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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이윤후

괴물이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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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윤후
작품등록일 :
2012.11.02 18:29
최근연재일 :
2012.11.02 18:29
연재수 :
4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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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40
추천수 :
393
글자수 :
202,939

작성
12.08.16 17:05
조회
2,666
추천
13
글자
13쪽

괴물이 우는 소리: 일 장 - 대면(05)

DUMMY

이진이 달리던 도중 돌을 집어 들어 괴물에게 던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른 속도로 날아간 돌은 괴물의 등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제법 큰 소리가 냈다. 하지만 괴물은 몸을 잠깐 움츠리기만 했을 뿐,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괴물과 제일 가까웠던 최수호가 있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좀처럼 거리가 가까워지지 않았다. 이쪽만큼이나 저쪽도 필사적이었다. 희민이 기타 가방에서 칼집을 꺼내 괴물에게 던졌다. 화려한 쪽이었다. 칼집은 괴물과 부딪혔지만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희민은 얼굴을 찡그렸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이제까지 느껴본 적이 없었던 크고 뜨거운 기운이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그 누가 몸을 돌리기도 전에 그것은 빠른 속도로 일행을 지나쳤다. 흙과 물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졌을 때, 일행 앞에는 괴물 대신 백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박화양...”


최수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박화양이라 불린 남자는 일행 중 키가 가장 큰 최수호보다도 키가 컸고 머리는 백발이었지만 괴걸한 풍채로 주변을 압도했다. 희민은 단박에 그가 예사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고 가방에서 조심이 수수한 칼을 꺼냈다.


“야! 너 갑자기 나타나서는 뭐하는 거야?”


임길수가 앞으로 나가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괴물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은 저 녀석을 잡으면 안 된다.”


젊은이 세 명이 처음 듣는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자기도 모르게 상대를 경계하게 하는 거친 목소리였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문호가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박화양의 시선이 문호를 향했다.


“얜 누구냐?”

“내 아들.”


뭔가를 말하려는 아들의 입을 막고 최수호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저 여자애들은?”


박화양은 턱으로 희민과 아영을 가리켰다.


“큰 쪽은 글피 영감님 손녀고 작은 쪽은 길수 딸이다.”


박화양은 아영은 무시하고 희민을 지그시 바라봤다. 희민은 그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압박에 못 이겨 손으로 모자챙을 살짝 내려 인사했다. 박화양은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긴장 안 해도 된다. 난 적이 아니야.”


일행이 쫓던 괴물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전까지 느껴지던 이질적인 기운도 이제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안전한 곳에 숨었겠군.”


최수호가 박화양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그래.”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납득이 될 설명을 해줘야 할걸.”


얼굴이 불만으로 가득한 임길수가 최수호 옆에 서서 말했다. 박화양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임길수는 표정을 풀지는 않았지만 오른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했다. 박화양은 최수호에게도 악수를 권했다. 최수호는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했다.


“진이는 나하고 말을 섞고 싶지 않나 보네.” 박화양이 멀찍이 떨어진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이진을 보며 말했다. “뭐, 됐어. 어쨌든 진이하고 아이들은 돌려보내라. 이유를 말해주는 건 그다음이다.”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너무 하는걸.”


최수호는 박화양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면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박 기사에게 전화했다. 박화양의 말대로 부인과 젊은이들을 먼저 보내기로 한 것이다. 임길수는 그것을 눈치채고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다가갔다.


희민은 아까 괴물의 등에 부딪혀 튕겨 나간 칼집을 회수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직접 나서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자기 대신 질문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저 할아버지는 누구야?”


희민 옆에 서 있던 아영이 임길수가 가까이 오자마자 물었다.


“아빠하고 아저씨 오랜 친구야. 우리는 여기서 얘기를 좀 해야 하니까 너희는 아줌마하고 먼저 돌아가 있어라.”

“전 납득할 수 없는데요. 저런 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말씀해 주신 적 없잖아요.”


문호가 불만스러운 듯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희민도 입은 열지 않았지만 좋지 않은 표정으로 대신 말하고 있었다.


