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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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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최근연재일 :
2021.09.10 23:3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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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679

작성
21.03.03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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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시아버지와 며느리 (1)

DUMMY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미성숙으로부터의 탈출. 다시말해 계몽이라는 가슴벅찬 주제를 함축한 세기의 명언이다.


그 뜻은, ‘감히 알려고 들어라.’


그 유명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784년 프로이센의 대표적인 계몽잡지 <월간 베를린>에 ‘계몽이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는데, 그곳에서 사용된 문구다.


인간 이성의 열렬한 옹호자였던 임마누엘 칸트가 조건을 가지지 않는 도덕법칙, 다시 말해 정언명령을 주장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밀가루 뿌린 가발을 쓰고 다닌 것이 정언명령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당시 그의 이성이 내린 정언명령이 무엇인지는 그의 저서에 명백히 서술되어 있다.


‘거짓말은 하면 안된다.’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이미 200년 전 무덤에 묻힌 철학가에게 사죄의 말씀을 전한다.


나는 오늘, 거짓말쟁이가 될 것이니까.


“방금, 뭐라고 했지?”


[ 주교가 당신을 크게 경계합니다! 현재 호감도 : 0 ]


마투에라 주교는 방금까지 헤실거리던 게 가면이라도 되는 양 얼음처럼 냉정해져있었다.


그 차이가 오싹하다. 하지만 익숙하다.


한껏 풀어진 채 술자리에서 만나던 어르신들이, 남들 앞에선 특유의 아우라를 풍기는 꼴을 여러번 봤으니까.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건 처음이지만, 견딜만한 중압감이다.


“흐응.”


나는 일부러 대답을 미룬 채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주교를 흘겨보고는, 벽쪽으로 옮겨져있는 좋은 의자 하나를 끌고와 걸터앉았다.


너와 나 사이에 우열 관계 따위는 없다는 제스쳐였다.


결국 사기꾼에게 중요한 건, 주도권을 쥐는 것이니까.


“뭐, 나이가 있으시니. 이해해드리겠습니다. 못들으셨을 수도 있죠.”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와인이 놓인 테이블에 양 발을 올렸다. 온종일 걷고 와서 그런가, 신발이 먼지 투성이다.


먼지를 털면서, 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는 듯한 어투로 다시 거짓말을 내뱉는다.


“당신의 총애하는 친구 오트 원장이, 살라자르 공작에게 붙었단 말입니다.”


거짓말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시선을 피하지 않는거다.


초보자들은 심리적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애꿎은 하늘을 본다던가, 여상스레 허공을 바라보곤 하는데. 단호히 말하지만, 그건 틀렸다.


벗겨먹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물어라.


“들으셨습니까?”


빌어먹을. 날 물에 던져넣으면, 입만 동동 뜰거야.


꿈틀, 그의 눈가가 비틀리며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안그래도 고혈압이라 핏기도는 얼굴이, 곧 터질 듯 붉다.


[ 주교가 분노합니다. 호감도가 3 내립니다. 현재 호감도 : -3 ]


뭐야, 호감도라는 거 음수까지 내려가는거였나. 좋은 걸 알았군.


···그나저나 저러다가 뒷목잡고 쓰러지면 곤란한데.


“···.”


주교는 분노로 얼굴을 붉힌 채 의자 팔걸이를 움켜쥘 뿐,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뭐, 기대도 안했다만.


뒤집어져있는 와인잔을 바로세우고 그 속에 포도주를 따른다. 뻔뻔하게. 이 분위기가 중요하지.


“이제 증거를 물으시겠죠.”


“증거가··· 으흠!”


말을 가로챈다. 불쾌한 듯 헛기침하는 주교를 곁눈질하며, 나는 잔을 기울였다.


꿀꺽, 포도주가 목을 넘어간다. 차가운 불을 삼킨 듯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자, 향긋한 꽃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하아아···.”


독특한 사과꽃향기에 거짓과 의심을 섞는다. 흔든다. 그리고 대접한다.


