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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님의 서재입니다.

사냥꾼, 환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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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작품등록일 :
2021.01.08 17:44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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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
추천수 :
10
글자수 :
41,109

작성
21.0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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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준비.

DUMMY

요 며칠간은 편히 쉰 덕분인지 몸에 났던 고름과 상처도 이제는 많이 아물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아직 흉터가 남아있기는 하나 여아가 아닌 남아의 몸이었기에 저택의 주치의도 빠른 회복력에 조금 놀란 듯 말하며 내가 판단한 것처럼 이제는 생활에 문제가 없다고 결과를 내렸다.


그렇게 나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잡일에 다시 복귀하게 되면서 하루하루를 충실한 삶에 보람을 느끼는 중이었다.


물론 루드렉과 길렌은 자신의 잡일거리가 더 줄어든 것에 기뻐했고.

폴 녀석은 나를 보면 그날의 박치기가 떠올랐던 건지 무의식적으로 코를 잡으며 나를 한껏 노려보았다.


‘쉽게 덤빌 줄 알았는데, 아직 준비가 덜 된 건가?’


노려보는 폴에게 작은 미소를 선사하니 녀석은 토마토처럼 얼굴을 붉게 변하며 콧김이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카인! 아직 일하고 있는 거야?”


멀면서 가까운 곳. 2층 테라스에서 얼굴을 내밀며 내 이름을 부르는 저택 주인의 딸, 엘리아가 나를 내려 보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다.


“아가씨. 그러다가 떨어지십니다.”

“괜찮아, 괜찮아!”

“제가 안 괜찮습니다.”


저택에서 돌아오고 엘리아에게 흥미로운 어둠의 숲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이제는 내게 풀처럼 달라붙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달라며 끈질기게 말을 걸었다.


“모드 씨에게 들키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아, 맞네. 그럼 나중에 일이 끝나면 내 방으로 와! 맛있는 케이크를 줄 테니까, 알았지?”


케이크라는 말을 듣자마자 입에는 침이 고이며 머릿속은 온통 이번에는 어떤 케이크가 나올지 상상하고 있었다.


‘아, 일해야지. 잡념은 금지.’


어린 아이의 몸이기도 하고, 과거에는 건강 때문에 케이크나 사탕을 먹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 됐든. 한시라도 바삐 케이크를 먹기 위해 화단의 흙과 비료를 적절한 비율로 섞으며 알 수 없는 씨앗을 뿌리거나, 이름 모를 모종을 심으며 흙이 흠뻑 젖어 차오를 때까지 물을 붓고 또 부었다.


말로는 꽤 쉽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종과 씨앗이 다치지 않기 위해 흙 속에 있는 공기를 다 빼줘야 했고. 흙에 물이 잘 스며들도록 저어주는 일도 상당한 노동이었다.


“이 정도면 말라죽지는 않겠지.”


카인은 넘칠 것만 같은 화단의 물웅덩이를 보며 가지런히 정리된 도구들을 들쳐 메고서는 창고로 향하던 때였다.


“길렌 형님. 왜 그러세요?”

“요 며칠 사이 주인 아씨와 상당히 친해진 모양이구나?”

“그럴 리가요. 그저 아씨가 심심해서 말동무를 하는...”


짜악!


“이봐, 카인. 적당히 나대. 겨우 어둠의 숲에서 살아서 돌아왔는데, 괜히 반병신이 되면 슬프잖아? 안 그래?”


오른쪽 뺨이 인두를 지진 것 마냥 뜨거웠다.

입안이 살짝 찢어진 건지 비릿한 피 맛이 감돌더니 이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사람이라는 건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너는 내게 아주 크나큰 빚을 진 거야. 그렇지, 카인?”

“맞습니다. 길렌 형님의 말씀대로. 저는 형님이 내리신 은총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잘 아는구나. 그러면 내가 할 일을 대신 좀 해주겠어? 저기 잔가지를 담은 자루를 주방에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참아라. 참아야 한다. 한순간의 아픔으로 감정을 놓지 말자. 그저 어린아이의 뺨따귀에 어리석게 굴지 말자.


“알겠습니다.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아주 좋은 대답이야. 그럼 잘 부탁하마.”


맞았던 오른쪽 뺨을 툭툭 치며 길렌은 휘파람을 불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얻어터지는 건 처음이군.’


욱신거리는 오른뺨이 뜨거웠다. 그러면서도 헛웃음이 나도 모르게 터졌다.


“괜히 깝죽대니까 맞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같은 놈들은 그저 눈치나 살펴야 한다고.”

“뭐야. 보고 있었나?”

“저 자식 성격이 이상하니까 괜히 알짱거리지 마. 미친놈이니까.”


폴은 내가 놓친 작업 도구를 주워 말없이 창고로 향했다.


“나한테 화난 거 아니었던가?”

“시끄러워! 아직도 너를 보면 콧등이 아파 죽겠다!”


