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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님의 서재입니다.

사냥꾼, 환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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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작품등록일 :
2021.01.08 17:44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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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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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41,109

작성
21.01.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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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만남.

DUMMY

짐승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어딘지 이질적인 모습에 멈췄던 땀이 또 흘러내렸다.


괴수.


보통의 맹수는 흉포하기는 하나 엄연히 짐승이다.

그러나 괴수는 달랐다. 짐승의 형태를 유지한 채 짐승이 아닌 것들.


예를 들자면 상위의 괴수는 모두 지성을 가지고 있다.

좀 더 평범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인간의 말을 하며 인간의 지식을 가진 괴상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이로구나. 그것도 아주 어린 인간.”


내 앞을 막아선 괴수는 그 모습과 다르게 매우 평온한 목소리로 나를 살펴보았다.


‘이런 괴수는 난생처음 보는군. 어둠의 숲에서 자란 변종이라 그런 건가?’


막상 눈앞에 들이닥치니 이것 참... 해볼 만했다.


“이봐. 날 그냥 보내줄 수는 없나? 보내주기만 한다면야 사례는 톡톡히 하지.”

“인간 꼬마가 내게 뭘 해줄 수 있다는 거지? 옷차림도 하인, 아니면 거지나 다름이 없다만.”

“원하는 걸 하나 들어주지. 내 목숨을 제외하고.”

“당돌하구나. 당돌하다 못해 어리석기 짝이 없어. 앞서 말했듯이 보잘것없는 인간 꼬마가 내게 원하는 걸 말하라고 하다니.”


새까만 밤과 같은 늑대는 코웃음으로 내게로 다가왔다.


“너 같은 인간을 아주 잘 안다. 그저 이 위험한 상황을 벗어나 지껄이는 구차한 변명이라는 걸.”


괴수라는 녀석들은 지성이 있는 만큼, 사람처럼 다양한 성격을 지닌 존재다.


그렇기에 나는 밤 늑대에게 눈높이에 맞춰 미리 생각한 말을 꺼냈다.


“피의 맹약을 맺도록 하마. 그렇다면 아무 문제 없겠지?”

“호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 꼬마가 아니로구나? 맹약을 알고 있다니. 그러나 내게 이루고 싶은 소원이 없다면 어찌할 셈이지?”

“그때는 뭐... 죽음을 받아들여야지 않겠어?”

“흐흐흐! 재미있는 꼬마로구나. 죽음이란 그리 쉽게 말로 내뱉는,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건가?”


내 제안이 재미있던 것인지 밤 늑대의 세 쌍의 눈동자가 역 초승달의 모양을 한 채로 웃고 있었다.


“좋다. 맹약을 하도록 하지.”

“다행이군.”

“내가 어떤 소원을 말할 줄 알고 그리 태평한 건지 모르겠군.”

“상관없어. 나는 어떠한 형태의 은혜를 입으면 무조건 갚는다.”

“재미있구나. 몇백 년 만에 아주 재미있는 인간 꼬마를 만났어.”


웃음도 잠시. 내가 죽인 늑대를 다 먹었는지 아니면 먹이 경쟁에서 밀린 짐승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선 인간 꼬마는 이곳에서 무사히 나가고 싶은 모양이니 그 바람을 내가 이루어주지. 내 등에 타거라.”

“실례하지.”


거칠 것만 같은 검은 털은 의외로 포근하며 말랑거리는 지방이 거의 없었고, 마치 돌덩이와 같은 몸뚱이.


“꽉 잡아라. 놓친다면 알아서 살아남도록 해라.”


그 말을 끝으로 밤 늑대는 마치 낙뢰와 같이 재빠른 속도를 유지한 채로 어둠의 숲을 질주했다.


어찌나 빨랐는지 자칫하다가 손이라도 놓치며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일렁였다.


짐승의 소리로 뒤덮인 숲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커다랗고 굵은 물감으로 그어진 선과 같았다.


이윽고 태풍과 같은 바람이 멎자 밤 늑대는 안전한 곳으로 도착했다며 등에 내리라고 했다.


“읍...! 우웨엑!!”


카인은 밤 늑대의 등에 내리자마자 울렁거리는 속을 주체하지 못하며 그대로 속에 있는 모든 음식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다친 몸과 익숙하지 않은 속도에 멀미가 일어난 것일까.


