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선공(先攻) - [4]
포승줄로 결박된 왜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고함을 친다.
“뭐라고 하는가?”
앞에서 왜구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병사에게 묻자
“그니까...”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한다.
“전부 말하도록.”
“그게... 저 왜구가 종사관님의 가족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가족?”
포박된 왜구를 보자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계속 뭐라고 떠든다.
“입만 멀쩡하면 되니까 사지 중에서 어디부터 자를지 결정하라고 전해라.”
병사는 나의 말을 듣고서 곧장 왜구의 언어로 얘기를 한다.
그러자 왜구는 고함을 치며 나에게 침을 뱉는다.
“종사관님! 괜찮으십니까?”
나의 뒤에 있던 다른 병사가 나를 걱정해준다.
“나는 괜찮다. 그것보다 이 왜구의 반항이 너무 심한 것 같으니 손가락 하나부터 잘라라.”
협조적으로 나선다면 성한 몸으로 조선에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왜구가 하는 짓을 보아하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알겠습니다.”
고문을 위해서 남겨두었던 병사는 모닥불에 다가가 미리 불에 달구던 소도를 꺼낸다.
빨갛게 달아오른 소도.
왜구는 그것을 바라보며 점점 몸부림을 치지만 통역하던 병사는 왜구의 몸을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막는다.
허억...
허억...
왜구의 가쁜 숨소리.
다른 병사는 왜구의 팔을 끄집어내 손가락을 쫙 펼치게 두고 팔목을 밟자 소도를 든 병사가 그 앞으로 다가와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소도를 댄다.
치이이익.
“으아아아악!!!”
검지에 대고서 바로 눌러 자르는 게 아니라 비비기 시작하자 극심한 고통을 느끼던 왜구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이것들도 사람이라고 비명소리는 우리와 똑같잖아?”
몸뚱아리를 밟던 병사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맞다.
저들은 우리 조선의 백성들을 저렇게 고문을 시켜 비명소리를 듣는 것을 즐겨했다.
아주 천천히 소도를 움직이며 검지를 잘라내던 소도는 이윽고 검지를 절단시킨다.
“깨워라.”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개 거품을 문 왜구는 기절했는지 반응을 보이자 않자 깨우라고 이른다.
“아아아악!!!”
깨우자마자 또 다시 비명소리가 시체들이 가득한 왜구의 마을을 울린다.
그 소리에 마을에서 전리품을 획득하던 다른 병사들이 급히 중앙으로 뛰어들어온다.
“무슨 소리입니까? 종사관님 괜찮으십니까?”
최홍개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내며 연신 주위를 둘러본다.
“괜찮다.”
비명을 지르는 이를 본 최홍개는 이윽고 입을 닫으며
“그럼 계속 전리품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설명을 하진 않았지만 혹시라도 화약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다란 막대기가 보인다면 가져오도록.”
“네, 뭐하냐? 어서 가자!”
최홍개는 자신을 따라왔던 병사들을 다시 이끌고 마을 곳곳으로 흩어지자 비명을 지르던 왜구에게 눈길을 돌리며
“시끄럽군.”
“조용히 시키겠습니다.”
“입은 멀쩡해야 하니 재갈을 물리도록.”
혹시라도 입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면 발음이 이상해져 통역하던 병사가 못 알아 들을 수 있으니 신중을 기한다.
나무 막대기 양옆에 천을 묶어 왜구의 입안에 쑤셔 박은 후 머리 뒤로 끈을 단단히 묶는다.
“사지 하나를 절단한다고 했으니 계속해야겠지?”
병사는 나의 말을 그대로 통역을 하자 왜구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된다.
“아직 손가락 하나뿐인데 이러면 곤란하지.”
내가 말한 사지는 팔 두 개와 다리 두 개를 뜻하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가지고는 우리 백성들이 흘린 피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손가락 그다음은 팔목 그다음은 팔꿈치 그다음은 어깨까지 자를 거다.
손가락을 자른 병사는 다시 모닥불에 다가가 준비되었던 대량의 소도 중 하나를 꺼낸다.
“자, 2차전이다.”
병사는 음산하게 중얼거리자 왜구의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랗게 변하지만 그것을 무시한 채 다른 손가락에 소도를 대고서 문지르기 시작한다.
* * *
“오다 노부나가, 미요시 요시츠구라...?”
해가 지고 있을 쯤에 끝난 고문.
소도를 달군 뒤 자르니 피가 나지 않아 오른쪽 팔이 사라진 왜구의 숨이 아직 붙어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왜구들을 통일 시킨 군주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군주가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라는 군주의 장수라고 왜구가 털어놓았다.
이곳은 후쿠이라는 곳이며 이 근처에서 패권을 두고 싸우는 오다 노부나가와 요시츠구의 구역이라고 한다.
