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금랑서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09.25 05:04
최근연재일 :
2009.09.25 05:04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3,718
추천수 :
55
글자수 :
92,698

작성
09.03.21 22:27
조회
303
추천
2
글자
8쪽

금랑서은 3 - 왕따 2

DUMMY

“현서은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 미소에 금랑은 어제 먹은 떡이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서은과 어찌되었건 볼일 볼 때, 씻을 때 제외하곤 몇 달을 함께 지냈다. 그런 와중에 ‘인간이 얼마나 게을러질 수 있는지’, ‘인간 여자가 보기보다 얼마나 더러울 수 있는지’를 확실히 깨닫고 만 그였다. 특히나, 저런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 - 가식 덩어리 - 라니. 서은은 절대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었다.

‘있잖아, 착한 사람이 못된 짓을 생각 못해서 못하는 게 아니라 체질상 안 맞아서 안 하는 거거든. 그걸 가지고 생각나는 대로 다 하면서 제 실속 다 챙기는 약삭빠른 아이들은 무시한단 말이지. ’착하다고‘ 말이야. 하지만 이번엔 정말 못된 짓 좀 해야겠어. 난 이쪽도 저쪽도 마음에 안 들어. 협조 좀 해줘.’

교활함에 광기까지 도는 눈빛에 살짝 질리면서 그와 동시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양복을 입고 안경까지 쓰고 과학 선생님으로 전근 왔다.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대리인인 박동헌은 능력이 좋은 것 같다. 근데 난 도대체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 게다가 왜 이 여학생들은 자신에게 이렇게 붙는 걸까. 움직이기 힘들어. 더욱이 서은은 ‘그 가면’을 잘도 계속 쓰고 있다.

서은은 가볍게 말했다.

“아버지 사업 때문에 독일에 있다가 왔어.”

조사에 따르면 최근에 이 근방에 고급 주택가가 생겨나면서 학교에서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백하민은 부유한 측에 속했다. 교실은 완전히 가정배경에 따라 양분되어 있었다. 그리고 서은을 둘러싸고 있는 건 부잣집 영양들뿐이었다. 이 날을 위해서 가방은 물론 양말, 필기구 하나까지 최고급으로 준비했다. 한눈에 알아보라는 식으로 말이다. 혼자 앉아 있는 백하민을 흘끗 보고는 뭐라 뭐라 떠들고 있는 아이들 중 한 명에게 물었다.

“쟨 누군데?”

누가 봐도 혼자였다. 책상은 낙서로 엉망진창이었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자리 자체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 쟤? 왕따 미미야.”

“미미?”

“아, 넌 외국에서 살다 왔다 했지. 그럼 모르겠다.”

서은은 천진난만하게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자로 쌀 미, 맛 미를 써서 미미(米味), 즉 ‘밥맛’ 이란 뜻이지. 아무튼 재수 없어.”

“음. 불쌍하잖아.”

“저 애는 자기 혼자 천사인 애야. 저 애 곁에 가면 넌 순식간에 나쁜 사람 취급받을 걸.”

다른 한 명이 거칠게 말했다. 그 애가 말한 내용은 이랬다. 자기가 가난한 집의 아이의 열쇠고리를 보고 ‘특이하다.’ 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백하민이 ‘그런 식으로 상처 주는 법이 어디 있니!’ 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그 열쇠고리를 가진 아이와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었고, 그런 의도도 없이, 말 그대로의 의미였는데 순간 어색해져서 그 후 오히려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냐.”

“그러면 저쪽 애들은 왜 백하민과 안 노는데?”

보통의 메이커, 혹은 그냥 길거리에 파는 가방에 얌전한 시장에 파는 흰 양말을 접어신은 아이들이었다. 자신을 가시눈으로 몇몇이 쳐다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서은은 속으로 ‘원래 나도 저쪽이었는데.’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대답을 기다렸다.

“동정 받는 거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

목소리에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서은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상대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백하민을 괴롭히는 아이들의 핵심 두 인물 중 하나인 김현아였다. 그녀 뒤에 다른 한 명인 이신희가 서있었다.

백하민은 머리카락이 길고 검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도 보지 못했다. 허리는 구부정하게 구부러져 있었고 어깨는 움츠러져 있었다. 그것의 정확한 반대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김현아의 머리카락은 천연의 갈색이었다. 잘 다듬어져 부드럽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자세는 꼿꼿하고, 오히려 더 나아가 자신만만하게 위로 치켜드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화보의 모델과 같이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있는 태도였다. 피부도 하얗고 눈은 까맣고 고양이 눈처럼 위로 조금 치켜떠져 있었다. 서은은 그 뒤에 김현아 뒤에 살짝 가려진 이신희를 보았다. 억지로 어중간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다. 누구든지 한 번은 돌아볼 것 같은 김현아의 외모에 비해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이다. 그렇다고 외모에 무관심하지는 않은 듯, 가죽과 은으로 만들어진 팔찌를 끼고 있다. 서은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혹시 네가 신희니? 비서가 교지를 줬는데 거기서 네 글을 읽고 좋다고 생각했었어.”

