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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웨니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의 코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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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디웨니
작품등록일 :
2016.06.30 23:21
최근연재일 :
2016.07.14 00:33
연재수 :
6 회
조회수 :
975
추천수 :
0
글자수 :
19,943

작성
16.06.30 23:23
조회
226
추천
0
글자
8쪽

앤 셜리는 코딜리아 라고 불리길 바랬다.

코딜리아는 앤 셜리를 닮아서 예배 드리는 걸 좋아하나봐




DUMMY

"코딜리아 라고 불러주시겠어요?"

"그게 네 이름이니?"

"아니요. 코딜리아 라는 이름은 근사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불려보고 싶어요."

빨간 머리 앤은 코딜리아 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쏙 들었다. 내 가방이나 공책에 윤지구 라는 이름을 지우고 코딜리아 라는 이름으로 적고 싶다. 코딜리아 라는 이름은 정말 예쁘다. 보라색 꽃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의 리즐 아가씨같이 예쁘고 고운 것들만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다. 반면에 내 이름은 아빠가 운영하는 회사를 떠올리게 한다. 아빠가 운영하는 회사 지구자연화산업 에서 앞글자를 가져와 윤지구 라는 이름을 받았지만, 마음에 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난 생일선물로 새 이름을 달라고 그랬을 땐 엄마가 공주인형을 사주시면서 그 공주님께 이름을 붙여주라고 하셨다. 공주의 이름은 옆집 강아지 이름이 예뻐서 아름이라고 지었다. 아름이 공주를 옆에 꼭 낀 채 다시 빨간 머리 앤 책을 펼쳤다. 그리고 코딜리아 라고 적힌 문장을 계속 읽었다.


"코딜리아 라는 이름은 근사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불려보고 싶어요"


"코딜리아. 코딜리아. 코딜리아? 앤 셜리 내가 코딜리아 라고 불러줄게. 내가 윤지구로 불리지만 아름이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해본 적도 있어. 거절당했지만. 너라도 코딜리아 라고 불러줄 사람이 있길 바래."


순간 코딜리아라는 이름이 너무 사랑스럽고 예쁘고 고와서 조금만 불러봤을 뿐인데 이름이 가지고 싶었다. 언제든 친구를 부르듯 코딜리아! 하고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일요일엔 유치원에 가지 않아서 친구들에게 별명 붙여주기 놀이를 할 수 없었다. 내 인형들에겐 다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줬고 또 코딜리아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인형도 없다. 인형도 친구도 없다면 나중에 생길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일단은 상상친구로 두자. 앤 셜리 처럼. 앤 셜리에겐 상상친구가 있다고 그랬다. 상상친구의 얼굴이 보고싶어 깨진 진열장 유리에 비친 자기 얼굴을 상상친구의 얼굴로 삼아 같이 이야기했다고 그랬다. 나는 그 문장을 책에서 읽은 걸 기억하고는 베란다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밖에 파란 잔디밭 때문에 초록색 얼굴이었다. 코딜리아는 좀 더 예쁘다고 생각해 초록색 얼굴이 아니라. 다시 책으로 얼굴을 돌렸다. 코딜리아는 아마 피부가 분홍빛일 것이다. 눈은 예쁜 보라색일 것이다. 머리색깔은 장미줄기처럼 예쁜 초록색이 아닐까? 윗집 아줌마네 집 벽의 장미 덩굴 색깔이 예뻤던 적이 있었다. 누구에게 어울리는 머리카락색이냐 하면 아마 코딜리아의 머리카락색입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코딜리아는 분홍색 피부 보라색 눈 초록색 머리 만화에 나오는 요술공주가 생각났다. 요술공주 그리는 시간은 언제든 가지지만 지금 내가 그릴 건 코딜리아의 얼굴이다. 장난감 상자에서 48색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꺼내려는데 엄마가 거실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하는 말이


"지구야 교회 가자 가기 전에 장난감은 다 치우고"


매주 일요일 아빠·엄마와 교회에 가지만 지금은 코딜리아의 얼굴을 더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집에 혼자 있는 걸 허락해주실 리가 없어서 할 수 없이 48색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다시 갖다놓고 아름이 공주와 빨간 머리 앤 책도 방에다 가져다 놓았다. 엄마가 침대에 올려두신 예복으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 나는 앤 셜리가 입고 싶었다는 볼록소매 원피스를 입었다. 나는 어깨에 낙타가 앉은 거 같아 별로 맘에 들지 않지만 코딜리아 라면 좋아할 것 같았고 어울릴 것 같았다. 볼록소매 예복을 입은 코딜리아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며 상상을 했다. 코딜리아의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우리 지구 예쁘구나"


엄마가 안전띠를 매주며 칭찬을 해주셨다. 아빠도 칭찬해주길 바랐지만 아빠는 운전석에 앉아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계셨다.