‘애초에 잘 못 도착했다.’
나는 조선에 넘어오는 왜구들의 보급을 끊고 도망치는 적들을 섬멸하기 바빴었다.
그로 인해 왜구들의 섬에는 한 번도 오지 않아 사절단이 왜구들의 섬에 방문할 때 같이 왔던 병사에게 길을 물어보며 왔다.
하지만 병사가 얘기했던 지방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아니지.
오히려 잘 된 일인가?
오다 노부나가라는 군주의 밑에 우리 조선의 최대 큰 난적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직 장수의 위치에 있다는 것 만해도 크나큰 정보다.
“종사관님. 전리품 수거를 전부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리품 수거를 하던 이종진은 어느새 마을에 있던 집들을 전부 털었는지 나에게 보그를 한다.
“화약 냄새가 나는 막대기는 확인했는가?”
“종사관님이 묘사하신 막대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작은 마을에는 조총이 없는 것 같아 아쉽게 느껴진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조총을 습득하는 것에 있어서 더욱 어려워질 텐데...
다른 마을들을 더 털어서 조총을 습득하느냐? 아니면 전리품들을 챙겨 조선으로 돌아가느냐?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한다.
“조선으로 돌아간다.”
고심 끝에 결국 조선으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내린다.
조총을 습득하려고 왜구들의 땅에 시간을 지체하다가 더 많은 왜구의 병력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
병사들도 결국 조선의 백성들.
함부로 목숨을 허비할 수는 없어 안전을 선택하며 전리품들을 판옥선에 적재하고 출발 준비의 명령을 내린다.
그러자 무관들과 병사들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감돌며 전리품들을 해안가에 숨겨둔 판옥선으로 가지고 가기 시작한다.
활활 불타고 있는 왜구들의 시체.
그것을 보던 나도 몸을 돌려 판옥선에 타기 위해 움직인다.
함박눈이 내리는 1567년 1월.
부산포의 해안가 근처에서 판옥선 두척이 보이기 시작하자 보초를 서던 병사는 그것을 확인하고 즉시 알리기 위해 막사로 뛰어 들어간다.
곧 막사에서 무장한 병사들과 무관들이 뛰어나와 항구에 들어오는 판옥선을 바라본다.
곧 이어 판옥선에서는 뭔가 잔뜩 들고서 내리기 시작하자 그것을 지켜보던 소흡은 그들에게 다가간다.
“...살아서 돌아왔군.”
마지막으로 이순신과 최홍개 그리고 이종진이 내리자 그들에게 물어본다.
“부상자 한명을 제외하고 전부 복귀했습니다.”
우렁찬 이순신의 음성.
“정말 수고했네.”
소흡은 이순신의 손을 맞잡으며 그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리고 전리품을 옮기고 있는 병사들에게 눈을 돌리며
“왜구들의 전리품인가?”
“그렇습니다.”
“그래.”
소흡은 이종진과 최홍개에게도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고 말하며
“오늘 밤에는 무사히 복귀한 종사관 이순신과 그의 휘하들의 병사들에게 돼지 3마리와 술을 제공하겠다.”
그러자 전리품을 옮기던 병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리고 종사관은 나를 따라오게.”
그의 말을 들은 이순신은 막사로 들어가는 소흡을 따라서 들어간다.
* * *
“그래, 성과는 있었나?”
“왜구들의 정보들을 알아냈습니다.”
노획한 전리품은 어차피 보여주기 용으로 조정에 올려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정보는 다르다.
조정에서 독차지 할 수 없다.
“무슨 정보를 얻었는데 그리도 기쁜 듯이 웃는가?”
왜구들의 정보를 떠올리는 것 만해도 나의 입매가 올라간 것 같다.
“절도사님은 왜구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흡은 많은 시간을 부산포에서 왜구들을 상대해왔다.
그런 그에게 묻자
“왜구들? 당연히 백성들을 약탈하는 비열한 족속들이지.”
“그렇다면 현재 왜구들은 하나로 합쳐져 있지 않는 것을 아십니까?”
“당연하지. 그들에게도 수많은 파벌들과 사병들이 존재하며 서로 영토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조정에서 들었네.”
“그럼 왜구들의 파벌 중 하나로 합칠 수 있는 거대한 세력이 있다는 것도 아십니까?”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소흡.
“그것까지는 모르네.”
하지만 소흡은 순순히 대답을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조정에서는 알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지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지휘관의 위치에 있는 관료들에게는 쉽사리 말하지 않겠지.
역모.
사병이나 다름이 없는 병사들을 이끄는 그들에게 명분을 줬다가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까.
