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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르카 님의 서재입니다.

Wor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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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엘사르카
작품등록일 :
2020.05.08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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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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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잉태' 1.2

DUMMY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엠마를 생각했다.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베프’의 중요성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 쉽지만, 어린아이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람도 없다. 엠마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내 ‘BFF(Best Friends Forever)'였다. 학교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는 모자라, 매 주말마다 서로의 집에서 번갈아가며 묵었었다. 우리가 얼마나 사이가 가까웠는지, 어머니는 우리를 보고 사실상의 자매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깊고 긴밀한 우정이었다.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모든 약점과 허점을 가감 없이 나누는 사이였다.


그래서 고등학교 첫 학년이 시작하기 일 주일 전 내가 자연 캠프에서 돌아오자 그녀가 더 이상 나와 대화하려 하지 않았을 때, 소피아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고 다녔을 때, 그리고 그녀가 내가 그녀와 나눈 모든 약점과 비밀을 이용해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나를 상처 입히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은 그야말로 참담한 일이었다.


더 이상 그 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가방에 주의를 돌려서 내 옆 좌석에 놓고 내용물을 뒤지기 시작했다. 포도 주스로 더렵혀진 만큼, 나는 가방을 새로 사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고작 네 달 전에 이전 가방이 라커에서 도난당한 후 새로 산 가방이었지만, 12달러짜리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 걱정되는 점은 내가 가방에 쑤셔 넣어 놓았던 공책들과 교과서들과 두 소설책들이 포도 주스로 젖었다는 점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 가방을 노린 여자애가 열린 입구를 노렸을 것이라고 나는 의심했다. 나는 미술 과제물의 파괴를 확인했다. 그것을 넣어 놓은 상자는 한 쪽이 무너져 있었다. 그 부분은 내 잘못이었다.


흑백 점박이 무늬의 하드커버 공책을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종이의 구석이 젖어서 각 페이지의 최대 4분의 1이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잉크는 희석되었고 쪽들은 이미 구깃구깃해지고 있었다.


그 공책은 내 히어로 커리어를 위한 메모이자 일기장이었다. 내 능력을 이용한 연습과 실험, 수 페이지의 취소된 이름들,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코스튬을 위한 치수까지. 저번에 엠마, 매디슨, 그리고 소피아가 내 전 가방을 훔쳐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을 적어 놓는 것이 큰 위험부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새 공책으로 옮긴 뒤 간단하게 암호화해서 아래에서 위로 작성했었다.


그 공책이 지금 망가져서, 정보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200페이지 이상의 빼곡한 글을 전부 새 공책으로 옮겨야 했다. 지워진 부분의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면 말이다.


버스는 우리 집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멈췄고, 나는 시선을 피하며 내렸다. 그 시선들과 공책이 망가졌다는 사실, 허락 없이 오후 수업을 빠진 것에 대한 불안에도 불구하고 집에 가까워지자 기분이 나아졌다. 경계를 늦추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되고, 다음 사건이 언제 벌어질지 걱정하기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내 기분을 한결 나아지게 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신발과 가방을 벗지도 않고 바로 욕실로 향했다.


나는 물이 주스의 대부분을 없애 주길 기대하며, 욕조 바닥에 옷을 놓고 물줄기 아래에 섰다.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사고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오늘 하루의 일들을 다시 떠올려보며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한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셋을 죽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였다. 진지한 생각은 아니었다. 화가 나긴 했지만, 정말로 죽일 생각은 없었다. 내가 그들을 해치기 전에 스스로를 해치는 것이 빠르겠다고 나는 어렴풋이 생각했다. 나는 수치스럽고 짜증났고 분노했으며 항상 능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건 마치 항상 장전된 총을 손에 들고 있는 것과 같았다. 물론 내 능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으니 총보다는 테이저에 가깝겠지만, 일이 정말로 꼬였을 때 능력 생각을 안 하기는 힘들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러한 살의가 없었다.


나는 다시 스스로를 다잡고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주제로 돌아왔다. 장점이 있었나? 미술 프로젝트는 망가지고, 옷은 아마 복구불능에, 가방은 새로 필요하고······공책. 어째선지 마음은 항상 공책으로 돌아왔다.