입가에 길게 늘어진 침. 입안에 가득 찬 위액과 남은 이물질을 모조리 뱉어내고 나서야 카인은 밤 늑대에게 다가갔다.


“이렇게나 빠를 줄은 몰랐군...”

“나도 미안하군. 이렇게나 약해빠졌을 줄이야.”

“사람을 약 올리는 재주가 탁월하군. 그래, 좋아. 맹약을 하기 전에 네가 원하는 건 뭐지?”

“흐흐. 토를 한 인간치고는 꽤 대범하게 나오는구나. 인간 꼬마야. 만난 지는 불과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만, 너는 약속을 어길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 그러니 내가 나중에 너를 찾아가도록 하지.‘

“네가 잘못 본 거라면 어찌할 셈이지?”


밤 늑대는 무미건조하게 하품하며 카인을 보며 말한다.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기에 일어난 단순한 일로 치부하도록 하지. 그럼 조만간 다시 맞이하러 가마.”


밤 늑대는 그 말을 남긴 채로 새까만 밤과 동화된 채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홀로 남은 카인은 가죽 수통에 조금 든 물은 다 마시며 목을 축였다.


“묘한 녀석이군. 몇백 년을 살아온 괴수이기에 저런 여유를 가졌나? 아무튼, 뒷일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응? 말발굽 소리인가.”


카인이라는 어린아이의 몸이지만, 사냥꾼의 경험과 기억을 가진 몸이다.

카인은 미세하게 흔들리는 땅의 울음 알아채며 그대로 엎드린 채로 귀를 땅에다 밀착시켰다.


‘불규칙한 말발굽 소리. 대충 두 마리인가?’


내 기억이 따르면 녀석은 안 왔을 거다.

궁금한 건 직접 봐야 만족하는 녀석이 이렇게 늦게 올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체통을 지키는 거냐? 아니면 시시하게 나이를 먹어 나약해진 건가, 란셀?”


이제는 저 멀리서 보일 정도로 말의 희미한 윤곽이 눈에 띄었다.


“쓰러져 있는 편이 좋겠지.”


차가운 흙바닥에 엎드린 채로 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물론 저택에서 보낸 기사가 아닐 수도 있다.

허나 카인의 기억에 의하면 이 근방은 치안이 꽤 잘 이루어져 웬만한 도적은커녕 말을 타고 다니는 족속들은 기껏해야 마부나 상인 정도다.


그렇지만 이런 밤중에. 그것도 숲의 길을 따라 돌아다니는 마부나 상인은 웬만해선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저택의 기사라는 것인데.


저택의 하인이라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만약 잘못 판단할 수도 있으니 우선은 엎드린 배 밑에 단검을 언제든지 뺄 수 있도록 쥐고 누워있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괜찮을 거다.


대체로 말이 안 통하는 짐승보다야 말이 통하는 인간을 다루는 게 훨씬 쉬우니까.


****


“이런 밤중에 하인 꼬마를 찾으라니. 오늘은 미쉘과 데이트가 있는데. 하아.”

“거, 조용히 좀 해라. 후딱 찾고 나오면 되는데 뭘 그리 투정이냐.”

“꼬맹이라 그런가? 어른의 데이트가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르는 모양이군.”

“허구한 날 여자한테 돈을 바치러 가는 게 데이트라는 거였군. 내가 아는 데이트와 사뭇 다르네.”


말을 타며 숲의 외곽을 수색하는 두 명의 기사.


“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어른의 연애라는 건 이런 거야!”

“그 잘난 어른의 연애가... 잠깐.”

“말 돌리지 말...! 인마! 갑자기 왜 뛰쳐나가!?”


두 명의 기사 중. 조금 어려 보이는 기사 한 명이 쓰러진 사람을, 카인을 발견하며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와 함께 온 선배 기사 또한 후배 기사의 뒤를 쫓았다.


“이봐, 괜찮아?”


말에서 내려 일부러 쓰러져 있는 카인에게 다가가 의식을 확인하는 후배 기사. 곧이어 선배 기사도 말에서 내린다.


“사, 살려주세요...”

“윌슨. 빨리 연고와 붕대를.”

“일단 진정해라 꼬맹이. 혹시 네가 카인이냐?”

“네, 맞아요...”

“좋다. 그럼 몇 가지 물어본 게 있다. 라울, 너도 잠시 떨어져 있어라.”


