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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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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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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32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08.24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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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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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
13쪽

괴물이 우는 소리: 이 장 - 재해(04)

DUMMY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에서 문호가 사람들 사이에 낑겨 있었다. 문호는 도대체 왜 황금 같은 일요일 저녁에 동아리 출석이 잡힌 것이며, 왜 오늘 학교 근처에서 인기 가수의 게릴라 콘서트가 열렸는지 누군가 붙잡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침에 점을 한 번 볼 걸하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을 외쳤을 때는 도착지까지 반이나 남았다는 현실에 좌절했다.


“아들. 오늘 파티 있는 거 알지? 시간 맞춰 와라. 옷도 갈아입고.”


어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옷, 맞다. 옷도 갈아입어야 한다. 정신이 번쩍 들며 손에 들고 있는 종이 가방을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조금이라면 상관없지만 많이 구겨지면 그만큼 밉상이 없었다.


간신히 지하철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이 마치 지옥에서 천국으로 날아오르는 것 같이 상쾌했다. 문호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뒤늦게 개찰구로 향했다. 이편이 조금 늦어도 마음이 편했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짜증과 땀 냄새가 동반된다.


이제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문호는 제발 화장실에 사람이 없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신은 멋지게 그를 버렸다. 화장실에는 사람들이 무려 줄까지 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야. 이런 곳에서 갈아입을 순 없어. 문호는 다른 장소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의례 그렇듯이 붐비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역 밖으로 나온 문호는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위로 들었다. 오늘따라 밤하늘이 이상하게 아름다워 보였다.


문호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지하철은 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나라 지하철에 깊은 존경하게 되었다. 물론 이 순간의 감정은 빨리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졌다.


호텔이 눈에 보이는 곳에 왔지만 여전히 옷을 갈아입지 못했다. 문호는 모든 힘을 머리에 집중에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을 찾았다. 운이 좋게도 근처에 회사들이 몰려 있는 골목이 있었다. 번화가와 다르게 그 골목에는 불이 꺼진 빌딩들이 잔뜩 있었다. 이 골목 중 일요일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회사원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한편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문호에겐 구원의 손길이 아닐 수 없었다. 방법을 찾았으니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제발 어딘가에 문을 연 빌딩이 있어라, 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이번에는 신이 도왔다. 입구부터 큰 어느 빌딩이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문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손으로 머리도 다듬었다. 마치 빌딩에 있는 사무실 직원인 양 행동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넓은 빌딩 로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문호는 화장실의 위치를 파악하고 누가 오기 전에 재빨리 들어갔다. 화장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불행 다음에는 행운이 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화장실 첫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가방 안의 턱시도로 갈아입고 있을 때 갑자기 땅이 약하게 울렸다. 지진인가? 하고 생각할 때 울림이 멈췄다.


“우와, 간 떨어질 뻔했네.”


옷을 모두 갈아입고 마지막으로 검은 나비넥타이를 목에 거는 과정만 남겨두었다. 나비넥타이를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던 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주머니에 넣었다. 아무래도 이건 호텔 앞에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유리문 너머로 화려하게 꾸며진 파티장이 펼쳐졌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참가하는 인원수는 조촐했다. 대충 봐도 참가 인원보다 종업원 수가 많아 보였다. 그런데 장소는 지나치게 넓었다. 넓은 회장이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주최자가 모든 비용을 댔으므로 비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문호는 이런 식으로 가끔씩 사치를 마음껏 부리는 것을 나쁘지 않게 여겼다.


“오, 아들 왔어?”


철저한 방임주의로 일관하시는 어머니 이진이 눈에 띄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손에 와인 잔을 든 채로 아들을 맞이했다.


“맛있는 거 많으니까 많이 먹어둬.”


문호는 굳이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이미 그럴 작정이었다. 이 파티에서 남는 거라곤 먹을 거밖에 없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대부분 특수기관 관련 인물들로 간부급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이 자식이라도 데려오면 좋으려만 자신들이 관련된 일의 성격상 외부로의 유출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거기에 아영은 지난 며칠간 문호의 노트북으로 인터넷 게임에 매달려 있더니 이런 말을 하며 참석을 거절했다.