샤워기를 끄고 수건으로 몸을 말리며 나는 생각했다. 수건을 몸에 두른 채 나는 방에 가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젖은 옷을 빨랫감 통에 넣고 배낭을 집어 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엌을 지나 지하실로 들어갔다.


우리 집은 낡았고, 지하실은 개축된 적이 없다. 벽과 바닥은 콘크리트였고 천장엔 드러난 널빤지와 전선들이 있었다. 화로는 예전에 석탄을 연료로 사용했었고, 아직도 옛 석탄 트럭들이 겨울에 쓸 석탄을 공급하던 단면 4제곱피트짜리의 공급관이 있었다. 그 통로는 나무판자와 나사로 막혀 있었지만, 내가 내 ‘초능력 노트’를 암호화해 복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사생활을 지키는 데 있어서 창의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공급 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다.


나는 나사 하나를 빼고 통로를 막고 있는 흰 페인트가 벗겨지기 시작한 나무판자를 제거한 뒤, 안에서 운동용 가방 하나를 빼서 나사를 다시 끼우지 않고 판자를 제자리에 놓았다.


나는 운동용 가방의 내용물을 전 집 주인이 우리 지하실에 놓고 간 작업대에 쏟은 뒤, 차 진입로와 앞쪽 정원과 같은 층위에 있는 창문들을 모두 열었다. 눈을 감은 나는 일 분여간 능력을 사용했다. 단순히 두 블록 범위에 있는 모든 벌레를 전부 불러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적으로, 하지만 상당한 수를 모으는 중이었다.


전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목적을 가지고 직선으로 움직이면 곤충도 상당한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작은 것들에겐 두 블록도 먼 거리였다. 나는 가방의 내용물을 점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내 코스튬이었다.


거미의 첫 물결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와 작업대에 모이기 시작했다. 내 능력은 내가 조종하는 벌레들의 정식 명칭을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방으로 들어오는 것들은 누구나 알아볼 수 있을 만 했다. 블랙 위도우, 미국에서 찾을 수 있는 거미 중에서 꽤 위험한 쪽에 든 거미였다. 성질이 사나워서 이유 없이 공격하고, 그 독니는 드물지만 사망자를 내기도 했고 하는 종이었다. 내가 완전하게 제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내게 겁을 줬다. 내가 요청하자, 수삽,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작업대에 자리를 잡고 거미줄을 줄줄이 가로질러 그으며 하나의 작품으로 엮기 시작했다.


세 달 전 내가 내 능력의 발현으로부터 회복한 뒤, 나는 내가 설정한 목표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운동과 능력 연습, 연구, 그리고 코스튬 제작이 그 준비에 해당했다. 코스튬이라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부분이었다.


공식적인 팀의 일원들은 물론 공급처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완성품을 사거나, 부품들을 사서 조각조각 이어붙이거나 처음부터 만들어야 했다. 온라인으로 코스튬을 사면 추적당해서 실제로 입기도 전에 정체가 들통 날 수도 있었고, 상점에서 산 재료들로 코스튬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직접 만든다는 최후의 수단은 너무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못생긴 코스튬이 되거나 추적당할 수 있다는 전의 두 문제점이 어디서 재료를 구해서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내 능력을 자각하고 이 주 후, 아직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잘 모를 때, 나는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방호복에 대한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그 방호복은 인공 거미줄로 만들어졌다고 했고, 그걸 본 나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진짜 거미줄을 쓸 수 있는데 인공 거미줄을 구할 이유는 없지 않나?


실제로는 그보다 어려웠다. 아무 거미나 써선 제대로 되지 않았고, 블랙 위도우는 구하기 힘들었다. 추운 기후의 북동쪽 주들에는 일반적으로 서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관광객들을 모여들게 하고 망토들도 모여들게 만든 브록턴 베이의 핵심적 요소인 따뜻한 기후가 블랙 위도우도 모여들게 했다. 주변의 지형과 동쪽의 바다 덕에 브록턴 베이는 미 북동부 전역에서 가장 온난한 겨울을 가지고 있었고, 여름도 편안하게 따뜻했다. 블랙 위도우 거미도, 쫄쫄이 복장을 입고 돌아나니는 사람들도 그것에 감사해했다.


