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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민간군사기업 블랙 레벨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3.04.16 12:56
최근연재일 :
2014.02.18 12:00
연재수 :
128 회
조회수 :
838,368
추천수 :
16,202
글자수 :
790,195

작성
13.09.05 07:40
조회
3,852
추천
97
글자
19쪽

12장 [재결합] -05-

DUMMY

일행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넓은 거리로 나왔다. 넓다고 해도 거리는 여전히 더럽고, 수많은 사람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다. 거기에 자동차까지 다니고 있었다. 태민은 그 자동차들을 보면서 어렸을 적 보았던 책을 떠올렸다. 그 책에는 미래세계를 소개하는 지면이 있었는데 지금 눈앞을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그 옛날 책에서 나오던 지나치게 곡선을 추구한 자동차와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는 곳에서 바로 뒤까지 다가와 경적을 울려대는 자동차에게 느낀 감정은 반가움보다 얄미움이 앞섰다.


앞장서서 걷던 곰이 가로등 빛을 받아 입구가 밝은 빌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빌딩이었다. 빌딩 안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좁은 복도가 일행을 맞이했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층마다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들이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었다.


곰이 안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보이죠? 30층입니다.”


30층에는 피아노 교실과 악기 상점 그리고 라이브 카페 9020이 있었다. 태민은 9020이란 이름이 굉장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겉으론 내색하지 않고 일행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전등이 매우 심하게 깜박였지만 아무 일 없이 빠른 속도로 30층에 도착했다. 30층 복도는 꽤나 넓었다. 밖과는 다르게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쾌적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전등들도 앞만 간신히 볼 수 있을 정도의 빛만 밝히고 있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몹시 음산했다.


곰이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라이브 카페 앞에 서더니 서툴게 문을 열었다. 복도보다 어두운 카페 내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페는 생각보다 컸다. 10개 정도 되는 테이블은 손님들로 가득했으며, 그들의 주문을 받는 종업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행은 마침 자리가 난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들뜬 표정의 여종업원이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서는 진한 술 냄새가 나고 있었다.


“무엇을 주문하시겠습니까?”


메뉴판을 보고 있던 곰이 짧게 대답했다.


“안주 C세트.”


그 순간, 태민은 종업원의 눈 주위가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가고 난 뒤 메뉴판을 확인해보니 안주 C세트는 이곳에서 팔고 있는 음식 중 가장 싼, 그것도 간신히 구색만 갖춰놓은 메뉴였다. 손님 네 명에게서 큰 건수를 올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종업원은 가장 싼 C메뉴를 듣고 얼마나 실망했을까. 태민은 속으로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주 세트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곰과 노인의 시선은 무대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연주해 어둡고 기분 나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음악은 굉장히 느렸고, 일정한 멜로디도 없었으며, 가끔씩 틀린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음이 튈 때도 있었다. 태민에게는 금방이라도 이 장소를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듣기 싫은 곡이었다. 가게를 가득 채운 손님 중에 그 누구도 이 음악에 대해 항의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대장. 저기 오른쪽에서 기타 치고 있는 긴 머리 보이나?”


노인의 물음에 태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머리카락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네요.”

“그가 바로 늑대라네. 우리가 데려가야 할 사람이지.”


그때 꼬마가 머리를 들며 물었다.


“그런데 늑대 아저씨는 언제부터 기타를 친 거야? 나 늑대 아저씨가 기타 치는 거 오늘 처음 봤어.”


노인도 눈을 반짝이며 곰을 쳐다봤지만 정작 곰은 무덤덤한 얼굴로 무대를 바라보며 테이블 위에서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그래도 태민까지 고개를 돌리며 관심을 보이자 혀로 입술을 핥더니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장이 죽고 난 뒤에 우리끼리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뜬금없이 기타를 치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그때는 그냥 술김에 한 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배달원을 통해 이곳에서 연주하게 됐으니 한 번 들르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이곳에 들러서 연주하는 걸 들었지만. 저 녀석이 치는 기타란….”


그때 꼬마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형편없었어?”

