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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금랑서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09.25 05:04
최근연재일 :
2009.09.25 05:04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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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21
추천수 :
55
글자수 :
92,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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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07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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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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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금랑서은 4 - 흉가

DUMMY

이야기 네 번째. 흉가(凶家)




여전히 컴컴했다. 이런 도심에 이런 폐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두 눈으로 실제 보지 않은 사람은 과연 상상이나 하겠는가. 마치 합성사진처럼 보였다. 그러나 뒤로 달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었다.

형우는 지나가는 사람을 피해 몸을 움츠렸다. 손에 들린 검은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흠칫 놀라 움켜잡았다. 분명 속이 보일 리가 없는데도. 인터넷을 통해 있는 돈 탈탈 털어 구입한 수면제가 안에 들어 있었다. 그는 자살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잠자고 싶었으므로 수면제를 많이 먹으면 계속 잠잘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아침에 햇살이 저주스러웠다. 눈을 뜨기가 싫었다. 어릴 때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게다가 삼중 추돌 사고가 일어났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양친은 즉사였다. 모두가 고개를 기우뚱한 사고였다. 어떻게 그렇게 절묘하게 가드레일이 박힐 수 있나. 확률은 낮았다. 자신이 혼자 이 집에서 놀고 있을 때 한 남자가 자기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이제 너만 남았구나.’

그 남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알 수 있었다.

당시 겉만 보면 고급주택에 화사하기 그지없었던 이 집이 사는 사람마다 나쁜 일을 당한다는 흉가로 유명하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들어 알았다. 자신의 가족은 그 사례들 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었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 진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이 집은 자신의 소유였다. 팔리지 않았고 경매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지독할 정도로 이 집이 자신에게 들러붙어 있었다. 길바닥에서 노숙을 해도 이 집에서 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치 이제는 세월이 흐르고 아무도 살지 않아 퇴락해버린 이 집이 자신과 혼연일체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없었다. 사귀던 여자 친구들은 모두 어느 순간 겁에 질린 표정으로 자신을 피했다. 혹은 사고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모두가 말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고, 그들이 자꾸 자신들을 해치려고 한다고.

가난하고 불우한 중고등학교 시절을 견뎌 직장을 얻어도 부도가 나거나 임금체불이 되거나 하기 일쑤였다. 좀 괜찮은 회사라도 그가 들어가서 일 년을 간 회사가 없었다. 심지어 입소문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들어가는 회사는 모두 망한다고. 피해야 할 인물 1호라고. 그래서 다른 도시로 옮겨가보았지만 거기서도 똑같았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먹고 자는 것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없었다. 아니, 이제는 그조차도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이 집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집문서를 쓰레기통에 버려도 꼭 자기 앞에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나타나며, 기부를 하려고 해도 뭔가의 이유로 항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가면 점쟁이들이나 무당들이 혼비백산을 하고 심지어 달아나기까지 했다. 큰 무당이라는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짧게 말하고는 기절한 것이 그나마 건진 것이었다.

“지옥이 여기 있네. 산지옥이야.”

자신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지옥인지, 자신의 주위에 있다는 그 무수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인지 형우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이제 너만 남았구나.’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그가 살 길이었다. 그리고 그가 죽을 장소는 정해져 있었다. 그는 거대한 철문을 밀어 열었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녹이 우수수 떨어졌다.


“이야.”

뭔가 감탄한 듯한 말투로 금랑이 말했다. 인간의 이름은 현이헌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한지도 꽤 오래 되어 지금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도심의 찢어지는 듯한 매미소리가 안쓰럽게 여겨져서 근방 가로수에 기운을 조금 나누어주었다. 목은 실컷 축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며 터덜터덜 비닐봉지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덜렁덜렁 들고 오고 있던 참이었다.

평소에도 흥미롭게 여겨지던 집에 인간이 들어간다.

“아이스크림 다 녹겠다!”

기다리다 못해 뛰쳐나온 모양이다. 사실 집에 있는 편이 훨씬 시원한데도. 아직도 자기가 미덥지 못하나. 금랑은 땀에 젖어 축 늘어지는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올렸다. 인간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금방 서은에게 들키고 말아서 여러 가지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수백 년이 흘렀다고 해도 자신에겐 한숨 잔 것과 같은데 인간들은 그 사이에 너무 많은 걸 만들어내고 버려버렸다. 복잡하고 피곤한 종족이다. 하지만 구경하는 재미는 있다. 저 속도감은 경이롭기도 하지만, 질리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이번 건은 실로 흥미 있겠다. 금랑은 마른 입술을 혀를 내어 축였다. 서은도 뭔가 이상한 예감을 한 것인지 아이스크림 봉지를 뒤지기 보다는 금랑의 안색을 살피고 있다. 금랑은 서은에게 속삭였다.

