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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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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최근연재일 :
2021.09.1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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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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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소금의 도시 (1)

DUMMY

톨레도는 반짝이는 해안도시였다.


낮 동안 바닷바람에 소금기가 물기와 섞여 지붕과 벽을 덮는데, 밤이 되어 건조한 대륙풍이 불어오면 그 소금기가 모여 결정을 형성한다. 그것이 햇살을 받으면 반짝여 톨레도를 바다의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덕분에 지붕 닦는 아이들은 이 도시에서 제법 부유한 축에 속한다. 반대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소금장수니, 저 멀리에선 아직도 소금을 월급으로 주고 받는다는 이야기는 누구도 믿지 않는 뜬소문이었다.


톨레도는 이날도 아침햇살 속에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수평선에서 패잔병처럼 비틀거리는 배 한 척을 발견했을 때, 톨레도 항구에 서있던 젊은 보초는 확신에 차서 중얼거렸다.


“또 해적이야? 에휴, 점점 심해지는구만.”


안그래도 흉흉한 시기였다.


성벽 밖에선 몬스터와 도적떼가 도시를 공격해왔고 그나마 숨통이 트이던 해안마저 갑자기 해적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검성의 딸이 군대를 이끌고 도시를 구원하러 왔다가 실패하고 눌러앉질 않나, 도시의 영주인 백작은 겁만 잔뜩 집어먹고 성벽 뒤에 움츠리질 않나. 상황이 진전될 기미는 보이질 않았다.


“카악, 퉤!”


그러니 이런 시기에 도시를 지키느라 고생하는 자신은 소소한 보상을 챙길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저 배나 털어먹어야지.


“자, 내려라 내려 돈자루들아. 어디 이 어르신 주머니 좀 불려주련?”


그는 그렇게 이죽거리며 엉망이 된 배를 바라보았다.




.

.

.




“······해서, 이 신분패론 부족하다?”


“아이고, 역시 선장님 이해가 빠르시네.”


선장은 이를 갈며 껄렁껄렁한 자세로 창에 기댄 병사를 노려보았다.


“누차 말씀드리지마는 개인 용병? 그런 거 안먹힌다니까요? 나니까 선장님 체면 생각해서 이러고있지 남들 같았으며는 그냥 몰매 때리고 감금이예요 감금.”


건장한 뱃사람의 눈길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며 보초는 말을 이어갔다.


“벌금만 쬐끔 내는 걸로 끝내드릴게! 보자, 세 사람이니까··· 이정도면 되겠네!”


보초는 오른손을 쫙 펴서 내밀었다. 다섯 닢을 달라는 뜻이었는데 그것이 은화인지 금화인지는 안봐도 뻔한 일이었다.


톨레도에서 영주가 정한 법률 상, 이 땅에서 신고되지 않은 용병의 활동은 처분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신고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병이 이 땅에 들어와야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점을 이용해 벌금을 착복하는 건 톨레도 항구 보초들 사이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일종의 족보였다.


툭, 툭. 창대로 선장의 어깨를 친 보초는 야릇한 눈빛으로 선장 뒤에 서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기생오라비 같은 놈 하나에 끝내주는 여자 둘. 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장이 필사적으로 보호하려드는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사람들이렷다.


‘그럼 돈도 많겠지.’


그는 두 손을 싹싹 마주비비며 당장이라도 수금할 듯 미소지었다.


“말도 안되는 횡포요! 당장 백작님을 만나뵈야겠소!”


“에헤이! 영주님이 옆집 아저씬 줄 아쇼? 안되겠네, 내가 착하게 대해드리니 제정신을 못차리셔.”


“이···!”


선장은 이를 갈며 분을 삼켰다.


자신은 신분이 보증된다지만, 세 사람은 사기당해 짐을 잃은고로 신분패도 없다.


그리고 구해준 은인에게 보답하지 않으면, 바다는 죄를 묻는다.


때문에 선장은 그들을 자신이 고용한 용병이라 주장하며 용병 신분패를 내밀었다.


그가 가진 유일한 여분의 신분패였다. 그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사는 이내 허가받은 용병단에 속하지 않은 개인 용병은 이 도시에 불법이라 주장하기 시작했고, 일이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자, 자. 아침인데 기분좋게 하루를 시작합시다. 깔끔하게!”



***



당당히 손을 내미는 보초와 그에 언성을 높이는 선장을 보며, 아가리타는 뒤에서 한숨지었다.


기껏해야 금화 다섯 닢 쯤이야.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동전 다섯 개가 만져졌다. 이것들을 전부 금화로 바꿔서 낼 생각이었다.


“아.”


아가리타의 예민한 손끝에 익숙한 감각이 느껴졌다.