“너희가 그러는 것도 다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조금 더 설명을 해주세요. 단순히 친구라는 말로는 부족해요.”

“에휴, 그러니까…” 임길수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콧바람을 내쉬었다. “저놈의 이름은 박화양. 30년 전 있었던 괴물 사건에서 우리하고 함께 싸웠던 놈이다. 우리중 가장 저돌적이고, 가장 강하면서 자기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인간이지.”


세 명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임길수가 하는 말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임길수는 말을 이었다.


“그 일이 끝난 직후에 우리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은 채 헤어졌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어쩌면 이곳에서 한 판 붙을 수도 있어.”

“아빠.” 아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 할아버지가 제일 세다면서, 이길 수는 있는 거야?”


임길수는 딸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미소 지었다.


“수호 아저씨가 있으니까 괜찮아.”


그때, 헬기가 주변 나무들을 흔들면서 접근했다. 이곳에 올 때 탔던 소방 헬기였다. 헬기는 적당히 넓은 장소로 내려와 완전히 착륙하지는 않고 공중에 살짝 뜬 채로 일행을 기다렸다.


바위에 앉아 있던 이진이 아무 말 없이 먼저 헬기에 올라탔다. 어머니의 불편한 모습이 신경 쓰였던 문호는 불안한 얼굴로 아버지와 박화양을 보다가 헬기로 걸어갔다.


“아빠, 싸우지 마.”


아영은 끝까지 임길수를 걱정하다가 희민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다른 분들은 안타십니까?”


조종석에 앉아 있던 박 기사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물었다. 남편 대신 조종석 옆에 앉은 이진이 안전벨트를 몸에 매면서 대답했다.


“나중에 알아서 오겠지. 그냥 출발해.”


최수호와 임길수는 가족을 태운 헬기가 떠올라 도시 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봤다. 헬기의 모습이 사라지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도 거의 사라졌을 때 두 남자는 분위기를 바꿔 눈앞에 있는 오랜 친구를 노려봤다.

박화양은 넉살 좋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 그래. 꼭 싸우려는 것처럼.”

“그럼, 아니야?”


임길수가 반박하듯 말했다. 박화양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우리가 예전에 좋지 않게 헤어졌던 건 나도 기억하고 있어. 하지만 생각해봐라. 그때부터 30년이나 지났어. 나도 너희도 그때 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럼 그 당시 가장 감정적이었던 놈한테서 그런 얘기를 들어도 별로 설득력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

“뭐, 그건 어쩔 수 없지.”

“잠깐만.”


최수호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옛날 일은 옛날로 남겨두겠어. 지금 우리가 원하는 건 네가 왜 우리 일을 막았는지에 대한 설명이야.”

“그래야지. 그런데 계속 서 있는 것도 뭐하니까 일단 좀 앉자.”


박화양은 다른 사람의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근처에 있던 풀밭 위에 그대로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최수호와 임길수는 여전히 그를 경계하며 근처에 앉았다. 모두 앉았는데도 박화양은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미안.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생각 좀 했다. 먼저 알아둬야 할 것은 너희가 방금 쫓았던 그게 30년 전 우리가 만났던 괴물과 같은 종이라는 것.”

“같은 종?” 최수호가 말했다. “하지만 외형이 상당히 차이 나는데?”

“당연하지. 아직 아기니까. 시간이 지나 허물을 벗으면 금방 예전 그 녀석같이 커질 거야.”


그 말을 들은 임길수는 숨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 더더욱 아까 발견했을 때 숨통을 끊어놨어야 하는 거 아니냐?”

“기다려. 그것도 설명할 거니까. 녀석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어. 수는 많지 않아. 하지만 하나하나가 강력한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나는 여태까지 그것들을 찾아다녔었어. 그리고 보이는 족족 죽여버렸지.”

“고생이 많았겠구나.”


최수호가 나지막이 말했다. 박화양은 그 말에 멋쩍은지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말을 이었다.