먹혀라. 제발.


“오트의 개인계좌가··· 제법 흥미롭더군요.”


그리고 슬쩍 바라본다. 자신의 믿음을 흔들고 오트를 의심하게 하는 첫 거짓말이다.


주교의 눈빛이 흔들리고, 그가 눈을 감는다.


성공인가?


“···킥.”


그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가고, 살진 눈꺼풀에 덮여 얇은 눈동자로 조소어린 빛이 지나간다.


“헛소리.”


냉담한 비웃음이었다.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나는 짐짓 불쾌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응수하며 시간을 번다.


"···."


빌어먹을, 그래. 인정해야겠다. 여기 와서 속여먹은 게 순진한 아가씨 아니면 고아원 꼬맹이들 뿐이라. 상대를 좀 쉽게 봤어.


하지만 그는 나를 경계하고 있다. 내가 단순한 허풍쟁이 고아가 아니라, 정말 높으신 분의 수행원일 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 속에 남아있다.


그걸 이용해먹어야지. 내 손에 들린 패 하나를 버린다. ‘오트의 개인 계좌’ 라는 패를. 이미 쓸모없는 패다.


마차 안에서, 루시 양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 ······아마, 원장의 개인 계좌는 주교도 알지 못할거야. 그 내역은 내 선에서 정리하고 끝내지. 누구한테도 보낸 적 없거든. ]


루시 양. 틀렸어요. 오트의 계좌는 모두 꿰고 있는 것 같아요.


제기랄, 이번에는 조금 위험한 도박을 해야겠군.


나는 입에 침도 바르지 않은 채, 무엇보다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내역이야 주교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겠지만, 최근들어 너무 얌전하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 없습니까? 교단의 상납금 경쟁을 생각해보면, 후원자가 누구보다 필요한 사람이 바로 그라는 걸 알텐데요.”


여러분께만 알려드리는거지만, 난 교단에 상납금 경쟁이 어느정도인지는 커녕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른다.


“···오트가 무얼 받았지?”


뭐, 그렇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상납금 없이 라인을 타는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술자리 스폰서라도 되어야 납품계약을 딸 수 있는 법이거늘.


일반적인 고아가 내뱉을 수 없는 내용. 그는 이제 내가 나 살자고 거짓말하는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리라.


사기를 칠 때는, 누가 이득을 보는지 철저히 숨길 필요가 있다.


“아주 귀한 것이라고만 말해두겠습니다··· 주교님.”


나는 그렇게 말하며 원장실 한구석에 놓여있는 큼직한 그림판을 가리켰다.


그 그림 뒤에는, 원장의 금고가 숨겨져있다.


그건 분명 주교와 원장만이 아는 사실, 한낱 고아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낱 고아가 아니란 말이다. 이 빌어먹을 NPC들아.


[ ······끔찍한 광경이었다. 바닥에 널부러진 명화. 그리고 분명 그걸로 가려놓았을 금고는 살짝 열린 채 황금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


게임 속에서, 원장의 금고는 분명 저 그림 뒤에 있었다.


주교의 눈빛이 변하며 다시 한번 조심스러운 기색을 띈다. 내가 진짜배기라는 걸 알아차린 듯, 입가를 꿈틀댔다.


“하! 그래, 좋아. 누가 보냈지? 누가 나와 오트를 이간질하라고 시켰어?”


“아주 높은 분이죠. 주교님, 그나저나 이제부터 질문은 단 세 가지만 받겠습니다. 라부아지에가 오트를 오래 붙잡아둘 수 있을 것 같지가 않군요.”


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암시를 보내며 밑작업을 시작한다.


시간을 핑계로 하며 주교의 발언권을 제한하고, 동시에 라부아지에의 방문조차 나의 설계였다는 점을 은근슬쩍 흘린다.


물론, 모두 순수한 거짓말이었다.


난 라부아지에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루시가 말하기론 최고의 연금술사라던데.