웃는 얼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은화. 예의 그 ‘거스름 돈’.


다른 동전이 없나 주머니를 뒤적였지만 있는 것은 그 은화를 포함해 다섯 닢 뿐.


어쩐지 모를 거부감에 은화를 만지작거리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다. 바보같은 짓이다. 은화를 금화로 바꿀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니.


아가리타가 마음을 다잡고 동전들을 금화로 바꾸려는 순간이었다.


“갖고 있어라. 쓸 데가 있으니까.”


속삭임과 함께 아나톨리의 억센 손이 어깨에 와닿는다. 화상이라도 입을 듯 뜨거워 잠시 놀라지만 그뿐이다.


그가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벌써 여러 번 바라본 모습이다.


이번엔 또, 무엇을 할 생각인지.


아가리타는 호기심을 담아 아나톨리를 지켜보았다.


걸음걸이가 비틀거린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불안하다. 무슨 의도일까, 동정심을 유도하는가? 하지만 약점을 드러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닐텐데.


엄청난 관찰력으로 아나톨리의 행동 하나하나를 분석하던 아가리타의 눈이, 아나톨리의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은 더없이 곧고, 어딘가를 꿰뚫을 듯 단단했다.


아, 그렇군. 그래.


다치고 약해진 상황에도 감히 너따위가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인가.


아나톨리의 입이 달싹이는 걸 바라보며 기대감에 차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살려, 주세요···.”


털썩.


아나톨리는 그대로 보초에게 엎어지며 기절했다.


“···아?”


그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으, 어어억! 뭐야! 뭐어야!”


보초는 갑작스레 자신을 덮친 거구의 남자를 지탱하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루시가 소리질렀다.


“꺄아아악! 사람이 쓰러졌어요! 의사, 의사를 불러요!”


루시의 비명에 퍼뜩 정신차린 보초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제서야 남자의 몸을 뒤덮은 붕대가 보인다. 피 투성이에, 곳곳에 고름이 났는지 누런 자국이 남아있다. 피, 피······.


“으, 으으!”


죽었나?


갑작스레 찾아오는 공포감에 보초는 주변을 둘러보고 이른 아침이라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제, 젠장! 나, 난 모르는 일이야!”


그대로 도망쳤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선한 의도도, 돈을 뜯어내겠다는 악한 의도도 없이 그저 상황에서 도망치고자 하는 소시민적 행동이었다.


“어, 어디가요! 돌아와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루시는 그 등 뒤를 향해 소리질렀다. 보초가 멀리멀리 도망칠 때까지.


그리고 마침내 보초의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괜찮소!? 빌어먹을, 들것을 갖고 와!”


그렇게 소리치며 아나톨리에게 달려오던 선장은, 쓰러진 아나톨리가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 제자리에 멈췄다.


“···갔나요?”


“응. 갔어. 아주 멀리.”


좋아요. 아나톨리는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루시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세우고는 웃어보였다.


“정말 좋았어요, 루시.”


“헤헤, 별 말씀을.”


“···하.”


헤헤- 하고 루시는 뿌듯하게 웃었고, 아가리타는 김빠진 풍선처럼 모았던 숨을 내쉬었다.


아나톨리가 쓰러지는 척 연기하면, 루시가 의사를 불러달라고 외친다. 그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병사가 벌금따위는 잊어버리게 만든다.


유치하고, 터무니없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대체 저 둘은 언제 이런 연극을 준비한건지. 아가리타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한 선장 혼자 불안한 눈으로 물을 뿐이었다.


“그, 괘, 괜찮소? 상처는?”


“연기였어요. 그나저나, 분명 용병 신고를 하면 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어디서 하면 되는지 혹시 아십니까?”


그제서야 무슨 일이었는지 알아차린 선장이 허탈하게 웃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선장 자신을 구한 것도 이 젊은이의 무력이 아니라 혓바닥이 아니었던가.


홀린 듯한 오묘한 느낌에 휩싸이며, 선장은 앞장섰다.


"정말이지, 따라오게. '관' 으로 안내하지."



.

.

.





톨레도는 항구도시고, 필연적으로 무역의 중심지다. 그리고 그런만큼, 수많은 행정인력이 갈리다시피 소모되는 행정관의 무덤으로 악명 높다.


하필이면 흑단나무로 지어져 그 외관조차 검은 네모진 건물을 보며, 백작에게 고용된 행정직원들은 농담삼아 그곳을 ‘관’ 이라고 부르곤 했다.


자신들은 관에서 일하다 관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자조섞인 한탄이었다.


톨레도의 행정은 모두 그곳에서 이뤄진다. 출생신고, 사망신고, 무역물품 관세 부과, 그리고 용병단 설립 및 신고까지.


