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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시(錄始)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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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록시(錄始)
작품등록일 :
2022.05.11 10:21
최근연재일 :
2022.08.07 06:20
연재수 :
2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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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188
글자수 :
1,06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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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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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프롤로그_대분성전투

DUMMY

은회색 검이 허공을 내리치자 눈 부신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지직 번개를 그리며 암흑성단의 결계에 균열을 만들었다.

결계를 지키기 위해 암흑성단의 천군들은 모든 천력을 쏟았다.


진백성단 호위무사 진유의 칼끝은 빠르고 예리했다. 미세한 균열을 매섭게 파고들었다.


“진백성님을 위해!”

신성한 담월곡에 그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검끝에서 태어난 빛이 결계의 틈을 뚫고 쏟아졌다. 암흑성단의 결계는 수천수만 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스며들었다.


빛줄기가 암흑성단 천군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초록 갑옷 위 황금 띠를 따라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담월곡을 메운 도환생꽃밭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듯 붉게 번져갔다.


진백성단과 암흑성단의 대립은 이쪽 차원이 생긴 이후 처음이었다.


호위무사 진유와 달리 진백성단의 천군들은 무기를 들고 망설였다. 그들의 무기는 천계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서로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

무기를 들었으나, 암흑성 미사랑에 대한 애정과 존경 때문에 나서지 못했다.


암흑성단의 천군들은 담담히 진유의 공격을 막아냈다.

천선계 최고의 무사 중 하나인 진유를 막기에는 너무나 미약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부사령이 외쳤다.

“한울은? 그는 어디 있나?”

“아름누리. 염라성 아유라를 막고 있네.”


“미사랑님은?”

“미타지산 꼭대기. 율명님과 맞서고 계셔.”

“미사랑님이 무사하셔야 할 텐데.”


암흑성 미사랑을 걱정하는 소리는 진백성단에서도 흘러나왔다.

“왜 우리가 같은 천인을 죽여야 하지?”

“율명님이 이럴 분이 아니야···.”

“조금만 기다려. 미사랑님이 막아주실 거야.”


간절한 소망이 전해진 듯 암흑성단에 새로운 결계가 드리워졌다. 새로운 결계는 서서히, 그러나 강하고 단단하게 암흑성단의 천군들을 에워쌌다.


진유는 결계의 위력에 밀려 담월곡 아래로 튕겨 나갔다.

새로운 결계가 어디서 오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천군들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득히 먼 허공에 율명과 미사랑이 두 개의 점처럼 보였다.


*


미타지산 꼭대기에는 어지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소망과 한탄, 애원과 동정이 섞여 두 신성을 맴돌았다.


진백성 율명은 검을 뽑아 들었다.

빛으로 이루어진 검이 그의 기운을 받아 이글거렸다. 암흑성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율명과 마주한 미사랑은 모든 기력을 소진한 듯 작고 나약했다. 인간세의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우아하면서도 강하고 아름다웠던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미사랑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여전히 다정한 눈빛으로 율명을 바라보았다.

“율, 너의 목표는 나이니, 천군은 내버려 둬. 그들의 소명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야.”


“미사, 널 위해서야. 우리를 위해서라고! 삼신성이 하나가 되면 이 세계가 완전해진다. 분열도, 소멸도 없는 차원이 될 거야.”

완벽한 차원을 위해 천선계도, 삼신성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미사랑의 낯빛은 오래 앓은 병자처럼 파리했다. 역대 삼신성 중 가장 강력한 암흑성이라 칭송받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율, 빨리 눈을 뜨기 바라. 진실을 알게 되어도 부디 너 자신을 잃지 말기를.”

그녀 역시 천천히 자신의 검에 손을 얹었다.


율명은 그녀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검 끝에 빛의 기운이 모여드는 찰나, 미사랑의 몸은 산산이 조각나며 허공으로 흩어졌다.

엄청난 굉음이 미타지산을 휘덮고 천계와 선계로 퍼져나갔다.


하늘을 울린 굉음은 슬픈 비명처럼 들렸고, 엄숙한 작별 인사처럼 들렸다. 찰나의 폭발음은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소리가 천군들의 가슴을 찔렀다. 담월곡에 모인 모든 천군이 무기를 내려놓고 눈물을 닦았다.

