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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쟁이 은서우입니다

휘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은서우
작품등록일 :
2012.11.04 23:01
최근연재일 :
2016.02.15 21:05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458,302
추천수 :
5,772
글자수 :
162,057

작성
09.05.20 00:32
조회
3,968
추천
30
글자
11쪽

1부: 제1장. 물음. (10)

DUMMY

四.



명동북도(明東北道) 서기현(瑞氣縣)의 온천지로 요양하러 가셨던 마님께서 십이월 이십이일 정오 즈음에 댁으로 돌아오시리라. 신림 정문의 본가에 속한 하인들과 예인(隸人)들은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무슨 까닭이신지 몰라도 마님께서, 아주 오래전 주유아(周柔雅) 아가씨가 혼례를 올리기 전에 잠깐 머물고 간 뒤로는 열지 않았던 매화별당까지 깨끗이 정리해두라신다. 진우는 주유아의 자취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치워지는 것을 알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병시(丙時;오전10시30분~11시30분)를 일다경(一茶頃;15분) 정도 지나서였다. 달랑 대솔하인(帶率下人)1) 둘만 데리고 떠나셨던 마님이 집으로 돌아오셨다.



“마님, 어서 오시옵소서. 혹여 귀갓길이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집사 민호철(閔祜撤)은 환한 얼굴로 주혜원을 맞았다. 장정들은 마차와 수레의 짐바리들을 신속히 대문 안쪽으로 옮겼다. 말숙은 그들에게 자기 보따리는 어디로 옮겨달라고 말하고는 곧장 주방으로 달려갔고, 호철은 마님을 내당(內堂) 쪽으로 뫼셨다.



“서기에서는 편히 쉬셨습니까? 편찮으시던 것은 어찌되셨는지요?”


“무릎이 쑤시던 것은 많이 괜찮아졌네. 허나 아무리 풍광이 좋아도 내 집보다 낫겠는가.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도 집 생각이 자꾸 나더군.”


“저희들도 마님이 너무도 그리워서 혼났습니다. 마님께서 아니 계시니, 이 넓은 집이 텅텅 빈 것 같았사옵니다.”


“호오, 이 사람, 잠깐 안 본 사이에 농이 많이 늘었구먼?”


“하하. 그렇습니까?”



호철은 혜원과 더불어 웃고 나서야 그녀의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세희에게로 눈을 돌렸다.



“하온데 마님, 저 처자는 뉘인지요?”



세희는 바로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호철도 일단은 까닥 고개를 움직여 답례했다.



“이름은 은하이고, 그간 작은 상단에서 일했다네. 모셨던 주인 내외와 상단 사람들이 모두 비적단에 당하고 저만 구사일생하여 정처 없이 떠돌던 것을 내가 데리고 왔네. 한동안 우리 집에서 지낼 것이야.”


“아, 예…….”



호철이 보기에 은하는 옷차림이나 태도가 무던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여염집의 여인네들과는 구별되는 분위기를 지녔다. 신림 정문 본가의 집사노릇을 해온 지 벌써 이십일 년이나 되었다.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사람 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건만, 은하라는 처자에게서는 또렷이 읽혀지는 게 도무지 없다.



“매화별당은 정리해 두었는가?”


“예. 분부하신대로 가구며, 옷가지며, 다 새로 장만해 놓았습니다.”


“잘했네. 이젠 은하가 그곳을 쓸 거네.”


“예에? 아……예, 알겠습니다.”



매화별당에 얽힌 사연을 아는 호철은 마님의 말씀에 처음에는 뜻밖이다 싶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빈방을 삼 년이 훌쩍 넘도록 놀릴 바에는 차라리 아무에게라도 쓰게 하는 편이 낫겠지. 그 아무개의 신분이 평민인 듯해서 조금 걸리긴 하지만, 마님께서 남다르게 여기시는 존재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지 않겠나.



“은하는 내 손님일세. 허니 자네가 알아서 잘 챙겨주게.”


“염려 마십시오.”


“헌데 상공께서는 집에 아니 계신가? 오늘은 휴일로 알고 있는데…….”