내가 봤을 땐 소흡은 미래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옥살이를 하고서 그 이후의 행적이 불분명해진 이유가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자총통과 판옥선 그리고 수천 명의 병사들을 가지고 있으며 조정의 힘이 뻗지 않는 경상도에 위치하고 있어 독자적으로 힘을 기를 수 있다.
대대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자들은 전부 그들을 견제해왔으며 많은 정보를 은폐, 식량을 가지고 장난질을 쳐왔다.
왜구들은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현재 오다 노부나가라는 파벌의 세력이 흩어진 왜구들을 규합시키고 있습니다.”
“그래봤자 왜구들일세. 규합하더라도 결국 비열한 그들은 다시 물어뜯고 싸우겠지.”
오랜 시간 왜구들을 상대했던 소흡은 자신의 경험의 토대와 쌓아온 선입견으로 얘기를 한다.
“그렇겠죠. 하지만 서로 물어뜯지 않고 상대할 적을 새로 만든다면 어떻겠습니까?”
“적을 만든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소흡의 눈이 가늘게 바뀌며 나를 추궁한다.
“말 그대로 왜구들은 우리 조선 이전의 과거에 세워졌던 수많은 나라들처럼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로 규합이 된다고 해도 피 맛을 알게 된 그들에게는 짧은 평화도 유지하기 어려울 겁니다.”
과거의 기억을 토대로 설명을 시작한다.
“하지만 피 맛을 알게 된 왜구들을 이끌고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과거 수많은 정복왕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왜구들은 그들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자네가 얘기하는 것이 그러니까...”
소흡의 머릿속에서는 하나로 규합된 왜구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상상이 되는 듯 얘기를 하다가 결국 말을 흐린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장 많이 상대했던 나라. 즉, 우리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왜구들을 보낼 겁니다. 그것도 지금까지 노략질만 했던 왜구들과 차원이 다른 정예병들로요.”
이것을 조정에 보고를 해도 그들은 들어주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현재 다음 임금을 누구를 올릴지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조정의 실권을 쥐기 위해 서로 싸우는 중이다.
‘소흡.’
나의 뒷배를 알아냈으며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했지만 결국 다른 누구에게도 그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
믿을 수 있냐?
믿을 수 없냐?
조선으로 복귀하는 판옥선에 탔던 나는 끊임없이 고민을 했다.
차라리 류성룡과 이황 등등에게 하성군을 전적으로 맡기고 나는 관직에서 내려와 나와 뜻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모와 힘을 기르는 방식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안 된다.’
관직이라는 명분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역모 죄에 해당이 된다.
결국 달포가량 고민을 하고서 소흡을 믿기로 결정을 내렸다.
“왜구들이 침공하기 시작한다면 우리 조선은 힘없이 무너질 겁니다.”
“내게 무엇을 바라는 건가?”
태평성대를 부르짖으며 타성에 젖은 썩은 관료들이 있는 한은 오랜 시간동안 싸움만 하던 왜구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제가 절도사님께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제안?”
소흡은 나의 말에 두 눈을 감고 나의 말을 음미를 하다가 결국 눈을 뜬다.
“왜구들을 막기 위해서는 조선에 들어오려는 왜구들의 바닷길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런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네에게 절도사에 준하는 권한을 달라 이건가?”
어이없이 없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그래, 어이가 없겠지.
다른 이에게 자신의 권한을 준다는 것 자체가 호랑이를 키우는 꼴이 될 수 있으니까.
“맞습니다.”
부정하지 않는다.
“하하하. 자네 왜구들을 상대하더니 결국 미쳤는가?”
“.....”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그는 나를 노려보며
“그래서 자네의 말에 뒷받침 할 수 있는 증좌가 있나? 만일 있다면 생각을 해보겠다.”
“있습니다.”
팔 한쪽이 잘린 왜구.
곱게 살려서 데리고 들어왔다.
“있다?”
“왜구들의 땅에서 생포했던 왜구의 지휘관을 살려서 데리고 왔습니다.”
아까 전리품을 먼저 내리느라 보지 못한 듯 하다.
“왜구를 생포했다. 하지만 그 왜구가 말하는 것이 거짓일 확률은?”
“제 목숨을 걸겠습니다.”
“.....”
하늘에 한 점 부끄럼 없어 당당하게 얘기한다.
결국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자네의 목숨은 몇 개라도 되는 것 같아.”
“그 말씀은?”
“그 왜구를 보러 가보지.”
결국 소흡은 자리에서 일어나 왜구를 보러가자고 얘기를 한다.
- 작가의말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목표치인 1000이상의 추천수가 달성했습니다.
항상 추천과 응원의 댓글을 남겨주시는 독자님들.
다른 시선으로 피드백주시는 감사하신 독자님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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