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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금랑서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09.25 05:04
최근연재일 :
2009.09.25 05:04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3,728
추천수 :
55
글자수 :
92,698

작성
09.05.08 01:36
조회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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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7쪽

금랑서은 5 - 굴레 1

DUMMY

이야기 다섯 번째. 굴레




“땡그랑!”

잔음을 남기며 노란 양은냄비가 발치에서 굴러갔다. 서은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차례로 화분도 우지끈 떨어져 깨지고, 벽돌도 떨어졌다. 아무래도 화분을 받치고 있던 것인 것 같다.

“위험하게시리!”

한 아주머니가 성을 왈칵 내며 위를 쳐다보았다. 층수를 세어보니 오층이다. 503호인 것 같다.

“부부싸움인가?”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같은 것도 들린다. 서은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아주머니가 흘깃 쳐다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어디 하루 이틀인가. 사채도 끌어다 쓴 모양이던데.. 쯧쯔."

한숨과 함께 아주머니는 장바구니를 양손으로 꽉 잡고 힘겹게 추켜들었다. 그리고 서둘러 통로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무거워서 오래 한 자리에 서 있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서은은 위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또 뭐가 떨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찝찝한 일이긴 했지만 곧 잊고 살던 서은은 며칠 지나지 않아 통로에 검은 양복을 입은 일명 ‘어깨들’이 버티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서은은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까딱 하지 않고 그들을 쓰러뜨릴 수 있었기에 무서워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서은은 허주가(虛主家) 덕분에 어릴 때부터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보통의 서민적인 생활을 해왔다. 그래서 돈 때문에, 빚 때문에 저렇게 고통 받는 건 낯선 일이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신경이 쓰였다.


“기훈아.”

값비싼 광택이 흐르는 회색 양복에 열 돈짜리 금목걸이를 끼고 담배를 씹던 기철이 불렀다. 꼭 이름이 ‘기’ 자 돌림으로 지은 형제 같다고 직속부하로 바로 넣어주신 고마우신 형님이었다. 다만 며칠 전부터 이상하게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자꾸 전화 넣고 부르고 말을 걸었다.

“예, 형님!”

“닌 진짜 대답도 한 박자 늦는다.”

“죄송합니다, 형님!”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며 고개를 흔든다. 자신은 머리가 나쁘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저 충성스럽게, 우직하게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부수라면 부수고 때리라면 때렸다.

“아직도 모르는가보네.”

씨익 웃었다. 금니가 번쩍였다.

“그럼 심부름 하나 해라. 돈 좀 받아와라. 이천오백이 누구네 개 이름이냐?”

“그렇습니다, 형님!”

기철은 기훈을 바라보았다. 덩치는 커다랗고 눈은 소의 것처럼 크고 맑다.

‘무지랭이같은 것, 세상엔 다 나름대로의 쓰임이 있는 거지.’

기훈은 오토바이를 몰고 주소를 찾아갔다. 찾는데 한참 걸렸다. 알지 못하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외곽의 골목이 오목조목한 동네의 작은 아파트였다. 분명 지은 지 이십년은 넘었을 것이다.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지키고 섰던 졸자들이 90도 각도로 허리를 굽힌다. 엉거주춤하게 인사를 받고 진땀을 흘리며 서둘러 올라갔다.

“진짜 덥네.”

언제까지고 저 인사에 익숙해지지 못한다.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는 듯 말을 흐리며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입 안으로 오백삼호, 오백삼호 중얼거리며 다다라서 옷매무새를 바로 하고 어깨를 흔들어 풀고는 입술을 꾹 다물고 미간을 좁혔다. 준비가 다 된 것 같다.

“띵똥.”

좀 기다렸다.

띵똥띵똥띵똥띵똥.

반응이 없다.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거 사람 놀리나.

“쾅!”

문을 발로 세게 찼다.

한참 뒤에 문이 열렸다.

“이 십팔 놈들이!”

소리를 크게 지르고 눈을 뜨고 쳐다보니 겨우 열 살이 될까 싶은 사내아이 하나가 눈물과 콧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갑자기 무안해졌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너, 엄마랑 아빠 어디 있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안에 있으면 들으란 셈이다. 그러나 아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흥!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자식한테 거짓말시키면 쓰나.”

큰 소리로 안을 향해 외치고는 아이를 밀치고 구둣발로 걸어 들어갔다. 근데 이거 심상치 않다. 장롱은 도둑이 든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옷가지와 이불이 구겨지고 방바닥에 흩어져 있다. 값나갈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훈은 무릎을 굽혀 아이의 양팔을 붙들고 물었다.

“니 부모 어디 갔어?”

“몰라요.”

또박또박 말하는 모양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다.

“언제 온다는데?”

“온다고 했어요.”

기훈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 십팔놈들.”

고개를 숙인 채 폐부에서 우러나온 듯한 욕설을 내뱉었다.

“우라질 놈들.”

“아니야! 엄마 아빠 온다고, 금방 온다고 했어!”

아이가 별안간 소리를 내질렀다.

기훈은 그 모습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쓸모없는 놈들아! 그걸 놓쳐!”

몇몇의 정강이를 차고 배를 주먹으로 쳤다.


“아이만 남겨놓고 도망갔단 말이야? 세상에.”

수군거리는 이웃들을 뒤로 하고 기훈은 아이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 누구도 아이를 위해 나서주지 않았다.

‘똑같아. 이 빌어먹을 놈의 세상…….’

버려지는 건 무력한 아이뿐.

그렇게 자신도 버려졌었다.

근처 짜장면집에 앉아 아이의 입가가 시커멓게 된 것을 쳐다보았다. 맛있냐고도 묻지 않았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만으로도 알만했기 때문이다. 새하얀 눈으로 눈치를 보면서도 쉬지 않고 삼킨다. 물컵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콜록거리며 마셨다.

“미쳤데요.”

아이가 말하는 걸 듣고서야 자신의 폰이 울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한참 유행하고 있는 손담비의 노래 미쳤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보세요.”

“너.. 어디냐?”

기훈은 기철의 무거운 목소리에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순간 새하얀 여자의 허벅다리가 뇌리를 스친다. 기철이 유독 마음에 들어 하던 술집 여자였다. 여자가 고집이 있었다. 돈에도 폭력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기훈은 그 여자라면 형수님으로 모실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의 눈이 그를 향한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 쇠막대를 쥐고 있는 사람은.

“아저씨, 요구르트 먹어도 되요?”

서비스로 나온 요구르트를 향해 손을 뻗으며 아이가 물었다. 기훈이 대답하지 않자,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본다. 기훈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왜 잊고 있었을까. 자기를 버리고 간 부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충격적이고 싫은 사실은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거다. 기훈은 그제야 기철이 자신을 찾는 이유를 알았다.

“저.. 말 안 해요. 형님.”

침묵이 흐른다.

“살려…….”

뚝.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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