혜원은 걸음을 멈추었다. 남편에게 은하를 소개해주는 일은 다음으로 미루더라도 우선은 저가 언제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에 외출했나 싶어 은근히 서운해졌다. 호철은 마님의 속내를 눈치 채고는 얼른 답했다.



“주인어른께서는 서각(書閣)에 계시옵니다. 미리 말씀을 드렸으니 곧 나오실 것입―”


“나를 찾는 것이라면 여기 있소, 부인.”



가주(家主) 정민규는 다정하게 정인을 부르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지아비를 향해 활짝 웃는 혜원은 꽃처럼 고왔다.



“추운데 왜 나오셨나는 말씀을 드리기 싫을 정도로 기분이 좋네요.”


“부인께서 먼 곳을 다녀오셨는데 남편이 마당까지 나와 보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소? 그래, 여행은 즐거우셨소?”


“예. 허나 소천(所天)을 조금이라도 빨리 뵈려는 마음에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하하. 그래요? 나는 부인께서 내게 하루라도 빨리 저 아이를 보여주고 싶어서인 줄로 알았는데.”



민규와 눈이 마주치자 세희는 화들짝 놀라며 뒤늦게라도 재빨리 머리를 숙였다. 주혜원처럼 그도 봄바람처럼 보드랍고 따스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본디부터 이런 사람인가 싶어 슬쩍슬쩍 살펴보던 것이 그만 결례를 범하는 꼴이 되었다.



“네 이름이 은하라지? 내 안사람의 귀히 여기는 손님이면 내게도 마찬가지다. 허니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


“감사하옵니다.”



세희는 정민규의 시선을 피했지만, 그는 세희의 눈빛에 반영된 깊은 슬픔을 진작 감지해냈다.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실상은 위태롭고 불안한 눈빛을 보노라니, 민규는 처자가 안쓰러웠다.


혜원이 본가에 보낸 서신은 두 통이었다. 하나는 민호철 집사에게 보낸 지시라면, 다른 하나는 남편이자 가주인 민규에게 보내는 부탁이었다. 은하를 발견하게 된 경위와 그녀의 딱한 사정, 그리고 한동안 집에 머물게 하면서 자신이 보살펴주고 싶다는 내용. 혜원은 날개를 크게 다치고서 피를 흘리는 작은 새를 따듯하게 보듬어주고 싶었다.



“헌데 소천, 우리 아들이 보이지 않군요. 집에 없나요?”


“아들은 볼일이 있다고 출타하였소. 곧 돌아올 것이오.”


“그래요. 은하야, 아무래도 내 아들은 나중에 보여줘야겠다.”



혜원은 생긋거렸다. 세희는 “저는 괜찮습니다.”하고 답했다. 어쩔 수 없게도 여전히 말투는 딱딱하기만 하다. 미소라도 지으면서 말하면 좋겠지만, 아직은 억지로라도 웃기가 참 힘들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함께 점심을 들면서 나누자꾸나. 식사하기 전까지 한 시간가량 겨를이 있으니, 매화별당에 들러보지 않겠느냐? 춘희가 안내해 줄 것이다. 시간이 되면 내가 그곳으로 데리러 가마.”


“예, 현합.”



세희는 꾸벅거리고는 춘희를 따라갔다. 혜원은 걱정으로 가득한 시선을 쉬이 거두지 못했다. 그날 이후로 은하는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어둡고 처연한 그림자를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민규는 아내의 둥근 어깨를 감쌌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은하도 끔찍했던 기억을 훌훌 떨쳐낼 수 있을 것이오. 아이가 목숨을 끊지 않고 예까지 버텨온 것만도 얼마나 기특하지 않소?”


“그렇겠죠? 소천, 저는 왠지 저 아이가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는 앞서 보내야만 했던 우리 유아가 생각나서 그런가 싶었어요. 헌데 하루하루가 지나면서는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그저 저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어째서 저 아이가 이리도 제 마음에 와 닿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주고 싶습니다.”


“내가 부인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소? 허나, 예서 이리 서 있으면 애써 치료한 몸에 또 병이 들지도 모르오. 허니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겨울바람이 차오.”



민규는 사랑스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혜원은 빙그레하며 남편의 이끎에 순순히 따랐다.







