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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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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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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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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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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프롤로그

DUMMY

희망은 주춧돌에 있다.


그곳이 희망의 주소지다.


나는 완성된 지상낙원을 바라보며 뿌듯하게 허리를 폈다. 저 주춧돌 하나를 실어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단단히 기둥을 지탱하는 주춧돌을 몇 번이고 발로 차봤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튼튼해. 정말 튼튼해!"


나는 다시 한 번 허리를 펴며 뒷걸음질 쳐 완성된 집을 한 눈에 담았다.


붉은 벽돌집.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이 그곳에 있었다.


튼튼한 현관 문을 밀고 들어서면, 턱 없이 일자로 펼쳐진 내부가 드러난다. 휠체어를 타고라도 어디든 드나들 수 있으리라.


벽 한구석을 메운 것은 나무판을 가로와 세로로 여러 차례 교차시켜 책을 담을 수 있게 만든 책장이다.


뭐, 지금은 땅 고르다 나온 더덕이나 인삼, 말벌집을 술로 담가 익히는 양조장이 되어버렸지만.


그 술을 보니, 집의 완성을 기념하는 게 좋겠다 싶다. 딱히 내가 마시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어디보자··· 그래. 이게 좋겠다.”


10년 전, 이 땅에 첫 삽을 떴을 때 튀어나온 더덕으로 담근 술이다.


시작하며 담근 것이니, 끝을 기념하기에 제격이지.


기분좋게 뻑뻑한 뚜껑을 열고 잔에 황금빛 액체를 따르면, 향기가 집 안을 가득 메운다. 향긋한 흙내음이 섞인 시원한 더덕내음.


“위하여!”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대고 그렇게 외치며 나는 잔을 기울였다.


건강을 위하여. 다시 한 잔.


“위하여.”


이 집의 견고함을 위하여. 다시 한 잔.


“위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집에서 살게 될 아들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


“위하여!”


그렇게 넉 잔을 기울인 나는 알딸딸한 취기를 느끼며 실소를 흘렸다.


“프흐흐··· 드디어 다 만들었네.”


그래. 완성이다. 나는 그렇게 되새기며 아무것도 없는 방바닥에 철푸덕 드러누웠다.


“하아!”


코 끝을 간질이는 술 향기. 만족스런 한숨.


문득 집의 벽이 눈에 들어온다.


황토다.


알레르기가 있어도 벽지 대신 황토를 바른 이 집에선 아무 문제 없을게다.


다리를 못움직여도, 손을 못움직여도 턱 하나 없는 실내와 손잡이 없이도 열리는 문을 쓰면 되고.


힘이 약하면 창고에 쟁여놓은 도구를 쓰면 되고······ 산골짜기라지만 먹을 것 정도야 요즘 세상에 배달 안오는 곳이 없어.


인터넷 선도 전부 연결했고, 수도도 연결했고···


계단 하나 없이 전부 경사로를 만들었으니 우리 아들도 이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프흐흐, 현아···."


그래. 아들.


애비가 못난 몸뚱아리 물려준 바람에 평생 제 발로 걷지도 못한 내 아들. 정신이라도 온전히 돌봐줘야 했는데 무심하게 다루다 말더듬이가 되버린 내 아들.


현관문턱 하나 넘기 힘들어 집 안에 틀어박혀있던,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해 날 부르던 내 아들.


환기 안되는 방에 틀어박혀 매일같이 비염이며 피부병에 시달리던 그 녀석이라도. 이제 여기선 살 수 있다.


다른 사람들도 불러오면, 서로 협력해서 살 수도 있을거고··· 어쩌면 말더듬이도 고칠 수 있을지 몰라.


괴롭힘 때문에 생긴 병이니, 사람이랑 잘 지내면 나을 수 있을거야. 산나물도 좋아하고 뭐든 잘 먹는 놈이니 여기서 밥 못먹을 걱정은 없어.


혹시나 비상상황이 생기면 옆에 묻어놓은 연료탱크에서 기름 빼쓰면 그만이고. 한겨울 난방이야 사방에 널린 게 땔감인데 걱정할 게 뭐 있나.


이제 불러들여야지. 언제까지 자취라는 핑계 대고 제 살 까먹게 할 수는 없지.


그래. 술기운에 용기도 충만한데, 지금 불러버리자!


아주 불러버리자. 그냥 당장 여기로 튀어오라고! 여기서 네 삶은 다시 시작이라고.


빌어먹을 대학이니 뭐니 다 때려치고 그냥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고 해야지.