“그 시간에 친구들하고 사냥가야 해. 그러니까 난 가고 싶어도 못 간다구.”


어이없었지만 아버지인 임길수가 그냥 넘어가는 데 문호가 뭐라 얘기할 순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임길수는 평소와 다름없는 복장이었다. 분명 평소 복장이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예복이긴 했으나 대부분이 서양식으로 차려입은 이 자리에선 확연히 눈에 띄었다.


문호는 스테이크를 입에 문 채 희민을 찾았다. 회장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희민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흰 드레스 차림에 힘이 풀려 입에서 스테이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정장을 차려입고 기관 간부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최수호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드레스를 입었네요?”


문호가 희민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건넸다. 모자를 쓰지 않은 그녀를 본 건 처음 만났던 날 이후 두 번째였다.


“이상해요?”


희민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예뻐서 그래요.”

“빈말이라도 듣기 좋네요.”

“빈말이라뇨. 사실인데.”


희민이 얼굴을 살짝 붉히고 배시시 웃자 문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숨겨진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 희민이 문득 생각난 듯 말했다.


“맞다. 아까 잠깐 지진이 나지 않았어요?”

“지진이요? 아, 맞아요. 화장실에서 옷 갈아...”


문호는 재빨리 입을 막았다. 사정이야 어쨌든 오해할 만한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희민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문호는 헛기침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데 조금 흔들리더라고요.”

“역시.”

“그런데 그게 왜요?”

“아니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문호 씨, 혹시 점치는 도구 가져오셨나요?”

“점, 이요? 이를 어쩌죠.” 문호는 머리를 긁으며 난처함을 표했다. “특별히 도구 같은 건 필요 없어요. 그냥 굴러가는 거면 되니까. 그런데 너무 자주 하면 제가 힘들거든요. 바로 어제 점을 쳐봤기 때문에 오늘은 좀...”


사실 말 중 반은 거짓말이었다. 점을 치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몸이 조금 무거워졌지만 지금은 희민과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에 점을 치고 싶지 않았다. 문호 자신은 몸을 가누지 못해 쉬고 있는데 그녀 혼자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래요? 아쉽네요.”


희민은 손짓으로 음식을 가지러 가겠다고 얘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문호는 자기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희민은 절대 가볍게 말을 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점을 봐달라는 요청도 신중하게 생각하고 했을 말이 분명했다. 희민이 자신에 대해 실망했을 가능성이 컸기에 문호는 괴로워하며 고개를 숙였다.


머리는 벗겨졌지만 그 기개만큼은 남들 못지않은 노인이 최수호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김 요원이 소속된 특수 기관을 이끌고 있는 이최곤 대장이었다.


“오늘은 다른 때보다 분위기가 좋군요.”

“그렇습니까?”

“아무래도 그쪽의 희민양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렇지 않은가 합니다.”


이 대장은 눈으로 음식을 고르고 있는 희민을 쫓았다. 흐뭇하다 못해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항상 모자를 푹 눌러쓴 모습으로 나타나 그를 당황하게 했던 희민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주일 전 보고하던 김 요원이 생각났다.


“이번에야말로 희민 씨에게 드레스를 입혀 보이겠습니다.”

“자네 생각은 알겠지만 그 아가씨가 순순히 입어 줄 리 없지 않나?”

“진실한 마음은 통하는 법입니다.”


그때 집무실을 나가던 김 요원의 등은 평소보다 커 보였다. 진실한 마음이란 단어가 신경 쓰였지만 이 대장은 애써 무시했다.


“저기, 이최곤 대장님?”


최수호의 말에 이 대장은 현실로 돌아왔다.


“미안하네. 잠시 생각 좀 하느라.”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가끔씩 이 대장은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보일 때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미안했네.”

“무슨 말씀이신지?” 최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우리가 훈련 중이라 쓸 수 있던 헬기가 소방 헬기뿐이었거든. 좀 더 빠른 걸 준비해줬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항상 무리한 요구를 드려서 죄송하죠.”

