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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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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최근연재일 :
2021.09.1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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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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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아나톨리 (5)

DUMMY

피로. 몸 혹은 정신이 지치고 힘든 상태.


고아원장 오트는 피로함을 느꼈다.


이제 40에 들어선 나이를 체감하며 목을 돌리니, 마디마디에서 시원한 두둑 소리가 들려온다.


일정에도 없던 미사를 집정하느라 그런 것도 있지만, 갑작스레 방문한 마투에라 주교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더욱 힘겨웠다.


“후우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투에라 주교는 갑작스레 찾아온 것도 모자라 이젠 응접실에 앉아 아나톨리를 데려오라며 포도주를 축내고 있다.


오늘은 그 저명한 연금술사 라부아지에가 자신의 딸을 맡기러 오기로 했는데. 그 댓가로 받을 돈도 정산해야하건만.


아직까지 그의 비서는 돌아오지 않았고, 그녀가 데려간 아나톨리도 마찬가지였다.


라부아지에와 주교가 마주쳤다가 주교가 오트의 비밀사업을 눈치챈다면, 그것도 걱정이었다.


“되는 게 없군. 오트. 되는 게 없어.”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눈으로 거울을 노려본 오트는, 문득 아나톨리가 떠올랐다.


“···이상한 놈. 머리를 다치더니 사람이 됐어.”


사고 이후 유심히 지켜본 바, 오트는 아나톨리가 사고를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두들겨 패던 손버릇은 어디 갔는지 아침마다 복도가 떠나가라 웃어재끼며 술래잡기를 하질 않나, 일거리를 맡기면 뺀질거리며 도망치던 게 이젠 다른 아이들 몫까지 해내질 않나.


심심하면 물건을 훔치던 그 못된 버릇도 고쳐졌다. 매일같이 포도주 개수가 한 두 개씩 비었는데, 이젠 맞아 떨어진다.


“주님의 은총이시라.”


그 신성한 포도주에 취해 술주정 부리다 옥상에서 떨어졌으니, 이것 또한 주님의 은총이라 봐야할테지.


여전히 기억은 돌아오지 않은 채였지만, 지금으로선 차라리 기억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아, 주님. 제발 그놈 기억이 돌아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적어도 팔아넘긴 이후에 돌아오도록···.”


오트는, 아나톨리를 마투에라 주교에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남아있는 것들 중 가장 값비싼 놈인데, 미쳤다고 마투에라에게 진상하겠는가.


“어림도 없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오트는 아나톨리를 대신해 주교의 ‘모임’ 에 보낼 아이들을 고르려 고아원 명부를 뒤적였다.


오트는 아무도 찾지 않고,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들로 정성들여 선정했다. 그의 머리 속 주판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톱니바퀴가 돌아간 끝에, 그는 네 명의 아이들을 골라냈다.


마투에라에게는 얼마 전 거리에서 들여온 부랑아 한 놈.

깡마른 여자아이를 좋아하는 명의주교에게는 일곱 살의 시트리.

앞 뒤로 동시에 범하길 좋아하는 본당 주임, 부주임 신부에게는 열한 살의 미리엘.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찍 맞기 좋게 등판이 넓은 열 다섯의 아르고.


이제 그의 비서가 돌아오면, 아이들을 단장시키고 인적사항을 조작해, 평민 가정에게 입양보냈다는 가짜문서를 만들면 된다.


만에 하나 조사가 들어온다 해도, 이 넓은 왕도에서 평민이 사라지는 이유 쯤이야 넘쳐난다고 둘러대면 될 일이다.


그리고 그의 비서는 유능했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처녀를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험악한 조사관이 들이닥친다 해도, 그녀가 빨간머리를 흔들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면 그대로 의심을 접고 돌아섰다.


바다 건너 깡촌에서 넘어온 것 치고는···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그의 비서는 믿음직했다.


순진하지만 야심찬 아가씨.


사기꾼이 가장 좋아하는 인종이지.


“쉽기도 하지, 프흐흐···.”


루시를 생각하자 오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모든 것이 마음대로 안돌아가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그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장기말이었다.


루시. 그녀는 알고 있을까?


그녀가 인생역전을 노리고 드나드는 그 도박장. 표면적으로는 정체불명의 거상이 소유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 오트의 것이라는 사실을.


그녀가 처음으로 고아를 모임에 팔아넘기고 힘겨워하던 날, 오트는 특별한 상여금을 쥐어주며 은근히 바람을 넣었다.


