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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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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최근연재일 :
2021.09.10 23: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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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23,679

작성
21.03.0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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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탈출 (1)

DUMMY

시간은 하릴없이 흘렀다.


주인공이 찾아오는 태양절을 하루 앞둔 날. 바깥에는 봄비가 내렸다.


“태양절에 비라. 올해는 풍년이겠어.”


그런 말이 있는 모양이지. 겨울눈이 내리면 풍년이다, 경칩에 비가 오면 풍년이다. 생각해보면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지만.


여하튼 그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였는지, 루시는 짐짓 기쁜 기색을 드러내며 콩콩 턱을 내 팔에 찍어 댔다.


“이제 은퇴할 날이 머지 않았다구.”


은퇴. 그녀는 그 말을 입에 담으며 귀에 걸릴 듯 미소지었다. 공범 앞에서만 보일 수 있는 표정이다.


우리는 비를 맞아 윤기나게 빛나는 세상에서 가장 값싼 여신을 보며 쉬고 있었다.


루시는 맡은 바 일을 너무나도 훌륭히 해냈다. 그 짧은 시간만에 원장이 투자해놓은 채권과 주식의 정보를 모두 빼낸 것도 모자라, 금고의 비밀번호까지 알아온 것이다.


어떻게 알아냈나 했더니, 일부러 후원물품 중 값진 걸 빼돌려다 판 돈을 원장한테 갖다바치면서 금고를 열고 닫는 걸 확인했댄다.


감탄스러웠다. 양심의 가책을 내려놓은 이후로, 그녀의 성장은 두려울 정도로 빨랐으니까.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왕도를 주름잡는 대괴도 쯤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을까.


그 전에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만큼은 치유받고 싶었는지 루시는 내게 기대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원장이 위에 제출할거라면서 거래내역을 싹 다 정리시키더라··· 진짜로, 정이 뚝 떨어졌어. 미안한 마음따윈 들지도 않아.”


“고생했어요. 누나.”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흐후흐.”


그녀는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내 손에 뺨을 비벼왔다. 지난 일주일 내내 야근을 지속한 까닭인지 푸석하고 생기가 없다.


거래 업무까지 손을 대야했던 그녀의 신세를 불쌍히 여겨야 할지, 아니면 덕분에 계획이 풀렸으니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원장 버려두고 이렇게 놀아도 괜찮아요?”


오글거리는 손아귀와 돋아나는 닭살을 참으며, 나는 그녀를 가볍게 껴안았다.


적당한 압박감이 기분좋은지, 그녀는 만족스런 신음을 내며 마주 안겨오며 칭얼댔다.


“우웅, 일 다 끝내썹···. 원장 또 새로 온 아이 혼내느라 바빱···.”


새로 온 아이.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걘 또 왜 그런대요?”


당연하지만, 아가리타의 이야기였다.


그 이후로도 아가리타는 내게 했듯 사방에 금화를 뿌리고 다녔다. 그러지 말라고 여러번 경고하기도 했지만, 우리 호문쿨루스께선 미개한 인간의 말은 듣지도 않는다는 투로 모든 것에 돈을 지불했다.


도대체 어디서 난건지 모를 금화는 곧 작업반장을 비롯한 직원들의 눈에도 들어왔고, 그렇게 아가리타가 원장실로 불려간 게 얼마전이다.


그런데, 또 불려갔다고?


“나도 몰랍··· 난 걔 싫어···.”


빨간머리 아가씨는 고개를 흔들며 내 품으로 고개를 파고들었다.


이유는 모른다라···.


나는 꺼림직한 느낌을 애써 삼키며 루시에게 둥기둥기를 제공했다. 그러면서도, 뒤로는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리는 데 골몰했다.


주인공의 도착과 동시에 원장의 금고를 털고, 아가리타와 주인공을 데리고 빠져나간다. 그리고 곧바로 살라자르 공작의 저택으로 향한다.


주인공을 그의 서자로 만든 다음, 그를 따라 아카데미로 향하고, 그곳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 후원한다.


그리고 3년이 지나기 전에 세상의 멸망을 막는거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내 귀에, 루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넌 체온이 높구나. 따뜻해···.”


퍼뜩 정신을 차린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눈 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을 바라보았다.


