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랑서은(金狼書隱) - 프롤로그
금랑서은(金狼書隱)
프롤로그
그가 내게
“안녕.”
하고 말했다. 눈은 가늘고 길게 찢어져 위로 살짝 솟구쳤다. 선천적인 것인지 머리카락과 눈썹, 속눈썹까지도 옅은 갈색이었다. 햇빛에 비치면 금빛 노을을 생각나게 하는 빛깔이었다. 얇은 입술의 색은 옅은 분홍이었는데 입술을 살짝 핥는 버릇이 있어서 항상 촉촉했다. 내가 바른 펄이 자글자글한 립글로스보다 오히려 생기 있고 아름다워 보였다.
양손을 추리닝 바지에 집어넣고 대충 손 갈퀴로 밀어 넘긴 듯한 어깨도 넘는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날렵한 콧대에 약간 넋을 잃고 있을 무렵, 그가 내 어깨를 손바닥으로 살짝 밀었다.
“안 탈거야?”
버스가 도착했다. 안에는 운전사 외에 아무도 없었다. 승객은 그와 나 뿐이었다. 금빛으로 빛을 투영시키는 갈색 눈동자가 날 향했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있는데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게 막차거든.”
짓궂은 웃음이 그의 얼굴에 떠올랐다. 날카로운 칼날이 반사하는 듯한 눈부신 은빛이 그의 몸 주변에서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는 진중한 동작으로 발을 한 번 굴렀다. 그러자 마치 고장 난 TV 화면처럼 버스 내부가 양옆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새까만 옷을 입은 운전사가 무서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다시 한 번 발을 굴렀다.
그리고 암흑.
온몸이 지독하게 아파왔다. 겨우 눈을 떴을 때 주위는 새하얗게만 보였다.
“정신이 드니? 서은(書隱)아.”
잠시 후 어머니가 다급히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이 보였다. 아버지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어디..”
“병원이야.”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부모님의, 혹은 언니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침대의 발치에서 ‘그’가 서은을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서은이 뚫어지게 쳐다보자, 부모님도, 뒤늦게 병실에 다급하게 뛰어 들어온 언니조차도 이상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언니가 물었다.
“너.. 뭐 보는 거야? 여기 벽밖에 아무 것도 없는데.”
“..아파.”
서은은 단 한 마디 내뱉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래, 안정해야지.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라.”
아버지의 말과 함께 서은은 혼자 남겨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서은은 숨을 훅 들이켰다. 바로 코앞에 ‘그’가 있었다. 눈동자가 서은을 태워버릴 듯이 뜨겁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저승으로부터의 귀환을 축하해. 나의 주인님.”
서은은 사고로 흐려졌던 숲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뺨을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가 그 손을 잡았다.
“내가 젊을 때 죽으면 네게 더 좋은 거 아니었어?”
“천 년만의 주인님인걸. 그리 쉽게 저승에 내어줄 순 없지.”
장난스러운 웃음으로 금랑(金狼) - 금빛 이리 - 은 가볍게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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