“응. 형편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그나마 나아졌네.”


그 말을 하자마자 테이블 위에 저렴한 안주 C세트가 쾅소리와 함께 올려졌다. 음식을 가져온 종업원이 곰을 보며 눈을 흘겼다.


“형편없어서 죄송하네요. 하지만 네 명이서 C세트나 주문하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도 웃긴 거 아닌가요?”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한 곰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 아니요. 이곳 음식에 대해 한 말이 아닙니다만….”

“됐네요. 변명 따윈 듣고 싶지 않으니까 그 허접한 C세트나 맛없게 드세요.”


종업원은 진한 술 냄새를 남기고 다른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곰은 황당함을 가득 띄운 얼굴로 종업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잘못 들어놓고 왜 남한테 화풀이야?”


그러자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던 노인이 낄낄대며 말했다.


“링 위에서 세 달이나 버틴 챔피언도 여자에게는 쪽도 못 쓰는 구만?”

“링 위에서 오줌도 쌌어.”


꼬마가 거든 말에 곰은 얼굴을 심하게 붉히며 주먹을 쥐었지만 차마 때리진 못하고 혼자서 분을 삭혔다.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태민은 무대 위의 늑대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기타를 잡았을까, 미숙한 연주 실력으로 작지만 무대라는 공간에 오를 만큼 절실한 것이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C세트의 과자를 한 조각 주워 먹었다. 확실히 맛은 형편없었다.


C세트의 내용물이 사라지고 빈 접시만 남게 되었을 때 무대에 올랐던 연주자들의 어두운 음악도 드디어 끝이 났다. 카페 손님들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태민처럼 개인적으로 느꼈던, 음악이 싫다는 반응조차 없었다. 완전한 무관심만이 홀에 가득했다. 연주자들은 그들이 연주했던 어둡고 느린 음악처럼 무대 뒤쪽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듯했다.


누군가가 정적 속에서 손바닥을 부딪쳐 박수를 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노인은 입을 꾹 다문 채 손을 높이 들어 박수를 쳤다. 그러자 꼬마도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곰과 태민도 거기에 감염되어 손바닥을 부딪쳤다. 하지만 다른 테이블에서 박수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카페 안의 모든 시선을 받으며 시작된 박수는 냉정한 무관심 속에 사라졌다.


하지만 무대 뒤로 사라지려던 연주자들의 관심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그들 중 한 사람. 긴 머리카락을 가진 늑대라는 남자는 박수를 보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미소를 거두고 두 눈을 크게 떴으니 태민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 ※ ※




일행은 늑대와 함께 가게 앞 복도로 나왔다. 곰 때도 그랬듯이 노인이 앞으로 나와 늑대를 바라보며 말했다.


“늑대, 이번에 우리가 온 것은….”

“알았다. 같이 가겠다.” 늑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태민을 바라봤다. “당신들만 왔다면 나는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장이 돌아온 것을 이 눈으로 확인한 이상 내가 갈 길은 명백하다.”

“아아, 그래. 그렇군.”


노인이 뒤를 돌아보더니 두 팔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태민도 웃음으로 답하면서 곰을 데리고 나올 때처럼 복잡한 일없이 간단하게 일이 끝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노인의 왼쪽 발아래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차가운 소리가 났다. 일행의 시선이 모두 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가죽 집에 들어있는 나이프가 떨어져 있었다. 일행의 시선이 늑대에게 향했다.


늑대는 등에 메고 있던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고 나이프를 오른손에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에게 대장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대장은 나이프를 들어라. 칼집에 들어있는 상태로 겨루자. 서로 상처 입을 일은 없을 거다.”


노인이 늑대를 말리려 했지만 태민이 앞으로 나가며 저지했다. 태민은 늑대의 얼굴을 바라보며 천천히 한쪽 무릎을 굽혔다. 늑대의 눈에서는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기만 하는 것 같았다.


나이프는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다루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태민은 칼집이 씌워진 나이프를 앞으로 내밀고 자세를 취했다. 늑대도 거기에 응하듯 자세를 취했다. 결투에 대한 마음을 잡는 데에는 잠깐 동안의 고요, 그것으로 충분했다.