혜원 마님의 조카였던 주유아 아가씨는 생전에 홍매화를 좋아했단다. 그래서 자신이 얼마간 기거할 아담한 별챗집의 뜰에 매화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아가씨는 상인이 매화의 붉은 빛깔이 예쁘대서 샀었는데, 막상 꽃을 피우고 보니 백매였단다.



“아가씨께서는 어찌 하셨습니까? 백매나무를 베시고 새로 홍매나무를 심으셨는지요?”


“아니, 홍매는 아니지만 백매도 보기 좋다며 그대로 두셨더랬지. 그 뒤로 저 매화나무가 본가에서 유일한 백매가 되었어.”



춘희는 손을 들어 별챗집 가까이에 우뚝 서 있는 흑갈색 나무를 가리켰다. 지역마다 다르지마는 보통 매화가 피기 시작하는 시기는 이월 중순 이후에서 삼월 초로, 빨라도 이월의 보름 전후다. 지금은 십이월 중순을 지났으니, 벌써부터 꽃망울이 맺을 리가 없다.


그러나 매화별당이라는 당호(堂號) 얽힌 사연을 들어서인지, 세희는 밋밋한 가지마다 매화가 새하얗게 피어있는 환상을 보는 듯했다. 바람결을 타고 아름답게 흩날리는 꽃잎들. 그리고 그 나무 옆에서 젊은 사내가 만히 매화별당을 응시하고 있다.


응? 사내라니, 뜬금없이 왜?


본인에게 유난히도 깊게 박혀드는 시선을 느꼈는지, 사내가 뒤돌아섰다. 사내는 세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옆에서 춘희 아주머니가,



“소주(小主)님! 출타하셨다면서, 언제 돌아오셨사옵니까?”



하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세희는 그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멍하니 계속 쳐다보고만 있었으리라. 그녀는 뒤늦게야 황급히 상체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소녀는 은하라 하옵니다.”


“자네가 매화별당의 새 주인인가. 그래, 명동북도 서기현에서 황경(皇京)까지 오는 동안 힘들지는 않았는가?”



세희는 흠칫했다. 어디서 내 얘기를 들었을까. 허나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


진우는 세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알겠다는 듯이 답했다.



“그리 놀랄 것 없네. 민 집사가 어머니의 서신을 받고서 매화별당을 급히 정리한 것은, 어머니께서 함께 오는 이에게 이곳을 주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곳은 오랫동안 여인의 처소로 사용되었네. 하여 새 주인이 되는 이도 여성이지 않겠느냐고 추정했지.”


“아, 예……. 하온데, 공자님. 송구하옵니다만, 저기……성함이 어찌 되십니까?”


“정진우라고 하네.”



세희는 이번에는 당혹감을 들키지 않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하지만 심장은 조금 전보다 더 빠르게 뛰는 듯했다. 사실 세희에게는 정진우라는 이름 석 자가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대사 정민규의 외아들로, 스물둘에 호부상서가 되었을 정도로 능력이 출중하여 이미 한의 동량이라고, 스승님으로부터 들었다. 그리고 이자가 서현 황자의 측근이자 친우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서현 황자와의 혼사를 피하려고 본명을 숨겼건만, 그로부터 멀리 도망치기는커녕 외려 가까운 자에게로 발걸음을 놓고 말았다. 단순한 우연치고는 너무도 고약스럽다.



“헌데 이름은 왜 물었는가. 내게 따로 하고픈 말이라도 있는가?”


“아닙니다. 단지 공자님의 성함이 궁금했을 뿐입니다.”


“그런가.”



진우는 미소를 지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중식 때이네. 따듯한 물에 몸을 담가 여독을 풀고 싶다면, 그 전에 해두시게. 그럼 나는 가네. 이따가 보세.”


“공자님께서도 안녕히 가십시오.”



세희의 인사에 진우는 부드러운 미소로 답했다. 잠시 후에 어서 건물 안에 들어가 보자는 춘희의 말이 귓가에 닿아서야 세희는 머리를 들었다.





1) 대솔하인(帶率下人): 높은 사람을 모시고 다니는 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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