하지만 그가 현자의 돌이라도 만든 게 아닌 이상, 난 관심 없다.


“하··· 좋아.”


이번에 섞어놓은 거짓말에 분위기가 일렁인다. 드디어 내가 타넣은 거짓말이, 신경독처럼 주교의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묻는다. 누가. 보냈나.”


“주교님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교님이 필요한 분이지요. 이 고아원으로 교단 전체가 무너질 리야 없지만, 주교님은 확실히 무너질테니까요. 그리고 절 보내신 분께선··· 그걸 원치 않는다고만 말해두겠습니다.”


“···.”


시계 초침이 흘러가고, 주교는 침묵을 지켰다.


주교는 그가 기르는 개가, 사실 늑대일 수 있다는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리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아니지, 능력있는 내 부하를 내 손으로 처리하게 하려는 거짓말인지 어떻게 알아?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너무 뻔하지 않나?’


마투에라는 오트에게 차기 주교자리를 주겠다 했지만, 실상은 그런 식으로 말만 해놓고 자신의 세력에 포섭시켜놓은 전도유망한 사제들이 기백명에 달했다.


자신이 오트였다면, 그를 배신하고 다른 주교의 아래에서 성장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의심이 들자 눈 앞의 꼴리는 젊은이가 전한 경고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바로 그때, 설득당하는 자신의 뒷목을 잡아끄는 목소리가 머리 속에 울렸다.


-잠깐 기다려! 날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가 필요한 높은 분이라고? 내가 알기로 그런 사람 따윈 없어!


-게다가 굳이 사람을 보내놓고 정체를 숨기는 것도 이상하지······.


-잠깐! 정체를 밝혔다간 오히려 내 의심을 살 수 있는 자라면 어떨까······.


-잠깐, 그렇다면 내 적 중에 하나라는 소리인데······


-아니, 그것도 아냐. 잠깐······


그의 머리속에서 또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에 반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나 미궁에 빠진 듯 해답은 보이지 않고, 주교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진 채 허우적거렸다.


마투에라 주교는, 자신만이 아는 어떤 사실과 아나톨리가 던진 거짓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심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부드러운 밀침이다. 마치 눈 한송이가 구르고 굴러 눈사태가 되듯이, 작지만 치명적인 충동질.


“그렇게 머리굴리지 마십시오. 이번 사태만 해결되면, 그분께서 직접 찾으실테니.”


-좋아! 그렇게 하자고! 빌어먹을, 한번 뒤적여보면 나오겠지! 시간 문제일 뿐이야! 오트는 내 손 안에 있고, 뭘 하든 알 수 있지. 사실인지 확인하고 행동해도 늦지 않아!


마침내 마음을 굳힌 주교는 숨을 몰아쉬며 눈을 크게 떴다.


아름다운 청년이 다리를 꼰 채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 길고 곧은 다리와 군살 하나 없는 단단한 팔뚝, 넓고 열기있는 가슴···


열 여덟. 인생의 가장 뻣뻣하고 하얀 양피지같은 시기여.


마투에라는 다시 가슴에 타오르려 하는 불씨를 밟아끄며 짐짓 목소리를 깔았다.


“···빌어먹을, 기록에 따르면 네 살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을텐데. 어제까진 열 여덟의 몸으로 날 유혹하더니, 오늘은 내게 경고하는군. 네놈은 대체 누구지?”


네 살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니, 그런 인적사항까지 뒤져본건가. 정말 나에 대한 모든 걸 조사하려 든 모양이군.


그 사실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걸 참으며, 나는 짐짓 나른하게 얼굴을 쓸어올리며 긴 앞머리를 뒤로 넘겼다.


주교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그래, 네놈 취향이겠지.


알아. 알고 한거야.


“제가 떨어졌다던 그 사고··· 그게 그냥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만 말씀드리죠.”


“···그때 숨어들었군.”


이 몸에 들어오기 전 있었던 사고를 거론했을 뿐인데도 주교는 제 멋대로 내 말을 합리화했다.