“다음은 이 항목을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고용주 분께서는 신분패와 동일한 내용을 적어주세요. 피고용자분들은 여기, 이 항목을···.”


그렇게 말하며 살찌고 머리가 빠진 직원은 양피지를 두 손으로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걸 받으니, 그녀의 손가락이 내 손등을 스치며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 행정속관 마리암의 호감도가 1 증가합니다. 현재 호감도 : 8 ]


살짝 붉어진 얼굴, 과도한 친절.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어, 음, 보자, 이건··· 흠. 생···생···연··· 생연필?”


떠듬떠듬 서류를 읽어나가는 선장을 보고 나는 손끝으로 양피지 위를 가리키며 올바른 철자를 읽어주었다.


“생.년.월.일.”


“아, 고맙네.”


[ 선장 그라몽이 당신을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호감도가 1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17 ]


거친 뱃사람이라곤 하지만 선장이 글을 모를 줄이야. 분명 호인이고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이래서야 크게 되기 힘들텐데.


[ 행정속관 마리암의 호감도가 2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10 ]

[ 마리암의 현재심리 : ‘글도 알고 있어. 분명 몰래 집나온 도련님이 분명해.’ ]


넌 또 뭐야. 저리가.


그라몽의 서류 몇 곳을 짚어주며 그대로 받아적으면 된다고 가르쳐준 다음, 나는 내 서류로 돌아와 복잡하기로는 현대에 뒤지지않는 서류 양식을 가지고 한참을 끙끙댔다.


나도 이렇게 고생인데, 두 사람은 잘 하고 있으려나?


슬쩍 돌아보니, 아가리타는 이미 작성을 끝마치고 여유롭게 깃펜을 빙글빙글 돌리며 놀고 있었고 루시는··· 뒤틀리고 잘못된 양식을 보며 뒷목을 붙잡고 있었다.


“아니야, 이게 아니야! 신고서류는 이런 식으로 만드는 게 아니야! 제목은 18포인트, 그 아래 주의사항을 13포인트로 했어야지! 대체 왜 전부 다 12포인트로 때려박은건데! 잠깐, 여긴 또 왜 끄트머리가 살짝 삐져나왔··· 담당자 누구야!”


각혈이라도 할 기세였다.

저쪽은 내가 도와줄 필요가 없어보인다. 내것이나 신경쓰자.


슬쩍슬쩍 날 훔쳐보는 직원들, 루시의 난동, 이게 뭐냐고 서류를 들이대는 그라몽 사이에서 서류를 완성하는 건 상당한 고행이었다.


그리고 간신히 신고서류를 완성한 나는 뜻하지 않은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직원이 빼먹은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아, 정말 죄송합니다. 호위로 계약된 개인용병은 용병으로 신고할 수가 없어요. 이미 상단이 도시에 도착한 순간부터 호위 계약은 성립되고, 여러분은 호두파이 호 소속이 아니게 되니까요. 개인용병의 체류는 금지라서, 유일한 방법은 이 자리에서 용병단을 만드시고 정식으로 신고하시는겁니다만··· 확실한 신분보증이 필요해요. 말 그대로 ‘보증’ 을 서주실 분을 찾으셔야 합니다.”


“이런, 맙소사.”


“정말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했는데···.”


빌어먹을. 내 얼굴 훔쳐볼 시간에 서류를 검토했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 아닌가.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아낸다.


직원의 말을 간단히 정리하면, 나더러 개인용병이 아니라 정식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이 되라는 뜻이었다.


그러지 못하면 이 도시에 발을 붙일 수 없다.


하지만 이 도시는 이미 몬스터와 산적들에게 포위되어있고 해로는 오면서 겪었듯이 해적들로 들끓는다.


용병단에 들어가는 건 생각할 가치도 없다. 난 다른 사람을 위해 죽어줄 생각이 없다. 이제 직접 싸우는 건 피하고 싶은 마음 뿐.


그렇다고 직접 용병단을 만들자니 보증을 서줄 사람을 구해야한다. 그것도 신분이 확실한 사람으로.


사실상 나갈 수 없는 이 도시에서 무연고자가 되라는 소리였다.


“끄응···.”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참이었다.


—퍽!


내 등을 내려치는 강력한 힘에 정신이 번쩍 든다. 도끼에 맞은 어깨상처가 욱씬거려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대체 누구···!”


고개를 돌리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 세계에 오고나서 정말 오랜만에 눈높이가 맞다는 것이었다.


“으흐흐 *딸꾹!* 너, 들어갈 용병단이, *딸꾹!* 필요허냐? 흐으음···.”


술냄새. 흐리멍텅한 눈. 상기된 뺨.


술주정뱅이다.