"엄마 나 책 한 권만 주세요."

"그래 알았어"


교회까지 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읽을 책을 하나 주셨다. 빨간 머리 앤 을 다 읽지 못해서 그걸 부탁하려 했지만, 엄마가 가져온 책은 [에코와 메아리]였다. 빨간 머리 앤 을 사주실 때 부록으로 같이 온 작은 그림책이었지만 나는 이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책이 아주 얇았기 때문이다. 책이 얇으면 그만큼 이야기에 자세히 담겨있지 않거나 글자가 매우 작은 거라고 엄마가 그랬는데 손에 아무거나 집히는 걸 가져오셔서 그런지 그 책이 내 손에 쥐어져 있어 하는 수 없이 에코와 메아리를 펼쳤다. 하지만 가는 길마다 방지턱때문에 자동차 소리 때문에 책 읽는 데 집중이 안 돼서 별수 없이 내려놓곤 창 너머로 뭐가 있는지 보기만 했다. 커피집 동물 집 책 집 다시 커피집 핸드폰 집 물고기 집 핸드폰 집 핸드폰 집 커피집 교회 가는 길은 항상 같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간판자랑을 한다. 코딜리아 저것 봐 빵집이야. 너한텐 안 어울리는 곳이구나. 너도 앤 셜리 처럼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 어울리는 아이일 거야. 강남구가 아니라. 얼른 집에 가는 방향으로 바뀌어서 빨간 머리 앤을 마저 읽고 싶다. 교회 주차장 자리엔 윤수정 씨 전용 주차장이라고 써있었다. 엄마는 전용 주차장이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하셨지만, 예수님은 목사님께 우리 아빠 전용 주차장을 만들어달라고 긔뜸해주실 만큼 한가하신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헌금을 많이 내시는 거겠지. 엄마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린 나는 차 문이 닫힌 뒤에 남겨진 에코의 목소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뒤늦게 그게 읽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이미 복작복작한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어서 오세요 부인 오늘도 아름다우시네요"


교회안 사람들이 예수님께 인사하듯 엄마·아빠한테 허리 숙여 악수하며 인사했다.


"이야 꼬마 아가씨 안녕히 지내셨나요?"

아빠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아저씨가 무릎을 굽히면서 나에게 인사했다. 그 모습을 작은 내가 올려다보니까 많이 무서웠다. 교회에 가면 악마보다 더 무서운 게 이 아저씨 아줌마들이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해주는 건데 어떤 날은 꼭 안아서 원치 않는 뽀뽀까지 해주신다. 코딜리아가 나 대신 이 자리에 있어준다면... 그럴 순 없으니 내 다리가 보일 때까지 허리를 꾹 숙여서 인사했다. 그렇게 많은 아줌마 아저씨의 인사를 주고받고 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언제나 지루했다. 너무 조용하고 심심하고 목사님이 읽어주시는 성경은 뭐라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은 왜 갑자기 화나고 갑자기 인자해지시고 다 함께 성경을 읽을 땐 귀가 찢어지는 것 같았다. 기차 화통이 여러 개가 울리는 것 같아서 성경 읽는 시간엔 입을 꾹 다물었다. 다시 목사님 혼자 성경 읽는 시간엔 언제 기차가 멈춘 듯 지루해진다. 발 구르는 게 재밌을 만큼 지루하지만, 발을 너무 구르면 엄마가 허벅지를 찰싹 때려준다.


"지구야 다리 떨지 마"


너무 심심해서 다리가 달리고 싶었나 봐요. 하지만 지금은 얌전히 코딜리아 생각이나 하고 싶다. 예수님 생각은 나중에 와서 한꺼번에 해도 되죠? 하지만 코딜리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혹시 너도 예배를 드리고 있는 거니? 앤 셜리는 교회에 가서 예수님께 기도를 드린다고 그랬다. 코딜리아는 왠지 앤과 비슷한 아이일거 같아 예배드리는 걸 좋아하실지도 몰라. 그럼 나도 집중해야지 존경하는 예수님 제가 얼른 집에가서 빨간 머리 앤을 읽고 싶습니다.. 코딜리아의 이름이 더 나오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cjt1.png




그럼 나도 코딜리아를 본받아서 예배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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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 셜리는 코딜리아 라고 불리길 바랬다. 16.06.30 22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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