딱 한 학기 다니고 휴학한지가 벌써 3년. 이제 이번달 끝나면 정학당할텐데. 버림 받기 전에 대학따위 걷어차고 오라고 해버려야겠다.


"그으래애. 자식은 원래 부모 곁에 있어야 되는거야. 보자······."


나는 핸드폰을 꺼내려다 여러 차례 떨어트렸다. 술 기운에 손이 떨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주소록을 뒤적였다. 술 기운에 눈에 힘이 풀렸기 때문이다.


간신히 찾은 다음에도, 통화 버튼을 한참동안이나 누르지 못했다.


"······."


그래. 여러분께 거짓말 해서 뭣하랴.


나는 아들의 얼굴을 볼 용기가 없다.


차라리 술 몇 잔 더 마시고 그냥 고주망태가 되어버렸으면 술김에라도 확 전화했을텐데, 애매하게 마신 나머지 정신이 남아있잖나.


술이 준 용기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하아···”


한숨을 내쉬고 그냥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참이었다.

술이 내 손을 낚아챘다.


한순간 힘이 풀린 손에서 스마트폰이 미끄러져 내 얼굴로 떨어진다. 아들의 주소록이 열린 채로.


“끄악!”


그리고 얼굴에 액정이 부딪히며 통화버튼이 눌려진다.


뚜르르. 뚜르르.


아픈 코를 만지는 것보다 먼저 나는 허겁지겁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하지만, 이미 전화를 걸었는데 끊어버리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겠느냔 말이다.


뚜르르. 뚜르르.


손에 땀이 흐른다. 헐떡인다. 공포스럽다.

아들이 받아도 문제고, 안받아도 문제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첫마디는 뭐라고 시작해야할까, '아들?' 아냐. 너무 딱딱해··· 그럼 '현아! 너 이새끼!'··· 아냐. 이건 너무 부담스러워. 도대체 뭐라고 해야······.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뚜르르...


뚝.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며...'





.

.

.







아들이 죽었다. 자살이다.


이유는 모른다. 너무 많다.


이 소식을 듣게 된 건 어제 저녁이었다. 전화가 한 통 왔다. 아들로부터였다.


[이 현 씨 지인 되십니까?]


그런데, 목소리가 낯선 사람이었다.


[아뇨, 현이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아, 아버님 되십니까?]


상대는 갑자기 당황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분주히 움직였다.


[..님, ...떡··· 죠?]


간간히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것이 두려워 나는 숨을 참았다.


[아, 이 현 씨 아버님?]


[듣고 있습니다. 혹시 저희 현이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그가 차라리 그 다음에 ‘아드님은 저희가 데리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럼 내가 해결할 수 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테니, 내 아들을 풀어달라 말할 수 있다.


[xx형사과 김기헌 과장입니다. 그, 다름이 아니라 아드님께서 사망하신 채 발견되셨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란 말인가?


[...자살로 추정되며···]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유품인 스마트폰에서 최근 전화하신 이력이 발견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유감입니다···]




.

.

.



그렇게 나는 아들의 유품과 화장된 유골을 받아왔다.


그리고 수령 확인서에 사인을 하면서, 수다스런 직원이 지껄이는 걸 들었다.


[일찍 연락드리려 했는데, 아드님 주소록이 텅 비어있어서요...]


그 순간 나는 뒤통수 언저리에서 뜨겁게 치솟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직원의 말이 [너는 네 아들 주소록에도 저장 못된 놈이다.] 라고 들렸다.


직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적당히 고상하게 고개를 떨구며 입꼬리를 내렸다.


즉, 다시 말해 별로 슬프지 않지만 오로지 타인의 시선에 애도를 표하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보이는 태도를 보였다.


그 고상함에 나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 또한 일평생을 그 사회적 고상함에 맞춰 살아온 고로, 소리치지 못하고 그대로 발길을 옮긴다.


유리문이 열리고 닫힌다.


햇살이 비친다.


하늘이 맑다.


거짓. 온통 거짓이고 허례허식이다.


고작해야 박스 하나에 들어갈 만큼의 유품을 남기고, 아들은 그대로 죽어버렸다.


등 뒤에서는 직원들이 내일 날씨 따위를 이야기하며 수다를 떠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을 보라.


방금 전까지 보인 그 고상한 애도는 모두 거짓이라는 걸 스스로 실토하고 있지 않은가.


이 세상의 거짓을 견딜 수 없다. ‘모든 죽음은 애도받아 마땅하다.’ 는 그 거짓.


