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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작가 윤도경의 찻집

신도림역 7번출구

웹소설 > 자유연재 > 추리, 드라마

윤도경
작품등록일 :
2023.05.10 10:25
최근연재일 :
2023.06.18 20:00
연재수 :
80 회
조회수 :
891
추천수 :
21
글자수 :
373,950

작성
23.05.18 10:00
조회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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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바다-너는 한 마리 고라니일 뿐!

DUMMY

그녀는 그렁그렁한 눈물이 두 눈에 어리었다.


눈앞의 차도나 그리로 지나가는 차들이 굴절돼 보였다.






한편 두 사람은 윤정이 숨은 건물을 지나


X 매트가 입주한 건물 입구에서 몇 마디 말을 하더니 인사를 하고는 헤어졌다.



여자는 발걸음을 돌이켜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윤정의 눈에 들어온 그녀는,


완연한 가을 왕복 2차선 도로를 런웨이 무대로 쓰는 패션모델과도 같이


도도한 모습으로 비치었다.



<윤정> ‘혼자 모델인 척 하기는.’



하지만 윤정의 환상 속에서 그 길을 그녀는


아주 당당히, 그리고 아주 우아하게 걷고 있었다.



그녀는, 밟으면 발자국도 생기고 눈비 내리면 조금씩 젖어 주기도 하는 진흙길과도 같은 여유로움 따위는 한 숟가락도 없을 것 같았고,


성질머리로 보자면 아스팔트에 난 요철과도 같이 거칠고 울퉁불퉁할 것 같기만 했다.



윤정의 눈에만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 같이 보였다.



무엇보다 그녀의 목에 두른 루비 목걸이와 귀에 건 에메랄드 귀걸이가 반짝였다.


그 보석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치 한 번 걸어서 지나가는 것만으로 런웨이의 모델 컷을 완성할 것만 같이, 그녀는 도도했다.


윤정은 그것이 괜히 신경 쓰였다.


물론 짜증도 나고 화도 났다.



<윤정> ‘저건 내가 받기로 한 것들이야. 근데 왜 저 여자가 하고 있는 거냐구!’



살짝 내린 시선으로 바닥을 응시하고 걷는 걸음마저 윤정에겐


차가운 도시의 ‘가을 여자’ 같은 아우라를 내뿜는 듯 보였다.



윤정은 여자의 손가락을 훑었다.


혹시 사파이어 반지가 있을까 싶어서였다.



<윤정> ‘다행히 없네. 아직은.’



루비와 에메랄드가 있음에도 사파이어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그녀의 초조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었다.






윤정은 돌아선 여자에 놀라 눈길을 피하더니,


이내 여자가 자신을 알아볼 리가 없다는 생각에 다시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응시했다기보다는 여자의 시선을 굳이 피하지 않은 것이었지만,


도도한 첫인상이나 짜증스런 마음이 투영된 것에 비하면 제법 곱고 아름다웠다.



<윤정> ‘확실히 세상을 다 가진 주인공은 같아 보이네.


하지만 넘봐서는 안 되는 것에 손을 댄 것 같다.’



역시, 여자는 세상에 아무런 빚 따위 없다는 듯이 윤정의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나니 더더욱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었다.


자신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하이힐 소리마저 도도해서 짜증이 났다.






윤정은 여자의 뒤를 쫓았다.






- 6 -




윤정은 여자를 뒤쫓았다.



<윤정> ‘차는 백화점 지하주차장 같은 곳에 주차해 두셨을까?


요즘 같은 세상에도 돈을 휴지 삼아 쓰는 졸부의 막내 딸내미처럼?’



차림새를 보아하니 그곳에서 집까지 멀지도 않은 길을 차를 타고 왔을 것 같은,


그리고 그 차를 타고 집에 갈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물론 차를 팔지 않았더라면 그녀 역시 그와 똑같이 했을 테니,


짧은 순간의 느낌으로 여자를 나무랄 생각은 금세 사라졌다.



<윤정> ‘하긴, 어려운 세상이 졸부들 몫(탓)은 아니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도 모르게 둘을 비교하는 마음이 드는 것까지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녀는 IMF 세상을 만나 차를 팔아버린 자신과 여자를 비교했다.


괜스런 일이었다.


어쨌거나 차를 몰고 가는 여자를 따라가자면 그녀 역시 택시를 탈 수밖에 없는지라,


괜한 짜증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심술까지 엮어 여자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여놓고는 여자를 ‘놀부’로 만들었다.



그런데 여자는 얼마 가지 않아 버스정류소에 멈춰 섰다.


왼쪽으로 목을 길게 뺀 품새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 틀림없었다.



<윤정> ‘어? 차를 안 탄다?’



윤정은 흠칫 놀랐지만, 이내 그럴 수도 있다며 넘겨버렸다.



<윤정> ‘시내에서 차는 짐이지.’



그러고는 여자에게서 다소 떨어진 자리에 서서 그녀를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버스, 그것도 세월의 더께가 바람으로 쌓여 ‘풍화’(風化, 風禍)를 맞은 듯한 버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다.



<윤정> ‘다 깨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고, 그런데 너만 멀쩡하다 이 말이지?


그것도 내게 상처를 안기고 그걸 밟고 올라서서?


너만 그런 호사를 누릴 수야 없지.’



이윽고 버스 한 대가 도착하고 여자가 버스에 올라탔다.


윤정은 여자를 놓칠세라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제치고 허겁지겁 그 버스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여자가 앉은 자리의 뒤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자를 주시했다.



여자는 차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창밖을 조용히 응시했다.