“지옥 구경을 해볼래?”

서은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산 사람은 지옥을 볼 수 없다고 전에 지한(地限)이 말했었잖아? 그 다음 염라대왕인가 뭔가 하는.”

금랑이 싱긋 웃었다. 그 표정에 서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저 표정일 때는 주의해야 한다. 고기 굽는다고 베란다에 모닥불을 피워서 소방차가 출동했을 때에도, TV를 보다가 나온 송이버섯 때문에 화면을 박살냈을 때에도 금랑은 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딱 이런 경우에만 볼 수 있지. 진귀한 경험이 될 거야.”

서은이 허락하기도 전에 금랑은 열린 철문틈 사이로 서은을 끌고 들어갔다. 그리고 마당에 난 잡초를 헤치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서은도 호기심이 동하여 못이기는 척 걸었다.

“이 집에 남아 있는 신은 없어.”

서은이 중얼거렸다. 집에는 신(神)이 산다. 여러 가지 형태를 하고 있지만, 분명 집마다 신이 있다. 인간들이 모여 살아서 신이 생기는지, 신이 있어서 인간들이 그 집에 모여 살 수 있는지는 닭이 알을 낳느냐, 알에서 닭이 나오느냐의 이야기이다.

서은의 생일, 그 각성(覺性) 후에 서은의 시야에는 전에는 없던 여러 가지가 들어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가신(家神), 즉 집의 신이었다.

예를 들어 시골에는 구렁이의 모습을 빌어서 서까래 위에 살기도 하고, 집안의 오래된 장독이나 우물에 깃들어 있기도 하다. 혹은 나무에 스며들어 마당에서 집을 지켜보기도 하고, 새의 형상으로 아침에 청량한 울음소리로 식구들을 향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물론 인간들이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은, 그리고 알아챌 수도 없겠지만 집안의 신은 분명 존재한다. 집을 온통 감싸고 있는 안온한 기운 또는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지탱의 원천이다.

옛사람들은 현대의 인간들보다 자연과 훨씬 가까웠고, 집의 고마움을 알았기에 성주신, 산신, 조왕신, 천룡신, 터주신, 용왕신, 업신, 칙신, 문간대신 등을 생각해내었는지도 모른다. 현재로선 그렇게 집안에 여러 신이 자리한 집은 극히 보기 드물었다. 인간들이 ‘섬김’ 을 잊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조그마한 존재인지를 망각하고, 오만방자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서히 그들도 인간들을 저버리고 있었다. 그들만의 세상으로 가버리고 있었다. 서은이 물어도 답해주지 않는 그곳으로. 언젠가 인간은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이곳에 가신(家神)만 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텐데.’

서은의 생각을 읽고 금랑이 가볍게 응수했다.

“가신이 머물 수 없도록 만든 건 인간이지.”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아까 들어간 음침한 인간이 누워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 주변으로 비참한 몰골을 한 귀신들이 몰려 있었다. 수십 명은 될 것 같았다.

“지나치게 더러운 물속에선 자정능력을 가진 풀도 자랄 수가 없어.”

금랑이 냉정하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인지 하나같이 불에 타고, 갈가리 찢어지고, 피눈물에 얼굴을 적시고, 원한과 분노로 가득차서 누워있는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살아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저게 지옥이야?”

금랑이 검지로 서은의 입술을 살짝 누르며 속삭였다.

“조금만 기다려봐.”

서은이 가만히 쳐다보니 누워있던 남자의 몸에서 남자가 다시 나온다.

“으으으으읍!”

발버둥치는 서은을 꽉 붙들고 금랑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망령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죽잖아! 저거 영혼 아니야?’

서은의 발버둥은 빠져나온 영혼과 눈이 마주쳤을 때 끝이 났다. 남자는 사태파악을 한, 묘하게 차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랑이 “으흠.”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좀 구식이긴 하지만, 분명 고급풍인 원목으로 된 가구와 벽이 일그러지면서 한데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위 풍경이 바뀌었다. 색깔이 없었다. 흑백으로 된 주변을 멍하게 살펴보는 서은 앞으로 갑자기 거대한 검은, 창문이 없는 기차가 미친 듯한 속도로 세차게 달려갔다. 선로는 기묘한 모양으로 엉켜 있었고, 가까스로 그 빈 좁은 공간에 서 있는 형상이었다. 게다가 선로의 끝은 보이지도 않았다.

“따라가자.”