내 능력으로 나는 거미들이 증식하게 했다. 안전한 장소에 그것들을 숨기고 내가 직접 배달시킨 먹이로 살을 찌웠다. 나는 그들의 정신적 스위치를 눌러 마치 여름처럼 알을 낳고 새끼를 치게 했고, 태어난 수백의 새끼들에게 다시 먹이를 먹였다. 그 결과 나는 수많은 코스튬 재봉사들을 얻을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블랙 위도우가 영역생물이라는 점이었는데, 그 때문에 나는 내가 없을 때 그것들이 서로 죽이지 않도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것들을 떨어뜨려 두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마다 나가는 아침 조깅 시간마다 우리 동네의 거미들의 위치를 회전시켜 재료 생산을 위한 단백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렇게 한 덕분에 거미들은 학교가 끝난 오후 시간에 늘 코스튬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폐인 같은 짓이었지만, 덕분에 간지나는 코스튬이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다지 멋있지 않았다. 섬유는 탁한 노란색이 섞인 회색이었고, 장갑판이 붙은 부분들은 내가 근처 곤충들로부터 떼어내 세세하게 분류해 층층이 거미줄로 보강한 외골격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덕분에 장갑이 붙은 부분들은 얼룩덜룩한 질감의 어두운 갈색과 회색으로 되어 있었다. 그 부분은 마음에 들었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나는 천은 염색하고 장갑은 칠할 생각이었다.


내가 내 코스튬을 자랑스러워하는 이유는 그것이 유연하고 튼튼하면서도 장갑의 양에 비해 굉장히 가벼웠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번은 다리의 치수를 잘못 재서 부분을 잘라내야 했는데, 칼로 자를 수가 없었다. 와이어 커터를 가져와서야 힘들게 자를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슈퍼히어로가 코스튬에서 바랄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실험해볼 생각은 없었지만 아마 방탄기능도 있기를 나는 바랬다. 적어도 급소 위의 장갑판은 그러길 바랬다.


계획은 이번 달 안에 코스튬을 완성하고, 학년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히어로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은 바뀌었다. 나는 수건을 벗고 작업대 모서리에 걸어둔 뒤, 지금까지 골백번 그래왔듯이 코스튬을 입고 사이즈를 시험했다. 거미는 내 명령대로 내 주변을 순순히 비켜주었다.


내가 샤워를 하며 서서 오늘의 사건들의 긍정적인 점들을 찾으려 노력했을 때, 나는 공책을 떠올렸다. 내가 여태까지 계획과 준비만 하며 일을 미루기만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준비하고 실험하고 공부할 것들은 앞으로도 항상 생겨날 것이었다. 내 공책의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의 강을 건넌 것이었다. 전으로 돌아가서 다시 새로 만들거나 복사하면 계획이 일주일은 늦춰질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때가 왔다. 나는 장갑 안의 손을 풀었다. 다음 주에 - 아니, 더 이상은 기다리지 않겠어. 이번 주말에, 나는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작가의말

* 원작 번역 지침에 따른 공지사항.


“This is purely a fan project and I/we lay no claim to the ideas, characters, or story. The real author is J.C. McCrae, aka ‘Wildbow’, and the original version can be found at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The final chapter of Worm was published on 2013. 11. 19. This is a fan translation.”


"이 번역본은 팬의 작업물이며, 번역자는 이 작품의 아이디어, 캐릭터, 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Wildbow'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J.C.McCrae입니다. Worm 원작은 http://www.parahumans.wordpres s.com 에서 연재되었으며 2013년 11월 19일에 완결되었습니다. 이것은 팬 번역본임을 밝힙니다."


* 표지 출처 : Ari Ibarra (ariirf.com)


팬아트 작가의 사용 허가를 받은 표지입니다.


* 이 작품의 번역은 2인 비영리 프로젝트입니다. 번역자가 번역을 맡고, 편집자가 검수와 업로드를 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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