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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41,637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08.17 17:39
조회
996
추천
9
글자
11쪽

괴물이 우는 소리: 이 장 - 재해(01)

DUMMY

최수호는 박화양이 했던 얘기를 아무런 가공도 거치지 않고 모두에게 얘기했다. 직접 얘기를 들은 두 사람이 그랬듯이 그 누구도 박화양의 계획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러면 결국 그 사람은 괴물을 키워서 뭘 하고 싶은 거죠?”


문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임길수가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그걸 안 물어봤네.”

“제일 중요한 걸 그냥 넘기시면 어떡해요.”


그때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밤늦은 시간까지 억지로 깨어 있던 아영이 테이블에 머리를 떨어뜨린 것이었다.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온 게 기뻐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영이었다.


“어이쿠, 아영아. 괜찮아?”


임길수는 앞으로 꺾인 딸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줬다.


“졸리면 들어가서 자.”


아영은 계속해서 내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올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아무래도 얘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견딜 눈치였다.


“아영이가 너무 졸린 것 같으니까 얘기는 여기까지 하자.”


최수호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서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느라 졸린 것은 어른이나 애나 마찬가지였다.


“수호 어르신.”


각자 방으로 돌아갈 때 희민이 뒤에서 최수호를 불렀다.


“음? 그래, 희민이 왜?”

“그 괴물을 더 이상 쫓지 못하게 된 지금, 비상은 풀린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러면 저는 지금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 최수호는 카페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봤다. 3시 10분 전이었다. “시간도 늦었는데 자고 가지 않고?”

“전 아무래도 집이 편하니까요.”


희민이 한 번 말한 걸 웬만해선 굽히지 않는 성격이란 걸 알고 있던 최수호는 설득을 포기했다.


“알았다. 대신 밤길 조심하고.”

“그런 상황이 되면 이걸로 혼내줄게요.”


희민은 아까 괴물에게 던지다가 칼집째 휘어져 기타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 화려한 가짜 칼을 들어 올렸다. 최수호는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텅 비어버린 카페에서 희민이 혼자 서 있었다. 분명 대부분이 사람들이 자는 시간이었지만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올라오는 게 느렸다.



※※※



이틀 뒤, 점심시간에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희민의 집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어둡고 칙칙한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 검정 승용차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깜박 잊고 있었다.

매년 이맘때면 이 남자가 와서 드레스와 초대장을 전해준다. 그리고 당일 날에 초대장에 적힌 장소로 데려다 주기까지 한다. 정부에서 나온 사람이다.


남자가 속해있는 기관은 공식적인 이름도 없고 무슨 활동을 하는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희민이 알고 있는 건 이들이 지원해주기 때문에 자신과 어른들이 돈 걱정 없이 행동할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건, 이 남자의 이름을 여태까지 모르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남자가 차에서 드레스와 초대장을 꺼냈다. 잠을 부족하게 잔 희민은 초대장만 받았다. 초대장에는 인사말과 차로 한 시간 걸리는 도시에 있는 유명 호텔의 약도, 시간이 적혀 있었다. 대충 내용을 다 읽었을 때 남자가 검은 드레스를 내밀었다. 희민이 못마땅하게 노려보자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게 제 일이니까요. 안 입으실 거 뻔히 아는데 권해야 하는 저도 괴롭습니다.”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남자는 희민이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건 몇 년간 거듭되는 거절 탓에 생긴 오기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남자가 초대한 것도 아니고 옷을 보낸 것도 아니었지만 실제로 거절의 말을 듣는 것은 그였다.


심각한 짜증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낯선 기운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말로 명확하게 설명을 못 할 정도로 미묘한 감각이었던 그것은 곧 눈앞에 보일 만큼 확실하게 어떤 장소를 가리켰다. 어르신들이 그려놓은 진이 무언가를 가르쳐줄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을 때, 산 정상에 서 있는 박화양의 모습이 보였다.


희민은 검은 양복의 남자를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문 앞에서 쩔쩔매고 있을 때, 간단히 차려입고 기타 가방을 등에 멘 희민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남자 옆을 지나가며 모자챙을 내려 인사한 희민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제자리에서 뛰어올라 빌딩 위로 사라졌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에도 실패군.”


남자는 드레스를 뒷좌석에 넣고, 운전석에 앉아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치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빌딩 옥상에서 차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은 희민은 차가 사라진 걸 눈으로 재차 확인하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착지할 때 소리가 살짝 났지만 골목 깊숙한 곳에서 난 소리는 도시의 소음이 막아줬다. 이런 식으로 따돌리지 않으면 남자는 끝까지 쫓아오면서 드레스를 권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기운이 느껴진 곳은 상당히 멀었다. 이전에 헬기를 타고 간 곳보다는 가까웠지만 그래도 다리로 움직이기엔 피곤한 거리였다. 희민은 집 뒤에서 세워뒀던 빨간색 스쿠터를 꺼내 시동을 걸었다.



※※※



도시 외곽은 낯익은 곳이었다. 평소에는 가끔 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특정 지역의 조사였고 어쩌다 도망친 죄수나 범죄자를 잡아 오기도 했다. 후자의 경우는 경찰의 손에서 범죄자가 도망쳤을 때만 들어오는 일이어서 외곽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경찰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맡는 건 또 아니었다. 정말로 중요한 사건이라면 경찰은 기관에 의뢰하지 않고 내부에서 시간과 인력을 조달해 해결했다. 달인들에게 넘어오는 일은 중요하진 않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으로 한정되었다.