그녀를 따라 윤정도 창밖으로 시선을 향했다.


왕복으로 진행하는 무심한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다시 여자의 뒷모습에 시선을 맞추자니, 불현듯 고라니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윤정> ‘그런대로 봐 줄만은 해. 고라니처럼.


그런데 이 겨울에 웬 고라니?


먹을 게 없어서 인가로 내려왔나?


젠장할, 그러고 보니 산속 농사지어 고라니 좋은 일만 시켰구나!’(註1)



윤정은 가만히 도리질을 쳤다.


태휘와의 옛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설악에서, 속초에서, 그리고 IMF가 터진 뒤 삼척과 동해, 강릉에서.


그때 그녀는 둘 사이가 지금처럼 틀어지리라고는,


적어도 이와 같은 난맥상에 빠지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었다.



<윤정> ‘고라니가 맛대가리나 좀 있었으면 멸종을 해도 골백번은 더 했을 거야.


그러니 남은 건 사살, 아니면 로드킬뿐.


이러나저러나 끝은 하나구나.’



괜히 시선이 차창 밖 도로 쪽으로 쏠렸다.


버스가 멈춰 섰을 때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니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괜히 화들짝 놀라고는, 쓸데없이 고라니 생각이라며 왼쪽 볼을 실룩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가 내리려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윤정은 자리에 앉아 내리는 문 앞에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선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여자가 ‘손을 든’ 모습, 곧 승용차를 탔으면 보이지 않았어도 될 모습을 보니,


아까 보았던 도도하고 당당했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고라니, 로드킬은 아니어도 올무에 걸려 발버둥 치는 한 마리 고라니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여자가 내리자, 윤정도 뒤따라 내렸다.


그리고 얼마간 거리를 두고 여자를 뒤쫓았다.


주위 가게들이 ‘신대방’이라는 말이 들어간 간판이 많은 것으로 보아 신대방동임이 틀림없었다.



잠시 뒤 여자는 시장통을 지나갔다.


시장이야 원래 시끌벅적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므로 번화한 곳이지만,


여자가 지나가니 괜히 ‘번잡’하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차림새가 시장통에 어울리지 않아서도 더 그랬다.



시장통 사람들 중에는 꼭 깡패 하나 정도는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여자는 꼭 그 깡패의 보호를 받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느낌도.



<윤정> ‘목욕탕이나 들어가야 똑같을 줄 알았더니, 너는 시장에서 망가지는구나.’



윤정은 기분이 조금 홀가분해졌다.



낮에 X 매트에서의 그 모습을 보고는 여자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아니라는 것이 점점 확실해지자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


참 간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토록 볼품없는 여자에게도 ‘밀렸다’는 것이


마치 누구의 선택도 받지 못하는 ‘퇴기’가 된 듯 하여 비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윤정> ‘어이없네. 퇴기라 비참하다니.’



이윽고 여자는 한 다세대 주택의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윤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윤정> ‘저기가 집, ······ 이라고?’



당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는 집의 맨 꼭대기 4층, 그러니까 옥탑까지 올라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더욱이 그 모습은 어떠한 가림막 또는 방어막도 없이


주택 바깥에서 바라보는 사람에게 고스란히 드러났다.



무엇보다 태휘가 ‘저런’ 여자에게 의지한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윤정> ‘어울리지 않는 옷, ······ 어울리지 않는 사람(태휘)에게서도 떨어지길.’



윤정은 대문 우편물 수령함 위에 적힌 주소를 수첩에 적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은 한겨울의 찬 기운이 마치 박하 향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리만큼 상쾌했다.


낮에 느꼈던 것과는 달리 여자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이미 2차선 도로를 홀로 쓰는 도도한 런웨이 모델은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날 저녁, 윤정은 왼쪽 쇄골과 어깨를 드러낸 채


색깔만 아슬아슬한 레이스 레드벨벳 나이트가운을 입고


얼굴을 황도(黃桃) 비슷한 때깔로 화장을 한 뒤 손거울을 꺼내 들고 중얼거렸다.



<윤정>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고 섹시하니?”



그녀는 오랜만에, 그것도 태휘에게 보이기 위해 단장을 했으니, 누구에게라도,


안 되면 거울에게라도 예쁘고 섹시하다는 대답을 들어보고자 하였다.


거울을 들고 좌로도 돌아보고 우로도 돌아보았으나, 거울이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윤정> “누구긴요, 김윤정님이시지요.”



그녀가 거울이 되어 대신 대답을 해 보기도 하지만,


하지만 설령 거울이 대답을 해준다손 치더라도


백설공주가 있는 이상은 그녀는 ‘마녀’일 수밖에 없는지라


‘대리 대답’까지 한 자신이 참으로 겸연쩍었다.



<윤정> ‘칫, 백설······ 공주 좋아하네. 맨얼굴에 주근깨처럼 점점이 서리태 박힌 백설기라면 모르겠다.’



어쨌든 그날은 그녀가 나서서 반드시 태휘와 관계를 할 심산이었다.






그날 밤 늦은 시각, 윤정은 화장대에 앉아 계속 얼굴을 매만졌다.


만진다고 황도가 백도(白桃) 될 까닭이 있겠는가마는,


꼭 시험을 앞두고 잠들지 못하는 여고생의 심정과도 같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떨리었다.





=== 주석


註1. 농사는 보통 평지에 짓는데, 마땅한 곳이 없으면 산을 개간하여 산속에 농사를 짓기도 한다. 그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어놨어도 고라니가 와서 다 뜯어먹어 버리니 헛일이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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