내가 원래 아나톨리를 죽이고 아나톨리인 양 숨어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 게 가능했으면 난 배양육 회사 사장이 아니라 CIA 스파이를 했겠지.


“···하아, 이제 됐어. 그래서, 뭐하는 놈이냐고? 난 아직 질문 두 개밖에 안했다는 걸 알아둬.”


주교의 질문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질문의 범위가 나에게 좁혀졌다. 더 이상 할 질문이 없는 것이다.


만약 계속해서 내 뒤에 있을 누군가에 대해 질문했다면, 거짓말이 바닥났을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고비는 넘겼으니, 이제 남은 건 나에 대한 쓸데없는 관심을 모두 쳐내는 것뿐이다.


“저는···.”


아직 잔에 남은 포도주 향을 음미하며, 나는 있는 한껏 분위기를 잡았다.


“그분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고···.”


“그러니까 도대체 그분이 누구···.”


마지막으로 깔끔히 비워낸 잔 입구로 주교의 입을 막으며, 나는 살포시 웃었다. 이걸로 질문은 끝이군.


“···필요하다면 신원도 말소된 채로 누명쓰고 깔끔하게 죽어주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곧 알게 되시겠죠. 제 주인을 무는 개만 깔끔히 처리하신다면.”


주교는 잔에 남은 향기에 취한 듯 멍한 눈으로 입가를 가로막은 잔도 잊은 채 웅얼거렸다.


“음믑믑······.”


“질문은 세개까지.”


[ 주교가 감명받습니다. 호감도가 10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7 ]


아니, 거기서 호감도가 왜 오르는데.




.

.

.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눈 앞에 떠오른 반투명한 창을 바라보았다.


──────────────────────


[ 완료 퀘스트 : 주교의 관심 ]


[ 사이드 퀘스트 : 주교의 관심 - <완료> ]


[ 퀘스트 설명 : 주교가 당신에게 관심을 표하고 있습니다. 선택하십시오. 주교의 애인이 되던가, 운명을 개척하던가. ]


[ 추가 행적 : 당신은 주교를 속였고, 스스로를 위장시켰으며, 서스름 없이 거짓을 꾸며냈습니다. 주교는 당신을 만만찮은 상대로 봅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주교를 깔아뭉갠 채 허리를 흔드는 운명을 벗어났군요···. ]


⨀ 보상 : 보너스 스텟 + 1


[ 마투에라 주교의 호감도 : 7 ]


[ 마투에라 주교의 현재심리 : 확인하려면 호감도를 최소 ‘10’ 으로 올리십시오. ]


──────────────────────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완료된 퀘스트, 뚝 떨어진 호감도. 가슴을 뛰게 하는 추가행적.


오늘은 당당히 걸어도 되는 날이다.


복도 공동을 울리는 발소리가 만족스럽게 울려퍼지고, 내 뒤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루시 양의 발걸음 소리가 따라온다.


“성공이었어요. 이제 주교는 찾아오지 않을겁니다.”


어디까지나 당분간 이지만, 그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태양절날 주인공은 고아원으로 찾아올거고, 그러면 난 주인공을 데리고 이 역겨운 고아원에서 탈출한다.


계획이 잘 풀려가는 만족감을 느끼면서, 나는 미소지었다.


그런 날 바라보던 루시 양은 조금 속도를 높여 내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도대체 어떻게 한거야?”


어떻게라.


개인계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곧바로 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파고들지 않은 시점에서 결론은 정해져있었다.


그래선 안됐어. 바로 내 입을 꿰매버렸어야지.


이래서 비밀을 부관과 공유하지 말라는거야. 본인도 믿지 못할 사람한테 왜 그렇게 많은 걸 알려줬는지.


“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가, 꾹 다물었다.


이걸 루시한테 알려줘도 괜찮을까.


주교가 오트를 의심하게 만들었고, 아마 당분간 오트의 뒤를 캐고 행적을 뒤적거리느라 감시의 눈이 붙을거라는 걸?