[ 신께서 자네를 용서할 지, 궁금하지 않나? 내기 하나 하지. 이 돈으로 도박을 한 번 해보게. 돈을 딴다면, 신께서 용서하신 거라고 생각하게. 마침 3번 거리에 있는 도박장에 새 기계가 들어왔다던데···. ]


미리 입을 맞춘 도박장에선 그녀가 손대는 것마다 대박을 터트려준다.


승리의 짜릿함과 용서받았다는 안도감··· 그렇게 그녀는 도박 중독자가 되었다.


이제 푼돈보다 조금 나은 월급을 주면서도, 그 월급은 다시 고스란히 오트의 주머니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행위.


아니야, 아냐. 간으로 끝낼 수는 없지.


오트는 비릿하게 웃었다.


만약 그 모든 악행들이 들킨다 해도 그녀는 공범으로 오트의 죄를 함께 짊어질 것이다.


죄는 공유하고, 수익은 독점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 그녀는 오트의 완벽한 꼭두각시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오트의 자랑이었다. 그의 솜씨를 고스란히 드러내보이는, 하나의 예술품······.


── 오트! 어디있나! 어디있어!


소음에 가까운 주교의 목소리에 오트는 다급히 돌아서 문을 열었다.


“여기 있습니다 주교님, 정말 죄송스럽게도 아나톨리는 아직···.”




.

.

.





그리고 그의 예술품은 오트 자신도 모르는 사이 도난당하고 있었다.


“···주교? 마투에라 주교 말하는거야, 아나톨리? 지금 그 인간이 너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그, 미친 남색가?”


나는 긍정의 의미를 담아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씬 12. 고통스런 고뇌에 찬 표정으로 눈물지을 듯 우울하게 바닥을 내려보는 연기. 스타트.


[ 루시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현재 호감도 : 88 ]


“오, 맙소사···.”


그녀는 아무 의심도 없이 나를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나도 그녀를 마주 끌어안았고, 그대로 그녀 마음에 애틋함이 싹틀 때까지 온기를 주었다.


그리고, 움트는 소리가 들려왔다.


[ 루시의 호감도가 1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89 (50이 넘어가면 결혼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아나톨리. 그게 사실이라면, 나한테 생각이 있어.”


“주교한테서 벗어날 방법이요?”


“잘 들어. 넌 고아원에 인적사항이 모두 보관되어 있어. 그리고 나는, 입양가는 아이들의 인적사항을 많이··· 다루어봤지.”


그래요. 루시 양. 모임에 쓰인 아이들을 모두 당신이 합법적으로 처리했을테니 많이 다루어보기야 하셨겠죠.


그런데 그걸 왜 지금 이 타이밍에, 내게 말씀하시는지?


“그 말씀은···?”


루시는 제 머리만큼이나 붉고 선명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다가, 머리 속으로 계산이 끝난 듯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널 죽여줄 수 있어.”


제각각의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녀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가, 과연 죽음이란 세상의 모든 문제로부터의 탈출구라는 결론을 내리고 죽음을 받아들이··· 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절 서류상으로 죽일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난 서류상에서라면 지금 당장 널 병원에 입원시킨 다음, 사망을 선고할 수 있어. 그 다음 네가 말한 ‘원숭이 손’ 한테 새 인적사항을 만들면···.”


나는 그녀를 만류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간 원작의 흐름이 어떻게 깨질지 모르는 법이다···.


원숭이 손이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건 둘째치고라도 나는, 주인공을 만나야한단 말이다.


이렇게 고아원에서 죽은 사람이 될 순 없다.


“그럴 순 없어요. 저희 계획은 어디까지나 원장의 금고를 터는거고, 그러려면 전 선생님과 함께 고아원 안에 머물러야 해요. 그리고 뭣보다, 원숭이 손을 고용하는 데는 큰 돈이 들어요. 무역 레이스로 번 돈으로도 힘들겁니다.”


“그렇지만, 아나톨리. 마투에라 주교는 위험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루시가 당신을 걱정합니다. 현재 호감도 : 89 ]


“···어쩌면, 정말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 몰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너한테 정말, 정말 끔찍한 일이 일어날거야.”


[ 루시가 슬퍼합니다. 현재 호감도 : 89 ]


그녀는 잘근대던 아랫입술에서 피가 나는 것도 잊은 채 불안하게 나를 보며 속삭였다.


“···어쩌면, 네 인적사항을 내가 정리하게 될지도 몰라.”


그녀가 날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만다.


사람은 본디 자신이 행하는 바를 남들도 행하기를 기대하기에, 나 또한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내게 사기를 치고 있다고 무의식중에 생각한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난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그래. 내가 정말로 ‘모임’ 에 끌려갈 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될 생각은 없다.