태민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노골적으로 심장을 노리고 나간 공격을 늑대는 상체를 뒤로 숙여 피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간 팔이 돌아올 때 늑대의 팔이 앞으로 나왔다.


이걸 기다렸다. 태민은 나갔던 팔을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앞으로 움직였다. 찰나의 순간, 목표를 잃은 늑대의 팔이 품 안으로 들어왔다. 태민은 즉시 자신의 팔로 늑대의 팔을 붙잡고 그대로 뒤로 꺾었다. 늑대가 손으로 쥐고 있던 나이프가 바닥에 떨어졌다.


“항복이다.”


늑대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했다. 태민은 그 말을 듣자마자 몸의 힘을 풀고 팔을 풀어주었지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일행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듯이 어딘가 복잡한 표정이었다. 결국 그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태민이 늑대에게 물었다.


“알면서도 일부러 들어온 건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태민이 나이프를 돌려주려 하자 늑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언젠가 대장과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에게 주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원래 주인이 나타났으니 그건 대장이 가져가야 한다.”

“이걸 제가 썼다고요?”


태민은 나이프를 얼굴 가까이 가져와 가죽 집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살펴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나무 손잡이가 마음에 꼭 들었다. 가죽 집에서 살짝 빼서 살펴보니 날의 굵기가 또 쓰기 적당했다. 만약 가게에서 나이프를 골랐다면 반드시 이것을 샀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늑대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이며 물었다.


“대장은 자신이 썼던 무기를 잊어버렸는가?”


그때 뒤에서 보고 있던 노인이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긴 얘기가 필요하네. 하지만 이곳은 장소가 좋지 않아. 다른 곳에 가서 이야기하지.”




※ ※ ※




일행은 빌딩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원이라고 해봐야 콘크리트 바닥에 언제 만들어졌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운동 기구들이 주변에 설치된 작은 공간이었다. 나무는 한 그루도 없었고 빛을 밝히지 않는 가로등이 대신 심어져 있었다. 태민은 가로등을 작동시키려고 기둥에 손을 대보았지만 내부에서 고장이 났는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곰이 몇 안 되는 운동기구로 꼬마와 놀아주는 사이, 노인과 태민은 늑대를 데리고 한쪽에 있던 플라스틱 의자에 모여 앉아 이제까지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얘기를 모두 들은 늑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역시 대장은 그때 한 번 죽었던 거로군.”


덤덤한 그 대답에 노인이 한쪽 입술을 지나치게 위로 올렸다.


“사람이 죽었다 살아났다는데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거 아닌가?”

“대장이 이 전에 보여줬던 기행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한다.”


그 말에 노인이 킬킬대며 웃었다.


“하긴 잘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해. 대장은 항상 위험에 몸을 던지는 성격이었지.”

“대장이 나이프 한 자루만 들고 무장한 경찰 병력을 상대했던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약간의 찰과상만 입고 돌아왔을 때는 정말 놀랐었다.”

“제가 그런 무모한 짓을 했다고요?”


태민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묻자 늑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정에 빠져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였다. 그때 대장이 경찰을 막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곳에 있을 수 없는 몸이었다.”

“믿을 수 없네요. 무장한 병력이 상대라면 최대한 거기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가 없으면 도망치는 게 상책인데.”

“대응할 수 있는 무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뭐겠어요. 총이지.”


그 순간, 늑대와 노인의 얼굴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으면서 대화가 끊어졌다. 근처에서 곰과 꼬마가 신나게 노는 소리와 멀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보다 또렷하게 들렸다. 왜 갑자기 대화가 끊어졌는지,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몰랐던 태민은 답답한 마음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잠시 후, 늑대가 무언가 말하려는 것을 노인이 제지했다. 그는 사뭇 진지해진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대장. 잠시 무거운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군. 괜찮겠나?”

“전 괜찮습니다만….”

