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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님의 서재입니다.

사냥꾼, 환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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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부
작품등록일 :
2021.01.08 17:44
최근연재일 :
2021.01.19 20:00
연재수 :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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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추천수 :
10
글자수 :
41,109

작성
21.01.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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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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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약속.

DUMMY

일주일 동안 피로에 빠져 죽었던 몸은 상당히 산뜻하고 가벼웠다.


좋은 환경에서 쉬면 몸의 피로가 녹아내리기는 해도 이렇게 빨리 몸이 개운해지는 건 뭔가 조금 특이했다.


'어린 몸이라서 그러나? 그런 것치고는 너무 회복이 빠른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 카인은 잠시 생각을 멈추며 창문 너머로 환하게 빛나는 태양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올려보았다.


“벌써 해가 저만치 떴나?”


따스하게 내리는 햇볕이 이렇게나 반가울 줄은 몰랐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어둠의 숲에서 먹이가 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대강 점심을 먹을 시간은 됐겠군. 그런데 로우셀이 며칠 동안은 휴식을 취하라고 해도 마땅히 할 건 없구나.”


체력을 단련하고 싶어도 아직은 안정을 우선시해야 하는 몸이었기에 쉽사리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겉은 멀쩡해도 속은 멀쩡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멍하니 미래를 기대하는 멍청이는 아니었기에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단련을 모색해보았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문을 향했다.


일단 하인들은 아닐 것이다. 누가 자신의 방문을 스스로 두들긴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방에 있는 하인이 격식을 차리기는 힘들고.


“들어가도 돼?”

“네, 들어오셔도 됩니다.”


청량한 목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녀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몸이 흠칫했다.


“그럼, 실례합니다.”

“아가씨께서 여긴 어쩐 일로?”


로우셀의 여식이자 저택의 아가씨인 엘리아 엘드모어가 친히 하인의 방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궁금해서.”

“어떤 것이 궁금한 겁니까?”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엘리아는 내게로 다가오더니 이내 내 앞에 멈추고서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성장이 빠르다고는 해도 머리 하나 정도로 차이가 나는 키에 카인은 스스로 안타깝다는 감정이 들어도 딱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네가, 어둠의 숲에 다녀왔다는 아이 맞지? 그치?”

“맞긴 맞습니다. 그런데 왜 물어보시는지?”

“역시 너였구나! 저기 말이야. 어둠의 숲은 어땠어? 정말로 말로만 듣던 낮에도 빛난다는 꽃이 있어? 아니면 커다란 괴수는? 사악한 마녀와 행운을 부르는 난장이도 있는 거지?”


오랜 시간 동안 정성 들여 가꾼 건지 붉은 머리카락은 윤이 날 정도로 찰랑거리며, 초롱초롱한 에메랄드 눈동자는 한껏 기대를 품은 듯 내 대답을 기다리며 빛나고 있었다.


‘누가 로우셀의 자식 아니랄까 봐. 궁금한 건 죽어도 못 참겠다는 그 눈빛과 행동력을 보니 어린 시절의 녀석보다 더 적극적이군.’


카인은 자신보다 주먹 하나가 큰 엘리아를 가까이서 보니 귀찮다는 감정보다는 오히려 신기했다.


보통의 귀족의 여식이라 함은 이런 하인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오기보다 오히려 시종을 시켜 나를 데리고 오는데. 엘리아라는 소녀는 왠지 모르게 로우셀과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달랐다.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로우셀의 여식이 맞는 것인지 외모도 상당히 출중했다.


비슷한 나이의 소년들이 엘리아를 본다면 눈을 떼지 못한 채로 입을 벌리고 있을 모습이 절로 그려졌으니 말이다.


장차 나이를 먹어가며 숙녀로 자란다면 남자께나 울릴 정도의 미모가 예상됐다.


‘머리칼과 눈은 어머니를 닮은 건가?'


그러나 외모를 보는 것도 잠시. 카인은 다시 이야기의 본제로 돌아와 고민하고 말았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에게 솔직히 말해야 할까, 아니면 거짓이라도 아가씨가 기대하며 내게 바라는 동심에 어울리며 맞장구를 쳐줘야 하느냐는 고민.


“아가씨 말씀처럼 사악한 마녀와 행운을 부르는 난장이는 보진 못했어도, 커다란 괴수는 보았습니다. 덧붙이자면 낮에도 훤히 빛나는 꽃도 보았고요.”

“그게 진짜야? 정말로 커다란 괴수를 본 적이 있는 거야? 거짓말하는 건 아니지?”

“제가 어찌 아가씨 앞에서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하지만 믿고 싶지 않으면 안 믿으셔도 됩니다. 그렇다면 굳이 커다란 괴수를 만났던 이야기를 할 필요...”

“아, 아니야! 믿어, 믿는다고!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주지 않을래?”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은 한 치의 떨림이 없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이런 속담을 모르시는 건 아니지요?”