진유조차 통증을 느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율명의 가슴에도 깊은 통증이 파고들었다. 바위처럼 몸이 굳었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숨도 쉬지 못했다. 조각조각 떨어지는 미사랑의 흔적을 그저 바라보았다.


암흑성 미사랑의 육신은 허공으로 흩어졌고, 영혼은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별과 별 사이로 흩어지던 혼 조각은 빛의 속도로 인간세를 향해 사라졌다.


“내, 내가 미사를···.”

털썩 무릎이 꺾였다. 율명은 검을 집어던지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서 시작한 떨림은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


“미사! 안 돼!”

영진성 여라함은 자신이 조각난 것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미사랑이 사라진 허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투가 일어나는 동안, 그는 천선계를 위해 결계를 펼치고 있었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우주를 지키는 역할이 그의 소명이었다.


황망히 팔을 내리자 결계가 맥없이 걷혔다.

“미사, 너라면 율을 말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미사랑을 불렀지만, 어디서도 그녀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퀭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안개 속을 헤맸다. 그가 걷는 것이 아니라 안개가 그를 밀어냈다.


어디선가 미사랑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금방이라도 다가와 손을 잡을 것만 같았다.


여라함의 어깨가 떨렸다. 뼈를 긁는 듯한 비웃음이 떨리는 가슴을 타고 흘러나왔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결계를 치는 것뿐이라니.’


천선계를 지키려면 영진성은 싸움 바깥에 있어야 했다. 균형의 역할, 수호의 소명, 허울 좋은 이름이 아닌가.

정작 미사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사, 널 잃고 싶지 않아.’

여라함은 안개에 몸을 맡기고 떠내려갔다.


*


어디선가 신음이 들렸다. 끊어질 듯한 가쁜 숨소리가 섞였다.

여라함은 짙은 안개를 뚫고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안개를 물리니 우주의 기둥 바로섬 아래였다.

암흑성단에서 수천 수억의 별밭 미리내를 건너야 다다를 수 있는 선계의 영역이었다. 그곳에 피로 물든 한울이 쓰러져있었다.


“한울? 한울 아닌가!”

암흑성단의 호위무사 한울은 가슴과 배에 치명상을 입었고 온몸이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상처에 손을 대니 차고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염라성 아유라의···.’

삼신성이 아니면 이겨낼 수 없는 상처였다. 한울이 아무리 천계 최고의 호위무사라 해도.


‘이 정도면 곧 소멸할 텐데···.’

여라함은 서둘러 치유의 숨을 불어넣었다.

아유라가 어떻게 이 정도의 신력을 키웠는지 모르나,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손에 선력을 모아 그의 가슴을 지그시 눌렀다.


신성의 영력이 스며들자 한울이 힘겹게 눈을 떴다. 떨리는 손으로 여라함의 팔을 잡았다.

“미사랑님은···?”

“사라졌네. 흩어져버렸어.”


미사랑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라 울컥 뜨거운 불덩이가 솟구쳤다. 애절한 비명이 귓가에 맴돌았다.


한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떨리는 입술 사이로 검은 피가 쏟아졌다.

“어디로··· 가셨습니까?”

“인간세로 떨어졌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돌아오실 겁니다. 제가···, 지킬 겁니다.”

“이 몸으로는 안 돼. 말은 그만하게.”


한울은 마지막 힘을 짜내 여라함의 팔을 잡았다. 상처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반드시···, 반드시 오실 겁니다. 저는···.”


가쁜 숨을 뱉으며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았다.

“그분이 보내주실 때까지···, 도와주십시오. 여라함님. 제발···.”


간절한 소망에 대한 답을 듣기도 전 스르르 눈을 감았다. 거친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여라함은 가련한 혼이 쉴 수 있도록 그의 이마에 손을 얹고 조용히 기다렸다.


*


진백성단의 공격으로 암흑성 미사랑이 사라진 대분성전투.


그것은 인간세의 시간으로 이천 년 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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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계_영진성단 22.05.11 347 9 10쪽
» 프롤로그_대분성전투 22.05.11 760 1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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