“자네들은 특별하지 않은가. 당연한 거지.”


특별하다. 그 단어가 최수호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잔을 내미는 이 대장을 향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그도 잔을 내밀었다. 잔과 잔이 부딪치며 투명한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 희민 곁으로 갈색 단발머리의 여성이 다가왔다. 성숙한 여인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여자였다. 희민은 얼떨결에 목 인사를 하긴 했지만 모르는 사람이다. 가슴이 파인 붉은 드레스가 눈에 확 뜨이건만 왜 이제서야 이 사람을 봤을까.


“처음 뵙겠어요. 정보과의 김영미입니다.”

“아, 예. 김희민입니다.”


김영미는 회장에 있는 다른 특수기관 사람들하고 다른 게 있었다. 그녀는 젊었다. 파티에 참석한 기관의 나이 든 간부들 사이에서 그녀는 당연 빛이 났다. 기관의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가 말한 정보 기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희민의 머릿속에 김영미가 헤드셋을 끼고 레이더를 보면서 쉴 새 없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모습이 자동으로 그려졌다.


“잠시 밖으로 나가서 얘기해도 될까요?”


김영미가 손가락으로 창 밖 발코니를 가리켰다. 희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음식을 담은 접시를 들고 가야 할지 놓고 가야 할지 망설였다. 다행히 발코니에 나무 탁자가 있는 게 눈에 띄어 접시를 가져갔다.


“달인 중에 젊은 아가씨가 있다고 할 때는 믿지 못했어요.”


김영미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고정된 탁자였다. 희민은 머쓱한 표정으로 접시를 탁자 위에 올리고 포크로 채소를 콕 찍었다.


“저 말고도 젊은 사람 있어요. 최문호라고 최수호 어르신 아들이죠.”

“네. 그 사람도 있었죠. 아무튼 그래서 이번 파티에 참석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결과가 좋아서 일개 요원으로서는 파티에 처음 참석하게 됐어요. 당신을 보기 위해서. 지금 제가 어떤 기분인 줄 알아요? 마치 연예인을 만난 느낌이에요.”


희민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양상추를 입에 넣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괜찮고, 말도 안 되는 빠른 속도로 달리고, 강한 힘에 약간의 마법까지. 현장 요원들에게 듣는 당신들 이야기는 정말 멋졌거든요. 그런데 전 항상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니까 그 얘기에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며칠 전에는 김하대 요원이 드디어 당신에게 드레스를 입게 했다고 자랑했어요.”

“그 아저씨, 쓸데없는 걸로 자랑하네요.”


희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흉보듯이 입을 움직였다. 김영미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가, 감사합니다.”


희민은 예상치 못한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김영미는 항상 만나고 싶어했던 여자가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게 재미있었다. 김하대 요원은 그녀가 항상 자기를 무시하고 쌀쌀 맞게 군다고 말했는데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면 같은 여자라서 행동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어찌 됐던, 김영미는 생각보다 희민과 쉽게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안심했다. 희민이 활동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지만 그런 것까지 요구하기엔 아직 일렀다.


“희민 씨도 파티에 나이 든 분들만 있어서 불편하죠?”

“아니요. 별로 그렇지 않아요.”


불편하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그들을 신경 쓴 적도 없었다.


“에이. 그럴 리가 없는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있어야 재미가 있죠.”


대화가 통하지 않기는 당신도 마찬가지야. 라고 희민은 생각했다. 평소에 즐기는 취미도 없고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평범과는 동떨어진 것이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대화거리가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평소라면 가볍게 무시해버렸겠지만 오늘은 파티기도 하고 자신을 만나고 싶었다고 하니까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희민은 자신도 모르게 김영미가 탁자 위에 올려놓은 와인 잔에 눈이 갔다. 잔 안에 담긴 붉은 와인이 미세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걸 보자마자 바닥이 진동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졌다.


그리고 바닥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알 수 있을 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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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괴물이 우는 소리: 일 장 - 대면(03) 12.08.14 1,057 10 15쪽
2 괴물이 우는 소리: 일 장 - 대면(02) 12.08.13 1,550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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