폴 녀석은 투덜거리며 내가 짊었던 도구를 창고에 하나둘 정리했다.


“미친놈. 아무리 그래도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을 때리다니.”

“발길질하던 네가 할 말은 아니다만?”

“시끄러! 그보다 어디 머리라도 다친 거냐? 말투가 어쩐지 어른스럽게 변했다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카인의 몸을 빌린 괴물이 아닌가 싶었는데.”


‘그러고 보면 말투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슬슬 어린 말투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겠어. 것보다 은근히 예리하네.’


“어둠의 숲을 단신으로 갈 정도로. 그리고 살아 돌아오면 너처럼 변하는 건가?”

“사람은 어떤 계기로 변하는 게 아니야. 그저 과정일 뿐, 가야 할 방향을 자기 마음먹기에 다른 거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아직 어려서 그런지 어려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눈높이에 맞춰 보다 쉽게 말해야겠다.


“폴. 너는 언제까지나 하인에 만족하며 앞으로 저택에서 평생 일하고 여기서 죽을 거야?”


내 말을 들은 폴은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누군가에게 말문이라도 막힌 건지 분개한 소리를 내며 시선을 땅으로 떨어트린다.


현실을 생각하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배고픔에 굶주려 사냥꾼이 된 시작과 지금.

여러 직업을 택할 수 있었다면 나는 사냥꾼이 아닌 다른 직업을 택했을 것이다.


의뢰를 완료해도 돈이 없다는 농민들은 농기구로 무장하며 우리를 죽이려고 했던 적.

팔자에도 없는 괴수와 조우하여 살과 뼈가 뭉개져 반년은 일을 쉬었던 적.

무엇보다 천한 사람이 한다는 인식이 박혀있기에 사냥꾼의 대우는 그리 좋지 못하였다.


전생에 내가 택한 직업, 사냥꾼은 그만큼 위험하고 항상 목숨과 삶.


외줄 타는 광대처럼 위태롭게 앞을 나아갔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택의 하인은 그저 주인이 지시하는 일만 하면 된다.

상당히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 여타 하인들도 다른 직장을 떠올릴 생각을 했을까?

제 위에 있는 두 녀석이 짜증이 난다고 해도 이만한 조건을 나 몰라라 하고 나갈 수 있을까?


나는 폴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만약 전생의 레샨이었던 내가 복지도 좋고, 잠자리도 푹신하고, 봉급도 넉넉한 하인이었더라면 바깥을 동경할 이유는 굳이 없었을 것이다.


“너, 뭐가 되고 싶은데. 말을 하지 않으면 몰라. 내가 무슨 점술가도 아니고.”

“사...”

“뭐? 남자가 뭐 이리 목소리가 작아? 사?”

“마법사! 라고...”


뜻밖의 대답이었다.

보통 이 나이대의 남자들은 대부분 기사를 동경하니 말이다.


‘그런데 마법사라니. 기사보다 허들이 높은 직업이 아닌가?’


“왜, 웃지를 않지? 누가 보아도 무리인 꿈이잖아?”

“내가 역으로 묻지. 네 꿈을 누가 비웃어줬으면 좋겠어?”

“그건 아니야...! 단지 하인이 마법사가 된다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일이잖아.”

“그럼 포기해. 어떤 말이 듣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자기가 하고 싶다는 꿈에 의심이 생긴다면 분명 거짓된 씨앗이 자라,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라는 편협한 시야와 자기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할 뿐이니까.”


나는 무조건 될 거라는 식의 응원은 해줄 수가 없었다.


희망이란 참으로 듣기 좋은 소리다. 하물며 꿈을 가진 이에게 희망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크나큰 건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 희망이 독이 된다면 어쩔 건가?

위로랍시고 내가 내뱉은 말에 그가 절망하여 이내 죽는다면?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이러한 자들의 말로를 자주 봐왔던 사람이다.

그러니 따끔한. 현실적인 조언을 해줄 수는 있다.


“폴. 누군가에게 자신의 꿈을 말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야. 그것도 누구나 무리라고 하는 직업이라면 말이지. 그러니 자신이 미래를 의심한다면 그 꿈은 접어야 할 거야.”


어린아이답지 않은 현실적인 조언에 폴은 적잖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오히려 카인이라는 맹한 녀석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놀라웠을까.


“그러면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노력하는 수밖에 없겠지. 나도 마법에 대해서는 잘 몰라. 그렇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이 노력에 의심이 든다면 더더욱 노력하라는 말 밖에 할 수가 없어. 그럼 나는 먼저 간다. 도구 옮겨져서 고맙다.”


잔가지가 든 자루를 들쳐 멘 카인은 주방으로 향했고.

폴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화단 곁에 홀로 서 있었다.


****


“어? 카인 얼굴이 왜 그래? 어디 다친 거야?”

“네. 잔가지를 옮기다가 발이 꼬여서 넘어졌습니다.”

“정말로? 이상하게 손자국 같은데?”