“그래 고맙네. 먼저 우리가 하는 일의 특성상 특정 집단과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네. 자네는 기억이 없겠지만 우리는 다수의 싸움을 겪어왔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총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태민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했다가 대답했다.


“상대편에서 사상자가 나왔겠지요. 하지만 꼭 총이 있어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요.”

“맞아. 맨주먹으로도 사람은 죽일 수 있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죽은 사람도 몇 명 나왔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목격자일세. 자, 생각해보게. 맨주먹으로도 사상자가 나왔네. 그렇다면 그 주먹에 총이 쥐어지면 죽는 사람은 얼마나 많이 늘어날까?”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겠죠.”


그 말을 들은 노인은 손가락을 들어 태민을 가리켰다.


“바로 그거야. 총을 드는 순간, 사람을 손쉽게 죽일 수 있다. 시청 광장에서 경찰들이 사람들을 향해 총을 쐈던 때를 기억하나? 자네는 빌딩에서 떨어지던 중이어서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간단히 설명해주겠네. 경찰들은 보이는 대로 사람들을 쏴 죽였어.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했지. 놈들은 정말로 간단하게 사람을 죽였네. 녀석들은 나중에 자신이 죽인 시체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도 있지만 죽이는 도중에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않았을 걸세.”

“하시는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말입니까?”

“아니. 사람을 간단히 죽여선 안 된다고 말하는 거라네.”


태민은 연거푸 눈을 깜박이다 손으로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고개를 뒤로 젖혀 어두운 하늘을 한참 동안 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이번에는 땅을 바라봤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을 해봤지만 노인의 말을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고민하는 태민을 보다 못한 노인이 팔짱을 끼면서 말했다.


“우린 총이란 도구로 사람을 간단히 죽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네. 방아쇠 하나만 당기면 사람이 죽어 나가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행동해선 안 되네. 주먹으로 친다면 상대의 살과 근육 그리고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칼을 쓴다면 상대의 몸이 잘리는 섬뜩한 느낌이 칼날을 타고 전해져 오지. 적어도 누군가를 죽인다면, 자신이 하나의 생명을 없앤다는 사실을 반드시 느껴야 한다는 걸세.”


이게 무슨 개소리야? 태민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려다가 숨을 길게 내쉰 뒤 한 차례 걸려진 단어로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알아. 이건 단순히 우리의 억지일세.” 노인은 태민과 늑대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우리는 착한 사람이 아니야. 그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들일 뿐이지. 그 중심에 이 억지가 있어 우리는 우리의 목표를 잊지 않을 수 있었다네. 그렇지 않았으면 우리는 단순한 살인귀가 되어버렸을 거야. 그렇지 않나 늑대?”


늑대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태민은 지금하고 있는 말이 조그만 공격에도 부서질 정도로 약하단 것을 노인 스스로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유리처럼 약하디약한 노인의 말에 가슴이 움직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태민은 아프리카에서 반군을 상대로 총을 쐈던 경험을 떠올려봤다. 텐트에 숨어들어 처음으로 적을 죽였을 때는 가슴이 뛰어 숨이 막힐 정도였다. 박사와 함께 지프를 타고 도망갈 때에는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느꼈던 것은 자신의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였다. 노인은 말은 그런 상황에서도 적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헛웃음이 났다.


노인이 팔짱을 풀고 두 손으로 의자 가장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대장, 자네는 예전에도 이 말에 별로 찬성하는 편은 아니었지. 지금은 어떤가?”


입을 삐죽 내밀면서 태민이 대답했다.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틀렸다고 말하기도 힘들군요.”

“그거면 됐네.” 노인은 늑대를 돌아봤다. “그럼 이제 고양이만 데려오면 될 것 같은데…. 늑대, 자네 고양이 소식 아나?”

“대장이 죽은 이후, 고양이를 본 적은 없다.”

“그런가.” 노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꼬마와 곰을 향해 소리쳤다. “곰! 잠시 이리로 와보게!”


꼬마에게 목마를 태워주고 있던 곰이 그대로 이쪽으로 다가왔다.


“얘기가 끝났습니까?”