윌슨이라 불리는 선배 기사는 쓰러진 카인에게 몇 가지 물어본 것이 있다며 허리춤에 잠든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후배 기사인 라울은 선배 기사인 윌슨의 행동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면서도 마땅치 못한 얼굴을 짓고 있었다.


“첫 번째로 어둠의 숲에 언제 오게 되었지?”

“일주일 전입니다. 헌데 그것은 왜?”

“두 번째로 물어본 것이 있다. 너와 내가 모시는 주인의 존함이 무엇이지?”

“제 주인은 란셀 엘드모어님 이십니다.”

“세 번째로는 저택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느냐?”

“잡일을 하는 평범한 하인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윌슨의 손은 검에서 벗어나 가져온 연고와 붕대로 빠른 응급처치를 마쳤다.


“미안하다, 카인. 급한 상황인데도 이렇게 답해주니 고맙구나.”

“아, 아닙니다.”

“어디 속이나 머리가 어지럽지는 않나? 그 밖에 아픈 곳이 있나?”

“이, 이젠 괜찮습니다!”

“좋다. 라울. 카인은 네 말에 태우고 데려가도록 해. 나는 수색을 나간 다른 기사들에게 카인을 찾았다고 말해야지.”


‘윌슨이라고 했던가. 기사다운 사내구나. 사람이 쓰러져 있는데도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최소한의 질문으로 파악하는 걸 보면.’


카인은 말을 타고 다른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 윌슨이라는 사내를 속으로 칭찬했다.


기사란 제 주인을 지키는 존재이자 시민을 지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봐왔던 기사라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제 직업에 자긍심은커녕 오히려 제 주인의 권력이 자신의 권력인 것처럼 주제넘은 짓을 많이 저지르기도 했는데.


말을 타고 떠나는 저 윌슨이라는 사내는 교육을 잘 받았거나, 아니면 태생적으로 기사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카인. 괜찮으면 어서 말에 타도록 해라. 응급처치했지만 더 정확하게 진찰을 받아야 하니까.”

“네,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라울은 다친 카인을 자신의 앞에 태운 채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천천히 달렸다.


‘라울이라 했던가?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선배인 윌슨은 따라다닌다면 나쁘지 않게 성장하겠군. 자기보다 낮은 사람을 위해 천천히 달리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너무 착하면 독이 되는 법... 이...’


어둠의 숲을 벗어나 처음으로 만난 사람의 곁이 포근하고 안심이 된 것일까.


피로와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니 어느덧 카인의 눈꺼풀은 차츰 어두워지며 곧 완전한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


“딱히 연고를 잘 바르고 상처 부위에 물이 닿지 않도록 한다면 빨리 나아질 겁니다.”

“알겠네. 고생했네.”

“뭘요. 그럼 나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택의 주치의가 집무실을 나가며 란셀은 소파에 누워있는 카인을 쳐다보았다.


“어디, 몸은 괜찮으냐?”

“네. 주인님의 성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은 하나같이 소중하다. 그러니 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란셀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나를 위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어떻게 나 같은 하인이 일주일 넘게 어둠의 숲에서 생존하였는지가 궁금할 뿐이지, 녀석은 그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카인. 어둠의 숲에 간 이유가 무엇이더냐? 다른 사용인들이 목격했는데 벌건 대낮에 도망을 치려는 것은 아니고. 혹여나 다른 이유가 있더냐?”

“주인 아씨에게 꽃을 받치려고 했습니다.”

“꽃이라. 우리 저택 정원은 꽤 아름답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굳이 꽃을 따러 어둠의 숲으로 향했다니.”


이런 식의 대화. 옛날 같으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뭔가 귀찮다.


“이봐, 란셀.”

“지금 뭐라 했느냐?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겠지?”

“네가 들은 게 맞아. 그리고 언제 이름을 바꾸고 귀족 지위를 얻은 거냐? 예전 사냥꾼 시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군.”


란셀은 카인에게 어둠의 숲에서의 생존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이렇게 단독으로 대화를 이끌었는데 자신의 과거 행적을 아는 자가 불과 열두 살 먹은 소년이라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꽤 당황스러운 모양이야? 뭐, 이런 꼬마의 몸으로 말하는 것도 우스우면서 믿지는 못하겠지만 나다. 네 어린 시절을 굶어 죽지 않게 해준 레샨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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