망령들은 순식간에 검붉은 기운으로 남자를 감싸 이끌고 기차가 달려온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일정 거리를 두고 조심스럽게 금랑과 함께 따라서 날기 시작했다.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가에서 옛날 6,70년대의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망령들은 그 가까이로 가지는 못했지만 남자를 강물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 남자가 멍하니 얼추 강 가까이 갔을 때 즈음이었다. 갑자기 몇몇 아주머니들이 고개를 들어 남자를, 그 다음에는 서은을 무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서은은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망령들에 의해 막혔다. 망령보다도 그 아주머니들이 더 무서웠다. 결국 망령들이 벌려놓은 틈새, 저승 아닌 저승으로, 지옥 아닌 지옥으로 그 남자와 함께 빨려들고 말았다.

“섬뜩했어. 누구야?”

“뭐로 보였어?”

금랑이 오히려 물어왔다.

“빨래하는 아주머니.”

시커먼 공간을 통과하는 와중에도 금랑은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망자(亡子)의 생을 무(無)로 돌리는 관직을 맡은 사람들이지. 어쩌면 저승사자와는 또 다른 의미로 인간들에겐 엄청 무서울 수도 있겠군.”

금랑 혼자 납득하고 끄덕거렸다.

“인간에겐 지옥이 있지. 죽어서 가는 지옥도 있지만, 유사지옥이라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지옥도 있어. 그런 지옥들이 합쳐지면 그럴듯한 지옥이 되기도 하지. 염라대왕이 있긴 하지만, 염라대왕이 판결하지 않고도 해결되는 경우도 많아.”

“도대체 무슨 얘기야?”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큰 죄를 지었다면, 죄책감으로 지옥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혹은 상대편의 고통이 죄를 지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거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이지.”

“시시비비가 가려지지 않으면.”

금랑이 서은의 말을 끊어냈다.

“고통에는 시시비비, 옳고 그름 따위 무의미해.”

그 말의 무게가 별안간 느껴져서 서은은 입을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옥이다.


본 순간,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무릎이 후들거리고 눈물이 절로 났으며 구역질이 올라와서 쓰러질 뻔한 것을 금랑이 옆에서 잡아주었다.

“휘이, 진짜 못지않은데?”

휘파람까지 불면서 여유였다. 그러한 서은에게는 머릿속에 기억되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시커멓게 생긴 괴물이 쇠망치로 망자를 때려서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벌레와 섞어 쌓아두었다가, 불로 태운다. 소중한 자식이나 남편, 처 등을 눈앞에서 불태운다. 거대하고 화려한 꽃이 망자를 끌어들여 그 속의 엄청나게 많은 가시로 찌르고 지진다. 쇠그물에 얽혀 있는 망자는 괴물이 발부터 머리까지 날카로운 칼로 얇게 썰고 있다. 개미가 눈알을 파먹고 까마귀들이 살아있는 망자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쪼아 먹는다.

남자는 서은보다 더 격한 반응이다.

“아버지! 엄마!”

고통 받고 있는 망자들 중에 부모가 있는 모양이다.

“왜 이런 지옥이 생겨난 거지?”

서은이 토하는 것을 멈추고 입가를 닦으며 넋이 빠진 것처럼 중얼거렸다.

금랑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길 봐! 다 나와 있잖아!”

이 지옥의 저편에 엄청난 크기의 족자들이 여러 개 걸려 있었다. 어떤 경위로 하여 그 집이 흉가가 되고 또 그런 불길하고 불행한 일들이 반복되었는지 설명하듯 그림으로 나와 있었다. 추측해보건데, 첫 번째는 사업실패 같았다. 부유한 사업가가 자살을 했다. 두 번째는 그 외동딸 부부였다. 사위는 처가가 그렇게 망한 것을 믿지 않고 아내에게 남은 재산의 행방을 심하게 추궁했고, 견디다 못한 그 딸이 남편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새로 부부가 이사를 왔는데 남편의 직업이 경찰이었다. 그 남편에게 체포되어 복역한 것에 원한을 품고 임신한 아내를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에 해쳤다. 남편은 미쳐서 집의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말았다. 그런 식의 불행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신입인 남자의 눈이 개미의 강한 턱에 의해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불행이 불행을 부르고, 원한이 원한을 부르고, 분노는 분노를 부르고. 그렇게 뭉쳐서 하나의 생명체가 되는 거야. 생명체의 기본 욕구가 뭔지 알아?”

금랑이 망령들에게 끌려가서 쇠망치로 맞기 직전인 서은을 향해 여유롭게 외쳤다.

“번식이야! 동료가 필요한 거지!”