그럼에도 키가 나와 맞먹을 정도로 크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산뜻한 몸놀림. 가벼운 동작 한번에 상쾌한 숲 냄새가 퐁퐁 풍겨온다.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길고 뾰족한 귀.


엘프였다.


“근육 합격, 상처 보니 싸움도 할 줄 알고 자세도 잘 잡혔고오··· 으어, *딸꾹!* 저기, 딴 애들은 싸움도 못할 것 같으니 되꼬, 너. *딸꾹!* 들어와라! 채용해준다!”


“갑자기 그게 무슨?”


나는 술냄새에 코를 찡그리며 답했다.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채용이라니?


엘프는 술병을 꼴꼴거리며 비우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죄인처럼 고개숙이고 있던 직원으로부터 나왔다.


“얼마 전부터 자기 용병단에 영입할 사람 구한다면서 여기 눌러앉은 분이세요. 유동인구가 많으니 사람 보기 좋다면서요. 왠만하면 용병단에 들어가시는게···.”


“얼토당토 없는 소리 마시오!”


직원의 권유에 화를 내며 내앞을 가로막은 건 예상 외로 선장, 그라몽이었다.


“이 사람들은 내가 고용했소! 아나톨리! 자네 설마 이 귀큰 년 아래에서 일하고 싶진 않겠지!”


그렇게 말하며 날 바라보는 그라몽의 눈에는, 의외의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분노, 혐오.


[ 선장 그라몽의 현재심리 : ‘씹어죽여도 시원찮을 귀쟁이 같으니!’ ]


그 명백한 종차별주의적인 혐오에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 선장 그라몽이 기뻐합니다. 호감도가 1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18 ]


애시당초 받아들일 가치가 없는 제안이었다.


루시와 아가리타는 신분을 보장받지도 못하는데다, 엘프라곤 해도 기껏해야 술주정뱅이 용병대장 아래에서 일을 한다는 건···.


젠장할, 이 세상의 멸망에 일조하는 짓이지.


나는 가볍게 손을 가로저으며 예의바르게 대답했다. 엘프라면 최소 100살은 먹었을테니 일단 나보다 연상이 아니겠는가.


“정말 감사한 제안입니다만, 제 동료와 함께 할 일이 있는지라 누구 아래에 속할 수는 없는 몸입니다.”


“으흐흐, 그래, 너희 단명종들은 맨날 그러 *딸꾹!* 더라. 우흐흐흐··· 함께니 뭐니··· 우습지.”


“당신 족속들은 항상 그렇게 거만하게 구는데, 당장 가서 술이나 깨고 오는 게 좋을거요!”


탄탄한 팔을 마구 휘두르며 손가락질하는 그라몽을 무시하고, 엘프는 가볍게 걸어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후우우, *딸꾹!*, 잘 생각해. 이 도시에서 날 모르는 놈은 없거든. 백작도, 그 검성 딸내민가도 나랑 계약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말이야. 저런 뱃놈 아래보다 내 아래가 더···.”


나는 그 하얗고 가늘게 뻗은 아름다운 손을 치우며 단호히 말했다.


“죄송합니다.”


“들었지! 하!”


[ 선장 그라몽이 기뻐합니다. 호감도가 5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23 ]


[ 용병대장 알루이스가 마음에 들어합니다. 호감도가 1 오릅니다. 현재 호감도 : 2 ]


“흐후으, *딸꾹!* 맘에, 드네. 새끼··· 그래서, 신분 *딸꾹!* 보장은, 있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이 도시에서 활동하려면 필요한 신분, 그것을 얻을 길이 보이질 않았다.


고민 끝에 살짝 고개를 가로저으려는 순간이었다.


“암! 있고 말고! 아아암!”


그라몽은 그렇게 외치고는 직원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내가 보증을 설테니, 지금 당장 용병단 하나 받을 준비 하시오!”


···단순히 엘프가 꼴보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보증을 서주는 그라몽을 대단하다고 말해야할지, 아니면 멍청하다고 말해야할지.


그렇게 고민하던 내 눈앞에, 무지개색으로 요란하게 빛나는 창 하나가 떠올랐다.



——[ 특별 이벤트 - 용병단 창설! ]——


-숫자는 그 자체로 힘입니다. 그걸 이해한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는 너무나도 당연하지요.


-동료를 만드세요, 육성하세요. 바■⨽하세요!


-명심하세요. 이 험난한 세상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가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입니다.


-이제부터 [ 용병단 ] 기능이 해금됩니다.


—————————————————



이건, 또 뭐야.





.

.

.


작가의말

끼니 거르지 마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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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아버지와 며느리 (1) +15 21.03.03 1,520 9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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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나톨리 (4) +22 21.02.26 1,609 9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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