“괘, 괜찮아! 이래 보여도 밤에는 혼자 잠을 잘 수도 있을 만큼 컸다고!”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어둠의 숲에서 봤던 모든 걸 얘기하도록 하죠.”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꼬마 아가씨도 로우셀의 피를 진하게 이어받았다면 필시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감이 들었다.


“아가씨. 숲의 얘기를 들려주기 전에 한 가지 약조할 것이 있습니다.”

“응? 뭔데?”

“제가 경험한 어둠의 숲에서 일어난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드릴 터니 숲에는 가지 마시라는 약조를 하고 싶습니다.”

“에,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위험한 곳을 가겠니?”


말을 그렇게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가뜩이나 내 경험담을 듣고 싶어 하인이 있는 방까지 몰래 온 모양인데.


“만에 하나. 약속을 어기실 경우. 아가씨께서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걸다니? 뭘?”

“약속이란 사람과 사람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다고 해도 약속을 어기는 인간은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지요.”

“그, 그래서 뭘 걸어야 하는데?”

“아가씨께서 가장 소중히 아끼는 것을 걸면 됩니다. 예를 들면 장신구, 혹은 좋아하는 인형이라든지요.”


애초에 어린아이에게 소중한 거라고 따지자면 별거 없을 것이다.


대부분 귀족 여식들은 자신의 장신구나 혹은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물건을 걸기도 하는데, 로우셀의 딸인 엘리아는 무엇을 걸지 기대가 된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시험을 해보고 싶었다.


“으음...! 흐음...!”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의 소중한 것을 걸라고 한다면 잦은 기억을 끄집어내서라도 생각해낼 것이다.


“좋아. 그러면 우리 엄마 반지를 걸게!”

“주인마님의 반지요? 귀하다 못해 유품이 아닙니까?”

“내게 제일 소중한 걸 걸으라고 했잖아?”


‘뜻밖이군.’


정말로 뜻밖이었다. 본래 소중한 거라도 대부분 순위가 있는 법.


내 기억으로는 저 반지는 주인마님의 약혼반지이자 유품이기도 했다.


엘리아가 제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제 어미의 유품을 남에게 쉽게 맡길 수 있는 건가?


“멋지네요. 좋습니다. 반지는 차후에 약속을 어길 시에 제가 가지도록 하고. 일단 제가 본 모든 걸 얘기하도록 하죠.”

“고마워, 카인! 그래서 숲에 들어간 얘기부터 하는 거야? 괴수를 만난 얘기?”

“찬찬히. 모두 말하겠습니다.”


침대에 걸터앉은 카인과 엘리아.


엘리아가 우스갯소리로 한낮에도 밝게 빛나는 꽃을 찾으러 갔다는 걸 시작으로 그 이후로 무엇을 만났는지에 대해서. 또 어둠의 숲에서 자라는 동식물은 상당히 맛있다는 얘기를 필두로 하며 엘리아의 눈은 또다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어둠의 숲은 맛있는 게 많다는 거야?”

“신선하기까지 하죠.”

“우와. 나도 한 번 가고 싶... 읍!”


황급히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는 엘리아.


아까 했던 약속은 어둠의 숲에 가지 말라고 했으며 그것을 어길 시에는 반지를 가져가겠다고는 했으나 어둠의 숲에 가고 싶다는 말까지는 금하지 않았다.


“엄청나게 대단하네, 카인은.”

“제가 뭐 대단합니까.”

“아니야! 엄청 대단한 거지! 웬만한 어른들도 어둠의 숲은 엄청 위험한 곳이라면서 밝은 대낮에도 들어가질 않잖아! 그런데 카인은 나를 위해 그 위험한 숲까지 들어간 걸 보면 대단하다 못해 오히려 동화 속에 나오는 기사와 똑같잖아!”


꽤 흥분한 것인지 빠른 속도로 말이 튀어나오는 엘리아를 바라만 보니 흐뭇하기까지 했다.

손녀가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재미있네요. 기사라.”

“카인은 기사를 꿈꾼 적이 없어? 아니면 될 생각은 없어?”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군요. 그냥 앞으로의 삶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아쉽다. 나는 데뷔당트도 아직 멀었고, 전속 기사도 없으니 너무 심심하거든.”


‘로우셀이 어지간히 힘들겠어. 이렇게 기운 넘치는 딸을 키우다니.’


“뭣하면 제가 기사가 되어 드릴까요?”

“정말로!? 진짜야?”

“아가씨의 전속 기사가 된다면 지루하지는 않겠네요.”


물론 농담으로 하는 말. 어찌 하인의 신분으로 기사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나중에 아빠한테 말해볼게!”

“네? 잠깐만요? 주인어른께 말씀하신다고요?”


당황했다. 아마 난 환생하고 난 뒤로 처음으로 당황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당황했다.


“응! 아빠라면 내 소원은 뭐든지 들어주거든. 그러니까 카인을 내 전속 기사로 들이라고 말해볼게!”

“아니, 잠깐만! 아가씨!”