당황하는 이신희의 손을 잡고 김현아의 앞쪽으로 끌어당겼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거야? 나 정말 감동받았어.”

“그렇지? 얘가 얼마나 대단한데.”

김현아가 상기된 기색으로 서은과 이신희 사이에 끼어들었다.

“너희 둘 사이가 좋은가보구나. 부럽다.”

서은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자신만만한 김현아의 웃음과 어딘가 떨떠름한 이신희의 웃음.

서은은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근데 다음 시간 과학이지? 실은 새로 온 과학 선생님은 내 사촌 오빠야.”

문이 드르륵 열렸다.

“우와.”

감탄과 기쁨의 한숨으로 교실이 가득 찼다.

‘그럴 줄 알았어.’

서은은 결코 금랑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처음 그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보았을 때 순간적으로 홀렸었다. 그만큼 매력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예전이라면 괴물이나 요괴로 몰렸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외국인의 외모에도 사람들은 적응했다. 그러므로 옅은 갈색 머리카락이나 눈 정도는 기이한 것이 아니다. 훤칠한 키에 가는 선을 가지고 있지만 실은 탄탄한 요괴의 몸이다. 그 요기(妖氣)는 색기(色氣)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이 주위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페로몬의 홍수라 해도 좋을지 모른다.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간 긴 눈은 반짝 반짝거렸고, 가는 머리카락이 어깨에 닿을 듯 했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렸다. 날렵한 콧대에 분홍빛 입술. 속이야 어쨌든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생물을 맡은 현이헌이라 한다.”

한참 후 조금 난처한 듯한 표정으로 금랑이 말했다.

“이 반도 내가 시킬 때까지 인사 안 하나?”

그제야 정신을 차려 반장이 일어날 틈도 안 주고 모두가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외친다. 여중생다운 천진한 반응이다. 서은은 자기가 연상이라는 점을 자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백하민을 빤히 쳐다보았다.


죽은 것도 아니다. 무생물인가.

자기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밖을 보려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서은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저것’ 은 자신이 언제나 해오던 것이다. 어쩌면 실제 왕따는 자신이 훨씬 오래 경험했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가족이라 믿었던 이들로부터, 실제 가족과 친척이라는 도깨비들로부터. 그 누가 자신을 받아들여줬는가.

“거기, 수업에 집중하세요.”

눈을 들자, 금랑이 눈으로만 웃고 있다.

“..죄송합니다.”

의기양양한 게 다 보인다. 어깨가 들썩거리잖아.

뒤돌아서는 금랑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다른 아이들이 아까 서은이 말한 사촌오빠라는 것에 생각이 닿았는지 전부 전염병에 걸린 마냥 조금씩 웃는다. 전학생으로 들어왔지만, 하루 만에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 것 같다. 급하게 하지는 않겠지만 느긋하게 하는 건 더욱 싫다. 그래도 하려고 마음먹었으니까, 제대로 하려고 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금랑서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금랑서은 - 에필로그 +1 09.09.25 568 2 3쪽
24 금랑서은 9 - 기로사 09.09.25 386 2 10쪽
23 금랑서은 8 - 살인자 4 +1 09.09.20 274 2 7쪽
22 금랑서은 8 - 살인자 3 09.09.20 351 2 10쪽
21 금랑서은 8 - 살인자 2 +1 09.09.06 323 4 8쪽
20 금랑서은 8 - 살인자 1 09.08.30 297 2 7쪽
19 금랑서은 7 - 돈 3 09.08.14 262 2 7쪽
18 금랑서은 7 - 돈 2 +1 09.08.09 274 2 7쪽
17 금랑서은 7 - 돈 1 +1 09.08.04 458 2 9쪽
16 금랑서은 6 - 나무 2 +2 09.07.05 552 2 9쪽
15 금랑서은 6 - 나무 1 09.06.13 287 2 7쪽
14 금랑서은 5 - 굴레 2 +1 09.05.10 469 2 10쪽
13 금랑서은 5 - 굴레 1 +1 09.05.08 501 2 7쪽
12 금랑서은 4 - 흉가 +1 09.05.07 447 2 18쪽
11 금랑서은 3 - 왕따 4 09.04.12 394 2 8쪽
10 금랑서은 3 - 왕따 3 09.03.30 368 2 11쪽
» 금랑서은 3 - 왕따 2 09.03.21 304 2 8쪽
8 금랑서은 3 - 왕따 1 09.03.14 358 2 8쪽
7 금랑서은 2 - 허주가 4 09.03.08 522 2 10쪽
6 금랑서은 2 - 허주가 3 09.02.21 468 2 9쪽
5 금랑서은 2 - 허주가 2 09.02.08 549 2 9쪽
4 금랑서은 2 - 허주가 1 09.01.30 552 2 7쪽
3 금랑서은 1 - 지옥서고 下 08.12.26 937 2 9쪽
2 금랑서은 1 - 지옥서고 上 +2 08.12.23 1,557 3 7쪽
1 금랑서은(金狼書隱) - 프롤로그 +3 08.12.23 2,261 4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