“그보다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는지?”


카인은 말을 돌리며 엘리아에게 묻는다.


“일단 케이크라도 먹으면서 얘기하자! 여기 종류별로 다 있어!”


새하얀 테이블 위에 휘황찬란한 디저트를 보니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모드도 앉아서 같이 먹자!”

“어찌 주인과 같이 겸할 수 있나요. 그렇지만, 아가씨의 명이니 어쩔 수 없네요.”


엘리아 아가씨의 전속 시녀인 모드가 웃으며 답한다.


“그래도 주인과 손님을, 그 뒤로 차와 다과를 준 다음에야 앉도록 하겠습니다.”


향긋한 차의 향이 방 안을 가득히 메운다. 곧이어 트레이에 놓인 케이크를 고풍스러운 무늬가 있는 접시에 옮기며 우리는 의자에 앉았다.


그윽한 차의 향. 이름은 모르면서도 이 맛이 의외로 좋아 입안 가득히 여운이 남았다.


“그런데 생각해 봤어, 카인?”

“어떤 걸 말입니까?”

“내 전속 기사가 된다는 말을 아빠한테 말하니 잘 됐다고 하시던데?”


나도 모르게 마시던 차를 뿜을 뻔했다.


로우셀 녀석은 내 실력을 믿고 자신의 딸을 지킬 생각으로 수락한 걸 수도 있고, 단순히 생각하자면 내가 기사가 된 모습을 궁금해하는 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답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생각해보고 결정해도 괜찮아.”


****


“생각해보셨습니까?”

“글쎄다. 애초에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나의 꿈이 멋대로 정해지다니. 이것이 권력인가?”

“천천히 생각해도 좋습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요.”


로우셀의 말을 들으니 문득 엘리아의 말에 기시감이 일어났다.


‘부녀 사이 아니랄까 봐, 말하는 것까지 비슷하군.’


“로우셀. 혹시 아는 마법사 지인이 있나?”

“그건 왜 물어보시는... 설마 마법사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그건 아니고. 내 편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로우셀은 마법사라는 말을 듣고서는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뇌하였다.


‘하는 수 없이 내 지인을 소개해줘야 하나? 괴팍한 녀석들이라 그나마 멀쩡하다고 한다면 두 녀석밖에 없는데.’


“곤란하군.”

“네? 그게 무슨.”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로우셀. 내가 기사가 된다고 하면 다른 기사들의 반발이 심하지 않겠어? 기껏 열두 살의 하인이 자신들과 나란히 서 있다면 왠지 모를 괴롭힘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점은 괜찮습니다. 저 녀석들은 전쟁 통에서 부모를 잃고 제가 데리고 온 아이들이니까요.”


전쟁.


내가 죽어있는 동안 큰 전쟁이 있었다고 한다. 대륙 지도에 표기된 지역과 지명이 바뀔 정도의 큰 전쟁이.


“공을 잘 세운 모양이야. 그러니 너도 이만한 지위와 저택을 얻은 거고.”

“그렇죠. 사냥꾼이 아무리 잘해봤자 귀족 작위는 무리죠.”

“다들 잘 살고는 있는지 궁금하군. 연락은 하고 지내나? 아니면 너처럼 전쟁에 참여해 이름을 바꾼 채로 유유히 살아가고 있나.”


카인은 문득 남은 단원들을 생각했다.


물론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걱정은 된다.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름 궁금했다.


“다들 잘살고 있을 겁니다. 단원 중에서도 막내인 저도 이렇게 잘 살아 있지 않습니까?”


나이를 먹음에도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는 로우셀을 보니 그 시절이 떠오르며 이내 마음을 다잡고는 결심한 듯. 숨겨둔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로우셀. 한동안 휴가를 낼 수 있겠나?”

“네. 말씀만 하신다면야.”

“짧으면 한 달. 길면 석 달이야.”

“레샨 대장이 부탁하는 건 뭐든 가능합니다.”


누군가 이 모습을 본다면 경을 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 서 있는 로우셀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말이 통해서 좋군. 그 대신에 하인은 한 명 더 데리고 가겠어. 그러니 부족한 인력을 두 명 정도 채용해서 기간제로 더 뽑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 명을 더 뽑도록 하죠. 출발은 언제 하실 겁니까?”

“보름 후에 출발하도록 하지. 출발하기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으니.”


포장지를 벗겨 부드러운 과자를 먹는 카인은 오늘 처음으로 당했던 일을 떠올리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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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손가락 다쳤어요 21.01.20 24 0 -
8 복수 21.01.19 15 0 12쪽
7 싸움. 21.01.18 23 0 11쪽
» 준비. 21.01.15 34 1 13쪽
5 약속. 21.01.14 42 1 13쪽
4 재회. 21.01.13 58 1 11쪽
3 만남. 21.01.12 63 2 12쪽
2 첫 사냥. 21.01.11 83 3 11쪽
1 환생. +1 21.01.08 126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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