“뭐 그런 셈이지. 이제 고양이를 찾아볼까 하는데 늑대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군. 자네는 혹시 알고 있나?”

“저도 모릅니다. 그 여자가 언제 우리한테 자기 갈 곳 얘기해 준 적이나 있습니까?”

“하긴 그렇지. 그럼 도대체 어디에서 고양이를 찾나?”


태민은 이전에 만났던 고양이를 떠올려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검은색 옷을 입고 있는 여자란 단편적인 정보만 떠올랐고, 그 외에 얼굴 생김새라던가 목소리, 성격이나 말투 같은 구체적인 것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남자 네 명이 입을 다물고 고양이를 찾는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곰의 목을 타고 있던 꼬마가 수줍게 입을 열었다.


“나 고양이 본 적 있는데.”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꼬마에게 향했다. 곰은 자신의 목에 꼬마를 태우고 있다는 것을 잊고 고개를 들다가 그만 떨어뜨릴 뻔했다. 떨어지기 직전에 간신히 균형을 잡은 꼬마가 신경질을 내며 곰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노인이 꼬마에게 물었다.


“다람쥐야. 그건 지금 처음 듣는 말이구나.”

“할아버지가 궁금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물어본 적도 없잖아.”

“그건 맞는 말이지만. 아무튼 어디서 고양이를 봤다는 거지?”


꼬마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높은 곳에서!”


태민을 제외한 세 남자가 일제히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만지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대장이 다람쥐와 함께 가야겠군.”


그 순간 꼬마가 곰 위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떨어질 뻔했다. 태민은 동료들의 얘기를 아직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작가의말

13장부터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예정이며, 12장의 내용은 앞으로의 내용에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D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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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Lv.74 석박사
    작성일
    13.09.05 07:48
    No. 1

    분위기가 참 묘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1 레하
    작성일
    13.09.05 09:25
    No. 2

    알듯 말듯 한데... 조금은 지루하네요^^; 약간 텀이 있더라도 길게 올리시면 읽기 편할 텐데 말이죠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우왕좌왕
    작성일
    13.09.05 10:23
    No. 3
  • 작성자
    곁가지엽끼
    작성일
    13.09.05 12:13
    No. 4

    꿈속의 세상이야기와 소설속현실의 이야기가 서로 상충되고, 전혀 연관성을 못 느끼고 있습니다.
    그저 작가님의 글을 믿고 보는 중입니다.

    꿈속과 현실을, 양쪽의 이야기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나중에 나오겠지요.
    그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내심부족인, ["성.급(성격이 조급)"]한 [독자] 올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3.09.05 23:00
    No. 5

    ^^*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무가지보
    작성일
    14.10.29 17:25
    No. 6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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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11장 [First Strike] -01- +6 13.08.20 4,295 128 15쪽
54 10장 [공격 전] -03- +3 13.08.17 5,119 125 16쪽
53 10장 [공격 전] -02- +4 13.08.15 4,340 119 14쪽
52 10장 [공격 전] -01- +8 13.08.13 5,247 122 14쪽
51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7- +5 13.08.10 4,468 135 18쪽
50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6- +7 13.08.08 4,336 128 15쪽
49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5- +4 13.08.06 5,351 135 17쪽
48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4- +5 13.08.03 4,839 135 15쪽
47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3- +3 13.08.01 4,559 127 11쪽
46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2- +4 13.07.30 4,807 126 9쪽
45 9장 [닥터 호프스태더] -01- +4 13.07.27 6,841 126 13쪽
44 8장 [선행이 이루어지는 순간] -03- +8 13.07.25 4,589 142 13쪽
43 8장 [선행이 이루어지는 순간] -02- +7 13.07.23 5,134 139 12쪽
42 8장 [선행이 이루어지는 순간] -01- +5 13.07.20 5,101 129 12쪽
41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9- +5 13.07.18 5,039 150 9쪽
40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8- +7 13.07.16 5,127 138 8쪽
39 7장 [비록 신을 믿진 않지만] -07- +7 13.07.13 5,679 14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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