───────────────────


[ 사이드 퀘스트 : 빨간머리 아가씨와 사기꾼 - 제 2장 ]


[ 퀘스트 설명 : 꿈 많고 다정한 아가씨를 속여넘겼습니다. 이제 그녀는 당신의 말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신뢰할테지요. 순록을 가리켜 말이라 해보십시오. 그녀는 믿을 것입니다. 팥 심은 데 콩이 난다 해보십시오. 그녀는 올해 콩 생산량이 2배가 될거라 믿을겁니다.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당신의 사람입니다! ]


[ 추가 행적 : 당신의 달콤한 말에 그녀는 당신이 이제 자신의 일부가 되었음을 느낍니다. 그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


[ 그러니, 이제 그 책임을 지십시오. ]


⨀ 보상 : 보너스 스텟 + 1


[ 금고 털이범 루시의 호감도 : 92 ]


[ 루시의 현재심리 : ‘따뜻해···.’ ]



───────────────────



‘책임을 지십시오.’ 라.


내일이면 주인공이 온다. 원작이 틀어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리고 원작에, 루시를 위한 자리는 없다.


“···누나도요. 따뜻해요.”


그녀를 조금 더 세게 끌어안은 건,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빗소리가 조금 더 크게 깔리고 단단히 끌어안은 루시의 심장박동이 전해져왔다. 분명 그녀에게도 전해질테지. 너른 가슴에 안긴 채 느껴지는 체온과, 귓바퀴를 울리는 심장소리가.


[ 루시가 안심합니다. 호감도가 1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93 ]


괜스레 그 문구에서 눈을 돌리면서, 나는 다른 것을 생각했다. 무엇이든 좋았다. 지금 이 상황에 집중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떠오른 것은 아가리타였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퍽이나 인상깊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바로 떠오르다니.


“···.”

“···.”


아가리타는··· 대체 뭘 하다가 끌려갔는지는 몰라도 별 문제 없겠지. 지난 번에도 주의만 듣고 끝났으니까.


게다가 라부아지에가 직접 맡기고 간 딸에게 손을 댈 리가 없잖아.


신경 끄자.


아무 문제 없을거야.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문제는 터지고 말았다.





.

.

.






부엌의 찬장에서 귀한 유리그릇을 모조리 쓸어담는 조리사, 그나마 돈이 될 법한 공구와 재료들을 모조리 배낭에 챙겨넣는 작업반장.


“내놔, 당장! 이 고아새끼가!”

“거기, 너! 다 봤어! 당장 이리 가져와! 엄마 말 들어야지!”


아이들을 돌봐야 할 보육사들은 비명을 질러대며 아이들이 가진 금화들을 빼앗았다.


아비규환. 그야말로 개판이었다.


그 난장판은 바깥에서 들리는 확성기 소리에 맞춰 더욱 커져만 갔다.


[ 체포영장을 가져왔다. 당장 문을 열어라! 도망칠 생각일랑 하지말고, 이 역겨운 새끼야! ]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얼핏 창문 사이로 보인다. 지휘관 뒤에 도열한 수십명의 병사들. 그들의 눈에는 하나같이 흉흉한 분노가 스며들어있다.


이 봄비 내리는 저녁에 소집되어 빡친 게 아니다. 그들의 분노는 혐오서린 원한에 가까웠다.


“치안헌병대···.”


목에 마법을 부여해 목소리를 늘린 지휘관이 증서가 찍힌 양피지를 높이 들어올리며 성문 앞에서 소리질렀다.


[ 고아원장 오트 마리엠! 네놈의 악행은 모조리 밝혀졌다! 인신매매, 아동성범죄, 살인 및 강간! 당장 문 열어 이 더러운 새끼야! ]


그러나 이 고아원은 과거 왕도 외곽을 지켰던 성채. 경비병이 성문을 걸어잠그고 도망치는 것 만으로 군대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몇몇 병사들이 몸으로 문을 뚫어보려 해보았지만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꼴이었다. 몇 번이고 소리지르던 지휘관은 더 이상 참지 못했는지 증서를 내던지며 선언했다.


[ 체포영장 불응죄를 네놈 형에 더해주마 이 개자식아! ]


봄비에 증서가 젖는 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는 말고삐를 휘어잡고 뒤에 도열한 헌병대원들에게 외쳤다.