실상은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한 젊은이의 죽음을, 마땅히 애도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그 위선적인 태도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차라리 내 아들의 죽음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내일 내리는 소나기나, 다음 주의 꽃샘추위와 같은 시시콜콜한 것 따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고백했다면 좋았으리라.


그들은 그러는 대신 거짓으로 애도하고 거짓으로 묵념했다.


내 아들의 죽음을 그대로 두는 대신, 자신들의 위선과 기만을 장식하는 트로피 쯤으로 삼았다.


아마 저들은 오늘 밤 잠자리에 들며 이렇게 생각하겠지.


[난 오늘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아주 고상하고 예의바른 태도를 보였어. 동료들도 내 모습을 보고 나에 대해 호감을 갖겠지...]


“씨발.”


나는 차 조수석에 아들의 유품을 넣고는, 나도 모르게 그 유품상자에 안전벨트를 채웠다.


차라리 트렁크에 넣었으면 될 일이다. 아니면 뒷좌석 아래에 넣었으면 될 일이다.


대신에, 나는 조수석에 그 상자를 놓고 그 위로 안전벨트를 드리웠다.


마치 그곳에 아들이 앉는 것마냥.


그리고 그걸 깨달은 시점에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대로를 따라 운전하며, 나는 아들의 이름을 몇 번이고 되새겼다.


“현. 이 현.”


그러면 대답이라도 돌아올 것마냥 나는 계속해서 이름을 불렀다.


“현아.”


과속방지턱에 맞춰 달그락거리는 유골함이 대답을 대신할 뿐이다.


아주 좆같을 정도로 엿같다.


뚜르르. 뚜르르.


때마침 전화가 온다. 슬쩍 곁눈질하니, 거래처다.


시발, 좆까라 그래.


전화 받아봤자 뻔하지.


이전 계약에 대해 말하겠지.


기술 이전에 대해서도 말할거고.


계약금 재조정에 대해서도 지껄일테다.


그럼 난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어렵사리 말을 꺼낼거고, 그때가 되면 전화기 너머에선 익숙한 침묵이 들려올테지.


그리고 5초 정도 지난 다음, 당황한 목소리로 아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는 그 거짓말이 술술 튀어나올게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묻겠지.


더는 견딜 수 없다.


이 거짓된 애도와 고상한 헛짓거리들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어.


“니미 씨팔 엿이나 먹으라지.”


사업은 접는다.


팔아버려야지. 안그래도 증권사에서 IPO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그냥 팔아버려야지.


기왕 정해버린 거, 나는 곧장 창업 동기였던 부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옘병할 이 배양육 회사 하나 키워보겠다고 안해본 짓이 없었다.


논문도 사고팔고, 해외의 대체육 사업장도 방문해보고, 길거리에서 배양육 시식 행사까지 벌였지.


뚜르르. 뚜르르.


이젠 나름 시장 선점 효과까지 누렸고, 성장할 일만 남았는데 IPO를 진행한다니. 미쳤냐는 소리부터 나올 게 뻔하다.


하지만 친구야. 난 이제 그런 거 신경 안쓸랜다.


[아 씨, 오늘 출근도 안한 새끼가 전화하고 지랄이야! 무슨 일인데!]


“우리 IPO 한다.”


[...뭐? 야 잠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지금 니 목에 칼 겨누고 협박하고 있니? 지금 이 타이밍에 IPO를 대체 왜···!]


“그냥 그렇게 알아둬.”


[ 야! 끊지 마봐 야! 잠깐만! 얌마! 사장님아! ]


나는 전화를 끊었다.


목소리가 사라지고 트랜스미션과 엔진이 웅웅대는 소리, 그리고 달그락거리는 유골함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그 기묘한 합주 속에서 나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싶었다.


-'집으로 갑시다.'


차의 기름을 확인한 나는 망설임 없이 강원도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현아. 집에 가자.”


고상한 거짓만 가득찬 도시 따위, 이젠 보기도 싫었다.


이 세상은 내 아들의 죽음을 망치는 살모사들로 가득찼다.


차라리 내 품에 묻어놓아야겠다.


아무도 모르게, 네가 죽었다는 것도 모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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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탈출 (1) +10 21.03.07 1,311 8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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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아버지와 며느리 (2) +11 21.03.05 1,405 87 11쪽
9 시아버지와 며느리 (1) +15 21.03.03 1,522 96 17쪽
8 아나톨리 (5) +12 21.02.28 1,518 89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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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나톨리 (1) +18 21.02.20 2,758 13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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