그녀는 어디까지나 원장의 비서고, 오트에게 받을 것이 있다는 판단 하에 이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나는 미덥잖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 금고 털이범 루시가 궁금해합니다. 현재 호감도 : 89 ]


···젠장, 의심할 사람이 따로 있지. 직업도 금고 털이범으로 바꾼 아가씨를 의심하다니.


그렇게 구워삶아놓고는 아직까지도 이렇게 밍기적대고 있나.


나는 담담히 사실을 말했다. 그녀에겐 그래도 될테니까.


“오트가 살라자르 공작과 손을 잡았다고 거짓말했습니다.”


“···무, 뭐?”


“이제 시간이 없어요. 주교가 거짓말을 알아차리기 전에, 저희 계획을 앞당겨야합니다.”


갑작스레 주어진 시간제한. 주교라는 거물을 끌여들여놓고 미소짓는 파트너.


만약 내가 루시 양이었다면, 지금 이 말을 들음과 동시에 뺨을 후려갈기고 내 살 길을 찾아 떠났으리라.


“···내 역할이 막중하네.”


그러는 대신, 그녀는 두 손을 맞잡으며 마주 미소지었다.


“맡겨 줘.”


그래. 이 광경을 보려 쌓은 호감도가 아니었던가. 이 광경을 보려 무역 레이스를 이용하고, 길거리에서 꽃반지를 팔고,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녀는 이미 내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문고리를 잡았다.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러······?”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연 내 눈앞에, 밀밭에 햇살을 엎지른 듯 빛나는 연한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불현듯 게임 속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 ······이상하다. 이토록 완벽한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


[ 아침 이슬인가 하면 지기 직전 농염히 익은 꽃 같기도 하고 ]


[ 원석 그 자체로 아름다운 금인가 하면 세공된 다이아몬드 같기도 했다······. ]


너무도 가느다란 밀밭색 머리카락, 살짝 말린 곱슬머리는 한쪽 어깨로 넘겨 가슴께까지 정돈되어 내려온다.


상처도 흐트러짐도 없이 관리된 머리카락이 활 모양으로 정돈된 짙은 눈썹과 장밋빛 뺨을 수줍게 가리고 있었다.


나무에서 갓 따낸 사과빛의 입술과 꿰뚫는 듯 오묘한 오팔색 빛을 뿜어내는 갈빛 눈동자.


“아, 네가 새로왔다는 아가리타구나!”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는 루시를 무시하면서, 그녀는 나를 또렷이 바라보았다.


꿰뚫리는 듯한 감각.


라부아지에의 딸. 빌어먹을, 라부아지에! 그 이름을 왜 이제야 떠올렸지?


아가리타 라부아지에.


“···.”


아들이 만든 미연시의, 첫 공략 대상이었다.



.

.

.


작가의말

10화만에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요.


지난 10화동안 주인공의 풍둔아가리술을 보시면서 피곤하셨을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이 생일인지라, 작년 생일날 담근 벌꿀술을 땄습니다. 매 생일마다 벌꿀술을 따고, 또 내년에 마실 술을 담그는 것이 저희 집의 전통이죠.


전 물과 꿀을 1:3 정도로 혼합한 머스크를 선호하는데, 한 달정도 발효시킨 다음 병입하여 2차 숙성하면 1년 후 가장 맛있는 술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주일만 발효시키고 냉장고에 넣어놓으면, 탄산기가 돌면서 달고 가벼운 샴페인 스타일의 벌꿀술이 만들어집니다.


어째선지 횡설수설, 글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 같군ㅇ요.


죄송합니다. 술기운에 기대어 쓴 글이라 구성에 조금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닿ㅎㅎ


그치만 독자쨩... 이렇게라도 올리지 않으면 지난 화 전부 다 까먹어버리는걸!


생일인데 연차내고 술 취한 채 술주정 부리는 제 모습이 참 사랑스럽습니다.


사랑합니다. 알러뷰 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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