구랑 좋은 시간 보냈을 테니깐, 얼이 빠지기도 하겠지.”

혜연이는 흥 하는 말투로 쏘아붙였다. 가만, 여자친구?

“여자 친구라니?”

혜연이는 인상이 찌푸리고, 마치 말하기 싫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더니, 안절부절 못 하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어제, 업고 갔잖아.”

놀란 표정을 숨기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지금 내 표정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아마, 아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혜연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젯밤에 일을 하다가 문득 밖을 바라보니 내가 무슨 약속에 늦은 사람처럼 달리고 있더라고 했다. 그래서 혜연은 별 생각 없이 일에 열중하고 있었는데, 내가 어떤 여자를 업고 다시 그 길을 걸어가더라는 것이다. 그쪽 방향이 집이라는 것을 혜연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여자 친구라고 단정했다.

“이거 받아.”

혜연은 잘 포장된 물건을 건넸다.

“이건 뭐지?”

당황하여 상황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바쁜 와중에도 선물을 받아들었다.

“어머니. 기일이 얼마 안 남았다고 해서. 액자를 사 두었어. 미리 줄게. 정확한 날짜는 모르니까.”

그녀는 주기 싫은 것을 억지로 주는 사람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사실은 상냥한 부분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선물을 건네는 그녀의 마음이 따뜻해서 나는 조금 감동하고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 손님이 적었다. 그래서인지 혜연과 나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우선 눈소녀가 여자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역설했다. 별로 설명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먼 친척이라고 이야기했다. 혜연이는 조금 안심한 표정이어서 놀랐다. 혜연이 같은 아이도 여자다운 구석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놀랄 일이었던 것이다. 혜연이는 아버지가 대학 교수라고 말했는데 별난 사람인 것 같았다. 혜연이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지만 의외로 아버지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우리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러 가지 불만을 표시했고, 혜연이는 크게 웃었다.

“불량 아버지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네, 우리는.”

혜연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대화와 웃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짧은 시간의 대화였지만 혜연과의 관계가 아주 부드럽게 변했다는 느낌이 든다. 친밀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서로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 공통점에 기뻐하며 미소한다. 그것이 인간관계에 목마른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어색한 악수가 아닐까?

“그럼 난 이만 퇴근할게.”

내가 이야기를 꺼내고 혜연과 나는 어색하게 미소한다. 어색함과 정적. 그것은 아쉬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다른 어떤 날들보다도 가까웠던 우리.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면, 우리는 다시 어제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늘과 같은 나날이 매일 지속된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대개 솔직하지 못한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쓸쓸함이 담긴 마음으로, 우리는 아쉽게 인사하고 헤어진다.

집에 돌아오니 소녀와 에페가 맞아 주었다. 고마운 기분으로 들어와 우선 액자의 포장지를 뜯어보았다. 특별한 무늬는 없는 깔끔한 모양의 액자였다. 선물을 받아보면 선물한 사람의 심성을 느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담담하고 실용적인 액자는 혜연이의 심성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말한다던가, 줄 선물이 없어서 돈이나 상품권 등으로 선물을 대신하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의 무지와 삭막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런 정성도 담기지 않은 선물세트 따위도 마찬가지의 삭막함을 담고 있다. 어쨌거나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다섯 살의 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가로수 놓인 길을 걷고 있는 사진을 액자에 걸었다.

“좋은 사진이네. 저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분명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일 거야.”

“응? 고마워. 하지만 아버지가 찍은 게 아닐까 하는데.”

소녀의 솔직한 감상에 나는 겸연쩍어 하며 식사를 준비한다. 보나마나 소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을 테니. 냉장고를 보니 별다른 재료가 없어서, 당근과 양파와 햄을 잘게 썰어 볶음밥을 만들기로 했다.

“아, 그러보니 떨어진 열매나 나뭇잎 같은 거라도 주워올 걸 그랬나?”

나는 소녀에게 외친다. 소녀는 괜찮다고 말했다. 에페는 굉장히 까다로운 식습관을 가진 동물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달려있는 꽃잎이나 싱그러운 나뭇잎은 먹지 않는다. 힘을 잃고 땅에 떨어진 잎이나 열매만 먹는다. 에페는 수시로 잠을 자고 있는데, 겨울잠이라도 자는 것 같았다. 겨울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 휴식을 취하는 거겠지. 뭐가 어찌되었든 신기한 동물임은 틀림이 없다.

당근하고 야채를 달달 볶는다. 씹기 좋을 정도로 익으면 먼저 햄을 볶고 그 다음이 밥이다. 밥에는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다. 먹음직한 냄새가 10평 남짓한 방안에 퍼졌을 때,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소녀는 많이 먹지 않는다. 하지만 남기는 법도 없다. “이건 많아.”라고 말하고는 남기지 않고 먹어치운다. 밥을 먹으면서 가만히 생각했다. 소녀는 무엇을 하며 오후를 보냈을까?

“응. 뭐하고 있었어?”

“책을 쓰고 있어. 남은 시간에는 기타를 배우고 있어.”

소녀는 이 세계 사람들을 위해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는 예언자였다. 예언자라면 책 정도는 만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나저나 기타는, 내가 가지고 있던 교본을 기초로 간단한 주법과 크로매틱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 많이 아플 텐데도 묵묵히 연습하고 있는 모양이다.

식사를 끝내고 상을 치운다. 나는 소녀의 이름을 모른다. 15년 전에 알려준 이름은 기억에 없다. 다시 용기를 내어 물어 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소녀의 이름을 모르지만 그것으로 괜찮다. 소녀는 그냥 소녀다. 어쩌면 발음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아주 난해한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런 이름을 아느니 차라리 소녀를 소녀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한 대상을 규정짓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고, 주제 넘는 철학적 사고를 하며 피식 웃었다. 아무튼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책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는 다른 세계의 소녀가 나의 집을 방문했다. 에페라는 신기한 동물과 함께 다니는 소녀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남겼다. 1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돕기로 결심한 나, 보통 남자 정승우. 그렇게 내 일상은 숨 가쁜 변동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1장, 소녀의 방문



* 정규마스터님에 의해서 문피아 - 자연 - 일반 (gon) 에서 문피아 - 하 - 연재 완결(etc_fine) 으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8-09-09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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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눈의 소리 - 5. 약속의 호수 (1) 08.09.08 360 2 49쪽
7 눈의 소리 - 4. 천호(天湖)로의 여정 (2) 08.09.08 355 2 28쪽
6 눈의 소리 - 4. 천호(天湖)로의 여정 (1) 08.09.07 332 2 48쪽
5 눈의 소리 - 3. 외로운 천사의 비가(悲歌) (2) 08.09.07 219 2 32쪽
4 눈의 소리 - 3. 외로운 천사의 비가(悲歌) (1) 08.09.07 450 2 38쪽
3 눈의 소리 - 2. 무너진 세계를 위한 랩소디 +1 08.09.06 505 2 58쪽
» 눈의 소리 - 1. 소녀의 방문 (2) +1 08.09.06 217 2 17쪽
1 눈의 소리 - 1. 소녀의 방문 (1) +1 08.09.06 883 5 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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