난 주인공을 만나서, 그를 도와서, 이 세상을 구해서, 살아서, 내 아들을 오래도록 기억할거다.


마투에라 주교?


게임에선 코빼기도 안비춘 잡스런 엑스트라 주제에 어딜 유저인 내게 깝친단 말이냐.


나는 루시와 눈을 맞추며 힘을 담아 그녀의 이름을 발음했다.


“루시.”


설득은 바텐더의 마법과 다를 바 없다.


눈을 감고 심호흡 한 번에 뜨되 눈을 내리깔고 불안하게 두 번 휘젓는다.


마티니를 젓듯이 공기를 휘젓고 분위기를 섞고 감정의 맛을 낸다.


그리고 강렬하게 눈을 마주쳐라.


“···절 믿나요?”


이미 아는 대답을 들어라.


감정 풍부한 아가씨가 억지로 입을 열게 하고, 기어코 눈물을 터트리게 해라.


마음을 흔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내 곁만이, 내 의견만이 믿음직하게 만들어라.


내 말에 고개 끄덕이게 해라.


“흡, 흐읍. 응···.”


“제게 생각이 있어요. 하지만, 약간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리고 뻔뻔하게 손수건을 내밀어라.


“흐윽, 흑··· 뭐, 뭐, *훌쩍* 든지··· 말만, 해···.”


[ 루시가 당신에게 의지합니다. 현재 호감도 : 89 ]


그녀는, 이미 설득당해있다······.




.

.

.




“이번 것은 특히나 마음에 드실겁니다. 사과나무의 꽃향을 따다넣은 13년산. 그리고 아시다시피 사과나무의 꽃말은 찬란한 성공이죠···.”


오래도록 숙성되어 정결해진 향이 잔에 가득찬다.


주교는 살지고 기름기 가득한 손가락으로 잔허리를 움켜쥐고는, 숨도 쉬지 않고 들이켰다.


꿀꺽. 꿀꺽. 살에 묻힌 목젖이 꿀렁이고 야만스런 소리가 울려퍼진다.


루카시안 13년산의 가치를 아는 애주가라면, 그 무례함에 치를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결투를 신청했으리라.


“하아아··· 그래, 오트. 아나톨리가 나에 대해 하는 말 같은 건 없던가? 응?”


오트는 한방울도 남지 않은 주교의 잔을 보며 속으로 한숨쉬었다.


아까부터 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포도주를 가져온다. 뭐라 주절대며 떠들어보지만 주교는 향도 맡지 않고 마셔버린 다음, 아나톨리를 찾는다.


그리고 자신은 그에 변명하며 다시 새 포도주를 가져온다···.


“별 다른 말은 없었습니다. 아나톨리는 그 이후로 상처를 치료하는 데 전념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상태가 많이 좋아져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는 의미에서 외출을 허락한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되어 정말 죄송스럽습니다···.”


그렇게 되도않는 변명을 일삼으며 코르크 마개를 따는 게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 똑똑


원장실의 두터운 문 너머로 들려오는 노크소리.


선명하지만 갸냘픈 특유의 박자감.


“아! 돌아온 모양입니다!”


그의 비서임이 틀림없다.


오트는 기쁨을 숨기지 않고 방을 가로질러 문으로 다가갔다. 주교는 벌게진 채 의자에 일어나 목을 빼내 문을 바라보았다.


문이 열리고, 드러난 것은 붉은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귀여운 아가씨.


두말할 것도 없이, 루시였다.


“원장님···.”


“루시, 루시! 왜 이제야 온건가! 아나톨리는? 함께 왔겠지?”


“원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답은 루시의 뒷편에서 들려왔다.


복도를 중후하게 울려잡는 강렬한 목소리. 오트는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반가웠고, 주교는 문틈 사이로도 귀를 간질이는 그 목소리에 가슴을 부여잡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오, 오오··· 아, 아나톨리냐······?”


빛이 잘 들지 않는 복도의 그림자 속에서, 아나톨리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루시 선생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른 어깨를 치며 지나가기.


신호였다.


루시는 준비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원장님, 죄송하지만 라부아지에 선생께서 지금 찾아오셨습니다. 원장님과 꼭 말씀을 나눠보시고 싶으시답니다···.”


“이런, 루시. 나는 주교님께 아나톨리를 소개시켜드려야지. 선생께 일이 있어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게. 그리고 10분 내로 가겠다고도 전하고.”


루시가 입을 달싹이는 순간이었다.