서은의 눈빛이 일순 보라색으로 변하고 쇠망치가 우그러졌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붕괴음이 들렸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지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강한 이물질이 들어온 것이다.


형우는 눈을 떴다.

“다행이다. 자살... 하려고 하신 것 같은데 양이 적었나봐요.”

뭔가 알쏭달쏭한 말투다. 형우는 눈앞의 미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 옆에 까맣고 긴 머리의 여고생이 앉아 있었다.

“그럼.. 그게 전부 꿈이란 말인가? 당신들...도 나왔던 것 같은데.”

격심한 두통과 구토감이 밀려왔다. 얼른 두 손으로 두 눈을 만져 거기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걸 보고는 서은이 쿡 웃었다. 형우가 쳐다보자 얼른 다른 곳을 보는 척 했다.


무너지는 지옥과 실제 예전에 갔었던 지옥의 자취를 연결시켜놓았다. 마치 거미가 된 듯한 기분이긴 했지만, 자연스럽게 청백색 실과 같은 길이 손바닥 중앙에서 흘러나왔다. 그 망령들을 구제할 도리는 없었고, 사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자아를 잃고 오로지 동료만 원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할지라도 다시 이 집에 들러붙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서은과 금랑이 사는 집 근처에 그런 지옥을 알면서도 내버려둔다는 건 바퀴벌레 시체를 머리맡에 두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기에. 게다가 그대로 두면 하얗고 반쯤 투명한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태어나 흩어질 것과 마찬가지로, 이 흉가의 망령들 또한 동료들을 늘릴 것이다. 그래서 진짜 지옥에 맡긴 것이다. 언젠가 형벌을 다 받고, 혼을 정화하여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금랑의 속살거리는 말을 믿으려 애쓰면서.


“또 죽을 거예요? 그럼 이번엔 방해 안할게요.”

금랑이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우는 멍하니 금랑을 쳐다보았다.

‘저거 미친 거 아니야?’

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지만, 저승문턱까지 간 것만은 틀림없었고, 그 경험은 눈알만으로도 충분했다. 되도록 오래오래 살아서 저승엔 늦게늦게 가고 싶은 마음이 한 톨 먼지 없는 거울마냥 분명한 자신의 마음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더라도 그냥 살고 말지.’

똥을 피해 진흙탕으로 가는 기분이었지만 똥보다야 진흙이 나은 건 명약관화했다. 그는 끙 하고 일어서서 비틀비틀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어깨가 가볍고 등이 따뜻하다고 느꼈다. 항상 무겁고 축축한 느낌이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두 이상한 커플이 쳐다보는 것과는 별개로 집안도 뭔가 달라보였다. 창문으로 햇빛도 쏟아졌고 허연 먼지와 거미줄이 두드러져 보일 뿐이었다.

“청소하면 살만할지도…….”

그 말에 서은이

“에?”

하며 쳐다보자, 형우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이제 못할 거 뭐 있어.”

마당에 가득한 잡초들을 헤치자 메뚜기가 뛰었다.

뒤를 돌아보자 고풍스러운 주택 한 채가 서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지?”

모든 것이 달라보였던 것이다. 눈앞의 잿빛 연기가 걷힌 느낌이었다.

길고 어두운 터널과 같은 악몽을 지나서 아침의 환한 햇살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서은과 금랑은 묘한 이웃을 얻게 되었다. 서은과 금랑이 사는 아파트와 그 집은 겨우 8분 거리였다. 그가 아무 문제없이 몇 달 살면서 흉가라는 소문은 사그라졌고, 집이 컸으므로 방을 여러 개 빌려주는 것으로 생활비가 충당되었다.

또 손형우라는 이 사람은 어릴 때부터 망령에 본인이 알게 모르게 시달려왔고 또 진짜 지옥이 아닌 유사지옥이긴 하지만 거기에도 갔다 온 경험이 있었으므로, 그 경험을 살려 글을 쓰자 기묘하게도 반응이 있었다. 금랑과 비슷한 경우였는데, 환상임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평이다.

또한 금랑의 그림은 당연히 그의 상상과 무척이나 잘 맞아떨어졌으므로 소설가와 삽화가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금랑은 그의 소설에 넣을 그림을 그리다가 짜증이 나면 머리카락을 마구 엉클어뜨리며 소리쳤다.

“아아악! 그 때 그냥 두는 건데!”

서은은 더위에 지친 몸을 대자리 위에 뉘고 피식 웃었다. 선풍기 바람에 책상에 얹혀 있던 새하얀 종이들이 마구 날려서 시야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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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 프군
    작성일
    09.09.25 23:18
    No. 1

    애니로 만들어서 단편형식으로 보는것도 묘미일것 같은데 말이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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