[ 씨팔! 이 역겨운 소아성애자 새끼들, 대가리 깨질 준비나 해라! 공성추 갖고 와! ]


불평 한마디 없이,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힘차게 말을 몰아 공성추를 끌고오며 힘차게 구호를 내질렀다.


““범죄!””

““박멸!””


그에 맞춰 직원들의 눈에는 광기와 공포만이 남은 채 약탈의 열기가 더해갔다.


고아원장 오트가 기소당했다. 그것도 마투에라 주교에 의해서.


그의 아래에서 오트의 범죄를 방조한 채 일하던 그들도 무사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 그들은 하나라도 더 챙긴 채 이곳을 빠져나가려 혈안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아마 원인은, 나다.


-’오트가 살라자르와 손잡았다.’


마투에라 주교에게서 시간을 벌기 위해 던졌을 뿐인 그 거짓말이, 너무나도 잘 먹혀든 것이다.


주교는 정말로 오트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공개적인 기소를 통해서.


아마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끝내려는 모양이지. 그렇게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되면···.


“이런, 니미. 아가리타!”


아가리타가 위험하다. 분명 루시가 말하길, 원장실에 붙들린 채 혼나고 있다 했다.


오트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고아원 아이들로 해소했는데, 그렇다면 주교에게 버림받은 이 상황에 그가 아가리타를 건드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을까?


라부아지에의 이름도 무의미해진 이 상황에, 그가 아가리타를 곱게 내버려둘까?


.

.

.


“빌어먹을, 그럴 리가!”


매일같이 단련시킨 육체는 한 층의 계단을 마치 날듯이 뛰어넘었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계단을 오른 나는 원장실로 향하는 마지막 단을 걷어찼다.


잠겨버린 원장실 복도 문을 체중을 실어 걷어차며, 나는 기합을 내질렀다.


“끄와압!”


콰작—!


두터운 나무문이 마치 스티로폼처럼 부서진다. 나무조각이 흩날리고 나는 그보다 빠르게 달렸다.


몸에 부딪히는 나무조각을 떨쳐내며 나는 중얼거렸다.


일이 이렇게 되어선 안됐는데. 정말 이래선 안됐는데.


아마 주인공은 몸을 의탁하려던 고아원이 하루아침에 망한 걸 보고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 구걸을 하겠지.


하루 하루가 아까운 3년이라는 시간제한 속에서,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을 내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찾는다 한들 그를 성장시킬 방법이 내게 있나? 난 내 아들도 제대로 간수못한 낙제생인데. 살라자르 공작의 서자가 되지 않으면 아카데미에 보낼 수도 없어.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것도 불가능해.


그럼 아카데미에서 만나게 되는 공략 대상들은 모두 어떻게 되는거지? 메이드 아가씨, 검성의 따님, 황녀, 재상의 딸, 동양에서 유학온 무사, 숨어든 흡혈귀···.


주인공이 그녀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대체 3년 후 찾아올 멸망은 누가 막지?


생각하는 사이 단단히 닫힌 원장실 문이 코앞이다.


“이···! 빌어먹을!”


당장 눈 앞에 있는 등장인물부터 구해내야만 했다.


아가리타, 넌 죽어선 안돼.


네가 제일 세단 말야.


“흐랴압!”


콰지직—!!


훨씬 두껍고 곳곳이 철로 보강된 문조차 박살이 난 채 흩날렸다.


바지만 내린 채 채찍을 휘어잡은 오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소리쳤다.


“야 임마—!”


봄비가 내리는 날.


주인공이 찾아오기 하루 전.


원작이 무너졌다.


“덤—벼—라—!!”



.

.

.


작가의말

좋은 저녁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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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1) +10 21.03.07 1,311 86 11쪽
11 시아버지와 며느리 (3) +7 21.03.06 1,323 82 17쪽
10 시아버지와 며느리 (2) +11 21.03.05 1,405 87 11쪽
9 시아버지와 며느리 (1) +15 21.03.03 1,521 96 17쪽
8 아나톨리 (5) +12 21.02.28 1,518 89 16쪽
7 아나톨리 (4) +22 21.02.26 1,610 95 13쪽
6 아나톨리 (3) +17 21.02.24 1,793 102 15쪽
5 아나톨리 (2) +23 21.02.23 2,237 117 17쪽
4 아나톨리 (1) +18 21.02.20 2,758 13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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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죽기 전엔 하드디스크를 리셋하자. +22 21.02.12 2,769 1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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