희민은 그런 일을 하기 싫었다. 평범한 사람과의 맞붙는 건 위험하지도 않았고 수련도 되지 않았다. 해결해줘도 다른 이들로부터 감사의 말을 받지도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졌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나타난 위협적인 백발 남자는 강한 호기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기운은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희민은 이제 외곽을 벗어나 인적 없는 산길을 달리고 있었다. 남아 있는 기름을 슬쩍 확인해 보니 아직 반 정도는 남아 있었다.

스쿠터는 아무도 없는 산길에 멈춰 섰다. 희민은 스쿠터에서 내려 바로 옆에 있는 산을 올려봤다. 고개를 끝까지 올려야 겨우 꼭대기가 보일 정도로 높은 산이었다. 점심시간에 출발했는데 벌써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희민을 산을 올라가면서 자신을 부르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어떻게 박화양을 찾아야 할지 생각하던 그때, 위에서 누군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박화양이 산을 내려오다가 멈춰 섰다.


“잘 왔다.”


희민은 목 인사로 대답했다. 박화양은 피식 웃더니 곧바로 등을 돌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희민은 모자를 고쳐 쓰고 그 뒤를 따랐다. 산을 오르는 도중 박화양이 말했다.


“글피 영감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너무 늦었지만 좋은 곳으로 가셨길 빈다.”

“감사합니다.”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희민은 박화양을 경계하고 있었고 박화양은 자기보다 한참 어린 상대에게 뭐라 말을 붙여야 할지 몰랐다. 결국 정상에 오를 때까지 두 사람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산 정상에는 사람들이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정자가 있었다. 지붕 아래에 나무로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은 단순한 구조였다. 박화양은 그곳에 걸터앉아 희민에게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희민은 그와 거리를 두고 앉았다. 박화양은 별로 개의치 않으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기 그 괴물 놈이 있다.”


그가 가리킨 곳은 건너편에 위치한 산이었다. 희민은 눈을 찡그리고 괴물을 찾았지만 너무 멀기도 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산 중턱 큰 바위가 있는 곳에 있다.” 라고 박화양이 도움을 줬지만 괴물도 바위도 보이지 않았다. 희민은 박화양이 자신을 형편없게 볼까 봐 초조했다. 어른들이라면 상관없었지만 이 사람 앞에서는 약점을 잡히고 싶지 않았다.


“아, 며칠 전보다 크기가 좀 더 커졌으니까 염두 해둬라. 색은 그대로고.”


그 말이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크기가 더 커졌다면 눈에 더 잘 보여야 할 거 아닌가. 희민은 이제 필사적이 되었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박화양은 몸을 뒤로 살짝 눕히고 눈으로 괴물을 쫓았다.


“소나무 옆에 있다.”, “아까보다 위로 올라갔어.”, “뭔가를 먹고 있다.” 박화양은 희민이 괴물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조언해주었다.


드디어 괴물이 눈에 들어왔다. 기쁨이 얼굴에 그대로 떠올랐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괴물은 박화양의 말대로 예전보다 크기가 커져 있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거라면 이제는 더이상 두 발로 걷지 않았다. 존재 의미를 찾기 힘들었던 작은 팔은 이제 다리만큼 길게 뻗어나와 고릴라처럼 땅을 짚고 있었다.


“찾았냐?”


박화양이 묻자 희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이었다


“지금 저 상태에서도 웬만한 사람 하나는 반으로 뜯어버릴 수 있지. 껍질은 점점 단단해지는데 움직임은 더 날렵해졌어. 몸집이 계속 커지는 걸로 봐서 허물 몇 번만 더 벗으면 엄청나게 커질 거다.”


태연하게 괴물에 대해 말하는 박화양에게 희민이 물었다.


“그런데 그냥 놔두는 걸 보면 아직도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수호하고 길수가 얘기를 잘했나 보구나.”


희민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아직 박화양이 자신을 부른 이유를 듣지 못했다. 단순히 성장한 괴물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저를 부르신 거죠?”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박화양은 한순간 놀란 얼굴을 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어떤 대답을 고를지 생각하는 그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색이 옅어 보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박화양은 잠시 생각하고 이어 말했다. “내가 젊었을 적에 글피 영감님한테 이것저것 도움을 많이 받았었거든. 그래서 그랬을 거야. 네가 영감님 손녀니까. 그냥 너한테 뭔가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저는 할아버지하고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는걸요.”

“그래? 그건 좀 안타깝네. 글피 영감님은 오래 사신만큼 지혜가 풍부하신 분이었는데.”

“바로 그 지혜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어요. 틈만 나면 저를 앉혀놓고 설교를 하셨거든요.”

“하하, 글피 영감님이 그런 면이 좀 있었…”


그 순간 갑자기 뛰어든 무언가가 박화양의 말을 끊었다. 감시가 풀린 짧은 순간에 접근해 온 거대한 갈색 몸의 거대한 괴물은 희민이 반응하기도 전에 박화양을 쓰러뜨렸다. 멀리서 봐도 크게 보였던 몸집은 이미 박화양보다도 컸다. 비정상적으로 굵은 두 팔이 박화양에게 부딪히기 직전에 희민이 온 힘을 다해 몸을 부딪쳤다. 괴물은 멀리 튕겨 경사를 따라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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