어느새 재빠른 행동으로 문밖을 나선 엘리아를 보며 나는 허망하게 녹슨 소리를 내는 문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니지. 로우셀도 적잖게 머리가 있는 녀석이라면 분명히... 아니야! 아니지! 녀석은 아직도 나를 너무 우상시하고 있어. 하물며 기사가 된다는 농을 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진담으로 받아들일 녀석이야. 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아빠에게 간다고 하는 걸 보면 의외로...’


“아니지. 아니야. 애초에 제대로 상황을 봐야지. 그렇게 쉽게 기사가 될 리가 있겠어? 한동안은 하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어제 말했는데.”


콰앙!


“카인. 꾀병으로 어떻게 주인어른을 삶아 먹었는지는 몰라도 하루라도 빨리 덜 맞고 싶으면 얼른 나오는 편이 좋을 거야.”


문을 향해 신경질적인 발길질을 하며 흙투성이를 한 폴이 내 멱살을 잡는다.


‘이건 또 뭔...’


“네가 안 나오니까, 내가 궂은일을 다 하고 있잖아!”

“내가 아프고 누워있는 동안 나 다음으로 병신인 네가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핫! 내가 잘...”

“네가 들은 게 맞아. 아니면 다시 말해줘? 너, 병신이라고.”


웃기다 못해 어이가 없다는 웃음을 터트리는 폴은 더욱 강하게 멱살을 쥐며 이마가 부딪친 채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 주둥아리에서 나온 말을 다시 한 번 지껄여 봐. 그때는 어떻게 되나 보자고.”

“내가 너를 볼 때는 두 가지 의문이 드는군. 첫 번째로는 너는 욕을 먹으면 흥분하는 변태인가? 두 번째로는 나 다음가는 병신이라는 소리에 찔려 발끈하는 애새끼냐?”

“이런 미친 새끼... 커억!”

“손 떼 새끼야.”


주먹을 날리려는 폴의 움직임. 그러나 오히려 내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힘껏 당기며 그대로 녀석을 면상에 박치기를 먹였다.


“크윽...! 이 새파랗게 어린 새끼가 돌았나!!”

“야. 그쯤 해둬라. 더 말했다가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어버린다?”


카인은 실력을 발휘하며 의외로 약해빠진 폴을 피 흘리는 면상을 보며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사정이 있어 잠시 이렇게 있는 거지, 애초에 너 같은 녀석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야. 그러니까 진짜로 마디를 꺾어버리기 전에 그냥 가라.”

“너, 너, 너...! 어디 두고 보자! 이 일을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조차 하지 마라!”


피가 나는 코를 부여잡은 채로 폴은 다시 신경질적으로 문을 닫고는 그대로 나가버렸다.


“위에 있는 두 놈에겐 이르지 않고, 혼자 해결하려고 오겠지.”


폴이 왜 지금 시각에 방으로 온 것인지 대충 예상이 된다. 옷에 덕지덕지 묻은 흙을 보며 얼추 시나리오가 그려지지 않는가?


분명 막내이자 약한 내가 쉬게 되니 온갖 잡일을 맡으며 짬이 생겨 내게 분풀이를 하러 왔다.

그런데 이게 웬걸? 그저 약해 빠진 쥐새끼가 감히 고양이에게 대들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고양이가 코를 막은 채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말이다.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한 녀석이지만, 마땅히 불안하지는 않았다.


겨우 나한테 쥐어 터진 걸 일러바쳤다고 해서 루드렉이나 길렌이 폴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달갑게 여길지도 모른다.


언제나 무료한 하인의 삶을, 아주 풍족해도 따분한 삶의 허무까지 채워줄 수 있는 건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타인의 불행이다.


필시 루드렉과 길렌은 이 사실을 알면 부추길 것이 훤했으니까.

폴도 그걸 알기에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차피 폴 말고도 위 두 놈에게 많은 혹사와 폭력을 지속해서 당해왔다.


착한 사람. 말로만 들어도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카인은 그저 너무 착해서 탈이었다.


폴의 폭력적인 언행에도.

루드렉이 이곳저곳 몸을 만지는 것도 웃으며 넘겼고.

길렌이 잡일을 떠넘기며 맡은 것도 힘들었지만 카인은 웃으면서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착한 사람은 이들에게 있어 이용하기 쉬운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을 것이다.


“카인. 나는 너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남자가 아니야.”


들리지 않을 카인이라는 소년을 부르는 레샨은 침대에 걸쳐 누웠다.


“할 건 해야지. 아무리 착하다고 한들. 본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안타까운 일이잖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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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손가락 다쳤어요 21.01.20 24 0 -
8 복수 21.01.19 14 0 12쪽
7 싸움. 21.01.18 23 0 11쪽
6 준비. 21.01.15 33 1 13쪽
» 약속. 21.01.14 42 1 13쪽
4 재회. 21.01.13 58 1 11쪽
3 만남. 21.01.12 63 2 12쪽
2 첫 사냥. 21.01.11 83 3 11쪽
1 환생. +1 21.01.08 126 2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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