“대부분은 나 혼자였지만 가끔은 외국인 녀석들 도움도 받았고. 그러다가 3년 전쯤에 사막에서 특이한 놈을 발견했어. 우리가 30년 전에 봤던 녀석과 거의 똑같이 생긴 녀석이었는데 그곳에 사는 부족의 옷을 입고 있더군.”

“사람으로 변장한 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난 몰라. 찾아내자마자 공격해버렸거든. 반격하지 않고 막기만 하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멈췄을 때는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어. 그 녀석이 죽기 직전에 뭐라고 한마디 했는데 사막 부족의 말이라 난 알아듣지 못했어. 그래서 난 그 부족을 찾아가 무슨 뜻인지 물어봤지.”

“뭐라고 했나?”

“나는 아닐지라도 우리 동족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이라더군.”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그 누구도 감히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박화양이 한 말의 의미를 길게 생각했다. 임길수만이 억지로 뭔가를 말하려고 연신 입을 열었지만 결국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밤바람이 두 번 지나가고 시끄러웠던 풀 벌레 소리가 귀에 익었을 때 박화양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대답을 알아낼 순 없었어. 이제까지 봐왔던 모든 괴물이 특정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진 않았거든. 그 녀석들은 대부분 자기가 살기 위해 움직였을 뿐이었으니까.”


박화양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다른 나라를 돌아다녀도 더 이상 다른 괴물을 찾을 수 없어서 귀국했을 때,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하게 너희가 쫓던 놈의 기운을 느끼고 찾아낸 거지.”

“그 말도 안 되는 동물적 감각은 여전한가 보군.” 임길수가 투덜대듯 중얼거렸다. “그래서 너는 그 괴물한테 우리나라 말이라도 가르쳐서 그 대답을 알아내려고 생각한 거냐?”

“그건 아니야. 나는 그동안 녀석들을 나름 연구해왔는데, 몸에 직접적인 위험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아. 즉,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건 싸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야. 저놈들은 무리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당히 넓은 곳에 딱 하나씩만 있는데 말이지. 그런데 내가 찾아낸 저 녀석은 너무 약했어. 지구에 저것들이 얼마나 있는지 몰라도 대부분 어릴 적에 죽었을 거란 느낌이 팍하고 들더군. 그래서 지켜보는 것과 동시에 적절하게 공격도 해서 성장을 촉진시키려는 거야.”

“거참.” 임길수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크게 벌렸다. “세상에 뭐 그딴 생명체가 다 있냐?”

“그러니까 괴물이지. 아무튼 성충이 되면 지능이 생기는 것 같아. 사막에서 잡았던 녀석은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그랬어. 분명 자기 동족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러니 이 녀석도 성충으로 키우면…”

“30년 전 그 괴물같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있나?”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최수호가 말을 끊었다. 감정의 높낮이가 없는 절제된 목소리였다. 박화양의 얘기가 빠져들고 있던 임길수는 그 목소리를 듣고 꿈에서 깬 듯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 박화양은 말을 잠시 멈추고 반응을 살폈다. 눈앞의 두 사람 모두 차가운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아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또 한 번 침묵이 이어졌다. 박화양은 초조하게 최수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던 최수호는 임길수를 보며 말했다.


“들을 얘기는 모두 들은 것 같다. 우리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해도 널 막을 수는 없겠지. 길수야, 이만 돌아가자.”

“그러지 뭐. 어이, 화양이. 나중에 보자.”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일으키고 열 걸음 정도 멀어졌을 때였다.


“잠깐.” 박화양이 앉은 자리에서 두 사람을 멈춰 세웠다. “글피 영감 모습이 보이지 않던데 요즘 어떠시냐?”


임길수가 뒤를 돌아보며 답했다.


“5년 전에 세상 하직하셨다.”

“뭐라고! 정말이냐?”

“그래. 주무시던 중에 편안하게 가셨다.”

“그랬구나…”


박화양은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푹 숙였다. 어둠 속에서 무릎에 두 손을 올리고 꿈쩍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단단한 바위같이 보였다. 최수호와 임길수는 멈춰선 자리에서 오랫동안 박화양을 지켜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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