“전 괜찮습니다. 원장님.”


마치 쉼표를 찍고 들어오는 연주자처럼 완벽한 타이밍에 끼어든 아나톨리가 대화를 끊었다.


“뭐···?”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오트에게, 아나톨리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주교님께서 절 보고 싶다고 하셨다지요. 이렇게 큰 손님 한분을 기다리게 한 것도 죄송스러운데, 다른 손님마저 저때문에 기다리게 한다면 제가 면목이 없습니다. 원장님, 저때문에 시간 지체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리곤 미소를 주교 쪽으로 돌리며 빙긋이 물었다.


“원장님이 자리를 비우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아아! 물론이지! 물론이고 말고! 오트, 자네는 어서 가보게. 손님이 기다린다지 않나!”


“하, 하지만···.”


오트는 당황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댔다.


적합한 변명을 찾아낸 듯, 오트가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아, 아나톨리는 아직 예법이 온전치 않습·······.”


“걱정마십시오 원장님. 가르쳐주신 것은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다지 않나, 오트! 기억은 잃어도 교육은 잃지 않는다. 참으로 훌륭한 젊은이의 귀감이 아니던가! 이 젊은 청년은 걱정말고 어서 가보게나!”


오트는 결국 침음성을 삼키며 고개를 조아린 뒤, 문을 닫고 나섰다.


제아무리 그라 해도 주교의 축객령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 쓰라린 손해를 머리 속으로 계산하면서, 오트는 응접실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원장실에는, 나와 주교만이 남았다.


“으, 흐흐흐··· 하, 아나톨리. 그래. 아나톨리. 이리 앉게나. 혹시 바클라바 좋아하나? 자네같은 젊은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가져왔지······.”


정말 선물인 듯 주섬주섬 의자 아래에서 잘 포장된 상자 하나를 꺼내는 모습이 마치 사랑을 하는 소녀 같다.


징그러울 따름이다.


쑥쓰럽게, 그리고 탐욕스럽게 빛나는 눈동자 하며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몸. 더듬거리는 손짓.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둘만의 독대를 신청한 것은, 그를 영원히 내게서 떨어트리기 위해서였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존재다.


병원에 입원한다면, 주교는 병문안이라며 찾아오리라. 사망선고서를 보여준다면, 시체를 보러 찾아오리라.


간단히 말해서,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가 날 만나기로 마음먹는다면 내가 도망칠 곳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정면돌파 뿐이다.


“주교님.”


나는, 술냄새를 풍기는 마투에라 주교의 겨드랑이 아래로 팔을 넣어 가볍게 포옹했다.


바닥에 떨어진 상자에서 바클라바가 쏟아지고, 그 달큰한 향기가 두 사람의 코를 간질였다.


“오, 오오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뭐든··· 뭐든 말하렴······ 더, 더 속삭여줘······.”


그가 바라던 대로, 나는 그의 귓가에 내 입술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가서, 힘있게 속삭였다.


“오트가, 살라자르와 손을 잡았습니다.”


“오, 오오······.”


내 목소리에 취해 한참동안 황홀경에 빠져있던 주교는, 부지불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날 차갑게 밀어냈다.


“뭐라고?”


[ 마투에라 주교가 당신을 크게 경계합니다. 호감도가 초기화됩니다. 현재 호감도 : 0 ]


[ 마투에라 주교의 현재심리 : 확인하려면 호감도를 최소 ‘10’ 으로 올리십시오. ]


“쉬이잇···.”


나는 검지를 들어 내 입술을 막는 시늉을 해보였다.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자, 정신차려라, 플레이어.


게임 따위에 지지 마.


“들릴까 두렵습니다.”


이제 시작이지 않느냐.



.

.

.


작가의말

언제나 봐주시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


좋은 저녁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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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시아버지와 며느리 (2) +11 21.03.05 1,405 87 11쪽
9 시아버지와 며느리 (1) +15 21.03.03 1,522 96 17쪽
» 아나톨리 (5) +12 21.02.28 1,519 89 16쪽
7 아나톨리 (4) +22 21.02.26 1,610 95 13쪽
6 아나톨리 (3) +17 21.02.24 1,794 102 15쪽
5 아나톨리 (2) +23 21.02.23 2,237 117 17쪽
4 아나톨리 (1) +18 21.02.20 2,758 132 17쪽
3 죽기 전엔 하드디스크를 리셋하자. +26 21.02.18 2,649 128 13쪽
2 죽기 전엔 하드디스크를 리셋하자. +22 21.02.12 2,769 1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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